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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자기찾기

자본주의와 인간요소

by 격암(강국진) 2012. 10. 1.

우리는 현대 국가를 최고의 발전된 사회 형태로 생각하지만 사실 발전이란 말은 애매한 데가 있다. 더많이 생산하거나 규모가 커지는 것이 반드시 발전이랄수는 없다. 옛것을 찬양하고 옛것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알맞는 도구가 있는 것이지 모든 상황과 필요에 상관없이 홀로 가장 발전된 도구라고 말해지는 물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그 도구가 필요한 상황이 유일한 상황으로 그 이외의 경우가 없다라는 가정을 도입하는 것이다. 즉 알게 모르게 사는 건 이러저러 하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EBS에서 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다큐를 보면서 나는 거대한 전환에서 자유시장에 대한 환상을 지적한 칼 폴라니가 떠올랐다.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은 일종의 인간없는 무인 조종 자동차 같은 것이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그 국가내의 모든 것은 왕의 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왕이 왕 아닌 자에게 그것을 가지고 있도록 허락해 줄 뿐이다. 그래서 그 국가내에서 뭐가 옳은지 그른지, 뭐가 가치있는지 없는지는 왕이라는 인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신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상을 벗어나 이성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소위 자연법칙이라는 것을 찾고 그것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달이 하늘에 떠가는 것을 신이 그러라고 명령했기에 그렇다라고 이해하는 것에서 자연법칙이란게 있어서 그 자연법칙에 따라 달이 하늘에서 그렇게 움직인다라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연법칙을 연구한 뉴튼처럼 과도기에는 법칙의 존재와 발견은 그 자체가 신의 뜻을 밝히는 일로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태도는 잊혀지고 법칙 자체만이 남는다. 후세대의 수학자 라플라스는 신에 대해 우리는 그러한 가정이 필요없다라고 선언했다고 하지 않는가. 


즉 이제 세상은 어떠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며 그 법칙은 누구도 바꿀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 것이다. 예를 들어 왕이라고 해도 인구론의 법칙에 따라 경제가 움직여 나가는 것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물리학은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해도 그 신이 선택할수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점점 강화된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바뀌지 않는 자연법칙에 따라 만물이 각각 움직여 가는 사회고 그러면서 점점 진화론적 논리에 따라 발전해 가는 사회다. 이것이 바로 자유시장을 옹호하고 경쟁을 주장하고 자유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이며 논리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왕이라는 인간이 다스리는 국가에서 법칙이 사회를 저절로 움직여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것을 가진 국가로 변해왔다. 요즘 우리는 흔히 시장에는 누구도 대항할수 없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비록 대통령이나 국회라고 해도 시장의 법칙에 저항해서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세상은 인간의 손에서 놓여나서 자유롭게 스스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반세기전에 이런 자유시장에 대한 이해는 환상이라고 칼 폴라니에 의해 지적되어졌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자유시장이란게 실제로 제대로 작동한 적이 한번도 없으며 항상 자유에 의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 가는 것을 인위적 개입에 의해 버텨온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논리로 그것을 숨겨왔을 뿐이다. 


예를 들어 진정 자유가 발전을 가져온다면 모든 종류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하는데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기는 커녕 현대 자본주의는 어찌나 규칙이 많은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다. 노동자가 모여서 파업으로 기업주를 협박하거나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로 비판된다. 그러나 기업주가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회사를 폐쇄하거나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시장논리의 결과로 기업주가 윤리적 책임을 지지 않을 일이라고 흔히 말해지는 것이다. 결국 수많은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이란 당연한게 아니라 애매한 인간적 판단에 의해 덧붙여진 조건으로 자유시장의 이념자체를 위배하는 일이다. 


이밖에도 화폐제도가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것등이 자유시장이념의 허구를 밝히는 일이라고 칼 폴라니는 말하고 있다. 지금 21세기의 유럽이며 미국이 양적완화운운하면서 돈을 마구찍어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다. 뭐가 자본주의인가. 미국은 돈을 끝없이 찍으면 한국같은 약소국은 그걸 받고 노동을 제공하거나 우리의 땅이나 집을 제공하는게 이상적 사회로의 진보인가? 


결국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혹은 자유시장이라는 시스템의 핵심으로 돌아갔을때 우리는 거기에 인간요소가 빠지는 것이 핵심적 문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사실 종종 인간적 요소가 들어간다라는말을 부패나 비합리와 당연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가 정말 공평하고 발전된 사회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죽어가든 누가 뻔히 선의를 행했는데도 부당한 대접을 받든 시스템에 맞질 않으면 세상 법칙이 그런거니까 어쩔수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애써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이것은 정확히 맬서스의 인구론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더 지옥이 오니까 내가 배가 터지게 먹을때라도 굶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안되며 그들이 굶어죽는 것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태도다. 


이 세상에 마술상자는 없다. 즉 인간적 가치판단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 없이 시스템이 그걸 대신해 줄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된 자본주의 혹은 복잡한 규칙을 도입하고 규모가 거대화한 자본주의는 그에 상응하는 더욱 강력한 인간요소가 없으면 결국 조종사없는 제트기가 될뿐이다. 우린 조종사가 없는 자동차, 제트기가 가능하다는 환상에 빠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게 없다. 누군가가 어디선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선택을 하고 스위치를 누르기 때문에 자동차와 제트기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결국 자본주의는 그에 대응하는 강력한 정치시스템에 의해 균형잡일때만 제대로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준다. 정치가란 자본주의 시스템의 감시자, 조정가다. 그들은 그 사회의 윤리적 가치적 선택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들이 부패하거나 자기 역할에 대해 착각하는 일이 일어나서 자신을 시장논리의 일부대로 움직이는 말로 생각하면 일은 벌어지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된다. 현정부에서 우리는 무수히 오해다, 착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라의 빚이 급증하고 나라의 재산이 엄청나게 팔려나가거나 그렇게 되려고 시도되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왕정으로 돌아갈수는 없다. 왕정이 쓸모없어진것은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요소가 빠진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어떤 방면에서는 왕정보다도 못하다. 그런 시스템은 인성이 없는 칼날처럼 사람들을 쳐내기 때문이다. 왕정이나 독재는 그래도 모든 사태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답을 준다. 국민이 먹을게 없거나 죽으면 독재자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요소가 빠진 자본주의라는 것은 책임지는 사람없이 대량으로 사람들을 죽게하거나 굶길수 있다. 그럴때 생길수 있는 한가지 역풍은 시스템안에 인간요소를 집어넣기 위해 다시 독재자를 찾고 왕을 찾는 것이다. 국회안에서 득실대면서 무능하게 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는 정치집단을 쓸어낼 독재자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왕정은 답이 아니다. 


결국 답은 책임을 남에게 미룰수 없다는것, 우리 사회내에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우리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람들이 인간요소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밖에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누구 독재자가 해주거나 어떤 시스템이 자동으로 해줄거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끊는게 아니라 결국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밖에 없다. 낫으로 풀을 베건 풀베는 기계로 풀을 베건 결국 풀을 베는 것은 사람이다. 시스템이 존재하더라도 그 시스템의 결과는 그 뒤에 있는 사람이 져야 한다. 


개혁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의 개혁에 대한 고민을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면 세상이 좋아질거다같은 생각이 그렇다. 부동산 세금을 이렇게 매기면 좋은 세상이 온다던가, 병역법을 바꾼다던가, 선거법을 바꿔본다던가 학교 시스템을 이렇게 바꿔본다던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민에 빠지다 보면 결국 인간을 망각하기 쉽다. 학교시스템이 학생을 키우는게 아니다. 결국 부모와 선생과 지역사회의 사람들의 사랑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사랑만 있다면 시스템이 허술해도 대충 돌아가지만 사랑이 없으면 허울좋은 시스템 아무리 만들어도 결국 그 효과는 없다. 건축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벽돌없이 벽돌담을 지을수는 없다. 사람을 키우는 원재료는 사랑과 관심인 것이다. 


부동산 투기도 그렇고 투표도 그렇고 다 그렇다. 결국 시스템도 고민해야 하지만 곧장 바로 인간을 대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이 마음을 돌려먹으면 복잡한 시스템 다쓸모없는데 사람은 안보고 복잡한 시스템에 시간과 돈 다들이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그 책임은 다른 누가 아닌 우리에게 있다.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눈도 멀고 귀도 멀어서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 요소가 빠지고서는 세상이 좋아질 방도가 없다. 진정한 개혁은 인간개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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