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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선풍기 바람은 왜 시원할까.

by 격암(강국진) 2012. 11. 3.

12.11.3

더운 여름이 지났다. 에어콘이나 선풍기 신세를 진 사람이 많을것이다. 그런데 선풍기 바람은 왜 시원한 것일까. 여러가지 답을 내놓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차가운 공기를 몸에 쐬니까 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고 기화열 때문에 몸의 표면에 있는 물이 날라가면서 열을 빼앗아 간다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여러가지 틀리고 맞는 설명이 여러 차원에서 가능하지만 사실 고전물리학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많은 것은 원자의 운동차원에서 설명되어져야 한다.즉 온도나 열같은 개념은 다시 원자의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그렇게 할 때 보다 명확해 진다.

 

뜨겁다는 것은 원자차원에서말하면 결국 원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공기는 산소나 질소 같은 여러 분자들로 이뤄진 기체들인데 이런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이면 그게 뜨거운 공기고 천천히 움직이면 그게 차가운 공기다. 물론 모든 분자들이 다 똑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며 인구가 연령대에 따라 어떤 분포를 보이듯이 속력에 따라 분포를 보인다. 이것에는 볼츠만 분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상온에서 산소나 질소분자의 속력은 평균적으로 말해 약 초속 500미터쯤 된다고 한다. 이게 빨라지면 뜨거워 지는 것이고 이게 느려지면 차가워지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런측면에서 말하자면 우리의 온도 측정 감각이란 뜨거운 분자와 차가운 분자를 구분하는 능력인 셈이다. (온도 감각과 물리적 현상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차가움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다. 주관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실감했는지 모르지만 이건 매우 빠른 속력이다. 소리의 속력이 초속 340미터니까 마하를 넘는 속력이다.  시속 150킬로미터의 바람을 가진 태풍도 사실 초속으로 치면 42미터가 안된다. 그러니까 차가 날아가는 태풍의 바람속력도 평균 분자속력의 10분의 1이 안되는 셈이다. 

 

그런데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선풍기가 뭘까를 생각해 보자. 선풍기는 말하자면 공기분자를 때려서 한쪽방향으로 가속시키는 가속기다. 야구공이 야구배트에 튕겨나오듯이 선풍기 날개가 공기분자를 때려내는 것이다. 공기분자는 통상 각각 여러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질소분자 같은 것은 초당 50억회의 충돌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니까 직선으로 그리 오랬동안 날아가지는 않는다. 그 직선경로가 다른 분자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자 하나하나는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지만 우리는 마하가 넘는 속력의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다. 온갖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바람이 사방에서 고르게 우리를 때려주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바람도 느끼지 못하며 풍선속의 공기도 둥그런 풍선을 만든다. 

 

여기서 한가지를 생각해보자. 선풍기는 더 차가운 공기를 만들까? 선풍기는 소량이지만 더 빠르게 움직이는 공기분자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사실 더 뜨거운 공기를 만드는 기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바람을 쐬면 더 시원하다고 느낄까. 그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기화열 때문이다. 즉 몸에 있는 수분이 증발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준다. 

 

수분이 별로 없는 사막기후에 가면 온도가 40도가 되는데도 사실 별로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늘에 서있으면 이게 왜 40도일까 생각할 정도다. 다만 그런 곳에서는 물마시는 것을 잊으면 수분이 부족한 탈수증에 걸리게 된다. 몸에서 빠르게 수분이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붙어 있는 물은 증발하는데 한없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 아니고 주변과 어느정도 평형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 몸주변에는 물분자를 포함한 공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수분이 더이상 증발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떠나는 물분자만큼 다시 몸에 들어붙는 물분자가 생긴다. 물론 바람이 안불어도 자연스레 물분자는 공기중으로 퍼져나가서 -물속에 떨어진 잉크가 퍼져나가듯이- 계속 증발이 이뤄지지만 이 물분자를 싹 치워버리면 확실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선풍기나 부채 바람을 쐬면 시원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물의 증발이라던가 헤어드라이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헤어 드라이기도 선풍기다, 그런데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그리고 뜨겁게 느껴진다. 물론 그것은 그안에 뜨겁게 달궈진 금속코일이 있어서 공기를 뜨겁게 하기 때문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뜨겁고 차가운 것은 결국은 분자의 속력의 문제이므로 달궈진 금속코일이나 선풍기 날개나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같다. 둘다 분자를 때려내는 야구방망이 같은 것이다. 달궈진 금속코일은 금속이 뜨거운 온도때문에 빠르게 진동하는 상태다. 금속상태에 있는 원자들은 서로 결합해서 분자처럼 날아갈수 없기 때문에 대신에 제자리에서 진동을 한다. 이렇게 진동하는 금속표면에 다가간 공기분자는 야구방망이에 맞은 야구공처럼 빠르게 튕겨나오고 그래서 뜨거운 공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풍기가 있는데 이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태풍보다 훨씬 센 바람이라면 금속코일같은것 없어도 이런 바람은 뜨겁게 느껴질 것이다. 다만 그런 바람을 맞은 사람이 날아가는 게 먼저일테지만. 야구공을 때려낸 야구배트의 속력은 줄어든다. 즉 차가운 공기를 때려낸 금속표면이나 붙어있던 물분자를 날려보낸 우리 몸의 표면은 진동의 크기가 줄어든다. 다시 말해서 차가워지는 것이다. 

 

뜨거운 공기도 사실 앞에서 말한 물분자 날리기를 할수 있다. 특히 주변에 차가운 공기가 있으면 더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입으로 부는 바람인데도 -따라서 같은 온도의 공기인데도- 추우면 살살 불어서 손을 덥히고 더우면 세게 불어서 선풍기 효과를 낸다.  빠른 바람을 불면 그 바람이 수증기가 없는 다른 공기를 빨아들이는 효과도 있다. 이 공기들은 입안에서 나온 바람과는 달리 수분이 적으므로 증발효과를 만든다. 

 

서로 달라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만 자연에 왜 그런 상수가 존재하는지 모르는 자연상수가 세상을 그렇게 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볼츠만 상수가 상온에서 분자의 속력을 결정한다. 상온에서 분자의 속력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더라면 선풍기는 모두 헤어드라이기와 구분할수 없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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