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대류세포와 우리

by 격암(강국진) 2013. 5. 29.

13.5.29

물을 끓이면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오고 차가운 물은 내려가는 대류현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적당한 온도를 지키면 그것들이 각각 덩어리가 되는 구조가 만들어 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소위 대류세포라고 하는 것이다. 이 대류세포는 자기 조직화 과정의 예로 알려져 있으며 물을 끓일 때가 아니라 지각에서도 태양표면에서도 대기의 움직임을 볼 때도 관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류세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것이 경제라던가 지방자치라던가 부동산 붐같은 것과 어떤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생명을 생각해 보자.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태양이다.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 공급이 없었다면 지구위에 밤낮이 생기지 않고 지구위에서 에너지의 흐름이 훨씬 작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명체들의 먹이사슬을 보면 결국 우리는 햇빛을 먹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태양이 없었더라면 그저 화학물질들의 단순한 혼합체만 있었을 지구에 태양빛이 비추고 그 안에서 자기조직화하는 생명이 탄생한다. 물론 태양이 없어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만 태양에서 너무 가까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것이다. 물을 펄펄 끓이면 대류세포고 뭐고 경계선이 다 파괴되고 만다. 적당한 거리에 있었던 지구에서는 햇빛은 내리쬐고 생명의 순환은 이룩된다. 생명은 태어나고 죽으며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는다. 그리고 시체는 쌓여서 유기물을 남기고 결국 석탄이나 석유의 형태로 태양에너지를 농축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조직화라는 것은 생명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차원에서도 일어나는 것같다. 핵심은 결국 에너지다. 인간의 지식이 늘어나고 조직화가 늘어날수록 인간이 생산해 내는 에너지의 양은 더 늘었다. 인류의 초기문명때 우리는 더 많은 생산을 하고 -주로 농업이지만- 그런 여분의 생산은 직접적으로 음식의 생산을 넘어서서 무기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고 결국 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거대한 조직은 결국 엄청난 소비를 더 커진 덩치가 만들어 내는 더 큰 생산으로 감당해 낸다. 이 점은 중요하다. 더 커진 생산이 없을 때 거대한 조직은 자기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고 만다. 

 

인간이 농업에 기대어 살아갈 때 인간은 햇빛을 직접 먹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인간이 저장된 에너지인 화석연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있으니 추위를 견디게 되었고 기계를 돌릴 수가 있게 되었다. 에너지는 화석연료를 쓰기전에도 대규모 벌채의 형태로 구해졌지만 화석연료에너지를 쓰게 되면서 부터는 인간은 더 큰 에너지를 손에 넣게 되었다. 수십억년의 누적분을 한꺼번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더 큰 에너지는 더 큰 조직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든다. 에너지가 있으면 결국 세상은 균일한 단일의 조직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사회적 변화는 에너지소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세기 대공황도 석탄경제에서 석유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펑펑 소비를 해야 돈이 도는데 그러다가 빚으로 돌리는 경제가 파국을 일으키면 공황이 온다. 왜 소비가 멈추는가. 비싸니까 그렇다.  왜 비싼가. 결국 에너지가 비싸졌기 때문이다. 거대한 프로젝트들은 멈추고 공장이 멈춘다. 그러다가 석유경제가 활성화되자 다시 세상은 바뀐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으며 석유경제가 어디까지 일지 모르지만 석유가 비싸졌다는 점에서는 이미 석유경제의 막바지를 살고 있다고 할수 있다. 당연히 중국같은 신흥산업국가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 소비를 원한다. 여기서 에너지 문제는 식량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식량은 비료로 생산되고 그 비료도 석유에서 나온다. 때로는 거꾸로 미국 옥수수를 식량으로 쓰는 대신 알콜로 만들어 자동차연료로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식량값이 올라서 가난한 나라들은 큰 식량난을 겪게 된다. 

 

부동산 거품의 이야기도 돈이라는 추상적 에너지와 거품의 탄생과 파열로 보면 비슷한데가 있다. 결국 사회에 돈이 풍부할 때 돈이 돈을 만들어 내는 투기는 불타 오른다. 그러나 그러다가 돈의 수급이 끊기게 되면 돈이 돈을 만들어 내는 부동산 투기는 자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 투기 바람은 엄청난 낭비가 일어나는 시장이다. 아파트를 지을 때도 아파트를 건설할 때도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도 온갖 사람들이 뛰어들어서 돈을 빼간다. 부패로 빠지는 돈도 있지만 정부도 세금의 형태로 돈을 빼간다. 사방으로 돈이 줄줄 새지만 그 이상으로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투기에서 이득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시장에 돈을 집어넣을 사람이 끊기게 되면 그 거품은 현상유지를 할 수가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경제불황이 오면 경제불황은 거품을 파열시켜서 그 경제불황의 골은 훨씬 더 깊어진다. 

 

펄펄 끊는 물은 가스렌지의 불을 줄이면 잔잔해 진다. 그리고 자기조직현상에 의해 대류세포들을 만들게 된다. 세계가 에너지로 펄펄 끓었던 시대가 화석연료로 인간이 산업화, 세계화를 진행한 시대다. 때문에 잠시간이라도 우리가 에너지 수급문제를 가지게 된다면 다음번에 다른 에너지 원을 찾기 전까지는 세상은 마치 식어가는 물처럼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지게 될 것이다.이렇게 되면 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을 찾아서 즉 보다 유지가능한 삶을 찾아서 사람들은 헤맬텐데 그것은 공동체 운동이라던가 귀농 귀촌이라던가 지방자치의 활성화라던가 하는 형태로 표출 될 수 있다. 작지만 더 에너지 효율이 좋은 시스템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는 대박을 꿈꾼다. 외국에 자동차나 핸드폰이나 반도체를 왕창 판다던가 서해안 어딘가에 석유가 나서 물을 펄펄 끓이게 될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그런 대박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절제가 필요하다. 물을 펄펄 끓이면 대류세포가 망가지듯이 외부에서 들어온 큰 돈과 에너지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런데 그 돈과 에너지가 계속 계속 들어올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들어오다가 그만 들어온다면 어쩔것인가. 그때가면 공동체가 생길까?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눈물과 비극을 겪은 후에나 가능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물분자에 불과한 우리들은 어디로 밀려갈지 아무도 모른다. 로또맞은 가정이 그 돈때문에 파탄이 나고나면 시간이 지나 모두가 다 전부 가난해 진디고 해도 고통없이 그 가정이 원상복귀 되는 것은 아니다. 

 

물은 식고 있다. 펄펄 끓는 물속의 물분자처럼 미친듯이 움직이던 사람들은 어느새 자기를 잊어버렸다. 사람들은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를 살았고 자기 정체성을 잊고 사는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물이 식는다고 하니 물을 펄펄 더 끊이자면서 남은 신용과 에너지를 한꺼번에 다 써버린다. 종국에는 그런 행동이 물을 더더욱 식힐 것이다. 연착륙이 안되고 안되면 죽겠다는 식의 전략이 되어버린다. 불은 갑자기 꺼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탄생을 어렵게 할 것이다. 생산을 더더욱 없게 할것이고 대공황처럼 물자가 귀한 시대를 만들지 모른다. 일자리는 순식간에 전부 증발해 버릴 것이다. 한계단 내려설 용의가 없는 사람이 열계단을 추락해서 천천히 계단을 다시 올라와야 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 것이다. 

 

지방자치, 공동체운동, 자기 찾기 운동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간단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직장만들기, 할일 찾기 그런 것이다. 보다 소규모 조직으로 돌아가면 화려함과 사치는 없어도 일자리는 많이 창출될 수 밖에 없다. 비효율의 효율성이다. 한달에 한번밖에 못박을 일이 없다면 싸구려 망치가 엄청난 속도로 못을 박아주는 전동못박기 기계보다 효율적이다. 

 

가정밖으로 뛰쳐나가서 멋진 커리어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찬사만 들어온 사람에게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추락같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이웃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가 부활하면 할 일이 있고 그 할 일이 우리가 살아갈 의미와 이유를 줄 수 있다. 모두가 찾던 행복도 뜻밖에 거기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지 모른다. 물이 끊기전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반드시 지금이 정상이라고 할 것이 아니다. 

 

추락과 실직의 시대에 우리 모두가 찾아갈 곳을 만들어 내는 운동 그것이 공동체 운동이다. 세계적인 규모로 물이 식어갈 때, 또한 그것과 상관없이 화려함은 뒤로 하고 좀더 나와 가까운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을 가지고 느린 물분자로 살고 싶다고 할 때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치고 공동체운동이다. 자기를 지키는 일은 조용한 곳에서 더 쉽다. 이런 일을 위해 뭔가를 결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끓는 물에 너무 취하지 말아야 겠다는 것만 기억해도 좋은 일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