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4
한국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가게 된 김에 부모님과 펜션에 가서 하룻밤 지내보려고 펜션들 홈페이지를 둘러보다보니 몇년동안에 한국 펜션 사업이 크게 변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 그저 잠이나 자는 깨끗한 장소 정도를 넘어서서 호텔수준의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휴식공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즉 잠만 자고 주변을 관광한다가 아니라 거기서 계속 머물면서 휴양을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방마다 스파가 있고 개인용 풀도 달려있는데다가 크기도 아주 큰 펜션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인테리어들이 아주 화려한 경우도 많더군요.
결국 펜션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일반펜션으로는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우니까 고급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같습니다. 고급 펜션은 가격도 호텔급이라 크게 투자해서 크게 버는 사업입니다. 그런 비싼 펜션도 지금은 수요가 있고 따라서 그에 따른 공급이 생겨난 것이겠지요.
그러나 비온뒤에 대나무순이 자라듯 이라는 말처럼 생겨나는 펜션들을 보면서 저는 제 돈이 아닌데도 걱정이 되더군요. 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장사해서 과연 본전이나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가 하는 이유는 거제도의 고급펜션을 즐겨간다는 한 부산 아가씨의 블로그 글에서 잘 표현됩니다. 그 아가씨가 말하길 거제도에 항상 새로운 펜션이 생겨나서 새로운 펜션에 가는 재미에 다른 곳에 잘 못가겠다는 겁니다. 즉 다시 말해 한번 한 펜션에 가보고 좋았더라도 거기에 다시 갈 생각은 별로 없으며 새로 생기는 아마도 더 시설좋은 다른 곳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멋지게 시설을 한다고 해도 즉 비싼 가구와 제트스파와 개인용 풀장까지 설치해서 환상적인 장소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래서 손님이 몰려온다고 해도 겨우 한철 장사 잘되고 나면 그 옆에 더더 대단한 펜션이 생겨나서 손님이 없어지는, 그런 광경이 절로 떠오릅니다. 치킨집도 그렇고 제과점도 그렇고 커피숍도 그렇습니다만 뭐가 된다 싶으면 무슨 부동산 거품 생기듯 너도 나도 과열 투자에 빠져들어 결국 모두가 서로 발목을 잡는 광경이 떠오릅니다.
게다가 그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 생각나는 이유는 여기에 더하여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업의 본질을 생각할 때 적어도 잊지말아야 할 하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업의 본질이 환상을 파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소비자로서는 여기저기 시장에 참여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양의 호텔문화를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호텔이 뭘까요? 호텔의 서비스는 결국 상당부분 서양 사회에서 왕족이나 귀족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적 연장입니다. 앤소니 홉킨스와 엠마톰슨이 나온 영화 남아있는 나날들을 보면 영국의 귀족가문이 20세기 초반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호텔을 연상케 하는 거대 주택에서 호텔을 연상케 하는 집사며 하녀장을 두고 그런 서비스를 해서 손님을 접대하면서 삽니다.
결국 우리가 아는 서양의 고급호텔이란 여러분을 마치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처럼 느끼게 해주는 환상을 파는 사업인 것입니다. 그들이 쓰는 식기를 쓰고 그들의 예절을 따르고 마치 당신이 성같은 집을 가지고 집사를 두고 하녀장을 두고 사는 귀족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 고급호텔 서비스이며 그렇게 고급이 아니라고 해도 그 기본적 틀은 그렇게 유지하게 될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저가형 BMW나 벤츠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정도의 문제일뿐 모든 사업은 다 환상을 파는 것이 그 본질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욕쟁이 할머니가 있는 식당에 대해 웃기는 만화를 본 것이 기억납니다. 그 만화에서는 손님한테 욕을 하는 할머니가 있는 식당을 보여주는데 손님들은 할머니가 마치 손주하게 말하듯 욕을 해도 좋아합니다. 욕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광경이 손님대 장사꾼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기 보다는 친척으로 가족으로서 식사를 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만화에서는 지갑을 잊고 나와서 아차 하고 말하며 다음에 드리면 안되겠냐고 손님이 외상을 요청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자 방금전까지 거칠게 욕을 하던 할머니가 그러는 겁니다. '왜 이러십니까 손님!' 이것이 환상을 깨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일상에서는 욕을 하면 싫어하고 정중하게 말하면 좋아하지만 가족이라는 환상에 기반한 상황에서는 정중하게 말하는게 오히려 가족이라는 환상을 깨는 일이 됩니다. 가족이라는 환상속에 있던 손님이 다음에 돈을 주겠다고 말하지만 장사를 하는 할머니는 환상을 깨고 너와 나는 가족이 아니니 돈을 내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업의 본질이 환상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그 부분은 접어두겠습니다. 어차피 한개의 글에서 모든 것을 다쓸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두가지를 더 말하고 이 글을 마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는 환상은 작은 세부사항에서도 깨진다는 것 그리고 종합적이라는 겁니다. 위에서 욕장이 할머니가 갑자기 정중하게 한마디 하는 걸로 그 환상이 깨지듯이 말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아주 환상적인 가구와 시설을 가진 호텔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호텔방문에는 보기 흉하게 외부음식반입금지라고 싸구려 플라스틱 판에다 적은 글귀가 붙어있습니다. 혹은 지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러 가보니 잔은 싸구려 종이잔이고 그걸 파는 아가씨는 전혀 전문성이 보이지 않는 서투른 실력으로 커피머쉰의 커피를 그저 무신경하게 부어줍니다. 아무리 시설에 돈을 많이 투자해도 그 시설이 만들어 내는 환상은 작은 세부사항으로 깨지며 장사의 본질이 환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그 장사는 망하는 장사입니다. 당신이 귀족이거나 귀족의 손님으로 초대받아 성같은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문위에 싸구려 플라스틱 경고장이 붙어있고, 고급손님은 받아본 적도 없는 것같은 엉터리 커피숍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또한 환상은 종합적입니다. 다시 말해 오감을 속이려면 아주 여러가지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부분들이 서로 맞아들어가야 합니다. 서양의 궁전을 연상케 하는 레스토랑을 만들어 놓고 그걸 서빙하는 종업원이 욕장이 할머니라면 어떨까요? 궁전같은 레스토랑이라면 일하는 사람들은 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굴어야 할 것이고 가족을 연상케 하는 식당이라면 인테리어도 식기도 종업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연상케 해야 할것입니다. 여러가지가 일관되어야 장사도 되고 장사하는 사람도 무리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섯불리 가족같은 분위기를 가진 펜션을 만들었다가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집은 지중해식으로 지어놓고 거기를 운영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분위기라면 시설비가 아깝습니다. 또한 가족같은 분위기라는 건 서비스료같은 것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한밤중에도 전화해서 그릇없느냐, 밑반찬은 좀 주면 안되냐, 가격을 왕창깍아달라고 하는 소리를 하기 쉽게 만듭니다. 반면에 당신이 왕처럼 대접받으며 왕이나 왕비라는 환상에 빠져있으면 째째하게 돈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지요. 그런건 그런 환상속에서는 챙피한 일이 되는 겁니다. 시장통에서는 콩나물값을 깍아도 고급호텔에 가면 돈을 펑펑 쓰는 여자들이 있는 건 그래서입니다. 예절이란 환상이 만들어 낸 세계의 일부입니다. 좋은거라고 여기저기서 베껴서 그걸 뒤죽박죽으로 섞으면 손님도 사업하는 사람도 죽을 맛이 됩니다.
일본에는 50년된 라면집이나 우동집, 여관 같은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파는 것도 기본적으로 환상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파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피맛골이나 인사동이나 청계천을 말끔하게 시멘트로 발라 버리면, 4대강을 시멘트로 발라버리면 그것은 바로 환상을 제거하는 일이 되며 모든 걸 망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 무슨 환상이 있다는 것입니까. 세종이 먹었다는 설렁탕이라고 해봐야 세종의 자취가 있을리 없지만 우리는 환상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 환상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말할 것은 바로 사업의 본질이 환상이라는 것을 잊고 과도하게 과열된 시장을 만들면 거대 자본에 의한 학살이 일어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쇼핑몰에서 식당, 호텔, 커피숍체인에 이르기까지 거대자본은 전문가를 불러다가 보다 완벽한 환상을 주는 장소를 만듭니다. 개인업자들이 무신경하게 지나친 것을 그들은 채웁니다. 똑같은 호텔, 똑같은 시설이라도 거기에다가 직원 교육좀 시키고 옷좀 갈아입히고 사방에 힐튼이라고 이름만 박아넣으면 갑자기 그 장소의 가치는 폭등합니다. 힐튼 같은 브랜드는 이름만으로도 환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사업의 본질이 환상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 집이 똑같은 시설인데 가격이 더 싸다던가, 똑같은 물건을 우리는 더 싸게 판다던가, 우리 집 스테이크가 같은 가격인데 더 크다 그런데 왜 거대자본이 만든 식당이나 쇼핑몰이나 슈퍼마켓에 가냐고 불평해도 대세는 바뀌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기가면 더 만족스럽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자본에 의한 자영업의 대학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환상을 만들어 낼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왕의 요리사가 주는 음식은 쉽게 손님을 왕이 된듯한 환상에 빠지게 합니다. 한국사람이 주막집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손님을 과거의 조선시대로 간듯한 환상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만 한국사람들이 당신에게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에 있는 카페에 있는 듯한 환상을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소설과 영화, 우리가 가진 것에 기반하지 않고는 즉 진짜에 기반하지 않으면 환상은 잘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진짜와 환상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자기가 없으면 환상도 없습니다. 금새 탄로 나고마는 꼴사나운 흉내가 있을 뿐입니다.
좋은 사업장은 훌룡한 인간처럼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나름의 자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족스로운 환상을 줍니다. 그런데 자기를 가지지 못하고 그저 옆집이 제트 스파가지면 우리도 가져야 한다는 식의 흉내내기로 나가는 사업은 두가지가 나쁩니다. 첫째는 자기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 둘째는 그런 유행이나 거품이 자기를 키워나가서 진짜 명품이 될만한 사업장을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떠벌이 사기꾼이 많으면 진짜 친구나 스승은 외면당하고 사기꾼에게 피해 당한 사람이 양산되듯이 말입니다. 한국에 더 많은 명품 사업장이 생겨났으면 하고 바랍니다. 한번이 아니라 열번가고 평생가도 괜찮을 듯한 그런 곳, 낡아지면 그 낡아지는 것이 더 좋은, 세월에 따라 환상의 깊이가 더 깊어지는 그런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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