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하다보면 댓글을 다시는 분의 말에서 영감을 얻고는 합니다. 그런데 한분이 말씀하시길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도 결국 하게 되는 것은 투표가 아닌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즉 깨어있는 시민이란 결국 잘 선택해서 투표잘하는 시민이 아닌가 하는 말씀이셨습니다. 대선직후인 지금 그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게 들리지만 저는 사실 투표란 세상을 바꾸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깨어있는 시민이 해야 하는 것중에서 작은 부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문재인을 지지했던 많은 시민들처럼 저도 이왕이면 문재인이 당선되었다면 기뻤을 것이나 사실 이미 겨우 겨우 이기게 된 그 시점에서 이번 선거는 결과에 상관없이 실패한 선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공한 선거라면 훨씬 더 압승을 해서 그것이 상식이라는 결과를 보여주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슨 욕심을 이야기하는것이 아니라 이겨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박근혜를 찍었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근혜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문재인을 찍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좋은 농부는 수확이 좋지 않으면 추수할때 더 잘 추수할 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 곡식을 키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를 반성하겠지요. 그런데 선거에 이르르면 사람들은 종종 앞에처럼만 생각하는 것같습니다. 선거직전에 가서 이리저리 말을 만들고 열심히 소리내어 외치면 결과가 좋아질거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유가 뭐건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은 -거기에는 저도 포함됩니다만- 문재인의 당선이 문재인의 지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부 사람들이 빨갱이가 흥하면 나라망한다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박근혜를 지지하는 그런 결집을 만들어 냈습니다.
말이 약간 돌았지만 그것은 과연 깨어있는 시민은 뭘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은 뭘하는가. 저는 깨어있는 시민은 밥 잘먹고 아이를 잘 키우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며 여행도 가고 외식도 하고 저금도 하고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산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에게 신경쓰고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자주 드리고 아이들 공부와 행복에 신경써주며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누구나 하는게 아닌가 라던가 그건 그저 개인의 일일뿐 이런 대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대선은 세대간의 투표가 된 면이 많다고 하더군요. 나이든 분들이 박근혜를 많이 찍고 젊은 층은 문재인을 많이 찍었다고. 그말은 뒤짚어 보면 외로운 노인들이 한국에 많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층은 젊은 층끼리만 소통했을뿐 평상시에 노인들과 소통하지 않은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평상시에 더 많이 전화했더라면 더 많이 효도했더라면 젊은 세대의 고충과 입장을 노인세대가 더 많이 느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평상시에 그러지 않다가 대선에 이르러 설득해야 네가 뭘아냐는 말이나 나오기 쉽겠지요. 만약 평상시에 자식들이 믿을만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같으며 현명해 보였다면 아이들이 문재인이 옳습니다라고 하면 더 많이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게 전체의 일부에 불과할지라도 어떤 의미에서 문재인의 패배는 젊은세대의 패배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노인세대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면 젊은이들이 점점 더 갑갑해져 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자집이나 빽이 좋은 집에 태어난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과거에 한국은 경제적 팽창기를 살았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많은 직장이 있었고 돈을 모으면 그 돈이 돈을 더 벌게 해줬습니다. 베이비붐세대의 위쪽 세대는 전쟁때 사람이 많이 죽어서 한국사회는 인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경제적으로 예전처럼 빨리 팽창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그렇기는 커녕 부동산 거품의 파열같은 것으로 오히려 경제가 수축되는 면도 있습니다. 게다가 산업이 지식화되면서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은 줄어 드니까 오히려 사람이 덜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갑갑하지요.
이런 사회에서 노인층과 젊은 층과의 신뢰가 줄면 노인층은 길게봐서 나라가 망하건 말건 일단 내가 살고 봐야겠다, 아무것도 바꾸지 말아라 라고 할 것입니다. 요즘 노인들 노인정에 모여서 자식이 부모를 필리핀에 데려다 버린 이야기, 부모 재산 다뺏고 부모를 버리거나 뒷방늙은이로 만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식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없다고 말할수 없는 것이 최소한 언론을 통해서 들려오는 혹은 우리가 보는 한국 사회의 모습입니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고급과외를 시키고 고급차를 모는 것을 해도 부모님에게 찾아갈때는 주로 대접받으러 가거나 손을 벌리기 위해서 갈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저도 40대입니다만 한국의 40대는 반성해야 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한국의 40대가 사는 방법을 보면 그들의 부모님들이 밑반찬에 김장담궈주시고 손자 손녀봐주시고 결혼자금도 도움받곤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때에 대학다니면서 융자내면 그 융자를 자기가 갚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부모세대가 감당한 것이지요. 그 부모세대도 부자가 있고 가난한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분들은 대개 학벌이 높지 않고 바캉스다 해외여행이다 유학이다 그런거 못즐기면서 자식을 키운 세대입니다. 그렇게 큰 40대가 과연 지금도 그렇게 하는가, 앞으로도 똑같이 자식에게 해줄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결국 이유가 뭐건 위에서는 받고 아래에는 안주는 세대인 셈입니다. 40대는 40대의 고충이 있습니다만 노인세대의 입장에서는 부도난 인생이라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은 모든 것을 합니다. 그 사람이 외식을 하거나 자동차를 사거나 집을 사거나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모든 종류의 소비를 하는 것도 깨어있는 시민이 하는 것입니다. 그 시민들이 어떻게 소비하는가 하는 것이 결국 한국사회의 흐름을 만듭니다. 법이 있어야 부동산 투기가 근절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삶의 질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있어야 투기가 근절될것입니다. 경찰이 부족해서 세상에 도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박에 중독될 정도로 삶에 낙이 없으니까, 외로운 삶이니까 세상에 도박이 있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가장 큰 특징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안심이 되는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경제적인 면과 뗄수는 없는 것입니다만 널리 말해지듯이 행복은 어느 정도의 물질이 충족되고 나면 반드시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행복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것입니다만 설득력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행복해 보이니까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옳은가보다, 나도 저사람이 하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고 하겠지요. 아무리 옳은 소리를 많이 하고 어려운 말을 많이 해도 불행에 찌들어서 분노에 차서 고래 고래 소리만 지른다면 저 사람이 말하는 삶의 방식이 정말 옳은가보다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했다면, 아 그래 저사람은 믿을만 해라고 생각되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선거철에 와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누구를 찍어주십시요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될것입니다. 그저 나는 누가 좋습니다라고 한마디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저 사람이 자기만 좋자고 저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를 되돌아보면서 몇개의 글을 쓰고 몇마디의 말을 했습니다만 그걸 상투적인 말로 이렇게도 말할수 있지 않나 합니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사랑이지 미움이 아니라고.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무슨 사상가가 아닙니다. 말싸움해서 이기면 그래 네가 더 논리적이구나 내가 승복하마 뭐 이런 식으로 사고 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은 세계 자살율 1위의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람들이 외로운 사회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둘로 쪼개서 이쪽이 저쪽을 이기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따지고 논리를 따져서 이게 옳니 그르니 하면서 파이를 나눠먹는 것에 대해 따지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 평상시에 그들을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어야 선거도 승리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를 봅시다. 한국선거에서도 종교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기독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렇게 하며 기독교 사회가 대개 새누리당 지지층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의 종교는 무슨 현학적인 것일리가 없습니다. 소박한 것입니다. 종교는 물론 자유지만 저는 교회에 가는 사람들, 절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만든 종교를 믿습니다. 교회에 가서 앉아있지만 이사람이 믿는 것은 무속신앙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알고보면 목사를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세상을 사는데 충분할 정도로 일반적이지 않다면 그들이 그런걸 믿는 이유는 그들도 외로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외로울때 외롭게 놔두고 선거철에 왜 보수적 목사말을 듣고 우 몰려가서 새누리당을 찍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늦은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 내가 여기서 말한 것 이외에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 끝없이 말할수 있는 삶의 모든 방향들에 있어서의 문제를 누군가가 혼자서 할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수 있는 만큼, 세상이 기회를 준 만큼만 할수 있을 뿐입니다. 이번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안철수도 결국 정치입문 이전에 외로운 삶들에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더 많은 새로운 안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잘 소비하고 잘 생산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부모님을 잘 모시면 세상은 그만큼 좋아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번 선거에는 졌다. 5년후를 보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행동해야 할때는 바로 지금이며 그러면 5년후에 결과가 저절로 생길거라고 생각합니다. 5년후에 뭔가를 한다면 이미 늦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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