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도 이젠 끝난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대선결과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대선을 되돌아 볼수 있는 시간이 된것도 같다. 나는 이번 대선을 국민통합이라는 틀을 통해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번영을 위해 우리가 이뤄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없이는 결국 어떤 방법도 잘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현 정권이 국민통합을 이루기에는 그 정신적 폭이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의 대선에 대한 복기란 문재인과 안철수로 대변되는 야권에 대한 돌아봄이 된다. 도대체 뭐가 달랐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으며 잘못한 것은 없다거나 국민수준이 이러니까 어차피 안될 일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문재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민주당 후보였어야 한다고 말하고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안철수가 후보였어야 한다고 말한다.
돌아본다는 것의 의미
백투더퓨처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어떤 한가지 일을 바꾸면 미래는 확 바뀌고 만다. 나는 한가지가 아니라 몇가지를 댄다고 해도 과거에 이 스위치를 이렇게 저렇게 눌렀으면, 결과가 달랐을텐데라고 생각하는 식의 사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것에는 그것나름으로 길게 이야기할만한 사고방식의 오류가 있다. 그 사고방식은 예를 들어 나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그저 하나의 로또를 뽑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를 당연시한다. 우리가 포함된, 내가 포함된 세계를 바깥쪽에서 조종하는 자동차, 부품하나만 바꿀수 있는 기계처럼 생각한다. 불행하게 사는 우울한 중년이 아 내가 대학때 그 수업의 시험에 늦지만 않았더라면 졸업을 좀 일찍할수 있었을테고 그랬다면 취직이 문제없었고 그랬으면 실연도 안했고 하는 식으로 생각을 계속하면서 그 시험에 늦지 말았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의 선택이 달랐다면 그 이후의 무수한 질문도 달랐을 것이고 다시 그 모든 선택들도 다 달랐을 것이다. 미래는 예측불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그 한번의 선택뿐만 아니라 무수한 선택을 '나'로서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나의 미래를 맞이 하게 된다. 어떻게 한번의 선택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일까. 인생이란 나는 그대로 인데 선택하나만 다르게 하면 다르게 살게되는 로또가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오직 선택을 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지,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자세히 관찰해서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니다. 로또맞은 사람의 생활습관을 열심히 따라하면 나도 로또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얼마나 가망없는 인생인가.
집단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대한민국바깥의 여러 사건들, 대한민국이 접하게 되는 여러 외부의 일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전에 대한민국 그 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 과거를 되돌아 본다는 것은 바꿀 수도 없으며, 설사 바꿀수 있다고 해도 그 결과를 예측할수도 없는 어떤 특정한 사건을 바꿨으면 하는 몽상에 젖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발견하여 지금 이순간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선택에 도움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근본적인 허약
한국은 근본적으로 허약하다. 물론 세계 최고의 제품도 만들어 내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다 허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가 허약한 것은 지성계다. 철학이다. 우리는 홀로 서지 못한다. 항상 강대국이나 선진국에 기가 죽으면서 살아왔다. 지식이 부족하다던가 어떤 지위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부족하지만 제일 부족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상식, 자기 나름의 가치판단을 해낼 용기다. 우리는 항상 남을 보고 따라하고 베끼려고 한다. 그걸 열심히 해서 이만큼 먹고 살게 되었다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속에서 세계의 열강옆에 당당히 서려고 하질 않는다.
당당히 선다고 한다는게 한민족은 위대한 선택받은 민족이며 다른 사람들은 다 열등하다고 하는 과대망상적인 민족주의에 빠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부자들 앞에서 당당해 진다는 말이 다른 부자들만큼 돈이 많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말처럼 생각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는 돈이 있다 없다 말고 다른 가치도 있다. 설사 그것이 유일한 가치라고 해도, 우리는 다른 입장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다. 부자들 앞에서 기죽고, 천재 앞에서 기죽고, 유명인이나 권력자 앞에서 기죽는 것은 어느정도 삶의 타성에서 오는 자연스런 일일지는 모른다. 마치 슬퍼도 간지럽히면 웃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비교란 무의미하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하고 우리의 인생을 살뿐이다.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선다는 것은 결국 나는 나로서 내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내 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귀기울이고 배워야 하지만 결국 내 선택은 내가 내리는 것이며 그 책임도 내가 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당당하게 사는 것이다. 그걸 잊지 않으면 우리는 묻게 된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은 뭘까. 그걸 잊으면 우리는 남을 보면서 저 사람은 뭘하나, 저사람에게 선택해 달라고 하면 안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애가 되어 떼를 쓰고 응석을 부리려고 하게 된다. 남들이 하는 투기 남들이 한다는 이유로 그저 따라했다가 집안이 망하려고 하면 내가 무슨 죄가 있냐고 떼쓰면 해결이 될까? 그런 떼가 통하면 다른 사람들도 다 떼를 써야 하나?
복지도 그렇고, 국방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다. 모두 선택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일도 참고해야 겠지만 결국 질문은 우리에게 남는다. 우리는 종종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한다. 그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것이 나다. 대학입시에서 취업에서 결혼에서 우리는 많은 일반론을 듣는다. 이런 학과는 먹고 살기 힘들다. 저런 회사는 위험하다. 이런 여자는 이런 남자는 배우자를 고생시킨다. 그 말들은 모두 맞는 말이고 기억해 둬야 하는 것일 수 있지만 살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그런 게 꿈을 꾼다는 것이다. 일반론만 따라하면서 아무 꿈도 꾸지 않았던 사람은 과연 인생을 잘산것일까? 열살쯤에 죽을 날까지 어떻게 살지 다 결정되어버린 듯이 사는 사람은 인생을 잘살고 있는 것일까. 남만 보고 나를 보지 않는 사람이란 일반론만 따라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것은 바로 가장 안전하면서 가장 실패가 보장된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내 선택이란게 없다. 내 선택이란게 없으면 그 나라는 천천히건 빠르게건 몰락할수 밖에 없다. 항상 결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를 자꾸 키우기만 한다. 감당이 안되서 이제 다 죽을 판국이라도 결단은 없다.
주유소에서 불장난한다고 반드시 주유소가 폭팔하고, 빨간불인데 그냥 건넌다고 반드시 차에 치여죽지는 않는다. 내가 없다고 해서 당장 죽지는 않는다. 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당장 행복하고,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고,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 성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길게보면 그 효과는 자기의 삶에 대한 만족도 수준에서 반드시 있을 수 밖에 없다. 자기로서 살수 없다는 것은 근본적인 허약이다. 그리고 한국이 그렇다. 온갖 미신 수준의 종교만 판을 친다.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가득찬 사람들이 지식인이라고 떠들어 댄다.
안철수의 실패 민주당의 실패, 국민의 실패
안철수의 실패라고 썼지만 이번 대선은 안철수의 실패이기도 하고 한국인의 실패이기도 하다. 남탓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은 나의 실패이기도 하다. 안철수는 안철수의 선택과 안철수의 일을 했고 한국인들은 한국인의 선택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뜻한대로 대선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 사람들에게 이일들은 실패다.
뭘 실패했는가. 께어나는데 실패하고 깨어나게 하는데 실패했다. 개혁이란 세상사는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니까 정신적인 깨어남이 없다면 있을 수가 없다. 정신적인 깨어남은 항상 충격과 함께 온다. 눈을 쓰지 않던 사람이 눈을 뜨면 아 내가 장님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런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감동해서 눈물흘리고 열정적이게 되는 사람들을 혹자들은 부흥회에 온 신자같다는 둥, 미친거 아니냐는 둥, 무슨 빠가 아니냐는 둥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감동과 눈물이 있다고 해서 올바른 개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감동과 눈물이 없는데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는 그게 없었다. 아니 생기다 말았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태풍의 눈은 역시 안철수였다. 그리고 안철수는 혹은 국민은 안철수라는 계기를 통해 깨어나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듯 하다가 멈춰섰다. 막판이 되자, 역대에 이렇게 조용한 대선이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대선은 냉냉하게 치뤄졌다. 안철수로 대표되는 치유의 바람은 꺼져버렸다.
안철수 바람이 불다가 꺼진 바람이라면 사실 민주당의 바람은 한번 분적도 없었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라던가, 민주당도 양보할것 다 양보했다던가, 이런 판국에 여당찍는 사람이 잘못된 것지라던가, 문재인이 얼마나 인기 좋았는데 같은 말들을 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의 정체성이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선택이다. 대부분의 경우 국민들이 본것은 우리 이외에는 야권에 대안이 없다면서 나를 통과하지 않고는 정치입문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듯한 민주당이 있었을 뿐이다. 바람은 감동에서 온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민주당은 없었다. 항상 일반론에 따라 안전하게 어쩔수 없다. 그게 정치다. 원래 그렇다는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민주당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 익숙해져서 별거 아닌것처럼 여겨지지만 노무현은 국민참여라는 것으로 그리고 인터넷으로 소통할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것으로 새시대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그 노무현도 흘러간 과거일뿐인데 그만큼의 소통능력도 민주당은 없다.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무엇보다 새것이 없었다. 그저 현 정권이 나쁘다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식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것으로도 충분하지만 압도적인 바람이 되기에는 비전부족이랄수 밖에 없다. 다시 돌아보면 문재인 후보를 대표할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 되게 된다. 이런 저런 말은 했지만 어느것도 진짜다, 이거다라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물론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이겼을수도 있다. 아슬아슬하게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국회도 여권이 차지한 마당에 그렇게 이겨서는 어차피 개혁은 힘들다. 누가 이기건 보다 압도적이 되었어야 하고 그러기에는 뭐가 새롭다는 것인지, 현재 한국의 문제를 뭘로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았다. 모든 악의 중심이 이명박이라면 이명박이 임기를 마치면 세상은 절로 좋아질텐데 굳이 문재인이어야 할 이유가 뭔가.
개인적으로는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 시대의 과제는 국민통합이라고 생각한다. 국민통합 어떻게 가능한가. 그 시작은 나에 대한 반성,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 우리의 가치판단에 대한 반성, 그 끝에서 남도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행복할수 있을까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 우리 사는 모습에 대한 반성의 끝에서 자각이 있고 개혁이 있을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그런 위치에 있었던 안철수 바람이 분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는 최선을 다했고 최선으로도 부족하여 국민이 그걸 용납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안철수는 안철수 바람이 문화운동이 되게 하는데 실패했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의 문화계 지성계가 사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건 다 알아, 그런건 알고있어라고 하면서 서둘러 다시 거대한 이야기, 근본이 아니라 끝에 있는 문제에 집중했다. 안철수는 이공계출신이지만 인문학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인데도 문화 예술 인문방면에 강조점이 없었다. 인터넷도 문화다. 왜 문화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문화가 우리를 먹여살릴거라고 강조하지 않았을까. 왜 김용옥 같은 사람이 나꼼수 같은데에서 안철수에게 연락해도 답도 없더라같은 말을 하게 만들었을까. 안철수는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다닌것일까.
개혁이란 모두가 지금 우리는 농구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눈을 떠라 우리는 야구장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게임의 법칙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할까. 보다 개인적인 부분이, 보다 지방자치적이고, 보다 유기적인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 재벌중심의 기획경제에서 공동체 중심의 자발적 경제로 바뀌어야 한다. 더 잘먹고 더 부자되는 사회에서 더 행복한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통합하면 문화가 되고 철학이 된다. 그리고 그걸 가장 이해못하는게 지금의 여당이고 나는 그래서 그들이 4대강 개발을 하는데 반대한다. 문화운동은 결국 이번 대선의 키워드가 되지 못했고 사람들은 우리 사는 모습에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또 남을 보고 바깥을 보는데 그쳤을 뿐이다.
대선이란 하나의 거대한 반성의 장이다. 이번 대선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끝났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뭔가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반성이 없는 나라는 점이다. 아무쪼록 이 반성이 없다는 것의 댓가가 너무 혹독하지 않기를 바란다.
'주제별 글모음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인의 양심 (0) | 2013.01.30 |
---|---|
인문학이 배고픈 시대? (0) | 2013.01.23 |
여행중의 잡설 (0) | 2013.01.09 |
깨어있는 시민은 뭘 하는가. (0) | 2012.12.21 |
국민수준, 국민수준 (0) | 2012.12.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