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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노무현 이야기

노무현의 마지막 비전

by 격암(강국진) 2013. 4. 11.

2013.4.11

봄이 왔고 노무현대통령 서거가 있었던 5월이 다시 다가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냈던 시간들, 마지막으로 그가 했던 일들에 대해 이따금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것은 노무현의 의미를 잊지 말자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어떤 의미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어도 이따금 제가 생각하는 것과 관련하여 결국 노무현의 마지막은 이런 의미가 있었던게 아니었나 하고 자꾸 새삼 느끼게 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로서는 노무현의 마지막은 두가지 의미와 관련되어 다가오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는 그가 깨어있는 시민, 다시 말해 깨어있는 개인을 강조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은 살아계실 때 내가 대통령이 되어 세상을 바꾸려고 하니 잘 안되더라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퇴임후에는 정치하지 말고 글쓰고 가르치며 살라고 까지 말하셨습니다. 그는 토론 사이트를 열고 책을 써서 시민들이 깨어나기를 소망했으며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대가 아니면 진정한 세상의 개혁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4년전의 일입니다만 그분의 그런 말씀은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적어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 당시 연작으로 에세이를 쓰던 일이 기억납니다. 돌아보면 그분의 죽음이 한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힐링이 유행어가 되는 등 그 분이외에도 다수의 시민이 그간 이런 원천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와 돌아봤을 때 과연 우리가 거기에서 뭘 배웠는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각자 여러가지 생각을 했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기서 어떤 공감대가 도출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핵심적이고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없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볼 때 우리는 깊이 생각했는가, 우리는 서로 공감했는가에 결코 간단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같습니다. 

 

두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살고 싶은 농촌마을 하나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봉하마을을 가꾸고 키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셨으며 퇴임후 지방으로 내려간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단순히 서울에 있기가 여의치 않아 지방으로 내려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시절 기억할 만한 사건이 바로 행정수도 건설이었습니다. 그것이 관습헌법이라는 이상한 논리에 막힌 가운데에서도 결국 세종시는 만들어 졌고 이제 공무원들이 이주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노무현에게 있어서 전국의 균형적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김대중에게 있어서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주제가 핵심적 과제가 되듯이 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마음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 봉하마을 만들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즉 우리가 종종 성미산 공동체를 마을 공동체의 모범사례로 생각하듯이 지방 농촌이 살아날 수 있고 살기 좋은 곳이 될수 있다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것이 전국의 많은 마을의 부활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봉하마을은 그것을 위해 브랜드 쌀을 만들고 오리농법을 도입하는 등 작은 마을이지만 여러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그 일이 성공했다면 분명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노무현이 살아서 몇년만 더 그일에 애를 쓸 수 있었더라면, 봉하마을이 제대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식의 안타까움은 그래서 깊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 되기 어렵다는 대통령은 될 수 있었지만 이 두 개의 마지막 과제는 결국 제대로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고 생을 마쳤습니다. 한국인 개개인이 깨인 시민이 되도록 한다는 것 그리고 전국의 균형발전을 만들어 낼 마을 만들기를 제대로 해보는 일은 결국 그분의 죽음과 함께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또 한번의 대선이 끝난 지금 되돌아보면 우리는 한발 앞으로 간 것같다가도 다시 한발 뒤로 가는 것같은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단으로써 좌니 우니, 진보나 보수니 하는 단어로 편을 가르고 그 안에서 뭉쳐서 상대에게 이기자, 무찌르자는 식의 싸움만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깊은 고민이 있어보이는 목소리가 퍼지는 일은 별로 없거나 종종 실용적이지 않다거나 현실을 모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폄하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개인에서 정치가 시작되는 일은 거의 없었고  개인주의로 가장한 이기주의나 낡은 이데올로기같은 것이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으며 여전히 지방시대가 열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참여정부를 되돌아보았을 때 여러가지 사람들이 여러가지 다른 것을 유감된 일로 기억할 테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참여정부 시절 인터넷의 발전이 정체되어 버린 것에 대해 특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시기에도 발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님니다만 그 발전은 갑자기라고 할만큼 느려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훨씬 인터넷 상거래규모가 크며 인터넷을 통해 직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싸구려 황색언론들이 자극적 제목장사만 하는 인터넷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정보와 논리를 제공해내는 언론들이 설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정부의 말엽 즉 노무현이 당선되던 대선무렵에 한국은  세계적 인터넷 선진국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누가봐도 인터넷의 힘에 상당부분 의지해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5년을 지나고 나서 이명박이 당선되던 대선 무렵에는 한국은 그 우위와 힘을 상당부분 상실해서 마치 5년간 그저 서있었거나 오히려 뒤로 후퇴한 것처럼 느껴지는 면이 많을 정도였습니다. 모뎀을 쓰던 미국을 비웃던 한국이었는데 아마존의 쉬운 상거래를 부러워하는 한국이 되었습니다. pmp로 mp3 플레이어로 미국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던 한국이었는데 어느새 세계가 아이폰에 다 감탄한 후에야 스마트폰을 들여오는 후발주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깨어있는 시민과 마을 만들기라는 두 과제를 거론하고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두개의 주제 모두에 있어서 인터넷의 발전은 핵심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전자통신기술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점점 더 쉽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 모아줄수 있고, 따라서 올바른 소리가 퍼져서 사람들을 깨어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핸드폰이 우리가 전화기옆에 붙어있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듯이 거리와 위치에 있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기 때문에 결국 마을 만들기라는 과제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근본적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땅과 집의 의미를 바꾸기 때문이죠. 그런데 결국 참여정부시절 발전은 정체되었습니다. 와이브로 가지고 한다고 시끄럽기만 하다가 그저 이룬 것없이 정권이 끝났죠. 

 

생각해 보면 노무현의 마지막 두 과제는 애초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진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직업 그리고 우리의 생활방식이 결국 우리의 의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깨어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거나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갈 마을만들기라는 주제와 아주 긴밀한 관련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사는가가 우리의 의식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헌 물건을 쓰면서 헌 물건의 철학을 알게 되고, 요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먹는 일에 대한 예와 철학을 이해하게 되며, 이웃과 시간을 보내면 공존의 철학을 알게 됩니다. 지금과 다른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자연스레 우리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전자통신의 발달이 우리의 생산과 소비와 학습의 방식을 바꾸고, 그것이 우리의 집과 마을을 바꿀 때 새로운 삶의 방식은 우리가 새로운 눈, 보다 깨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에는 단순히 인터넷의 발달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가치관과 철학의 변화도 있어야 하겠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새로운 전자기기들이 사람들을 어리석게하고 타락하게 한다고 여기는 분도 있지만 한때는 무식한 백성들이 글을 알면 세상이 시끄럽기만 해진다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룬 것이 적건 크건 그것은 누구 일개인의 공이거나 책임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공이나 책임을 거론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것이 노무현의 마지막 비전이었으며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억해 둘만 하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은 잠시 막힐수는 있어도 도도히 흐릅니다. 깨어있는 시민에 대한 요청과 지방시대,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진전이 없어도 마치 둑에 막힌 물처럼 더 강한 압박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뿐입니다. 이미 화폐가 가까운 장래에 없어질거라던가, 전자상거래의 증가로 물가상승압력을 줄일수 있다는 주장에 우리는 익숙합니다. 아이폰이 들어온 이래 불과 몇년만에 한국은 스마트폰이 사방에 가득한 나라로 변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운동을 하는게 아니라 밥을 먹어야 겠지요. 우리가 필요한 것이 뭔지에 대한 통찰은 우리가 뭘 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줍니다. 미래에 대한 올바른 통찰은 우리가 더 큰 아픔을 겪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노무현이 세상을 뜬지 4년이 가까워 옵니다. 창을 통해 세상을 내다 보면 저는 이따금 그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문득 문득 이것이 그가 보았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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