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11
세상에는 노무현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일단 내가 그렇다. 그리고 유시민이나 김어준도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도 모두 노무현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금 노무현에 대한 부채라는 단어가 던지는 그늘이 얼마나 깊은가를 새삼 느끼면서 노무현에 대한 빚은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만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문재인이 지금 언론과 다른 정당으로부터 받는 대접은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로 부터 받는 대접도 상당부분은 노무현에게 힘입은 것이다. 즉 노무현이 참여정부 시절 고생했기 때문에 지금의 문재인이 받는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유시민은 스스로 나는 정부를 공정하게 비판하는 언론인이 되겠다면서 이를 비꼬아 어용언론인이라고 부르기도 했거니와 당시에는 정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공격만 했다. 반면에 요즘 트위터에는 문재인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문재인을 지켜내자는 결의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아마도 문재인이나 노무현의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좋게만 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노무현을 그의 지지자들만큼 높게 평가하지 않기에 그런 모습을 진짜로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정도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지지받던 정치인이었다. 그 다수의 사람들중의 상당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가 죽을 때 나는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이것은 김어준의 고백이기도 하다.
노무현이 가졌던 최대의 재능은 어쩌면 이것이었을런지도 모른다. 노무현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빚을 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노사모의 시작도 그것이었다. 부산 선거에서 떨어진 노무현이 왜 나 좀 당선 안 시켜주냐고 화를 냈으면 노사모는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 유명한 말을 한다.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참기가 힘들어 진다. 노무현이 억울하다고 화를 내야 할 것같은데 그러지 않으면 그런 세상의 일부인 사람들이 빚을 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노사모가 생기고 노풍이 불었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다.
어쩌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순간만 해도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이제 우리는 빚을 다 갚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어 주었잖는가. 그래서 노사모 회원들도 이제부터는 자기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며 앞으로는 오히려 노무현을 감시하겠다는 말도 했었다. 그런데 그 노무현은 온갖 모욕을 당했다. 대통령이 국회에 가는데 의원들이 일어서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탄핵을 의결하고 직무정지까지 당하는 고생을 하더니 퇴임후에는 생명조차 잃어버렸다. 노대통령이 돌아가신 날 정말 많은 지지자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당선은 문재인이 되었지만 나같은 사람은 문재인의 사진 이상으로 노무현의 사진을 볼 때 아직도 눈물이 더 난다. 노무현에게 진 빚. 이 빚은 이상하게도 갚으면 갚을 수록 더 많아진다. 노무현은 이제 죽고 없다. 그러니 사람들은 노무현에게 진 빚을 사회를 향해 갚을 수 밖에 없다. 안 나갔을 것같은 촛불집회 한번 더 나가고, 투표에 좀 더 신경쓰고, 거리에서 쓰레기 한 번 더 줍고, 화나는거 한번 만 더 참는다. 조금만 더 상식적이고 조금만 덜 쪽팔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 것같은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으로 노무현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런데 공익을 위해 빚을 갚으면 세상이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이 좋아진 만큼 노무현에 대한 부채는 오히려 늘어만 간다. 이걸 악성 사채로 말한다면 악성사채도 이런 악성사채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생전에 자신은 봉화산처럼 외로운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산맥에 이어져 있지 않아서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난데 없이 나타난 사람이었고 순식간에 역사속에서 빛나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제 산맥을 보게 된다. 바로 노무현이 출발시킨 산맥이다. 문재인이 그 산맥의 연장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그래서 문재인은 적어도 노무현만큼 외롭지는 않다. 참여정부시절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경력을 쌓았고 경험을 얻었다. 그게 다 지금 큰 힘이 되고 있다.
노무현 이전에는 사람들은 문재인을 몰랐다. 또 박원순이나 유시민처럼 대중이 알았다고는 해도 그들이 어떤 연대속에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우리 나라의 야권은 오직 민주화운동 계열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 따라서 그와는 이질적인 사람들은 노무현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 문화가 낯설어서 사람들이 노무현을 대선에서 지지하고 싶지만 민주당은 못들어가겠다고 따로 당을 만들기도 했겠는가.
노무현이 외로웠기에 참여정부는 고된 길을 걸었다. 외롭다는 것은 노무현이 경제를 바꾸고 학문을 바꾸고 언론을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말도안되는 4대강 추진한다고 이명박 지지해 주는 교수들은 있어도 노무현 알아주던 교수는 정말 드물었다. 물론 지금도 문재인은 외롭다. 하지만 노무현만큼은 외롭지 않다. 노무현이 하나의 산맥을 출발시켰고 그것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노무현에게 부채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댓가를 받지 않아도 빚갚는 셈치고 문재인 대통령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스스로도 노무현이 가고 없는 것이 운명이라고 했다. 노무현은 죽음으로 자유로워졌지만 문재인은 부채의 감옥에 빠져서 정치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은 그렇다치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번에야 말로 부채를 다 갚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빚은 줄기는 커녕 늘어만 간다. 지독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끝나고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 상식적인 말을 하고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속이 후련하다. 이제는 좀 숨도 쉴 수 있을 것같다. 하지만 여전히 노무현의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고 미안하다. 오히려 더 미안하다. 노무현이 지금 대통령했더라면 그때만큼 무시당하면서 대통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난다. 좋은 세상이 와도 그걸 살아있는 사람들만 누리니 부채는 더 늘어만 가는 것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도 존경한다. 그분도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셨고 많은 핍박을 받았으니 살아있는 내가 부채의식을 느껴야 마땅하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노무현에게 느끼는 것과는 좀 다르다. 김대중은 독재자에게 당했다는 느낌이라면 노무현은 마치 지지자들이 잘못해서 세상에게 당한 것같이 느껴진다. 이게 노무현이 무서운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은 5월 23일이다. 지금이 오월이고 또 기일이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이 곤란한 채권자를 도저히 잊을 수가없다. 언젠가 이 갚을 수 없는 노무현에 대한 빚이 한정없이 늘어나 온 국민의 마음을 다 채우게 되면 그때 우리는 진짜로 나라다운 나라,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죽은자에게 빚은 갚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느끼는 부채의식은 결국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희생정신이 된다. 빚을 다 갚는 것은 어차피 틀렸으므로 나는 차라리 빚이 빨리 자라나서 나라다운 나라에 사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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