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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과 자동차

by 격암(강국진) 2013. 4. 23.

내가 산 첫번째 차는 티코였다. 나는 비오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했는데 그래서 비가 오면 주차장에 있는 그 티코안에 들어가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는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몇대인가의 차를 다시 소유하게 되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자동차는 늘상 내 세컨드 하우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몇번은 차를 몰고 강변주차장 같은 조용한 주차장에 가서 인터넷도 방해할 사람도 없는 조용한 시간을 즐겼던 적도 있었다. 드라이브를 해도 마찬가지다. 드라이브를 하면 창밖으로 보이는 화면은 그대로 티브이 화면이 되고 나는 내 집의 거실에 앉아있다는 편안한 심정이 되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과 자동차는 다르며 자동차는 자동차이지만 자동차는 작은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이어서 우리가 자동차를 고르는 방식이 우리가 집을 고르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를 보는 방식은 모든 일에서 그렇긴 하지만 역시 우리의 상상력에 크게 달려있다. 즉 차를 볼때 당신이 그걸로 뭘 할것인가를 상상하는가에 따라 그 차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보면서 그걸로 찻잔처럼 커피를 담아 마시겠다거나 개집처럼 새로 산 강아지를 거기서 살게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걸 타고 멋지게 지평선을 달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는지, 당신의 작은 서재로 생각하는지, 혹은 아이들과 놀러가는 모습을 상상하는지에 따라 자동차의 매력은 달라진다. 


차를 타고 멋지게 달려나가는 것을 상상하는 사람에게는 차가 실제로 바람을 가를 것처럼 생겼으며 강력한 가속력과 접지력으로 누구와 겨뤄도 속도에서 이길 것같은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리타분한 탓인지 결혼한지 오래된 탓인지 그런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는 결혼하기전, 젊었을적에 125cc 오타바이를 타고 다녔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몇년정도로 그런 정렬은 다 소진해 버린 것같다. 오토바이는 차와 다르다. 오토바이는 백킬로로만 달려도 일반도로에서 달리면 꽤 빠르게 느껴지며 겁이난다. 쓰러지면 죽는다는 느낌이 오는 것이다. 


얼마전에 타고다니던 오래된 차가 드디어 사망선고를 받았기에 이런 저런 차를 구경하러 다녔다. 차없는 삶을 얼마간 가져볼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외국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차는 너무나 소중한 생활의 일부였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리고 나서 차들을 돌아보는데 나는 내가 어떤 차들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더 극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도요타 자동차 전시장이나 혼다 자동차 대리점같은 곳에서 중고차 전시장에서 수많은 차들을 돌아보고 상당수의 차들에는 올라타 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내가 관심이 가는 건 딱 두종류의 차였다. 하나는 미니카다. 경차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두사람이 타면 뒷자석쪽은 짐칸으로나 쓸 차로 넷이서 타면 가방 실을 자리도 없는 차다. 예를 들어 다이하츠의 구형 미라지노나 닛산의 마치 같은 차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런 차들을 보고 있으면 형편도 안되고 돈이 있어도 그럴리는 없지만 미니에서 부터 시작해서 그런 미니차들을 수집하고 싶은 욕망도 든다. 결국 우리 부부는 혼다에서 나온 경차 N-one을 시승까지 하고 견적까지 냈으나 역시 작은 차는 아이들이 있는 우리 부부에게 현실이 아니었다. 




다이하츠의 미라지노



닛산의 마치


나는 아이들이 집을 떠난 노년에는 예쁘지만 깜찍하게 작은 집에 살면서 그 집앞의 주차장에는 그 집처럼 깜찍하게 작은 차를 세워놓고 살고 싶다. 물론 정작 그때가 되면 또 내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은 높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세상에 와 할 차는 많지만 돈도 충분치 않고 무엇보다 그런 돈을 쓰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 차가 별로 없었다. 나는 일본에서 혼다 모빌리오라는 차를 타고 다녔는데 결국 이번에도 그 후속차량인 프리드를 사고 말았다. 프리드는 이렇게 생긴 차다.






이번에 차를 보러다니면서 내가 줄곧 입에 달고 다닌 말은 '재미있는' 이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내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재미있는 차가 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려한 보석따위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해 주지 않듯이 화려하고 멋진 차들은 좀처럼 내 상상력을 자극해 주지 않았다. 혼다 오디세이나 어코드, CR-V같은 차를 올라타 보면 좋다라는 생각은 드는데 나는 곧 그래서 뭐 라는 생각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차의 문제라기 보다는 옷과 나의 관계처럼 내가 그런 걸 귀찮아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필요없이 크고 무거울뿐 그다지 다양한 쓰임새는 없다는 느낌이랄까.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를 볼때 우선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가를 살필 것이며 그건 그것 나름대로 말이 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는 프리드를 보면서 왜 이런차가 일본의 10대 베스트셀링카에 계속 드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하는 한국 사람도 여럿봤다. 나 역시 일본에 처음 왔을 때 깡통처럼 네모진 차들이 이해가 안갔으며 7-8년전만해도 한국에서는 세단이 아니면 차로 안친다고 오만하게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나에게도 변화는 생겼다. 한국에서는 SUV 인기가 올라가고 있고 나는 이제 더더욱 차의 속안을 많이 본다. 껍데기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있고 싶기 때문이다. 속을 본다는 것도 예쁘고 화려한 내부장식을 본다기 보다는 내부공간의 크기와 배치를 주로 본다. 예를 들어 우리 부부는 자동차에 있어서 시트의 배치와 이동에 대해 매우 신경을 쓴다. 이걸 접으면 어떻게 되나, 이걸 밀면 어떻게 되나, 이걸 펴면 바닥이 평평한 구조를 만들수 있는가, 몇명까지 앉을 수 있는가 같은 것이 가장 첫번째 조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프리드는 소형차인데 맨 뒷자석에 2사람도 아니고 3사람도 앉는다고 선전되었다. 위그림에 나오는 차는 2열이 벤치형이 아니지만 2열이 벤치형인 경우는 8인승이라고 말해진다. 진정한 7인승이 못된다는 산타페의 길이가 4690mm이고 프리드는 길이가 4215mm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진을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시승까지 해보았는데 우리 부부가 직접 앉아본 결과 차의 크기를 생각하면 3열이 매우 훌룡했으며 3인이 앉을수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프리드 같은 차가 나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최소한의 외형적 크기안에 최대한의 공간을 담았으며 그 공간이 이리저러 조절하여 여러가지 쓸모를 가지게 만든 차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는 모빌리오의 후속작인데 실제로 모빌리오도 의자를 조절하면 여러가지를 할수 있다. 소파나 자전거 책상을 실어온적도 있고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 이불을 깔고 야외 캠핑차로 쓴 적도 있다. 


나는 결국 집도 이런 집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재미있는 집, 작지만 안쪽이 넓고 활용도가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전에 본 집에는 아주 작은 서재공간이 있는 집이 있었다. 그것은 폭이 고작 1m정도 밖에 안되고 길이는 5-6미터 정도되는 공간이었는데 벽쪽에 나무판들이 고정되어 의자를 가져다 놓으면 책상이 되고 책꽃이가 되는 그런 공간이었다. 서재라고 하면 누구나 거대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며 책을 보관한다는 측면에서 그런 작은 서재공간은 큰 쓸모가 없겠지만 나는 그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집이 작아도 그런 곳에 쏙 들어가 스탠드라도 켜고 있으면 아늑한 나만의 장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떄문이다. 


또 지금 나는 다락이 있는 집에 살고 있는데 그런 것이 마음에 든다. 사다리를 내리고 올라가서 이런 저런 물건들을 보관할수 있는 공간인데 가끔은 막내가 친구들과 놀기도 하는 공간이다. 이런 식으로 집안에서 여러가지 놀라움이 있는 집이 나는 좋다. 


요 몇년간 집에 대한 관심이 들어서 일본의 집도 한국의 집도 꽤 구경하러 다녔는데 내가 느낀 총평을 말해보자면 한국에 새로 지어지는 집들은 대부분 재미가 없는 집이 많았다. 단단하고 쓸모있어 보이기로는 오히려 시골에 가면 많이 지어놓은 단층의 슬라브 빨간 벽돌집이 괜찮아 보일정도다. 집은 네모나게 생기고 옆으로는 옥상에 가는 계단이 있으며 지붕은 평평한 그런 집 말이다. 


다른 집들을 보면 울퉁불퉁하게 예쁘게 지었지만 공간을 자르면서 뭘 상상했는지 알기 어렵다. 괜히 공사비용만 증가시키고 단열과 실내공간 활용에 불리하기만한 집을 지었다는 느낌이다. 가장 작고 큰 내부공간을 가진 입체는 구다. 집을 구로 만들수는 없으니 그다음에는 정육면체가 가장 내부공간이 크다. 이말은 외부에서 보는 집의 크기 그리고 외부의 찬공기와 접하는 면적 마지막으로 집을 짓는 구조의 단순성을 생각했을때 가장 단순한 구조는 정육면체로 지어진 2층집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이 답은 아니니까 이렇게 꼭 지을 필요는 없지만 마치 방들을 먼저 만든다음에 그걸 어설프게 뭉쳐놓은 집처럼 울퉁불퉁하게 지어 놓은 집들을 보면 뭘 위해서 저렇게 지었는지 알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집을 나는 개인적으로 스머프 집이라고 부르는데 작은 성처럼 좀 예쁘기는 할지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는 크고 안으로는 작은 집이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머릿속에 집을 여러번 짓고 부수곤 했다. 실제로 자를 들어 집의 설계도를 그려본 적도 있다. 아내와 함께 가구점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테이블이며 소파가 그런 상상의 집의 어디에 들어갈수 있을까를 상상하기도 한다. 결국 집이건 차건 재미와 상상력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을때 차던 집이던 패션감각도 없으면서 그저 명품이라고 비싸게 사서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흉한 모습이 되어버리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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