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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결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하는 조언

by 격암(강국진) 2013. 5. 7.

2013.5.7

 

<연구실에 있는 한 일본인 동료의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작된 대화가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로 번져서 결국 익숙해 지는 것의 위험함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대화를 여기에 기록에 남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위험한 것이 바로 습관이 되는 것이고 익숙해 지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왜 죽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가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기 한 아들과 한 노부부의 관계를 보자. 아들은 아들로서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부모님을 종종 찾아뵙는다. 노부부는 부모로서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 아들과 아들가족을 반기고 주말을 자기집에서 보내게 한다. 

 

이 아들과 이 노부부는 많은 부모 자식간이 그러하듯 서로를 보는 것을 단지 의무로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만나면 반갑고 그래서 아들은 부모를 방문하고 부모는 아들을 반긴다. 그런데 결국 그것뿐이다. 그들은 그저 만나고 방문한다라는 기본적인 것을 넘어서면 그들의 방문이 익숙해졌고 그렇게 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런 만남은 그래서 서로 만나서 반갑다라고 하는 기본적 기쁨을 제거해내고 나면 실은 양쪽에게 모두 족쇄가 되고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아들부부는 얼마되지 않는 휴일을 부모집에 와서 보내는 것에 대해 지루해 하고 고통으로 느낄지 모른다. 그것은 어느새 돈도 시간도 희생하는 큰 일이 된다. 그들은 이렇게 아들로서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부모를 방문할뿐 부모집에 오면 대개 그저 티브이 앞에 주저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쓰고 부모님이 내오는 밥이며 간식들을 축내다가 어지러진 집을 뒤로 하고 떠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는 아들부부를 보는게 반갑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의 방문은 고되고 시간적으로 에너지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아들과 노부부의 만남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익숙함과 습관화이다. 그들이 만약 10년만에 만나는 것이라면 그런 만남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게 드물게 만나는 것이 아닌 만큼 그 만남을 보다 즐겁고 보다 유익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해서 매번의 만남에서 새로움을 가지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만남은 오히려 귀찮거나 낭비가 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그저 만난다는 사실에만 주목할 뿐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상실하고 있다. 그래서 한달에도 몇번이나 부모의 집에 가지만 그 부모의 집에 물이 새는지, 화장실 휴지걸이가 부서졌는지, 케이블티브이가 잘 나오는지, 집에 쓸만한 찻잔이 있는지, 평상시에는 외출은 하시면 뭘드시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다. 그저 한달에 몇번 방문하니 난 괜찮은 며느리요 아들이라고 자부할 뿐이다.

 

이것은 물론 아들과 노부부의 만남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그렇고 어린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단순히 여가를 보내는 문제에서만 그런게 아니라 교육, 재정, 집안꾸미기등 여러 가지 활동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다. 우리는 종종 뭔가를 반복적으로 한다. 그것이 이제는 지겨워져서 전혀 새로움이 없어졌는데도 그냥 그건 원래 그렇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해서 삶은 온통 의무로 채워지게 되고 항상 바쁘고 항상 자유가 아니게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습은 결혼이라는 계기로 더더욱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특히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들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금새 당신의 발목을 채운 의무의 족쇄가 손과 목까지 채우고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쉽고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거기서 자유로워지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요즘 하우스푸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하우스 푸어란 자신의 능력이상으로 돈을 빌려서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그 하우스 푸어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대부분은 사회적 영향력속에서 만들어 진다. 즉 돈을 빌리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게 하는 압력, 이정도 돈은 쓰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같은 것이 우리로 하여금 별 생각없이 돈을 빌리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큰 집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냉장고나 소파를 구하고 살 집을 구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원래라는 단어와 만나게 되는가. 총각처녀때 쓰던 물건이 있어도 신혼때는 원래 그렇게 한다면서 신혼살림을 다 구하거나 결혼식은 원래 이렇게 한다면서 남들이 한다는 식으로 혹은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그렇게 할거라고 기대하는 식으로 일을 결정해 나간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원래라는 단어는 끝도 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감당하지 못할 많은 돈을 쓰고도 진정으로 기쁜 일은 몇가지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처음 하는 결혼인데도 마치 습관처럼 아주 익숙한 일처럼 원래 그렇게 한다는 식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면서 사람들은 종종 부모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 부모들이 자식들의 재산권 행사에 관여하는 일을 만들게 된다. 애초의 부모의 돈이니까 그렇다. 그래서 결혼을 한 이후에도 집을 사거나 팔거나 하는 일에 부모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재정적 조언이나 삶의 모습에 대한 조언을 받는 일에 익숙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습관처럼 아이를 낳고 그들을 키우고 집을 하고 이사를 간다. 그렇게 하는 일에서 남들이 즉 부모나 이웃이나 친척이 원래 그렇다고 하니까 그냥 그렇게 한다.

 

물론 경험에서 나온 조언은 귀기울여야 하는 것이지만 이 것은 두가지가 나쁜데 첫째로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책임감이 작아진다. 책임감이 작아지면 배우는 것도 작아지고 결국은 손해가 될 수도 있다. 그저 부모가 빚내서 집사면 좋다고 하면 좋겠지 하는 식으로 재태크를 하게 되는 것이 한 예다. 교육이건, 직장이건, 재태크건 뭔가를 생각해도 어차피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공부할 동기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두번째로 특히 한국은 워낙 세상이 빨리 변한다. 그런데 부모는 자신들의 경험을 그냥 밀어부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에서 부모는 그저 의견을 냈을 뿐이라고 하고 자식은 어차피 부모뜻대로 하는거니까 나중에 부모가 책임지겠거니 하는 태도가 되어서 아무도 주인의식이 없는 선장없는 배처럼 그 가정은 굴러가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결정은 대개 긴 기간동안 결과를 생산해 낸다. 바로 그렇게 해서 무수히 많은 부부들이 원하지 않는 삶에 코가 꿰인다. 그들은 그저 습관처럼 몇개인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것들이 걷잡을수 없이 그 부부들을 얽매기 시작해서 그들은 어느새 자유시간이 하나도 없이 살게 된다. 임금님의 의자에 앉아있다고 해도 그 의자위에서 아무런 자유의사가 없다면 그 사람은 임금이 아니라 그저 장식물이나 물건 혹은 노예에 불과하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성공한 것같은 많은 사람들도 무심코 동의한 일들로 코가 꿰여서는 남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의자위에서 엉엉 울고 있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삶이나 인간관계는 숫자나 논리가 아니다. 남편이 가사를 어느 정도까지 하는가, 부부가 집에서 같이 시간을 쓰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숫자들을 가지고 우리는 그 삶과 인간관계를 평가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아들과 노부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설명했듯이 삶이나 인간관계가 습관이 되고 말 때 그것들은 그저 지겨운 의무가 되고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그저 의무처럼 집에 일주일에 몇번 들어오면서 나정도 집에 들어오면 모범적인 남편이 아니냐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남편은 아내가 남편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음식이나 옷같은 것을 가지고 내가 남보다 안해준게 뭐가 있냐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그저 숫자로 보면서 습관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 없는데 거기에 무슨 진짜 시간이 있고 관계가 있겠는가. 삶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숫자로 치환해 버린 사람은 어떻게말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무관심해 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이유도 모르는채 세상에 의해서 밀려다니면서 산다. 자기일을 세상이 결정하게 하니까 그 사람은 얼마지나지 않아 자신이 대단한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번지르르한 자신의 삶인데 앞도 뒤도 없이 답답하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임금님의 의자위에서 아파서 울고 있는 그 사람은 그 삶이라는 의자가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자신이 임금인지 그저 시종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가 임금님의자라는 사실때문에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기 일쑤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 어떤 선입견이나 집착이 너무 강해져서 자신의 직접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없다. 임금님의 의자라도 그 위에서 아프고 슬프고 고독한데도 그런 감각과 느낌은 부정하고 그 의자를 자랑스러워하고 그 의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이 의자를 포기할 수 있냐고 화를 낸다. 날마다 허드렛일만 하고 비굴한 일만하면서도 자신이 여전히 임금이고 여왕이라고 착각한다.

 

그 일본인 동료의 동생은 결혼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집안 사람들과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그 동생부부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비록 그것이 참신한 것이라도 그 동생부부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뭏튼 결혼식에 대해 진정으로 가장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바로 그 부부당사자 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결혼이라는 예식이 하나의 독립된 가족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라면 그 탄생을 알리는 예식은 응당 바로 그 가족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부부는 결혼과 함께 이제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할 것이고 여러가지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때 자신의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행복을 지켜나갈 수 없으며 많은 부부가 그러하듯이 그저 습관처럼 껍데기뿐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부터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던 나쁜 결과를 만들던 부부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 부부로서의 좋은 출발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에 익숙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흔한 인생문제일 것이다.  특히 결혼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서로에게 결혼한 부부를 둘러싼 세상 일에 대해 너무 익숙해지고 습관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모든 관계는 그저 구속이 되고 우리를 망치는 약점이 되고 만다. 세상이 당신들의 코를 꿰어 휘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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