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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명, 뇌, 자아

새로운 과학에 대한 재방문

by 격암(강국진) 2013. 5. 25.

*나는 이따금씩 새로운 과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곤 한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인데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이므로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저 재미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뉴튼 혁명의 재방문


뉴튼시대는 과학혁명의 시대였다. 그것은 소위 그리스 시대로부터의 과학적 시각이라는 것이 변혁을 일으킨 시대였는데 관찰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수학적 묘사를 하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때였으며 그것이 바로 뉴튼의 운동법칙과 중력법칙 그리고 질점과 미적분을 통해 씌여졌을때 하나의 완결된 혁명을 이룬다. 다시 말해 세상은 질점으로 이뤄진 물체들이 뉴튼의 운동법칙에 따라 움직여가는 세상으로 해석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이러한 과학적 견해에 익숙하므로 대부분의 경우 이것을 전제없는 진리로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실은 뉴튼이나 갈릴레오가 주장한 세상에 대한 수학적 묘사는 거기에 왜 그렇게 된다라는 설명이 없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던 이론들이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생각지는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것처럼 보이기 쉬운 질점같은 개념도 실은 환원주의적인 가정위에 서있다. 즉 우리가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이 그 대상 이외의 모든 것을 세상에서 지운 상태에서도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그런 대상을 설정하고 이해하면 우리는 현 세상이 그런 것들의 합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굴이 눈과 코와 입으로 이뤄졌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전적 과학은 두가지 방식으로 답한다. 하나는 바로 고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실체라는 것이고 또하나는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진리인 과학의 법칙 혹은 자연의 법칙이 실체라는 것이다. 


우리는 전체의 부분을 구성하는 그 고립하여 존재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그 합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복잡하고 덧없이 변해가는 세상에서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게 해서 서양의 중세는 신의 뜻을 믿었지만 이제 신조차 건드릴수 없다는 자연법칙이 가장 생생하게 존재하는 존재자로서 등장하게 된다. 


새로운 과학을 위하여 1 : 고립계와 의식


고전적 과학의 비판은 그 시대가 가장 중요한 실체로 생각했던 두가지에 대한 극복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과연 전체는 부분의 합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게슈탈트 심리학자에 의해 비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복잡계 과학이라는 시각을 통해서도 비판되어진바 있다. 


부분이라는 것은 과연 전체없이 존재할수 있는가? 그렇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의 모델이고 가정이다. 그것을 긍정해도 우리는 세상에 대한 훌룡한 과학을 만들어 낼 수가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넘어서고자 할때 우리는 그것이 근사이고 때로 매우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근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이나 윤리를 생각할때 큰 문제를 일으킨다. 


고립계의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 거울속에 뭐가있는가 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거울은 당연히 주변의 것을 비추므로 거울안에 존재하는 것은 주변에 뭐가 있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런데 거울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시작하기를 '여기에 우주공간에서 오직 거울하나만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나중에 현실세계는 이런 거울들의 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본질적 문제를 가지게 된다. 주변의 것을 치워버리고 거울을 들여다 보면 우리는 오직 우리의 얼굴만을 볼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문제를 뇌과학의 연구에서도 발견한다. 살아있는 뇌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전적 과학의 의미로 실험을 하고자 하면 항상 끝없이 뇌를 고립시키게 된다. 그리해서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에서의 뇌가 어떤 일을 하는가를 연구하는 식이 되버리는 것이다.


슈뢰딩거는 과학의 문제를 객관화를 위해 주체를 지워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즉 고립계를 상상하니 거기에는 나도 없다. 그런 과학으로 의식을 연구하거나 선악이나 가치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겉돌게 된다. 이미 시작단계에서 우리는 우리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이해한 세계는 가치라던가 아름다움이라던가 자아가 없다. 모두 기계뿐인 것같다.


그렇다면 고립계를 대체하는 과학이란 무엇일까. 고전적 과학이 고립된 작은 질점과 같은 부분의 존재를 선언함으로서 시작된다면 새로운 과학은 바로 나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과학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바로 내가 세상을 인식한 결과이다. 세상에는 인식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새로운 과학의 시작일 것이다.


새로운 과학을 위하여 2 : 메타 학습 방정식


고전과학의 모범인 뉴튼 과학이 보여주듯이 새로운 과학은 그저 세상을 관찰하자라던가 질점이 존재한다라는 것만으로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을 기술해 낼 운동방정식을 쓰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묘사할수 있는 능력을 가짐으로서 과학은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우리는 우리의 모델이 어떤 미래를 가지는가를 예측할수 있게 된다. 수학적 구조안에서 우리는 길고 복잡한 지적인 건축물을 세워 올릴 수 있게된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과학이 질점대신에 인식이라는 출발점을 다시 정립하여 출발한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힘을 가지려면 우리는 인식에 있어서의 수학적이고 정량적인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고전과학에서 자연법칙이 실체이듯 새로운 과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마음의 법칙, 뇌의 법칙, 정신의 법칙이 기본이 되며 그것은 문장으로 표현되어진 법칙이 아니라 정량적인 운동법칙이 되어야 할것이다.


인식에 대한 연구는 여러의미로 생명에 대한 연구를 떠올리게 해준다. 우리가 진화론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기 전에 생물학이란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생명들에 대한 정보를 백과사전식으로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이해속에서 우리는 결국 각각의 생명들을 각자 존재하는 것처럼 공부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것은 이해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진화라는 생명의 변화속에서 나타나게 된 표현들이라는 시각을 가질때 나아가 현존하는 모든 생명이 실질적으로 DNA를 통한 친척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생명과학을 가지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식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경험이 나의 인식을 바꾼다. 나와 타인은 또 인식이 다르다. 다른 환경속에서 우리는 다른 인식을 한다. 이렇게 인식이란 수없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것들을 각자 연구한다면 우리는 결국 수없이 많은 상황속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인식에 대한 여러가지 불분명한 기록만을 가지게 될 뿐이다. 그저 끝없는 관찰의 기록이거나 근거없이 서로 다른 것을 묶고 평균내어 희미한 차이만 보이게 만드는 일을 계속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인식이 우리가 외부를 어떻게 인식하며 어떻게 경험을 축적하는가와 같은 인식에 대한 법칙 즉 인식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메타 인식에 대한 법칙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거기서 실체를 파악할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메타 인식법칙의 표현을 통해 여러가지 인식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진화론의 눈으로 각각의 생명을 보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  법칙은 뉴튼 방정식처럼 인식에 필요한 조건들을 주고 그 이후는 운동방정식의 결과로 풀어냄으로서 과학의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쏘아진 대포가 어떻게 날아가는가를 계산하여 로켓을 쏘고 달착륙을 하듯이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계산하여 세상이 왜 이렇게 보이게 되는가를 설명하고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될것이다. 뉴튼의 역학이 초기에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데 쓰이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관찰된 천체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것이듯 이 새로운 과학도 우리의 눈에 보인 우리의 인식작용을 수동적으로 기술하는 단계를 지나면 적극적으로 인식을 건설해 나가는 방향으로 쓰일 것이다. 


새로운 과학의 유용성과 목적


새로운 과학은 종교이며 철학이고 심리학이며 뇌과학이기도 하다. 우리는 뉴튼의 과학의 연장선상에서 고층빌딩을 짓고 도로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했다. 새로운 과학은 우리의 정신에 대한 법칙이므로 그것을 통해 우리의정신속에 그런 것들에 대응하는 것들을 만들게 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더욱 풍부한 정신적 자산을 가지는 것에 대해 가치있게 생각하게 될것이다. 새로운 과학은 고전 과학이 그렇듯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것이다. 새로운 언어위에서 세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갈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가하는 것에 대한 것으로 그것이 충분히 발전되면 우리는 우리의 인식의 틀을 강력하게 바꿔서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 차를 타고 바람보다 빨리 달리듯 우리는 정신의 세계속에서 정신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길을 달리게 될지 모른다. 


뉴튼이 과학을 한 이유는 신앙심때문이었다. 즉 신이만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간결한 법칙에 따르는가를 보이는 것이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행성들이 아름다운 타원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신의 뜻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라는 것을 보이는 일었던 셈이다.


우리는 마찬가지 질문을 할수가 있다. 과연 새로운 과학을 뭘 위한 것인가. 그것은 자기를 찾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과학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다른 원리로 바라보게 할것이다. 따지고 보면 결국 자유주의나 자본주의는 고전적 과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새로운 과학은 생명과 전체성이라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들 것이며 따라서 그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세상을 굴리는 다른 방식을 찾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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