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플러나 뉴튼 시대 이전에 밤 하늘을 본다고 하자. 그럴 때 우리는 대부분의 별들이 단순한 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즉 그들은 원운동을 한다. 마치 하늘위에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이 한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래서 하늘위에는 거대한 원구가 있고 그게 돌아간다고 믿기 쉽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그게 바로 행성들이다. 행성은 그렇게 조화롭게 단순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별들 사이에 있는 몇개의 별인데 그 움직임이 이상하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그 이유를 안다. 대부분의 별들은 태양계 바깥에 있으며 그것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주로 지구의 자전때문이지만 행성들은 태양계안에 있고 태양을 주변으로 지구처럼 돌고 있으니까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내가 지적하려는 핵심은 왜 행성들의 움직이 다른가가 아니다. 핵심은 그것들이 소수의 별이라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몇개쯤 이상한 것은 잘 이해가 안되지만 압도적인 다수의 별은 하늘위에 원구라는 설정으로 충분히 잘 이해가 된다. 뭔가 새로운 설명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 설명은 결국 몇개의 별의 움직임을 설명해주는 '사소한'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계라는 설명이 없어도 결국 세상에 대한 이해는 사소하게만 다른 것같다.
만약 케플러나 뉴튼이 그렇게 믿었다면 중력의 법칙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 사소해 보이는 몇개의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해 내는 이론을 발견하고 우주를 다시 보니까 우주가 전혀 달라 보이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당연히 단순히 몇개의 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중력법칙과 뉴튼 운동방정식은 단숨에 그것없이는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가장 기초적인 과학 법칙이 되었다. 중력법칙이나 뉴튼 방정식도 모르면서 우주를 논하던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부당하리 만큼 비웃는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다.
이런 예에는 양자역학도 있다. 양자역학의 시작은 원자의 발견과 그 원자의 안정성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힘입은바 크다. 그런데 양자효과라는 것이 워낙에 작다. 작으니까 초정밀한 관측을 할수 있었던 19세기 말엽이나 되야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 작은 양자효과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아주 작은 세계의 법칙에 불과하며 수소원자가 수소원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양자역학은 뉴튼 역학에 대한 지극히 사소한 수정에 지나지 않은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양자역학에 대해 큰 정렬을 불태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나오고 나서 그걸로 세상을 보니까 세상은 전혀 달라보인다. 양자역학이 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고체라던가 결정이라는 게 있지도 않고 모든 것이 그저 아이들 진흙장난감처럼 물렁물렁했을 것이다. 그 말은 단백질의 구조같은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고 애초에 생명이라고 말할 것이 나타날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쉬뢰딩거는 DNA의 발견이전에 분자구조의 안정성이 진화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했다. 게다가 설사 그런게 아니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일들을 일어나게 하는 에너지 원인 태양은 석탄이 타고 있는게 아니다. 바로 양자역학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나온 이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론도 나왔다. 가장 작은 것에 대한 이론이 가장 커다란 것에 대한 이론과 직접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은 미리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예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착시라던과 환각같은 것을 가끔 경험한다. 그것들은 아주 가끔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는 일이 사소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의 이해가 어쩌면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보게 만드는 이론의 뿌리가 될지 모른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뇌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다가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대부분은 뉴튼이나 하이젠베르크, 아인쉬타인처럼 혁명적 과학 이론을 만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사소한 것의 의미에 대해 이런 과학적 발견의 역사에서 배울 수는 있으며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이것은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결국 모든 중요하고 대단한 인생의 변화는 그 시작단계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단순히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커진다는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인생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기 전에는 우리가 그때까지 살고 있던 삶의 방식이 적극적으로 어떤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거 좀 이상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설사 어떤 이유를 발견하게 될지라도 그 사소한게 바뀌어봐야 뭐가 바뀌겠어.'
이런 목소리에 100% 순응해 버리면 앞도 뒤도 위도 아래도 변화의 가능성이라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모든 것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고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은 발견되고 결정되어 이제 세상은 지루한 것처럼만 보인다.
매일같이 고급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부자집 아이는 매일처럼 고생하는 누군가를 보지만 왜 그들은 나와는 다른가라는 질문에는 몰두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가 살고 있고 있는 세상의 목소리는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거 좀 이상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그러나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완전히 바꿔버릴수도 있다. 이것은 물론 매일처럼 고생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질문이다. 그들도 같은 목소리를 듣는다. 이건 왜 이럴까를 생각하지 마라. 그거 좀 이상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거나 사소한 것에 몰두한다고 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때로 우리는 사소한 뭔가가 우리의 마음에 걸리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건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이 자꾸 머리를 맴돈다. 그 사소한 것이 결국 우리를 완전히 바꿔놓게 되는 일은 흔하다. 완벽해 보였던 세상이 실은 엉터리요 헛점 투성이 였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은 흔하다.
그러고 보면 사소한 것만큼 세상에서 큰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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