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기를 정확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한동안 내 사무실을 매우 실증나 할 때가 있다. 왠지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으면 집중할 수 없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지만 나는 종종 가방을 챙겨서는 커피숍을 간다. 마치 소설가처럼.
사실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와 소설가의 삶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는 일종의 관리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잘 보이지 않고 또한 그런 일들이 과학자가 해야할 중요한 일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연구비를 따낸다던가, 일을 지시하고, 보고를 듣고 보고서를 쓰고 또 강의를 하고 하는 일들은 물론 다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과학자의 일이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뭘 해야 하고 이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에 대한 영감 그리고 그 영감을 잘 풀어 쓰는 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의 핵심이다. 비유하자면 요리사는 음식점의 경영에 대해 여러가지를 신경써야 하지만 요리사는 요리를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뭏튼 보고서 쓰거나 돈타내는 일이 좋아서 과학자가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연구소 주변에 있는 커피숍을 모두 다닌 것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여기 생활도 꽤 길어져서 여기저기 다녀본 곳만해도 6-7 군데는 된다. 사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드링크바를 시키면 그 자리에 앉아서 원하는 대로 커피를 마실수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다니던 로얄호스트라던가 스카이락 같은 곳까지 포함시키면 내가 이주변에서 다니는 커피 장소는 10군데는 쉽게 넘기게 되는 것같다. 그 곳들을 때로는 아내와 함께 때로는 나혼자 내 가방을 둘러메고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 열군데를 항상 똑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한동안 부지런히 다니다가 또 입맛이 바뀌게 되면 한동안 전혀 가지 않게 된다. 사실 내입맛이 좀 그렇다. 뭔가를 맛있게 느끼면 아주 자주 먹고 그러다가 질리면 또 한동안 다른 걸 먹는 식이다. 이런 나의 입맛을 두고 아내는 어딘가에 쉽게 너무 빠진다고 놀리곤 한다. 커피도 그렇고 커피숍도 그렇다. 어떤 때는 커피가루를 사와서 종이필터에 내려서 먹는 것을 좋아하다가 인스탄트 냉동건조커피를 먹기도 한다. 나는 대개 블랙만 마시는데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이번에는 그냥 자판기 커피같은 맥스웰 믹스커피를 한동안 마실 때도 있다. 그리고는 다시 캡슐로 된 커피를 내려먹는 기계에 욕심이 나서 커피기계를 사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녹차만 마시고 하는 식이다. 그런 것들을 그냥 이것도 좋아 저것도 좋아하는 식으로 마시는 것은 아니다. 한번 한쪽을 마시게 되면 마치 그것 이외에는 전혀 마실만한 것이 안되는 것처럼 그것만 마시다가 언제 다른 바람이 불면 전혀 다른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다녔던 커피 장소를 생각해 보면 케익이 맛있어서 자주가는 토마토 같은 곳도 있고 커피도 맛있지만 그집의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어서 그리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가게 되는 가게도 있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자체는 별로지만 거기로 가는 길이 공원을 통과하는 길이므로 걷는 일이 좋아서 가게 되는 곳도 있고 비꾸리 덩키같은 식당은 본래는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는 곳이지만 푸짐하고 맛있게 주는 커피가 매력이라서 가게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로얄호스트의 로얄오무라이스가 좋아서 자주다닌적도 있었다. 주인장 할아버지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가게 되었던 키트리 같은 가게도 있고 누가 이런데다가 커피숍을 차렸나 싶게 구석에 존재해서 조용히 있고 싶을때 가게 되는 커피숍도 있다. 그 커피숍은 이름이 이상해서 아직도 그 간판을 어떻게 읽는지 모른다. 가장 많이 쓰게 되는 커피숍중의 하나는 내가 있는 건물의 1층에 있는 털리스 커피숍인데 와코시 커피숍중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와 넓은 공간을 가진 편이며 무엇보다 가까워서 좋지만 두가지가 안좋다. 하나는 좀 비싼 편이다. 그리고 결정적 단점은 오며가며 지나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사무실책상에 앉아있는만 못하다. 가격대비 가장 훌룡한 커피장소는 맥도널드다. 애들때문에 맥도널드에 가서 생긴 쿠폰을 쓰면 원두커피가 백엔 그러니까 천원. 맛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적어도 한국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파는 3천원짜리 원두커피보다는 훨씬 훌룡하다.
요즘에는 토토로라는 커피숍을 자주간다. 이 커피숍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좀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커피숍은 주유소 한쪽에 있는 건물에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에 딸린 커피숍이란 왠지 꺼림직했다. 커피값의 상당부분은 결국 자릿값인데 주유소에 가서 앉아있고 싶은 생각이 들까? 그래서 나는 오랬동안 그 커피숍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가서 앉아보니 훌룡했다. 창밖에 낭만적인 풍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조용하고 아늑한 커피숍이었다. 게다가 털리스보다 커피값이 훨씬 싸다. 이래서 사람은 너무 첫인상에 의존하면 곤란하다. 생각보다 훌룡한 커피숍이었다.
그래서 일까 손님도 생각보다 많았다. 고정손님도 꽤 된다. 나처럼 노트북컴퓨터와 계산거리를 들고 오는 사람은 없지만 책이며 원고를 들고 와서 한쪽 구석에서 자리 잡은 사람을 쉽게 발견한다. 그 사람들은 척보면 나 아주 오래 오래 앉아있을꺼야 하는 자세를 잡고 혼자와서는 커피를 홀짝이며 마신다. 그러면 나는 다른 쪽으로 커피를 가지고 가서는 서류를 꺼내거나 읽을 책을 꺼내서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수 있는 것도 내가 가진 직업이 어느정도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언젠가 중국의 풍경화를 본적이 있다. 봄날이 온 건물바깥을 창턱에 기대어 쳐다보고 있는 소년을 그린 풍경화였다. 난 그런 풍경이 아주 좋았다. 다 잘될꺼야 걱정하지마 같은 소리가 절로 아지랭이처럼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좋은 커피숍에 앉아 있으면 그런 느낌이 난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작은 낙에 기대어 산다. 친구와 마시는 술한잔이나 저녁에 나가는 마실 산책, 주말에 가는 산행이나 낙시,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타기같은 것들이 다 우리가 즐기는 작은 낙들이다. 이렇게 사는데에는 여러가지 낙이 있지만 커피숍을 돌아다니는 것도 작은 낙중의 하나다. 특히 내가 즐기는 것이다. 낙이 될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세월은 그렇게 낙과 함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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