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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인테리어 쇼핑/음식과 가구,

맛집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4. 3. 24.

맛집단상

 

아내와 차를 타고 니코방향으로 가는 일본의 국도를 달리던 중 길가에 보이는 가게중에 그럴듯한 곳으로 들어 섰다. 가게에 들어서고 보니 보이는대로 들어선 가게치고는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이렇게 뜻하지 않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 큰 기쁨이다. 때문에 최고로 기억에 오래 남는 일이 된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여러가지 맛집소개 블로거들도 있고 맛집을 소개하는 티브이 프로그램도 많이 늘었다. 피디가 돈을 받는다던가 맛과 상관없이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등 여러가지 안좋은 이야기가 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맛있는 가게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도통 단순하지가 않다. 맛집 대결같은 프로그램은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타이틀 전이라던가 이종격투기 경기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은 바로 최고로 강한자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때 생기는 것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맨주먹으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답이 있을 것같은 질문이지만 아마 수영을 못하는 최강의 격투가는 물속에서 수영선수 박태환에게 형편없이 지지 않을까? 싸움을 할때도 링에서 하는가, 길거리에서 하는가, 모래사장에서 하는가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건 그저 게임인가 아니면 생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인가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바닥이 돌바닥이라면 바닥에 메어치기 한번만 하면 그보다 강한 공격이 따로 없을 것이며 온 몸에 미끈미끈한 걸 바르고 알몸으로 한다면 아무래도 유도선수는 불리할 것이다. 게다가 검도의 고수는 불평을 토할수 있다. 왜 맨몸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우산만 들면 이종격투기 챔피언을 단숨에 쓰러뜨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현대 무기 전문가들은 나는 무기만 충분하면 백대일도 우습다고 할것이며 저격수는 먼 거리에서 적을 살상하는 자신의 저격능력을 자랑할 것이고 미국대통령같은 사람은 손가락하나로 핵을 날리면 한나라도 나와 싸워이길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반드시 맛집대결과 관련하여 무관한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감각이란 서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서로 많은 영향을 받는 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코를 막으면 사과와 양파를 구분하기 어렵고 눈을 감고 마시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같은 와인이라도 어떤 컵에 담아 마시는가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물론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걸 누구와 함께 먹는가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계란찜이나 삼겹살보다 더 맛있는게 있을 수 있겠는가. 반면에 싸움을 대판하고 미운 사람이랑 뭔가를 먹는다면 뭐든지 맛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식당이 가진 좋은 분위기란 맛을 좋게해 주는  중요한 한가지 요소인 셈이다.





 

이것은 단순히 최고로 맛있는 음식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맛에 둔감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최고의 맛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장기나 바둑에서 최고의 한 수란 무엇인가를 묻거나 소설에서 최고의 한문장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바둑에서 최고의 한수나 소설에서 최고의 한문장이 바둑경기의 나머지 부분이나 소설의 나머지 부분과 떨어져서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따라서 맛을 본다는 것은 최소한 음식점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다. 음식점이란 말하자면 판타지 즉 환상을 주는 공간이다. 간판에 왕의 식사라고 쓰여있고 음식점의 문에 이 음식은 조선궁중에서 내려오던 그 조리법대로 그대로 재현된 음식이다라는 문장이 써져 있으면 우리는 이미 그런 간판을 보고 설명문을 보기전과는 다르게 음식맛을 느낄 준비가 된 것이다. 좀 맛이 내 취향이 아니라도 이런게 왕이 먹는 음식취향인가보지 하면서 괜찮은 맛이라고 수긍하기도 한다.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카페에 찾아가서 그곳의 케익을 먹는 사람은 이미 영화를 보는 순간 자신의 미각을 조정당한 사람이다. 멋진 배우의 행복한 표정도 재현해 본다. 그래서 광고를 보는 사람도 이미 미각을 조정당한 사람이다. 

 

때로는 이런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음식자체는 완전히 무시하고 선전이나 인테리어에만 돈을 들이는 경우가 있어서 비판받고는 하지만 음식맛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반대의 의미에서 허구다. 많은 음식프로그램을 보면 알게 되듯이 맛을 본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그리고 나쁜 의미로건 좋은 의미로건 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음식점들은 아쉬운 점이 많다. 반드시 비싸고 싸고를 떠나서 그들은 그다지 많은 환상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전국최고의 환상의 찐빵을 먹으러 갔는데 반죽이 부풀고 있는 것이 소위 고무다라이라고 불리는 싸구려 그릇이라면 왠지 그 환상이 망가지는 것이다. 조금만 그릇을 다르게 하고 주방을 다르게 하면 최고의 음식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술이나 비빔밥도 허름한 옷을 입은 시골아낙이 대충 만들어 들고 나오면 종종 흥이 깨진다. 꼭 비싼 누군가의 인테리어를 흉내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욕쟁이 할머니의 허름한 가게가 맛을 돋군다. 사실 어설픈 흉내로는 효과가 그리 좋지 못하다

 

이런게 허세일까? 허세는 좋지 않다. 그러나 이런 걸 모두 허세라고 말하는 것도 오류다. 격식이나 장식이 중요한게 아니라 음식의 맛이 중요하다는 것도 일종의 맛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맹신이고 맛에 대한 객관화의 오류다. 같은 음식은 화장실에서 먹건 배고플때 먹건 수영복을 입고 먹건 격식을 차린 턱시도를 입고 먹건 그걸 어떤 코스요리로 만들어 어떤 순서로 먹건 같은 맛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음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격식에 대한 주장이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과 우리나라와의 차이가 있다면 주로 말하는 음식 그 자체의 맛보다는 이런 부분에서 더 큰 차이가 있다. 남의 나라를 마냥 칭찬하고 찬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음식점은 말하자면 이야기가 있는 음식점들이다. 그런 이야기는 문화적 저력과 개개인의 삶의 형태에서 나온다. 각나라의 맛은 그러니까 프랑스의 맛이나 중국의 맛이나 이탈리아의 맛은 그나라의 문학, 미술, 영화가 만들어 낸다. 그런 문화가 일반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그 일반인들의 생활이 다시 맛에 반영된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생각하고 당당하지 못한 한국인이 만드는 된장찌게는 스위스 농촌에서 만드는 퐁듀요리와는 왠지 다른 품격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상당부분 음식이상으로 만드는 사람에게서 발생한다. 

 





쓰시는 고급음식이라고 생각하고 빈대떡은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적 자긍심차원에서의 패배다. 약간의 문화적 변화만 있으면 우리의 음식들은 이 세계 어느 나라의 음식 이상으로 깊은 맛을 내는 품격있는 음식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약간의 문화적 변화라는게 매우 필요한 것이면서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에는 단순하게 맛을 보는 혀만 필요한게 아니라 삶에 대한 주체적 상상력과 자신감이 필요하다물론 이미 좋은 가게도 많은 것같지만 말이다.

 

우리가 수도승이 먹는 음식을 맛보는 것은 수도승의 삶 자체를 부분적으로 체험해 보는 일이 아닐까? 깔끔한 식당도 좋지만 허름한듯 보이는 민속주점도 또 좋다. 그러나 깔끔하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물론 허름하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맛이란 말하자면 자기 삶에 대한 주장이다. 장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진짜 허례허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최고의 맛이란 어떤 삶의 주장이 극도로 간결하게 표현되는 순간이 주는 것이다. 가장 순수하게 만든 간장은 왜 순수해야 할까. 술따위에 왜 그리 정성을 들여야 할까. 간소한 삶을 꿈꾼다면 최고의 맛은 그저 정성스레 삶은 달걀이나 정성스레 준비한 두부 한모일지 모른다. 그에 비하면 유명한 음식은 왠지 느끼하고 흉칙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던 중에 소금도 간장도 치지 않고 데우기만한 두부를 먹어보면서 두부라는게 이렇게 맛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해 본적이 있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그걸 이상하게 소비하고 있는 우리가 아닐까? 하이힐을 신고 산악트레킹에 나가서는 하이힐이라는게 엉터리라고 말하는 모습이 아닐까. 





 

요즘은 음식점이 참 많다. 맛에 대한 경쟁도 그만큼 심하다. 나는 깊은 맛을 주는, 깊은 감동을 주는 맛집을 많이 알고 싶다. 거기서 식사를 한번하고 나면 아는 친구들이며 부모님을 꼭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런 맛집이 한국의 동네마다 많이 있어서 쉽게 찾아지면 좋겠다. 그러려면 맛이 뭔지, 맛집이 뭔지를 고민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어떤 음식점 주인이 그 고민의 결론을 내는 것 이상으로 주변 사람들이 그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음식점들은 망하고 우리는 초라한 음식들을 대충 먹게 될 것이니 말이다. 특히 전국에 지방축제를 기획하고 맛집 골목을 만들려고 하는 곳들이 많은데 그런 곳들은 이런 부분에 좀 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없으면 맛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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