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심을 구속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또 관심을 가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을 구속할 때도 많다. 이러한 혼란은 따지고 보면 같은 것에다가 다른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애초에 관심과 구속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관심은 좋은 것이고 구속은 나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것이 되는가 나쁜 것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달려있다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 우리는 어떤 극단에 이르면 그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그런 극단적인 구속이나 무관심도 기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부러운 일이 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 지겨운 일이 되고 말며 그 반대도 그렇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딘가에 객관적인 선을 세심하게 그으면서 우리는 관심을 가져줄뿐 구속하지는 말아야 한다라고 엄숙하게 조언한다. 그 조언은 선의에서 말해지는 것일테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조언은 허망한 것이다. 그런 조언은 대개 아주 많은 것을 당연하고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면서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란 원래 이런 것이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원래 이런 것이고 하는 식으로 아주 많은 편견과 가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게임의 법칙을 정하고는 이것은 선을 넘은 것이고 이것은 아직 괜찮은 것이고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메뉴얼따라 대화를 하거나 연애를 해서 성공할 수 없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란 흐름을 타는 것이라 그렇게 고정시켜놓고 뭔가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설사 그렇게 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관계에 대한 이해, 그러한 구속과 관심에 대한 정의, 그러한 고정된 게임의 법칙자체가 다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정된 게임의 법칙에 익숙해지고 그걸 편한대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스템에 대한 맹신으로 문제해결은 더더욱 어려워 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부부싸움을 한 부부가 전문가의 조언대로 게임의 법칙을 따라서 좋아진다고 해도 그 부부의 관계가 나빠지면 다시 그 전문가에게 달려가야 한다. 자기 생각대로가 아니라 그 전문가 생각대로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전문가가 가정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고 그래서 잘안되면 아 그건 이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고쳐야 하고 그래도 안된다면 다시 다른 부분때문이라고 한다. 진정한 전문가가 있을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전문가는 먼저 자신의 한계를 말하고 게임의 법칙을 여러분이 직접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어딘가 책에 써있을 것같은 객관적 진리처럼 '원래 부부는'이라던가 '원래 부모와 자식은'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전문가따위는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전문가랄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만남이 없다. 만남이 있으려면 헤어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은 끊임없이 크고 작게 변화를 겪어야 한다. 변화가 없으면 서로를 볼 수가 없다. 때로 그것이 서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다시 만나기 위한 헤어짐이다. 헤어지지 않으면 서로가 보이질 않는다.
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구속으로 느끼는가. 서로에게 익숙해 졌기 때문이다. 서로가 너는 이러면 저렇고 저러면 저렇지 하고 척척 몇단계 뒤까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익숙해져 버리면 관심은 구속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은 불가능한 것이 되버리고 만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아니지만 파벌로 나뉘어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점이 잘 보여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해석한다. 그래서 종종 우리편의 사람이면 시체옆에서 피뭍은 칼을 들고 있어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상대편의 사람이면 살인사건이 있었던 동네에서 그사람을 누가 봤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그 사람이 살인범임이 틀림없다라는 식의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를 무슨빠라고 부르곤 한다. 황빠, 황까, 노빠, 노까. 애플 제품을 무조건 옹호한다고 앱등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 단어들은 우리로하여금 누군가를 너무 단순화해서 익숙하게 만든다. 즉 그런 단어몇개를 듣고 우리는 그 사람들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화는 확실히 어느정도는 피할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의지적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기가 쉽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너무 빨리 이건 이거니까 저건 저거라고 확신하고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 때는 답답함을 유발하고 그것이 사실일 때도 종종 그러한 일들은 지루함도 불러 일으킨다. 가보지 않았던 도시나 동네의 골목을 걸으면 우리는 그 낯섬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물론 날마다 걷던 골목을 걷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어느정도는 저 골목을 돌아서면, 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좀비처럼 걸으면서 자는 사람이 된다. 일단 좀비가 되고 나면, 뻔한 일인데 왜 또 이야기하는가, 이런거가 저런거니까 다 알고 있는데 왜 또 간섭인가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참으로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노력으로 되는 일이라기 보다는 하늘에서 준 선물이라고 봐야 한다. 서로가 너무 오래동안 가까우면 우리는 그 관계가 서로를 구속한다고 느끼게 되기 쉽다. 그렇다고 서로가 너무 멀어지면 우리는 서로에게 망각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망각되어버리고 나면 이젠 그 낯섬이 대화가 되지 않을 지경에 이를수도 있고 이번에는 만나지기가 어렵다. 가까워도 멀어져도 대화는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잊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걸 전제한다면 때로는 좀 서로에게 멀어지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관심이 구속이 되지 않도록, 여러가지 말들과 행동이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아이가 서투르게 뭔가를 하다가 넘어지고 다치면 부모는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매번 아이가 비틀거릴 때마다 부모가 잔소리를 하고 부축을 하면 언젠가 부터 아이는 나도 다 아는데 부모가 구속을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눈에는 물론 그 아이는 전혀 '다 알고 있지'않다. 그러나 그 아이는 부모를 좁은 눈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부모의 행동을 자기가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관심은 구속이 되고 대화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대화가 불가능해졌다면 부모가 가슴이 아파도 한걸음 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이는 넘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고 넘어질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 결론이건 그런 흐름이 다시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물론 어느 이상은 기본적으로 부모의 마음속에 아이가 잊혀지지 않고, 아이의 마음속에 부모가 얼마나 잊혀지지 않는가에 달려있다. 부부라면 남편의 마음속에 아내가, 아내의 마음속에 남편이 잊혀지지 않는가에 달려있다. 멀어짐이 망각과 무관심으로 변한다면 대화는 영영 불가능해 질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같은 사람들은 참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때로 부모는 아이를 믿고 아이를 놓아줄수 밖에 없지 않나 한다.
부모로부터의 관심도 그렇지만 세상의 관심은 영구히 계속될 수는 없다. 관심은 하나의 기회다. 아이가 그것을 구속으로 느끼면 그 기회를 걷어차는 것이다. 그 관심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면 세상의 관심은 줄어들것이고 그 아이는 기회를 잃게 될것이다. 아이에게 관심을 퍼부어서 관심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수 있다. 그 아이가 살아가야할 세상은 대개의 부모나 가족처럼 그 아이를 계속해서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며 때로 두번의 기회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때로 기회를 거절해야 하고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가. 그것은 모두에게 고민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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