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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아파트, 시골 그리고 양극화

by 격암(강국진) 2013. 11. 7.

2013.11.7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잘 써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짧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손가락가는대로 몇자 씁니다. 사실 반복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반복됩니다. 이야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도록 세상이 사람들을 마취시켰기 때문이죠.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지만 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파트가 좋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쓴 글의 댓글에서도 그런 분이 참많으며 아파트에 살 수 밖에 없다라고 단언하는 분도 많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동시에 매우 큰 우려를 하면서 그런 단언을 듣게 됩니다. 우선 몇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예1 : 여러분들중에 이런말 안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왕년에 미리 알았더라면 강남에 땅 몇평 사둘걸, 여의도 땅 몇천평만 사뒀으면 나는 엄청난 부자였을텐데. 

 

예2 : 철수는 가난하고 후진 시골이 싫어서 서울로 왔다. 그리고 뼈빠지게 평생 일하며 아이를 키워 대학에 보냈다. 그의 친구는 용기가 없어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그 친구를 부러워했는데 나중에 보니 시골땅을 지킨 친구가 땅값이 올라서 서울간 철수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다. 

 

예3 :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라는 미국에는 싸구려 음식, 싸구려 전자상품이 넘친다. 그것들은 물론 매우 싸지만 동시에 한국에서는 소비되지 않을 정도로 저질의 것일때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이미 퇴물이 되어 쓰지 않는 시끄러운 진공청소기나 낡은 티브이 모델이 미국에서는 팔리고 있다. 

 

이 예들은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 한줄로 쓰면 못알아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예화, 파편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인간을 자꾸 노예로 만들고 파편으로 만듭니다. 그게 어떻게 나타나는가하면 우리가 하던 일이 줄어들고 단순해 지는 것입니다. 한때 부모는 집에서 일을 하고 아이를 교육시키는 존재였습니다. 옛날을 생각해 보십시요. 부모가 대바구니를 집에서 만들면서 아이를 마당에 풀어 키우는 집에서 아이는 스스로 크거나 부모에 기대어 큽니다. 엄마는 엄마표 음식을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히며 아이는 자연스레 집안의 것을 흡수합니다. 아이가 항상 좋은 것을 배우는 것은 아니라도 아이는 남들이 모르는 전문적 지식을 자연스레 배웁니다. 

 

요즘 어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전문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와 같이 보낼 시간이 없습니다. 전문화가 일어나고 부모가 하던 일을 누군가가, 뭔가가 대체합니다. 밥은 사먹으면 되고, 교육은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엄마표 김치는 이제 없습니다. 옷도 당연히 사서 입히지요. 아이는 집에서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대신 학원에 가서 남과 '똑같은' 것을 배웁니다. 이러니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집은 이제 학비를 대주고 잠을 잔다는 의미밖에는 없습니다. 

 

집은 생활을 반영합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농기계를 둘 창고는 필요하지 않지요. 아이가 학원가서 돌아오지 않고 음식은 사먹으면 되는데 부모가 집에 일찍 돌아가서 자식을 돌봐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과 생활은 현실적 어려움때문에 조금씩 그러나 착실히 변해갑니다. 

 

자 이부분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당연한' 선택을 합니다. 비슷해 보이니 좀더 싸고 좀더 편한 것을 먹고 쓰고 입힙니다. 좀 더 편한 쪽을 택해서 집을 거기에 맞춥니다. 좀더 달콤한 쪽으로 달려갑니다. 매번 모든 선택은 어쩔수 없는 것이고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미래로 갔더니 우리의 집이라는게 관모양이고 관사이즈라면 어떨까요. 우리의 밥이라는게 개밥이나 고양이밥처럼 공장에서 처리한 정체를 알수 없는 사료같은 것이며 우리의 옷이라는게 거지나 입을 것같은 얇은 비닐쪼가리라면 어떨까요. 가족도 친구도 없이 무표정한 미친사람처럼 외롭게 살다가 몸에 나쁜 약을 먹고 견디고 그러다가 어느날 팍 쓰러지면 누가 쓰레기 버리듯 내다버리고 있더라면 어떨까요. 당연한 선택은 합리적 선택이었던 걸까요?

 

우리 사회는 벌써 여기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젊은이들은 정규직을 얻지 못하고 알바로 살아갑니다. 한국을 앞서 사는 일본에는 알바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니트족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결혼도 가능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혼자서 살고 벌이도 나쁜데 어쩌겠습니까.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점점 열악한 주거로 갑니다. 식사도 그렇습니다. 물론 식사도 편의점음식같이 정체를 알수 없는 곳에서 만들어서 유통시킨 음식을 먹을 때가 많습니다. 애도 낳지 않고 결혼도 안하니 집은 점점 기괴한 곳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궁극의 집은 관이겠죠.

 

당연한 선택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걸 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쓰레기라고 당연히 버린 것을 누군가는 예술작품의 일부로 씁니다. 뭔가를 버릴까 버리지 않을까에 당연하고 객관적인 답은 없습니다. 

 

시골땅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한 때는 그리 크지 않더라도 자기땅을 가진 손바닥만한 집에서라도 살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당연한 선택을 합니다. 아파트로 간거죠. 요즘 수도권에서 백평을 사려면 싸도 5억이고 비싸면 수십억이겠죠. 열심히 일했는데 강남에 있던 땅만 그대로 가지고 있었어도 내가 평생 일해서 번 돈보다 더 많이 벌수 있었다는 식이 될수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땅만 가지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음식도 점점 싸구려를 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20년전만해도 맹물을 돈받고 판다던가 맹물이 콜라보다 더 비싸고 휘발류보다 더 비쌀 수 있다는 것은 농담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중의 하나가 '당연하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파트가 절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당연히 아파트지 같은 말을 할 때마다 소름이 끼칠 것 같습니다. 그 당연하다라는 인식이 우리의 미래를 관속에서 먹고자는 것으로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번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바뀌고 앞으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긴 시간에 뒤를 돌아보면 뒤로 가고 있었던 셈이 될 수 있습니다. 

 

집이 불편하다라는 것에서 시작해 봅시다. 집을 어떻게 개선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집을 버리고 편한 아파트로 가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둘다 잘못된 생각은 아닙니다. 동네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싫다라고 해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과 어울려살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도 있고 그냥 동네사람들을 떠나서 좀 더 외로운 곳으로 옮기고 소식없이 살 수도 있습니다. 둘다 있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잘못된것은 당연히 이 쪽이지 라고 하면서 그리로 간다는 것입니다. 집을 살때 요즘 1억쯤 빚안내는 사람이 어디있나. 당연히 집이란 빚내서 사는거지라고 하는 식으로 '당연하다'고 하면서 선택하는거 그게 나쁜것입니다. 왜냐면 자꾸 그런 식으로 선택하면 눈에 안보이고 잘느끼지 못하는 것, 전에는 그 느낌을 알았는데 그 감수성을 잃어버린 어떤 것을 헐값에 팔아넘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이 필요해서 가격을 알아보면 턱도 없는 가격인거죠. 그리고 말하는 겁니다. 내가 그 땅을 팔지 말걸, 그 땅을 사둘걸. 

 

저는 투기를 잘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복권맞는 사람은 있지만 일부러 복권을 사려고 해서 당첨되려고 하면 돈만 날리는 거지요. 다만 이미 우리 손에 있는 것, 자연스레 우리손에 들어오는 것의 가치에 대해 좀더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권을 잘사자고 하는게 아니라 이미 우리손에 당첨된 복권이 들려있을지도 모르니 그걸 던져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파트를 열심히 선전합니다. 그걸 만들어 팔아서 돈버는 사람들의 선전이죠. 우리는 그 선전에 파뭍힐듯이 둘러쌓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에 저항해서 과연 단독은 안되는 걸까. 뭐가 고쳐야 하는 것일까, 뭐가 내 생활에서 문제인가를 자꾸 고민하지 않으면 남의 선전에 따라 사게 됩니다. 남의 선전을 100%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백원짜리를 만원에 주고 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죠. 

 

몇십년전에 사람들이 미래의 사람을 상상한 그림을 보면 그 그림은 소위 화성인처럼 생겼습니다. 너무 편한 생활을 하고 머리만 쓰니까 머리는 커지고 몸은 왜소해 집니다. 아니면 돼지처럼 뚱뚱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부자를 판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소위 짐승남이 부자입니다. 지금 잘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여러가지 운동기구 써서 몇십년전의 보통남자보다 더 근육질입니다. 그들은 마치 노동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구리빛 피부를 가집니다. 해변에서 시간을 쓰거나 일부러 썬텐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피스에서 창백하게 일하는 사람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파는 돼지같이 뚱뚱한 사람들은 전부 지극히 가난합니다.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점점 더 파편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로 갈수록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그게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더욱 부자고 더더욱 인간적으로 사는 겁니다. 다만 항상 당연하다, 당연하다를 외치던 사람들은 그렇게 되는 거지요. 이것이 이 글의 제목에서 쓴 양극화입니다.

 

왜 아파트가 당연합니까. 왜 그렇게 당연한게 세상에 많습니까. 왜 뭐든지 안된다고 생각해서 생각도 안합니까. 이미 우리의 젊은이들은 알바 몇개뛰고 결혼도 못하고 살면서 학자금 빚이며 전세금빚으로 노예처럼 사는 세상이 되었는데 그게 당연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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