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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3. 12. 9.

정재은 감독의 다큐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봤습니다. 이 영화는 서울시 신청사가 어떻게 계획되고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어떤 논란이 있고 그에 대해 건축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영화라고 들었지만 저로서는 건축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을 잘 보여주는 영화로 매우 추천할만 하다고 생각되어 여기 몇자 소감을 씁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서울 신청사에 대해 혹평을 했습니다. 다큐의 후반부에 나오는 한 저명한 건축가는 이 건물은 어디 아프리카에서 지은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이며 많은 사람들이 쓰나미가 서울 구청사를 삼키는 것같다고 말합니다. 저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다큐를 보고 난 후에 저는 오히려 이 건물이 21세기초의 한국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비루하건 자랑스럽건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이 건물이 우리 사회의 분열상과 자기없음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는 큰 그림이 있고 그 밑의 그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다면 전체 모양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는 방들의 장식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방을 만들때 방의 모양은 건물의 모양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애초에 건물의 높이가 3미터라면 그 건물안에 높이가 5미터짜리 천정을 가진 방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신청사 같이 3천억이 들어가는 공사이고 보면 큰 그림이란 단순히 건물의 모양정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단순하게 잠을 잘 방이나 일을 할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생각정도에서 짓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지리적 상징성까지 생각하면서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청이 서울시민의 것이라는 지루하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집주인이 천만명이나 되는 집이니 이 집을 짓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신청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원안을 낸 디자이너도 자신이 소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상징이나 의미를 건물이 가진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상징, 어떤 의미를 건물에 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사회가 여러조각으로 갈라져 있고 자기가 없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 건물을 지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천억짜리 공사이다 보니 서울시에서는 전문가를 불러다가 공사안에 대해 검토를 하고 선정을 하게 합니다. 언뜻 듣기에 자명하고 전문가를 불러서 하면 될 것같지만 실은 이 과정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 즉 우리의 관점이란 것을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한식을 먹고 싶으면 한식요리사를 부르고, 양식을 먹고 싶으면 양식요리사를 일식을 먹고 싶으면 일식요리사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뭘 먹어야할지 모르면서 단지 좋은 음식을 골라달라면서 각국의 요리전문가를 전부 모아다가 좋은 음식 고르기 선정대회를 해서 한식요리사, 일식요리사,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사들이 다수결로 좋은 음식을 고른다면 과연 그 요리는 좋은 음식일까요? 그들은 전부 전문가이지만 그들의 선택은 올바른 것일까요. 올바르다면 누구에게 올바른 것일까요. 

 

한국인들이 어떤 사회가 올바른 사회인가에 대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감하는 공감대가 하나도 없다면 어떤 의견을 내놓아도 그 의견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의견일 것입니다. 서울신청사는 바로 그런 우리의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가치를 어떻게 형상화해야 할까에 대해 공감대가 없고 종종 그저 근사하게 멋지게 지어서 우리 부자된거 자랑하자는 식의 생각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거대건축물에 대한 의견이 정리가 안될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신청사가 보여주는 우리의 두번째 모습은 우리의 예술적 철학적 깊이의 천박함입니다. 의미와 상징을 찾지만 예술적 철학적 깊이가 없으니 결국은 그저 번쩍 거리는 것이 좋다면서 과시나 하는 그런 건물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잘못된 모습으로 말이죠.

 

서울신청사의 모습을 만들어낸 결정적 결정은 오세훈 전시장이 소위 턴키방식으로 서울신청사를 짓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설계와 시공일괄 방식인 턴키 방식으로 서울신청사를 짓기로 한 삼성물산과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의 첫번째 디지인안은 소위 깨진 항아리 모양이라는 비판을 받고 고궁옆에서 고도가 너무 높다는 문화제청의 반대도 받아 무산됩니다. 사실 개인 전원주택을 하나 지어도 건축가는 집주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3천억짜리 공사를 하는데 거기에는 어떤 의미로 하청업자만 있을뿐 자기시각을 가진 건축가도 원하는게 있는 집주인도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여러번의 디자인 선택이 이어지고 최종적으로 유걸 아이아크 건축사사무소의 디자인대로 건물이 지어졌습니다만 턴키방식의 건축이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말해 유걸씨는 이 건물을 짓는 것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냥 디자인 아이디어만 주면 그걸 가지고 삼성물산이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방식의 한심함과 모순은 분명합니다. 상징성과 의미를 생각해서 그림을 한장 그리기로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전문가로부터 나무와 과일이 들어있는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라는 상담을 받은 후 정작 그림은 건물 페인트칠하는 사람에게 그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이라고 할때 건축가는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해야 하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아무래도 거의 독재자적인 권한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 건축이 가진 의미와 여러부분들의 상호관계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그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이란 건축가가 건축재료로 그려낸 그림인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시 신청사는 의미를 생각해서 짓기도 어려운 곡면구조를 가진 건물을 선택하고는 정작 삼성물산에게 기한과 돈을 생각해서 지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지어야 할지 모른다라는 공감대 차원의 문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 이전에 한국인 더 정확히 말하면 오세훈 시장이 예술이나 작품에 대해 매우 무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기능만을 생각해서 네모 반듯한 건물을 짓겠다면 그래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예술품을 만들기로 하고 짓기는 오피스텔 짓는 것처럼 지었습니다. 무식하면서 의미를 찾으면 아예 처음부터 야심이 없었던 것만 못한 결과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세번째로 이 다큐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의 소시민들의 모습입니다. 서울시 신청사는 개념적 혼돈과 철학적 천박함의 풍토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건물을 짓는데 참여한 여러사람들, 유걸씨와 삼성물산과 서울시 공무원들의 고생은 말도 못합니다어떻게 생각하면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이 건물을 직접 지은 사람들이 게을렀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그들은 온갖 말도 안되는 조건들을 극복하고 건물을 완성해 냅니다.

 

단지 그들은 크고 작게 단지 자기일만 신경썼을 뿐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림은 큰 것이 있고 작은 것이 있는데 다들 자기의 작은 일만 주로 신경쓴 것입니다. 신청사는 크게 보면 다시 의미를 가진 건물, 서울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건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 공사기한을 맞춰야 하는 사람은 공사기한만 신경쓰고, 돈을 신경쓰는 사람은 돈만 신경쓰게 됩니다. 다들 자기의 일만 신경쓰면서 이건 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면서 일이 굴러가는 동안 큰 그림은 망가집니다. 결국 매우 성실한 사람들이 모여서도 일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당연한 결론을 재현합니다. 진짜 소시민만 모여있는 나라는 엉망이 될수 있습니다. 다들 자기 앞만 보니까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보고 이 글을 마칩시다. 여태까지의 글을 읽고 누군가는 거꾸로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가보니까 깨끗하고 좋더만 비판만 하는 군. 그럼 도대체 어떻게 했었어야 한다는 거냐?’라고 말입니다.

 

제 생각에 가장 간단한 답은 우리가 의미를 형상화하고 그것을 같이 즐길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걸 인정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때까지 기다렸어야 합니다. 즉 아예 서울 신청사를 짓지 말았어야 한다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돈빼고는 그럴 능력이 안됩니다. 

 

이명박이나 오세훈이 보여주는 것처럼 내 임기에 뭔가 무조건 끝내자고 큰 공사를 벌이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특히 뭘 지어야 할지 모를때 말이죠. 문제는 이명박이나 오세훈 같은 사람들은 뭘 지어야 할지 안다고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겁니다. 오세훈 전시장의 또다른 흉물건물들인 새빛둥둥섬이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이것을 다시 한번 잘 보여줍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도 5천억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뭐에 쓸지도 모르는 건물, 주변과 조화도 안되는 건물을 말이죠. 

 

만약 사무실 공간이 꼭 필요했다면 그냥 꼭 필요한 사무실공간만 최소한의 돈을 들여서 지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인데 그럴듯한 시청조차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묻겠지만 바로 그렇게 묻는게 문제입니다. 지어본 결과는 한국은 그런 건물을 지을 역량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역량이 안되는데 그런 척 있어보이려고 하는 것 바로 그게 가장 큰 실패의 원인입니다.

 

그래도 네모반듯한 오피스건물보다는 좀 더 지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조금은 더 유동성이 큰 건물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공감대가 적으니까 공감대가 있는 정도만큼만 짓는 것입니다. 몇개의 작은 오피스 건물을 중앙정원이나 작은 길, 데크 같은 것으로 연결한 건물들 정도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 건물중 하나 정도는 한옥스타일로 지어도 좋지 않았을까요. 작은 정자정도는 어딘가 잘보이는데 끼워넣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예 짓지 않으면 편하고 오피스빌딩만 지으면 형식이 이미 엄격하여 별로 더할 것이 없으며 마지막에 언급한 것도 엄격한 형식안에서 아주 약간의 자유만 가지고 조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간단하고 소박한 형식의 예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돈도 절약하고 여러 사람들이 고생도 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하여 우리의 소박함과 내실있음을 보여줄 수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에서 가진 신청사는 누가봐도 이제 개보수를 하기 어렵고 유지비가 많이 들것 같으며 확장을 할 수 없는 지극히 자유로운 형태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음악으로 하자면 짧은 몇마디 길이의 노래가 아니라 거대한 교향악을 주제를 뭐로 해야할지도 모르고 경험도 없고 실력도 안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해가 어렵다는 말을 듣거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로 부터 비웃음을 삽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허세부리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큐를 다 보고나니 오히려 서울신청사는 한국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래서 생각합니다. 이 다큐의 감독은 서울신청사를 보여주고자 한것이 아니라 한국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우리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보면서 이걸 뛰어넘어보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영영 자랑할만한 건축물을 가지지 못하거나 또 다시 의미가 뭔지, 알 수 없는 흉물스런 것을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철학이나 가치, 의미 따위는 전문가에게 배우거나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철학과 가치는 자기가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문가가 있더라도 그들은 질문이 있어야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가치관이 우리의 질문을 결정합니다. 그러니 뭘 지을지도 모르면서 전문가를 모아서 돈주면 알아서 잘 지어줄거라는 식이고 거기에 더하여 야심까지 크다면 아주 곤란한 것이죠. 문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고 그들은 더 하여 여러가지 공공건축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우리를 가난하게 할뿐 아니라 후세에게 빚만 남겨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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