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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화장실없는 집, 뇌없는 인간 그리고 나없는 사회

by 격암(강국진) 2014. 1. 24.

14.1.24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핵심적인 것을 찾고 핵심적인 것을 보존하려는 일을 한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효율성일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으면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핵심적인 것만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이나 취업률이 좋지않은 과를 없앤다던가 회사에서 재정에 도움이 안되는 부서를 잘라버릴 때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 이런 최적화이다. 

 

이런 핵심찾기의 과정은 찬찬히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칼을 든 강도가 나타나서 당신에게 묻는다고 하자. 네 지갑을 나에게 줄테냐 아니면 네 손을 잘라서 나에게 줄테냐. 손을 잘라내는 고통이 두렵기도 하겠지만 설사 고통없이 손을 잘라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대개 지갑보다는 손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왜 그런가. 손이 나의 핵심에 더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핵심은 이제 몸도 아니다. 그것은 종종 뇌다. 손도 소중한 것이지만 손은 잘라내고 붙이고 심지어 바꿔다는 것도 가능하다. 그걸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뇌를 바꿔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뇌를 바꾼다는 것은 나의 핵심이 바뀌어지는 것이니 그건 더이상 나라고 할 수가 없다. 오늘날 성형수술이 널리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것은 이렇게 몸을 나에게  있어서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크게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아무리 몸이 예뻐진다고 해도 뇌자체를 다른 사람의 뇌로 바꿔넣겠다고 하면 그걸 동의할 사람은 없을테니까. 그런데 몸은 다른 것이다. 오늘날 몸은 말하자면 자동차같은 소유의 대상이지 주체나 나의 본질이 아니라고 믿어지는 것같다. 

 

그런데 이렇게 소거법을 통해 뇌가 우리의 본질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에는 큰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 오류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해 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한 남자를 생각해 보자. 어떤 남자가 집에 살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집의 본질은 어디인가. 그는 먼저 멋진 정원을 지워본다. 그러면 그 집은 정원없는 집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건 여전히 집이고 살 수는 있다. 그 다음에 그는 서재를 없애본다. 그래도 남은 것은 여전히 집이고 그는 살 수는 있다. 그렇게 해서 그 남자는 부엌도 거실도 욕실도 지워버리게 되는데 최후의 최후에도 지울 수 없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요강같은 것을 사용하기 싫었기 때문에 화장실이 없는 것을 집이라고 부르면서 그 안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이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화장실이 집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런 결론에 이르고 나자 그는 그 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화장실이며 다른 것들은 필요에 따라 버려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집의 핵심, 집의 영혼, 집의 정체성은 화장실이었던 것이다.

 

이런 결론과 그에 도달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희극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우리의 핵심이 뇌라고 믿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와 그리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내부 신체중의 어떤 부분을 잃어버리면 죽는다. 그렇지만 뇌 이외의 부분은 종종 대체가 가능하고 대체 불가능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 부분들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거기에 신비한 우리의 영혼이 깃든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멀쩡히 살아움직이는 인간이 된다고 해도 뇌를 떼어내면 곤란하다. 그렇지 않은가? 핵심을 찾는 과정이 이렇게 소거법에 주로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멋진 저택의 핵심은 작은 화장실이라고 믿는 오류를 범할수 있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우리의 핵심이 그 작은 뇌라는 결론이 오류일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인간이 뇌가 되는 과정은 가족이나 사회가 개인이 되는 과정을 닮아 있다. 옆나라가 없어도 우리는 살 수 있다. 이웃이 없어도 우리는 살 수 있다. 심지어 부모나 형제 자식이 없어도 숨은 쉰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의 몸으로 대표되는 개인이라는 개념에 익숙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결국 그것은 개인인 너의 책임이고 너의 판단이다라는 말에 익숙하다. 그것은 그 나름의 문맥으로 쓰였을 때는 좋은 말이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리고 어떤 문맥에서는 틀린 말이다. 너무 많이 틀려서 우스운 말이다. 누가 몇평의 땅을 소유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땅에 핵폐기물을 돈받고 가져다 놓는다. 그 땅은 이제 영구히 아무도 쓸 수 없는 땅이 되었다. 그는 이게 내 땅인데 당신이 무슨 참견인가 이건 어차피 나의 판단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동의할수 있을까? 여기 아주 중요한 인류유산이 있다. 그게 내 소유라고 불태워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그것에 동의할 수 있을까? 

 

소거법은 관계의 중요성,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잊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개인인 동시에 결국 지역사회나 국가 나아가 인류같은 인간공동체의 일원이고 나아가 지구 전체 생명공동체의 일원이다. 우리는 그 공동체의 암묵적인 도움에 의존해서 탄생하고 살아간다. 엄격히 따지면 정확히 그리고 무한히 내 것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당신의 몸도 그렇다. 그런데 뭐가 내 책임이고 내 판단인가? 나의 본질이 이 몸뚱아리라던가 이 뇌라는 것은 무슨 헛소리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앞에서 말한 소거법의 논리같은 것에 따라서 결국 나의 핵심은 이 몸이며, 이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라고 믿는다. 일단 그렇게 믿게 되면 이 몸뚱아리 바깥쪽의 것은 잊혀지고 버려지게 되기 쉽다. 그런 과정이 몸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된 것이 결국 나의 핵심은 뇌라는 현대의 인식이다. 비슷한 것에는 인간의 핵심은 영혼이라고 믿고 결국 육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개념이 있다. 

 

한 인간의 뇌가 어떤 로보트나 시체에 이식되어 살아있게 된다면 그 뇌는 인권을 가지고 개인의 소유권을 가질 것이다. 반면 한 인간의 손이나 DNA가 그런 권리는 가지지 못한다. 이게 당연한가? 뇌과학이 계속 발달하면 우리는 소거법의 논리에 의해서 뇌의 일정부분을 교체해 넣거나 제거하는 일을 쉽게 하게 될것이다. 실은 이미 그런 사례는 많이 있다. 지금은 금지되었지만 미국에서는 한때 전두엽을 파괴하는 수술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던 적도 있다. 물론 전두엽이 없어져도 그 사람은 사회적인 권리를 그냥 가진다고 믿기에 그 수술이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우뇌와 좌뇌를 분리하여 각각이 분리된 몸에서 생존하게 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린 기묘한 질문에 부딪힐 것이다. 그 사람의 정체성은 어느 쪽뇌가 가지게 되는가. 우뇌가 가지게 된다면 우뇌로 하여금 자신의 소유인 좌뇌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릴 권리가 있게 되는건가.

 

기묘한 미래에 대한 상상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앞에 펼쳐진 당연한 일상이다. 우리는 이미 우뇌가 좌뇌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그것에 익숙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엘리트주의에 빠져서 국가공동체의 핵심은 그저 한줌의 엘리트라고 믿는다. 그들에게 대다수의 민중은 외국에서 이민자를 대량으로 유입시켜서 대체할 수 있는 국가의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들에게 한국의 역사란 그저 쉽게 지우거나 던져버릴수 있는 비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본질과 본질을 나누는 방식은 우리가 어떤 부분이 상실되었을 때 담담한 태도를 보이는가 그렇지 않으면 미쳐 날뛴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민감하게 구는가에 달린 것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본질이 훼손당하는 것을 참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핵심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가하는 사회적 지위나 겉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느니 목숨의 위험이라도 무릅쓰겠다는 식이거나 싸구려 경차를 타고 다니느니 차라리 강도를 하거나 매춘을 하겠다는 식의 판단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본질, 나의 핵심이 파괴될 때 그건 더이상 내가 아니고 사는게 사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멈춰서서 묻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핵심이란 걸 제대로 파악하는 것일까, 핵심을 파악한다는 사고 자체가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거 아닐까, 화장실없는 집, 뇌없는 인간, 나없는 사회를 상상한다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일까? 핵심이라는게 애초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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