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4
외국에서도 그런 모양이지만 요즘들어 부쩍 소위 가상체험 방송같은 것이 눈에 띈다. 우리결혼했어요라는 방송이 좋은 예인데 사실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설정하에서 대본없이 연기한다라는 것이 이런 프로그램의 기본 발상이다. 물론 실제로는 재미를 위해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도록 제작진이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심지어는 아예 대본까지 주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기본발상은 그렇다. 연기가 아니라 상황설정만 있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이름을 들어보았던 방송들을 생각해 보니 정글의 법칙같은 방송도 그렇고 님과 함께 같은 재혼프로그램도 그렇다. 할배가 간다라는 프로그램도 어떻게 생각하면 여행프로그램같지만 방송의 촛점은 여행하는 지역에 대한 소개 이상으로 그 여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본없이 만들어 가는 인간관계에 중심이 잡혀있다. 조금 더 생각하면 사실 여기서 멈추는게 아니라 요즘 방송의 대세라는 소위 예능이 전부 일종의 가상현실 가상체험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도전이니 1박2일이니 런닝맨이니 하는 인기 프로그램들도 실은 설정이 있고 그 안에서 출연진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그런 방송들이다. 그것들은 대본을 가지고 찍는 드라마는 당연히 아니고 심지어 개그프로그램처럼 대본이 있어도 어느정도 연극하듯 관객앞에서 애드립과 함께 펼치는 공연도 아니다. 대본이 없다. 기본적 환경만 있고 그 안에서 행하는 게임같은 것이다.
이런 방송이 제작비를 절약할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제작비의 절약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형태의 방송이 요즘 시대에 잘맞아서 인기가 있는 것같다. 왜 그럴까. 이야기가 가진 힘의 한계때문이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미리 짜놓은 이야기에는 잘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인류가 쌓아온 이야기들을 엄청난 속력으로 소진 시켜왔다. 한명의 인간이 독서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소진시키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형태로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접해왔다. 그렇게 되면 얼마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마치 노숙한 영화감독이나 작가처럼 이야기를 평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들에 대한 풍부한 접촉경험으로 드라마나 영화 안에서 공식이나 구조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 이 로맨틱 코메디는 로마의 휴일식의 설정에다가 노숙자 부분을 도입하고 여성의 직업관을 강조했군요.'라고 말하던가 '저 여자가 저 남자를 싫어하는 것을 보니 결국 저 여자는 저 남자에게 시집가겠군'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문 평론가 같아졌다. 사람들은 이제 척척 반전을 예측한다. 한때 반전계 영화라는 것이 인기였다. 영화의 마지막에 모든 의미가 뒤집어 지는 그런 영화였는데 아이덴티티라던가 식스센스라던가 유주얼서스펙트같은 영화가 그렇다. 이제 이런 영화는 잘 시도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금방 '흥 반전으로 나를 놀라게 할 모양이지만 이런건 다 예측한다구'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짜놓은 이야기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면 사람들은 금새 거기에서 어떤 힌트를 보고 미래를 예측해 버린다. 그리고는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야기를 많이 소비했기 때문에 더 커다란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달까. 이것을 이야기의 문제라고 부르자.
이야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이야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힘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작가의 가치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성공한 작가의 소득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하지만 그런 지출이 합리적이 되기 위해 작품은 거대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작가가 좋기만 한것은 아니다. 이제 평범한 이야기는 전혀 안 팔리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소수 작가의 독식시대랄까. 이미 성공한 작가들은 잘나갈지 몰라도 신진작가나 청년의 입장에서 보면 작가란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이 만든 삼국지 같은 이야기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도 흥미를 끄는 이야기꾼으로 살 수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왠만한 이야기가지고는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힘들다. 이렇게 작가가 모아니면 도라는 식의 직종이 되어버리니 현명하고 약삭빠른 사람들은 그 분야에 뛰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그 분야는 기성세대의 독점이 계속되면서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야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또다른 방법은 이야기 이외의 것을 동원해서 관객을 자극하는 것이다. 더 화려한 화면이나 음악이다. 최근의 영화를 보면 아바타나 인셉션같은 영화는 초현실적 화면을 보여주고 디즈니나 드림웍스의 영화들은 애니메이션이면서 뮤지컬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좀 뻔해도 관객은 부수적인 효과의 힘을 빌려서 거기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가 나와도 이야기의 문제는 존재하며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한다. 우리는 물론 반지의 제왕같은 명작을 영화화하거나 해리포터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영화화되는 것을 미래에도 보게 되겠지만 점점 더 그런 식의 방송들은 말하자면 할리우드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같은 문제를 가지게 될것이다. 즉 사람들은 정해진 이야기에서 만족을 느끼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따라서 더 대단한 이야기를 더 대단한 영상과 함께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엄청난 규모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사람들은 이런 막장드라마는 왜 봐야하냐고 욕이나 할것이다. 그런데 그런 초대형 블록버스터는 한번의 실패로 방송사나 영화사에 치명타를 남길수 있다.
우리는 인기작가의 수입이 어마어마하다던가 그들의 횡포가 지나치다같은 이야기를 이미 듣지 않던가? 무엇보다 수백억 수천억짜리 프로젝트가 만들어 내는 부담감이 이미 커질대로 커진 상태에서 더 규모를 키우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여기 이야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완전히 다른 발상이 있다. 그 방법은 아예 전통적 의미의 작가를 빼버리는 것이다. 바로 설정만 있고 어떻게 흘러갈지는 출연진의 임기응변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장기나 축국같은 게임의 법칙을 알아도 그걸 계속 한다. 새로운 게임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펼쳐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도 그 설정을 설계하는 설정설계자로서의 능력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과거의 대본작가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는 역할같은 역할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출연진의 재능에 달려있다. 프로 축구나 프로 야구 리그가 멋진 스타 플레이어의 인기에 의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대부분의 작가가 쓰는 이야기보다 종종 상황속에서 반응하는 출연진의 임기응변이 더 다양한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측이 더 어렵고 연기는 연기가 아닌 것이 되고 시청자는 전체 프로그램과 각각의 인간이 보여주는 행동방식에서 더 많은 정보를 접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예능계의 정점은 유재석이라고 할수 있는데 사람들은 유재석의 인간성에 대해 쓴 기사를 많이 보게 된다.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아니라 사람이 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상현실이지만 설정만 있을 뿐 대본대로 흘러가는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출연진이 처한 현실은 어느정도의 현실성을 띈다. 예를 들어 전쟁영화가 아무리 심각해도 배우는 매우 안전을 보장받고 있으며 대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 가상체험 프로그램은 출연진이 진짜처럼 상황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많고 적음의 문제가 있을뿐 실제로 출연진이 압박을 느끼게 해야 한다. 소위 예능감이라고 불리는 예능프로그램의 재능은 연기의 재능과는 다르다. 그것은 임기응변에 능한 것이며 남이 짜 준 이야기를 따라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재능 혹은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 가고 사람들간의 화합을 유지하는 재능이다.
다시 말하지만 앞에서 말한 영화나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사이의 차이는 책읽기와 게임하기의 차이와 비슷하다. 책은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정해져있는 것을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게임은 참여가 필요하다. 책도 여러번 읽어도 계속 재미가 있을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일반론적으로는 책보다 게임이 반복해서 즐길 수 있다. 게임은 어떻게 풀려갈지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은 아예 예능 프로그램안에서 실제로 게임을 한다. 어느 쪽이든 암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책은 그 내용을 잘 암기하는 능력이 아무래도 게임에서보다 더 중요하다. 배우는 작가의 의도나 대본에 그려진 캐릭터의 행동을 잘 재현해야 한다. 반면에 게임은 즉각즉각변화하는 상황에서 전반적 상황을 인식하고 올바른 반응을 하는 판단능력이 요구된다. 만화책을 읽는 것과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가상체험 프로그램의 미래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미래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미 우리 코앞에 다가온 미래다. 추세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정해진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드는 일은 머지않은 장래에 거의 사멸하다시피 할지 모른다. 거대작가와 거대배우의 시대는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소비할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많아서 그 분야에서 새로운 창작은 이득을 남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마도 미래는 가상체험의 시대, 게임의 시대, 예능의 시대가 될 것이다. 게임이 더 현실적으로 바뀌고 온라인게임으로 바뀌어 왔듯이 가상체험도 더더욱 블록버스터화 되어서 더더욱 생생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상황을 설정하는 설정자로서의 능력이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되기를 거부한 젊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이 설정자 시장에 많이 뛰어들지 않을까. 케이블방송에서라도 설정자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상체험 프로그램은 아마추어같고 거칠어도 참신한 면이 있으면 통할 수 있다. 반면에 드라마는 어디서 만들건 일정수준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 완성도때문에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세대가 노릴만한 것이 어느 쪽인가 하는 것은 비교적 분명하다.
예능속의 게임은 놀이공원형태로 상업화 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기도 우리결혼했어요같은 가상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런닝맨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임을 하고 싶다고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설정자가 만들어 낸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쌓여갈 것이므로 그것들을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그것을 재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것이다.
연예인의 재능은 이제 게임을 할수 있는 능력을 크게 요구하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게임을 통해서 일반인들이 방송에 출연하고 계속 성공하면 큰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그런 것이 미래의 오락산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요즘 인기 좋은 가수 지망생을 대상으로한 뽑기대회는 이미 그런 미래가 코앞에 다가왔다고 말해주는 것같다. 이제까지는 축구나 야구등 몇몇 스포츠 분야만 아마를 거쳐 프로리그에진출하는 형태를 가졌지만 수없이 많이 존재할수 있는 형태의 것들에 대해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한국은 이미 전자오락의 프로화를 통해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제까지 가상체험 방송 프로그램에서 게임에 이르는 여러가지 것들을 하나의 시점에서 보려고 하면서 이 글을 써왔다. 그 시점이란 이야기의 힘의 한계가 만들어 내는 사회현상이다. 즉 그 모든 일들은 다 같은 이유를 배후에 가지고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사안을 한발 물러나서 이렇게 본 것인데 이제 마지막으로 한발 더 물러나서 사회전체를 보는 이야기를 조금 하고 이 글을 마치기로 하자.
나는 이러한 일들이 단순히 오락산업이나 방송산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초엽에 있어서 작가는 단순히 오락산업의 종사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과학자나 철학자를 능가하는 시대의 최고 지성으로서 인류의 미래를 모색하는 존재들이었다. 20세기 초엽만 해도 말하자면 뛰어난 사람들은 모두 작가가 되기를 소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틀란드 러셀같은 사람도 글을 써서 돈을 벌게 되면 그것을 매우 흡족해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한때 종교에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를 아는 것은 종교인이었다. 그리고 과학의 시대가 오자. 적어도 한때는 과학자가 세상에서 가장 지성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 시대는 과학자와 철학자가 구분이 안되는 시대이며 과학의 올바른 이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철학이다. 데카르트는 수학자고 칸트는 뉴턴역학을 공부했던 물리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성의 시대를 맞이하여 세상을 어떻게 봐야할것인가에 대해 철학자들이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대가 더 지나고 낭만주의 시대까지 거치고 나서는 과학은 이제 거의 완전히 침묵하게 되었다. 그들은 단순 기술자처럼 변했으며 인생의 지혜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은 빵집주인보다 오히려 아는 것이 없는 사람 즉 공부만 좋아하는 멍청이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작가에게 지혜를 구했다. 작가는 각자가 생생하게 만들어 낸 가상현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인생의 진리, 인생의 비밀을 추구했다. 사람들은 작가를 따라가서 그 비밀을 같이 배우고자 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이 지나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데올로기의 힘이 사멸해 가면서 이야기의 힘이 역부족이 되어가는 시대가 왔다. 즉 오락산업에서만 이야기가 힘이 부족해 진게 아니라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이야기의 힘이 부족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온갖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일에도 훨씬 익숙하다.
이제 사람들은 낡은 정치적 메세지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다. 한때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상품도 잘 팔리지가 않는다. 소련은 사라진지 오래고 냉전은 끝이 났다. 한국처럼 아직도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굴레에 빠져있는 나라도 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슬프다. 남북한이 잘 통합한다면 한민족의 문화가 가지는 파급력은 지금에 비할바가 아닐테고 변방의 소국취급당하는 것에서도 벗어날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간문제다. 시대의 변화에 쫒아가질 않아서 멸종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게임의 시대로의 진입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교묘히 만들어져서 굳어진 말이 아니라 말하고 쓰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 지고 있다. 몇달전에만 해도 전혀 그렇게 생각되어지지 않던 어떤 사람이 몇달만에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뛰어오른다. 사람들은 미국의 대통령을 포함한 유력인사가 흘린 트윗하나에서 행간을 읽어서 진실을 알아내려고 한다. 사람들은 자본의 지배를 받는 거대 매체의 뻔한 소리에는 점점 더 귀를 닫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을 설계하는자, 새로운 게임을 멋지게 하는자, 무엇보다 멋진 체험을 주는 게임을 찾는다.
이것은 사상측면에서도 그럴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와 게임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것은 메타 사상 게임이라고 불러야 할 어떤 것이다. 하나의 사상을 하나의 이야기라고 할 때 우리는 이제 이야기들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느슨한 규칙만 있는 공간에서 스스로 미래와 사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소위 생태계나 가상 국가를 만든다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소비자는 더 이상 수동적 소비자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산자가 되는 시대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신적인 존재를 차지하는 것처럼 어떤 중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이야기를 써나가는 시대다. 누군가의 부족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메꿔주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는 객관적이고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를 찾는다는 식의 메세지를 가진 사상보다는 훨씬 더 포용력이 크고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난 관점이 인기를 얻을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실용주의가 그렇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실용주의의 메세지는 노장이나 불교적 메세지와 깊은 유사성을 지닌다. 결국 우리는 방송국안에서뿐만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머릿속에서도 게임을 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시대다.
결국 이 모든 건 게임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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