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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궁극의 작은 집, 쉐어 하우스

by 격암(강국진) 2014. 4. 11.

서구나 일본에서는 이미 익숙한 주거 형태인 쉐어하우스가 우리나라에서도 슬슬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보더리스하우스나 우주 같은 업체가 세를 늘려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저는 쉐어하우스의 가능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즉 주거 대안으로서 잠재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의 상상력과 설계능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쉐어하우스라는 것은 통상 집이나 건물에 개인공간과 공유공간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숙집과 어떻게 보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하숙이란건 집주인이 운영하는 거라면 쉐어하우스는 거주자들의 자치적 생활공간으로 생각하면 될것입니다. 한 아파트 월세를 둘이서 나눠서 내기로 하고 각자 자기방 가지고 살면서 거실과 부엌을 공유하면 그게 쉐어하우스 입니다. 저는 공유주택같은 한국말로 부르고 싶지만 통상 쉐어하우스라고 하니까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왜 주거대안이 추구되는가.


어떤 분들은 쉐어하우스에 대해 한국문화상 될리가 없는 부정적 의견으로 판단을 끝내버리곤 하는데요. 저는 시대의 흐름이 그런 단순한 부정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문화가 문제라면 문화를 바꿔서라도 주거 형태를 변형시킬 시대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거문화는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시대는 이미 7년전에 끝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투기하여 돈버는 집이 아니라 쓰는 집, 사는 집으로 집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소유하는 집이 아니라 임대하여 쓰는 집의 시대로 변하는 면도 있습니다. 집값 오를 것을 기대할수 없다면 관리차원에서 전문 업체가 관리를 하고 일반인들은 그냥 임대를 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 되는 시대가 되는 것이죠. 그 결과중의 하나는 집의 가치가 월세를 얼마를 받을수 있는가 같은 것으로 결정되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어쨌건 주거의 형태에 대한 고민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고민의 근본은 이거죠. 과연 싸고 만족스러운 주거는 없는가. 이미 집값은 올라있는 상황에서 투자삼아 빚내서 집을 살것이 아니라면 최대한의 소비효율을 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주거비가 엄청나니까 거기서 돈을 아끼는 것에 따라 생활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기시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주거로 인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터무니 없이 비싸고 큰 집을 소유한 은퇴자에서 올라버린 집값으로 인해 고민하는 젊은 학생과 신혼부부들이 그렇고 아파트 대량생산시대에 감옥처럼 지어진 아파트에서의 삶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고민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투기시대가 끝나버리자 그 고민은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거 대안을 찾아서


한국에서 주거대안으로 찾았던 것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원주택 바람이었습니다. 아파트를 떠나고자 한 사람들이 지었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흔히 전원주택 즉 백평이상 3-4백평의 대지위에 올록볼록 지어진 마당딸리고 텃밭있는 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은 반성합니다만 전원주택 바람 초기만 해도 사람들은 흔히 몇백평의 터에 2-3층의 집을 짓고는 혼자 쓰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도는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땅값이 비싼 지역에 이런 집을 지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한가운데에 이런 주택을 가질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전원주택은 말그대로 시골에 짓는 집이 됩니다. 땅값은 그냥 싼것이 아닙니다. 결국입지가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결국 전원주택에는 문화적 차이, 관리하기 어렵다 난방비용이 크게 나온다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시골에 멋지게 전원주택 지어놓고 후회하는 사람, 몇년 못살고 팔고 싶어하는 사람이 양산됩니다. 


이를 보완하여 등장한 것이 타운하우스입니다. 타운하우스는 개인주택을 보다 작은 대지위에 서로 다닥다닥붙여서 짓는 것입니다. 그 동기중의 하나는 무엇보다 그래야 커뮤니티가 생기고 그래야 그래도 더 싼 가격에 지을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해도 기본적으로 자기 땅위에 내 집을 짓는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타운 하우스는 땅값비싼 곳에 지을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도권지역 타운하우스의 입지나 가격도 주거 대안이라고 부를 수준은 아니게 됩니다. 전원주택이 그러했듯이 타운하우스도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잘 쓸수 있는 사람은 있지만 본격적 대중성을 가진 대안이라고 부르기에는 한계가 뚜렷한 것입니다. 최적화된 것이라고 부르기는 멀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작은집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외국의 타이니 하우스라는 것은 아예 이동시킬수 있게 트레일러 위에 지을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집이 아니라고 해도 최대한의 공간적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말한 부동산 투기 시대의 종말때문입니다. 


쓰려고 집을 지으니까 최대한 돈을 덜들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짓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금산주택같이 작은 집에 평상을 붙인 형태를 고민한다던가 작은 대지위에 3-4층으로 높이 올린 협소주택을 고려하게 됩니다. 컨테이너로 지은 집도 고민해 보게 되고 최소의 집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아예 최소의 집이란 주제로 주택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EBS, MBC에서도 작은집이란 주제로 다큐를 방송하고 신문도 시리즈물로 작은집을 다룹니다. 그 핵심은 공간 효율성의 극대화입니다. 단독주택뿐만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요즘은 평면 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들어 20평인데 30평처럼 쓸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공유의 문제


요즘 공유경제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만 돈문제를 떠나서 주거문제에 있어서도 피할수 없는 화두가 커뮤니티와 공유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한 타운하우스는 선전을 통해서 말하기를 자신들은 타운하우스내에 공동식당을 운영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타운하우스 입주자들은 일일이 집에서 혼자 밥만들어 먹는게 아니라 원하는 입주자들은 모여서 밥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돈도 절약되고 편리하다는 점이 큰 매력이 됩니다. 물론 그러면서 주민들이 서로 친해지기도 하지요. 사실 이런 요구를 실현하려고 공유경제 사업중의 하나인 집밥사이트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작지만 자기 마당이 있음을 강조하는 타운하우스는 자기마당뿐만이 아니라 공유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데 결국 효율화의 끝에 가면 공유가 등장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 시대의 주거란 다른 말로 하면 독점적 소유의 시대의 주거입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내 투자가 돈을 벌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공유를 최소화 했습니다. 공유가 되면 집값이 올랐을때 나만 팔고 나가기 쉽지 않으니까 니것내것 가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의 궁극은 결국 감옥같은 집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엄청난 고층빌딩안에서 엄청나게 밀집되어 살지만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집현관으로 직행하여 아무도 만나지 않는 그런 폐쇄적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타워펠리스같은 건물은 짜장면 배달도 어려워 졌지요. 그밖에도 전국에 투기시대 말기에 더더욱 폐쇄적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많습니다. 폐쇄적이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앞에 상권도 발달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걸어서 집 근처를 산책하는 구조가 아니라 산책도 건물안에서 주민들끼리만 하고 외출할 때면 차타고 마트에 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는 그런데 결국 주거 효율성 차원에서 가면 한계가 큽니다. 열사람이 공유하면 열사람이 행복할수 있는 것을 모두가 독점소유하려고 모두가 비싼 값을 치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니것내것 잘 가리고 투기하면 더 부자될 것같지만 실은 그런것 안가리고 공유하는 것이 모두가 부자되는 길입니다. 투기시대가 끝나자 공유가 다시 중심화제로 돌아옵니다. 공유하면 모두가 풍요롭게 살수 있기 때문에 공유경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릅니다. 차를 공유하고, 비싼 옷을 공유하고, 책을 공유하면 모두가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거문화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변할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는 느리기 쉽지만 주거에서도 공유는 점점 더 강조됩니다. 그 한예가 위에서 말한 타운하우스의 공용식당이었다면 다른 예를 MBC 다큐 공간혁명 작은 집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을 지으면서 공유할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각자 자기 소유를 조금씩 포기하니까 실질적으로 집이 넓어졌습니다. 공유공간을 거실처럼 주방처럼 아이들 놀이공간처럼 쓰니까 우리집이 아주 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연히 공동체가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거주자들은 그런면에서 만족도가 크다고 말합니다. 사실 공동체는 적게 소유할때만 가능합니다. 모든것을 독점적으로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공동체를 이룹니까. 우리는 투기시대를 거치면서 독점적으로 소유하여 모두가 가난해진 시대를 살게 된 것입니다. 다만 숫자에 불과한 집값만 엄청나게 올라갔을 뿐이죠. 


주거 공유의 가능성


앞에서 소개한 작은 집에 대한 관심, 그에 대한 다큐들은 공통적으로 한가지 한계를 보입니다. 그들은 대개 집에 주로 관심을 둘뿐 마을이나 공동체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대개는 내 집의 공간적 효율성에 관심을 둘뿐 내 집이 어떤 환경에 놓여졌을때 최적화 된 것인가 하는 점에는 그다지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설사 값싸게 최소한의 공간에 모든 것을 갖춘 모듈주택같은 것을 만들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듈주택들로 마을을 만들었을때도 그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같은 질문은 던지지 않게 되고 주거환경에 있어서 입지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값싸게 매일 갈수 있는 공용목욕탕이 내 집앞에 있다면 내집에 근사한 욕실을 꾸밀 필요는 줄어들겠지요. 아이들이 놀수 있는 놀이공간이 있는 마을 회관이 내집앞에 있다면 내집거실이 크지 않아도 되겠지요. 최소한의 것을 내집안에 담는다는 발상이 한계가 있는 것은 이래서 그렇습니다. 내가 꼭 필요한 것은 내 집바깥에 뭐가 있는가, 내가 이웃들과 뭘 공유하는가에 크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추구해야 되는 것은 작은집이 아니라 작은 집의 마을 즉 최소의 마을이 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이웃과의 교류에서 얻는 기쁨도 누릴수 있고 말입니다. 


주거대안을 찾는 이런 고민은 단독주택을 다닥다닥 붙여짓는 다는 타운 하우스 같은 답을 내기도 했지만 저는 정답은 그것이 아니라 쉐어하우스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낳선 쉐어하우스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고 그런 확장의 끝에서 타운하우스나 아파트와 우리가 말하는 쉐어하우스의 경계는 한없이 모호해 질 것이지만 말입니다. 결국 작은집에 대한 관심의 끝에서 우리는 궁극의 작은집으로 된 마을로서 쉐어하우스와 만나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집을 소유하는 투기적 시대의 관습에 빠져있기 떄문입니다. 독점적 소유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주거의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런 식이면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같은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런 걸 누가 사겠어라고 말하면서 알게 모르게 스스로에게 큰 제약을 가하게 됩니다. 집이란 기본적으로 임대하여 쓰는 것이라고 하면 그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 주거에 들어가 사는데 있어서 이 돈을 내는게 적정가격인가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죠. 


독점적 소유의 문제를 제처놓고 생각하면 우리는 다양한 공유의 정도, 다양한 공유의 효과를 생각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빈집을 수리하여 노인들이 쉐어하우스 형태로 공동으로 살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독거노인들이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쉐어하우스 형태로 살면 주거비를 아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버타운 같은 발상과 다른 것은 그런 쉐어하우스는 결코 노인들만 있는 마을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귀촌하는 사람을 위한 쉐어하우스, 신혼부부를 위한 쉐어하우스등 여러가지를 상상할수 있습니다. 왜 전원주택은 크게 지어서 혼자 써야 하는 걸까요. 왜 땅많은 시골에서도 사람들이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려고 할까요. 우리는 아파트와 전원주택의 중간의 형태를 가진 쉐어하우스를 상상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파트는 독점적 소유의 궁극이죠. 공유가 좀 더 강조된 형태를 만들수 있을 것입니다. 


통상의 쉐어하우스는 자기 공간을 가지는데 부족함이 커서 자기 프라이버시를 좀 더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부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건물을 설계하고 상상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부부들도 들어가 살만한 쉐어하우스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월세로 아파트 들어가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만족도가 높은 쉐어하우스를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쉐어하우스들은 오지에 지어지는게 아니라 도심에 있을 수 있습니다. 


맺는 말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낀 것은 우리가 투기시대, 독점적 소유의 시대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공동체 즉 대가족 단위의 공동체나 작은 마을 단위 정도안에서 공유를 실천하면서 살아갈때 적은 비용으로 풍요롭게 살수 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물론 투기시대 이전의 우리는 매우 가난했죠. 그래서 그때를 생각하면서 깨어진 공동체의 가치란 별게 아니었다. 지금이 그때보다 더 풍요롭다같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공유를 실천하면 더 풍요롭게 살수 있습니다. 거품의 시대가 끝났으니 이제 다시 공동체나 가족의 가치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여러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마을 만들기 운동 같은것이 그런 것이죠. 공동체와 공유는 거의 같은 말입니다. 서로 나누는게 없는데 무슨 공동체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대규모 개발의 시대, 독점적 소유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런 것을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 나이든 사람들이야 살던대로 산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은 암담한 상황에 빠집니다. 대학들어가니 자취방값이 비싸고 나이들어 결혼하려고 하니 전세값 구할 생각만 하면 아득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까지 만들어 키우려고 하니 더 암담하지요. 대가족 안에서, 집성촌에서 애가 어떻게 컷었을 까요. 없어도 그저 숫가락 하나 더 놓으면 굶지는 않고, 내가 잘 못가르쳐도 동네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가르쳐서 인간만들고 살길 마련했던 것이 우리의 과거 삶이 아니었던가요. 


사회적 약자는 공동체 붕괴앞에서 절벽앞에 섭니다. 공동체가 깨어지니 대개의 젊은이들과 독거노인들이 살길이 막막해 집니다. 그들이 살기 힘든 것, 자살같은 선택을 하게되는것은 이래서 그렇습니다. 새로운 주거 대안을 찾는 일은 이렇게 넓고 깊은 의미있는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거대안은 단독이다 아니다 역시 한국은 아파트다 하고 논쟁이 있었던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구분에 집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이란 응당 이런거라는 선입견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공유의 정도와 형식에 따라 여러가지 주거가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력과 노력이 더해져서 하나하나 새로운 주거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은 작은 마을만들기이며 세상을 바꾸는 섬을 만드는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대형 쉐어하우스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니 아주 근사한 기숙사처럼 보이더군요. 대기업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혐동조합같은 형태로 건물관리기업을 만들고 건물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상상력이 더해져서 더 행복한 주거 문화가 만들어 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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