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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새빨간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1

by 격암(강국진) 201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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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



1.

 

나는 오늘 그녀와 잘 수 있을까?’ 그녀의 아파트로 가는 길 위에서 자동차 바깥으로 흘러가는 시내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에 빠졌다. 내가 그녀와 데이트를 한 것도 이제 한달이 좀 넘는다. 나는 정신없이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그런만큼 시간이 있을 때 마다 그녀에게 만나달라고 했는데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녀도 내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의 데이트는 약간씩 더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세번째로 그녀를 바깥으로 불러낸 날 우리는 첫키스를 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우리는 함께 서울에서 강릉까지 차로 드라이브를 한다는 수준에 이르른 것이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바다를 보고 저녁을 먹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어딘가 호텔에 들어가서 밤을 같이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연애에 있어서 그리 용감하지 않은 나는 차마 우리 주말에  호텔에서 같이 잘까?’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요즘은 그런 걸 쿨하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런 남자는 못된다. 섹스하자는 말을 아무렇게나 하고 섹스까지 한 여자에게 우리는 그저 섹스를 했을 뿐이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남자는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물론 그녀와 섹스가 하고 싶지만 그것은 분명히 감정을 동반한 행위이고 어느 정도는 사랑의 고백이라거나 결혼신청이 그렇듯이 의미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녀가 섹스를 하면 그것이 의미가 있다는 말을 목소리 높여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상황 자체가 좀 당혹스럽다. 물론 데이트 한번하고 키스 한번 하고 마치 너는 이제 내 여자야라는 식으로 질척거리는 것도 꼴불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애에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레고블럭처럼 서로 서로 상관없는 조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은 그저 오늘날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의미나 의무에도 견뎌내질 못하는 풍조때문에 생긴 일일 뿐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그걸 보고 또 멋지다고 생각해서 의미도 모르고 문맥도 상관 없이 따라한다. 그렇게 상황은 점점 젊은 세대로 갈 수록 심각해 지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의미가 있다. 내가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는데 사양하지 않고 앉아도 의미가 있고 내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했는데 그 인사를 기분좋게 받아도 의미가 있으며 손을 잡은 것도 의미가 있고 데이트 신청을 받아 들인 것도 의미가 있다. 내 농담에 그런 웃기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다는 듯이 웃어주는 것에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의미를 엄청나게 확대해서 네가 나에게 눈짓을 하면서 유혹했잖아 하는 식으로 구는 것이 꼴불견이라면 그 모든 것들을 그저 우리는 밥을 한번 같이 먹었을 뿐이라던가 손한번 잡았을 뿐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비슷하게 꼴불견이고 무례한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사실 우리는 그저 10년정도 데이트를 하다가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20년정도 살면서 세아이를 같이 키웠을 뿐 아무 사이도 아니예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뭔가를 뭐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고 그것은 언제나 지나친 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요즘은 그런 일이 너무 많다. 의미가 공기중에 매우 희박한 시대다. 사람들은 모든 걸 조각내서 죽이고는 그 조각조각에 대해 이건 그저 이것일뿐이라고 말한다. 당연하지! 문맥이란 걸 죽여버리면 어디에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문맥에 따라서는 그저 손한번 잡은 것이 목숨을 바칠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그 의미라는 것 덕분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그러다가 바로 그 의미때문에 평생 쌓아온 재산이며 명예며 목숨도 바친다. 의미는 문맥에서 나온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은 작게 작게 보는 일에만 익숙해져서 전체적인 문맥을 보는 능력을 상실한 것같다. 따라서 그들은 의미를 느끼는 일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세번 섹스하는 부부는 일주일에 한번 섹스하는 부부보다 만족스런 성생활을 한다라는 결론에 너무 쉽게 수긍하게 된다. 학교가 도대체 뭘 위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그저 쑥쓰럼을 잘타는 낡은 스타일의 남자라는 것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다. 아뭏튼 용기가 충분치 않았던 나는 강릉에 갈까라고 물어보면서 저녁도 먹고 바닷가 산책도 하고 기분되면 술도 마시고 하는 이야기를 늘어 놓았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끄트머리에 슬쩍 말했다.

 

그러다 늦어지면 자고 오지. 혹시 일요일에 무슨 일이 있나?’

 

그녀는 나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일요일에도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것뿐이다. 그녀는 나에게 강릉에서 자고 오자고 말하지도 않았고 자고 오더라도 같은 방에서 자자고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가요. 일요일에도 아무 약속 없어요.’

 

나는 오늘 그녀와 잘 수 있을까?

 

이런 말을 들으면 당신은 묻고 싶을지 모른다. 그녀는 예쁘냐고. 그녀가 예쁘냐고? 그렇다. 그녀는 예쁘다. 그것도 지나칠 만큼. 사실 나는 화려한 미인보다는 은근하게 빛이 나오는 것같은 그런 미인을 좋아한다. 적어도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었다뭐든지 지나친것은 화를 불러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는 외모로만 보자면 아주 큰 화를 부르고도 남을 정도로 미인이다. 그녀는 아주 평범한 옷을 입어도 누구나 그것을 화려하다고 느낄 그런 종류의 여자였다. 예를 들어 그녀의 긴 머리는 약간 곱슬거렸는데 그 머리는 언제나 별로 손대지 않은 머리같으면서도 동시에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면서 그녀의 어깨위를 덮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특별히 몸매가 들어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바보가 아니라면 눈치챌 수 있는 글래머였다. 커다란 예쁜 눈도 그렇고 빛이 나는 것같이 유달리 새하얀 피부도 그랬다. 뭐든지 화려해 보인다. 그녀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종종 그 아름다움때문에 그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게 되곤 하는 것이다. 몇번이나 나는 내가 지나치게 운이 좋은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쯤되면 당신은 나에게 자랑 그만하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게 행복한 남자라면 냉큼 아무 생각없이 그녀에게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무슨 생각따위를 한다는 말인가. 당신의 인생이 선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걸 즐기면 그만이 아닌가.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게도 나는 그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상한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내가 생각해 보면 볼수록 나는 더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나를 속이는 것같다거나 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하는게 아니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고 모든 것은 사실 그대로이며 나는 아마도 오늘 그녀와 자게 될것이고 반년이나 1년쯤 뒤에는 그녀와 결혼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같이 늙어가게 될 것이며 누구나 우리 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부러워 할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거기에서 어떤 위화감, 어떤 경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위화감이란 사실 아주 작은 것들, 애써 글로 적어서 정리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기억나지도 않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는 언젠가 우리의 만남이 운명적이란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비오는 날 뛰어든 카페에서 발견한 그녀의 낡은 팔찌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녀에게 물려 주신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직 어린 딸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를 걱정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낡은 팔찌를 주면서 이건 마법의 팔찌니까 이걸 가지고 있으면 넌 꼭 행복하게 살게 될거라고 말해 주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그녀는 아는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주신 팔찌를 쓰다듬으며 우울하게 카페에서 시간을 쓰다가 바깥으로 나간 참이었다. 그런데 그 카페를 나가서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그 팔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서둘러 카페로 돌아왔는데 바로 그 팔찌는 그녀에게 행복을 줄 남자, 정말로 그녀가 믿을 수 있는 남자를 들고 있더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 팔찌가 나를 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팔찌를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팔찌를 들고 있던 나를 보면서 그녀는 이건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중의 하나는 그 남자가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는 사람을 보는 것같았다고 했다. 마치 그녀와 약속을 한 남자가 이제왔냐는 눈빛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연애이야기에서 종종 나오는 것처럼 나를 처음 만난 것인데도 불과 몇초만에 나를 마치 평생 알고 지냈던 것처럼 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이러한 이야기는 낭만적 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게다가 나는 이러한 신화의 주인공이며 덕을 보는 사람이니 굳이 이런 이야기의 낭만을 깨고 싶은 생각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처음보는 남자가 왜 나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고 있을까라고 생각했다는 말에 대해서 나는 혼자서 여러번 웃었다. 도대체 그녀는 거울을 본 적도 없단 말인가. 빗물에 약간 젖어서 카페로 돌아오는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친 남자중에 그녀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지 않을 남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물론 나는 지금 그녀를 더욱 좋아하며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나라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결과로 사랑받는 것이라기 보다는 팔찌의 마력이 나라는 남자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 팔찌때문에 운명처럼 만난게 아니라 길가는 그녀를 보고 내가 쫒아가서 데이트신청을 한 것이었다면 그때도 그녀가 나를 좋아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그녀가 나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운명이라는 요소가 꼭 필요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그게 어때서. 자랑 그만하라고 했더니 자기 연애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끝도 없이 늘어놓는구만하고 말이다. 아니다. 정말 그게 아니다. 그러니 말했지 않은가. 이것은 나를 계속 괴롭히는 위화감이지만 정말 작은 것이며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기억해 내기도 어려운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당신이 그 작은 것과 처음 만났을때 팔찌의 이야기가 그렇듯 당신은 그걸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그게 뭔지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그것은 단순히 몇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팔찌 이야기보다도 더 사소한 것, 그녀가 내 전화를 받는 방식, 그녀가 말하고 걷고 밥을 먹는 방식,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 그녀가 잘 듣는 음악등 모든 것에 그 알 수 없는 것은 조금씩 다 섞여있다. 그렇게 해서 그 작은 것이 왠지 손가락을 찌른 나무가시처럼 자꾸 신경을 쓰게 한다. 만져도 나무가시는 느껴지지 않는데 손가락은 아프다. 그러면 당신은 그걸 자꾸 만지게 된다. 그러면서 신경은 점점 더 그 손가락에 집중되는 것이다. 이제 손가락은 퉁퉁 불어서 마비가 오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수록 그 위화감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마치 너무나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해서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그 집 거실 기둥의 페인트가 약간 수상하게 색깔이 달라진 곳이 있더라같은 느낌이다. 집이 마음에 들수록 나는 그 색깔변화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 합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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