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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새빨간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2

by 격암(강국진) 201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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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레이크시티에 도로시 마틴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살았다. 그녀는 하루는 가디언이라고 부르는 존재에게서 메세지를 받았다는데 그 메세지에 따르면 그해 12 21일 세계는 물에 잠겨서 파괴된다는 것이었다. 오직 사난다라는 신을 믿는 사람들만 이 파국을 피해 나갈 수 있었다그녀는 이 메세지를 믿었고 비행접시 동호회에서 그녀를 만나서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외과의사 암스트롱 박사도 이것을 믿었다. 그들은 오직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만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다지 열심히 그 소식을 알리지는 않았다. 오직 한번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렸을 뿐이고 모든 인터뷰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문은 크게 퍼졌고 신도는 모여들었다.

 

이 파국의 메세지를 믿는 사람들은 그에 맞춰서 인생을 준비했다. 직장에서 해고 되는 것에 개의치않았고 모든 재산을 처분하기도 했다. 가족과 헤어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그들의 인생 전부를 이 믿음에 걸었던 것이다.

 

레온 페스팅거라는 한 심리학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 집회에 참석하기로 한다. 그는 종말론을 믿지 않았지만 과연 이 예언이 실패했을 때 이 예언을 진지하게 믿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종말의 날이 왔고 물론 예고된 12 21일에 세계는 파괴되지 않았다. 운명의 시간이 지나고 세계가 파괴되지 않았을 때 그 집회에 참석한 가짜 신도 레온 페스팅거는 기묘한 변화를 목격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그 신도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 것에 대해 깊은 실망을 하고 화를 내야했다. 그 예언은 분명히 틀린 것이었으므로 그들의 믿음은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조증환자처럼 흥에 들떳고 차와 쿠키를 내놓고 기자들을 집안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그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약간 바뀌었을 뿐이다. 도로시 마틴에 따르면 그들은 새로운 급한 메세지를 받았는데 신자들이 세상에 많은 빛을 퍼뜨려서 이 세상은 구원받았고 홍수는 내리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종말론자들은 누구도 믿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설명을 쉽게 받아들였다.

 

레온 페스팅거는 이러한 경험을 예언이 실패했을 때라는 책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인지부조화 이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인지부조화 이론이란 우리가 알고 있고 믿는 것들이 서로 부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그에대해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이론의 가장 유명한 예는 아마도 신포도와 여우의 이야기일 것이다. 포도를 먹고 싶었던 여우는 그것을 먹을 수 없자 저 포도는 신포도일거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저 포도를 먹고 싶다라는 사실과 저 포도는 먹을 수 없다라는 사실은 그 두가지를 모두 가지기에는 심리적 불편함을 만들어 낸다. 다시말해 그것은 우울한 현실이다. 그렇기 떄문에 여우는 저 포도는 먹을만 하지 않다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만들어 낸다. 그 믿음의 근거는 전혀 없거나 매우 희박하지만 그렇게 믿으면 심리적 불편함이 해소되기에 여우는 진짜로 그렇게 믿게 된다. 심리부조화 이론의 핵심은 그것이다. 여우는 진짜로 그것이 신포도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종말론자의 경우 종말이 오지 않았을 때 그들은 극심한 인지부조화 상황에 빠진다. 즉 그들은 이 믿음에 그들의 인생 전부를 걸었다라는 사실과 그 믿음이 틀린거라는 사실 두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당히 희박한 종류의 새로운 믿음을 통해서 이 인지부조화를 해소한다. 그것은 신자가 아니라면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할  도로시의 새로운 메세지를 믿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1950년대 이래 심리학계를 휩쓸었고 여러가지의 관찰과 실험이 행해졌다. 그중에는 FMRI같은 기계를 가지고 뇌를 직접 관찰해서 인지부조화 이론을 뇌세포 활동을 근거로 이해하려는 최근의 시도도 있다.

 

우리는 종말론자의 예를 통해서 어떤 극적인 상황 즉 직장이라던가 가족이라던가 하는 커다란 것을 잃는 손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희박한 가설을 믿는 것만을 인지부조화라고 생각하게 되서는 안된다. 실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일상생활에서는 사소한 보상이나 사소한 피해가 일어나는 쪽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말론자가 되어 직장을 때려치우는 극단적인 일은 경험하지 못한다.

 

페스팅거가 고안한 실험중에는 거짓말에 대해 돈으로 보상하는 실험도 있었다. 즉 실험대상자는 거짓말을 하고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받았는데 한쪽 사람들은 1달러라는 작은 보상만을 받는 반면에 다른 쪽 사람들은 그것의20배나 되는 큰 돈을 받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결과 사소한 돈을 받고 거짓말을 한쪽이 이 실험을 하기 전에 가졌던 태도로 부터 더 큰 태도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보상의 크기였다. 큰 돈을 받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은 나는 거짓말을 했어 하지만 20불이면 꽤 큰 돈이잖아. 그 돈을 받고 누가 거짓말을 안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즉 인지부조화를 덜 느끼는 것이다. 자기 합리화를 하기 쉬웠다. 그렇지만 사소한 돈을 받고서 거짓말을 한 쪽은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합리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실은 내가 말한 그것이 순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라는 식으로 생각함으로서, 다시말해서 자신의 믿음을 바꿈으로서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끔찍한 것이긴 하지만 일종의 대규모 인지부조화 실험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예는 중국인들이 전쟁중에 미국포로들을 세뇌시킨 것이었다. 미국포로들은 강요에 의해서 미국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가진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보상으로 죽같은 아주 사소한 먹을 것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반미적 내용을 썼던 결과 그들은 진짜로 반미주의자가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주 사소한 보상을 받으면서 미국에 반대한다는 글을 썼던 것은 인지부조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죽때문에 나라를 파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참하다. 그러므로 오히려 그 보상이 작았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반미주의자로 바꾸게 되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커다란 보상이나 꾸중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도록 권하는 사람은 잘못된 전략을 쓰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아이가 공부를 할때 커다란 보상을 주면 그 큰 보상은 큰 기쁨을 줘서 아이가 공부를 하면 큰 보상이 온다는 생각을 배울 것을 기대한다. 말하자면 심리학자 스키너가 비둘기를 훈련시키는 방법을 생각한 셈이다. 그런데 큰 보상을 주면 아이는 공부는 싫은 것이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했는데 그것은 그저 보상이 컷기 때문인 것이다. 게임기를 사준다는 약속이 아니라면 공부따위 왜하겠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만약 공부를 했는데도 보상이 없는 때가 온다면 공부는 즉각 중단될 것이다. 그런데 자율학습을 통해서 공부를 하거나, 작은 보상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지 모른다. 그정도 작은 보상때문에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리부조화를 일으키므로 공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라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일단 태도가 바뀌면 보상이 별로 없어도 공부하는 습관을 유지할 것이다. 어느쪽이 현명한 선택일까? 결국 큰 보상을 가지고 아이를 공부하라고 유혹하는 부모는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이야기들은 부모가 사랑의 마음으로 자식에게 한다고 생각하면 흐믓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 어딘가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가 우리자신에 대해 생각했을 때 그것은 끔찍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통상 우리가 커다란 보상때문에 우리의 신념을 팔아넘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우리의 신념을 팔아넘기는 순간은 그 반대일 수 있다. 즉 만약 커다란 보상때문에 우리가 내부적으로 믿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우리는 그나마 내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존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가 아주 작은 것을 위해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파는 경우, 우리는 진짜로 자신을 팔아 넘기고 자기를 망각하게 된다. 즉 자신의 믿음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공포는 작고 평범한 일들이 일어나는 일상에 있다. 사실 언제나 그렇다. 진짜 커다란 진리는 항상 신기한 사실이나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것들 익숙한 것들 당연해 보이는 것들 사이에 있다. 그래서 그것은 너무 큰데도 오히려 너무 작아 보인다.

 

종말론자들의 예와는 달리 사소한 보상과 믿음의 변화라는 예는 그저 평범한 일상생활을 사는 우리에게 공포스러운 의미를 가진다. 평범한 소시민들은 모두 직장이며 학교며 가족이며 지역공동체에서 이런 저런 시스템에 끼워져서 산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아주 사소한 보상을 받을 뿐이다. 그렇게 하면서 이러저런 이유로 우리는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산다.

 

우리 대부분은 세상 누구나 수긍할 만한 엄청난 것을 가지고 다투는 사람, 책이나 언론에 나오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작은 것, 때로는 스스로도 멈춰서 생각해 보면 이 작은 것을 받자고 그렇게 아둥바둥하고 거짓말도 하고 치사하고 비겁하게 살았던가싶게, 어이없어 할정도로 작은 것을 위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비겁함이나 위선을 설명할 충분한 근거를 가지지 못하고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존감이 매우 낮아지는 순간, 즉 스스로가 찌질한 작은 인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나 시기를 경험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실험의 경우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흔히 마음속으로는 자기를 지키면서 즉 자신의 믿음을 지키면서 산다고 생각한다. 그저 먹고 살자니까, 그저 가족에게 상사에게 선생님에게 공무원에게 정부에게, 힘이 센 누군가에게, 돈많은 누군가에게 대들 수 없다는 이유로 표면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하면서 산다고 스스로 말하곤 한다. 말하자면 그런 척 할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나의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다시말해 나의 정신은 정상이다. 즉 나는 이것이 잘못된 것임은 알고 있다. 나정도면 그래도 아직 인간이다라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는 내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인지부조화를 해소시키려고 기괴한 믿음을 지키는 종말론자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죽사발때문에 미국에 반대하게 세뇌된 미국포로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부분 종말론자도 아니고 전쟁터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의 믿음은 정말로 우리의 것일까? 우리가 느끼는 존경과 분노의 감정은 정말로 우리의 것일까? 앞에서 나열했던 예들을 생각해 보면 그건 적어도 상당히 진지하게 의심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의 몸안에 있는 것은 어느새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진짜 당신은 어딘가에 갇혀서 버둥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진짜 당신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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