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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정치가 그리고 장사꾼

by 격암(강국진) 2014. 5. 27.

한국사람들은 우산장수에게는 우산장사의 도가 있고 택시운전사에게는 택시운전사의 도가 있다라는 말같은 것에 익숙하다. 이 말의 해석은 사람마다 좀 다를지 몰라도 확실히 요즘 세상은 누구나 자신의 도를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같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을 때 그를 그린 한 삽화가는 그를 마치 예수처럼 그린 적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를 둘러 싼 논의는 단순히 돈잘버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것은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나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사장 엘론 머스크를 이야기할때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들은 지나치리만큼 자주 윤리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동네에서 야채를 팔아도 헌책방을 해도 도시락집을 해도 철학자적이고 인문학자적인 말을 한마디 할 정도가 되지 않으면 장사하기 점점 힘들어질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이 복잡하고 빨리 변하며 정보가 홍수를 이룰수록 사람들의 신뢰는 잘 흔들리기 때문이다. 꼭 책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흔들리는 세상에서 신뢰를 주려면 사려깊고 일관성있는 자신의 사고를 들어내 보이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저 마음씨만 좋아보이는 누군가가 생각없이 쓴 음식재료가 알고보면 어딘가 먼나라에서 온 경악할 수준의 위험물질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률을 높이고 서비스가 개선되자 사업들간의 경쟁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 동네 앞골목에 자장면집이 있던데 라는 기억에 의존해서 주문이 가는 시대가 아니다. 검색과 평가와 어플의 추천등에 따라서 동네 치킨집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세가지 선택중의 하나를 고르는게 아니라 흔히 수백가지 수천가지 가능성중의 하나를 골라야 하는 입장에 선다. 수박하나 사먹으면서 맛과 가격만 보는게 아니라 건강에 좋은 것인지, 이걸 사면 어떤 생산자에게 이득을 주게 되는 것인지 같은 복잡한 것까지 본다. 아니 애초에 수박을 소비하기로 한 결정자체가 어떤 블로거가 건강관리에 관련해서 혹은 어떤 요리에 관련해서 말한 것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거짓된 홍보이건 과거에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기업과 인간의 진실된 면이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이건 기업과 사람이 일관된 철학적 인생관적 관점을 가지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붕어빵을 팔아도 '인생 뭐 별거있나요' 같은 제목의 책한권정도는 쓰고 그걸로 미디어도 좀 탄 사람이 팔아야 장사가 되는 시대에 접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자가 많다. 그러나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자영업자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소규모 자영업자는 손님들과 강한 신뢰로 얽힌 관계가 되지 못하면 점점 거대 체인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고객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라는 문구는 이미 광고에서 널리 쓰이는 문구지만 이 문구는 점점 더 실제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가게와 손님이 실제로 공생관계적으로 보다 견고하게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지 않으면 그 사업은 위험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태계의 문제 혹은 게임의 법칙의 문제다. 


우리는 만원을 내면 만원짜리 가치를 가진 뭔가를 돌려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신용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고 할때 거래는 단발성이 아니므로 어떤 서비스나 물건의 가치는 그리 간단하게 평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대차를 살것인가 BMW를 살것인가라고 할때 자동차의 성능과 평가 그리고 가격의 문제만 등장하는게 아니라 앞으로 이 회사들은 어떤 신차를 내놓을 것이며 내가 가진 차에 대해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리콜문제같은 것은 없을까, 부품비용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점 즉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졌을때 그 관계가 만족스러울까 아닐까하는 미래에 대한 평가까지 등장한다. 


사실 핸드폰 한번 계약해 본 사람은 느꼈을테지만 우리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동의해 줘야 하는 엄청난 두께의 정보책자에 질리게 된다. 그걸 다 읽고 검토해볼만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없으므로 사람들은 점점 더 경험에 의해서 믿을만한 기업이 있으면 그 기업에 남아있고 싶어한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을때 생기는 복잡함이 싫기 때문이다. 


동네어귀에서 야채를 샀는데 그 야채가 상한 것이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가 단한번만 거리를 하는게 아니라면 한번 문제가 생길때마다 거래처를 완전포기한다면 세상에 갈 곳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가게에 가서 항의를 할수가 있고 그에 대해서 어떤 대접과 보상을 받을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뒷처리가 훌룡하다면 우리는 오히려 전보다 더 신용을 가지고 그가게를 갈 것이다. 우리는 야채가게의 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중단하고 신용을 근거로 내가 잘 구매하고 있다라고 믿고 사는 세상에 있고 싶다. 


이러한 요구는 그것이 동네 야채가게이든 아니면 애플이나 삼성같은 큰 회사건 설득력있는 게임의 법칙, 설득력있는 생태계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관계를 찾게 한다. 전에도 지금도 장사는 언제나 신용이었지만 전에는 좀 아쉬워도 어차피 선택할수 있는 서비스는 한계가 크고 서비스들을 평가할 방법도 매우 작았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럴싸한 새로운 선전이 날마다 우리에게 퍼부어지고 있다. LTE가 좋은가 LTE A가 좋은가. 기다려야 하나. 지금 구매해야 하나? 


백원짜리 물건을 남들은 백원에 파는데 나는 90원에 판다. 그러면 손님이 많이 오겠지만 사실 이렇게 장사를 하기는 쉽지 않다. 경쟁이 심해지면 마진은 한없이 줄어드니까 싸게 파는 것으로 나가서는 장사가 안된다. 그러니까 기업의 소통능력이 곧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즉 신용할수 있으면 기꺼이 돈을 내고 신용할수 없으면 없는 만큼 더 싼 가격으로 서비스나 물건을 팔아야 하므로 기업의 신뢰도가 곧 돈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것은 경제적 영역에서의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이게 무슨말인가. 공화국과 왕국의 차이는 소통과 권한의 이양이다. 왕국에서는 왕이 독재를하고 자기맘대로 결정을 하기에 그 책임도 자기가 다 져야 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복잡하고 빨리 변하는 시대는 왕정을 유지할수 없다. 왕이 책임을 질 수가 없다. 권한을 이양하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공화국은 왕국과 여러가지가 다르지만 특히 다른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설사 왕보다 대통령이 더 무능해도 시스템은 어느정도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 대통령을 뽑은 건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한없이 불평을 토할수가 없다. 


기업은 고객과 더 강한 생태계로 더 정밀한 게임의 법칙으로 공동체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뢰를 높이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능력을 개발할때 소비자 만족도는 올라간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수긍하고 비싼 값을 내도 그것을 긍정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내가 괴상한 모양의 구두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그걸 구매했을때 그 구두가 괴상해도 소비자는 이정도면 좋지 않아?라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왜냐면 그런 식의 결과가 나온것에 자기책임도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어떤 개인이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이라는것은 반드시 소비자에게 굽신거리고 그들에게 듣기좋은 소리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소비자들에게 끌려다니다가 망할 것이다. 소통능력의 기반에는 판단의 바닥에 흐르는 철학적 일관성이 있다. 즉 나는 이런 원칙을 가지고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 당신이 그것이 싫으면 우리 회사물건을 사지말라. 그러나 그 원칙과 관련이 없거나 그 원칙을 잘 구현하는 제안에 대해서는 우리는 기꺼이 열심히 경청하고 당신을 이 회사의 운영에 참여시키겠다라는 것이다. 


다시 사회로 돌아가자면 훌룡한 사회는 똑같은 행동양상을 보인다. 후진국은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다. 선진국이라고 말해지는 사회는 엄격한 원칙에 대한 강조가 있다.  예를 들어 워싱톤에 있는 많은 조형물들은 그런 가치에 대한 강조와 불관용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때문에 그것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국민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 안되는게 확실하니까 되는 것도 확실해 지는 것이다. 절대 안된다는 것도 사람에따라 경우에따라는 되는 것으로 잘도 바뀌는 후진국에서와는 달리 게임의 법칙이 비교적 확실하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삼성이나 현대는 매우 부족하다. 적어도 한국내에서는 거의 소통하지 않는 회사다.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기업윤리를 설명할 능력도 없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기업의 운영에 소비자를 크게 참여시킬 의지도 없다. 그러나 그들도 외국에 물건을 팔자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업이미지가 황제이미지여서야 물건이 팔릴리가 없다. 그러므로 홍보도 고객대응도 다르게 하는데 이는 첫째로 한계가 있고, 둘째로 적어도 일부 한국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외국인들의 마음도 잡지 못하고 한국에서는 안티를 양산하고 만다. 


물론 여전히 정보순환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일관성있는 철학내지 인생관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스마트폰 파는 삼성이 과연 인터넷도 못쓰는 노인들의 지지만으로 언제까지 장사를 잘 할수 있을 것인가.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신규시장은 어차피 젊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아이패드같은 새로운 인터넷기기는 점점 더 쓰기 쉬워져서 모든 인구를 컴맹에서 탈출시키는 시대가 오고 있다. 결국 사업에 있어서도 왕정의 시대가 가고 공화국의 시대가 오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수출을 생각하면 삼성과 현대는 바뀌어야 하고 그들을 위해, 한국을 위해 바뀌기를 바란다. 


전세계에 삼성규모의 대규모 주식회사가 무슨 동네 상점 운영하듯이 세습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또 있는지 나는 모른다. 없는 것같다. 도요타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에서 사장 아들이 사장된다는 발상이 얼마나 황당한가. 


한국정부가 국민과 소통하는데 실패해서 투명성이 떨어지면 결국 국민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외국기업이나 미국같은 정부의 신용을 빌려와야 한다. 그 비용은 결국 세금으로 나간다. 21세기는 첨단 기술만의 시대가 아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걸 사용하는 인간과 사회의 정신수준도 업그레이드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부족한 신용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세상으로 자꾸 끌려가게 되는 이유다. 


스파게티집 주인에게는 스파게티의 도가 있고 야채장사에게는 야채장사의 도가 있으며 핸드폰 회사는 핸드폰 회사의 도가 있고 자동차 회사에게는 자동차 회사의 도가 있다. 모두가 자기의 도를 찾아야 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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