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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조직 타령에 대한 경고

by 격암(강국진) 2014. 5. 29.

대학시절 총학생회 회장선거에 나선 친구중 하나는 내가 보기에 특이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학생들이 어떤 질문을 하던 그 문제는 위원회를 만들어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런건 대답이 될수 없으며 스스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것도 아는 것도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많은 학생들은 그것을 하나의 대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이것이 정치가들의 습관에 가까우며 이 습관에 중독되지 않은 정치가가 오히려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어떤 조직을 만들겠다라고 하는 것을 대답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그런 조직이 실제로 만들어 져도 그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많고 조직을 만들고 성과따질 무렵이면 이미 그것은 한참후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아래에 따로 적겠다.


조직만들기 타령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아동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하면 아동복지를 연구할 위원회를 구성하여 아동복지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경찰의 기강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하면 경찰기강을 담당할 조직을 만들어 관리감독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언제나 현장경험과 통찰력있는 생각에서 나온 어떤 구체적 실행방안이 필요하다. 그 구체적 실행방안이 있으면 그걸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조직을 만들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애매한 목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매우 일반론에 입각해서 조직부터 만든후 그다음에 뭔가를 고민하는 것, 그들로 하여금 구체적 실행방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은 재앙이 된다. 


일단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것을 아는체해서는 안된다. 누구도 모든 분야에 있어서 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깊게 생각할 수는 없다. 누구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그건 재앙이다. 공직자 후보들이 내가 생각하기에 중점 사업은 이것이며 이것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이것을하겠다. 다른 분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내가 부족하므로 여러가지 조언을 받아서 일을 실행하겠다라고 말하는 사회, 그렇게 말할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솔직한 것은 종종 정치적 재앙이 된다. 솔직해서는 안되고 뭔가 말하는 것같으면서 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화술에 빠져들어야 정치가는 편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면서 뭐든지 아는체 하고 대안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그 대안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도 그걸 대안이라고 착각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구체적 행동방안을 생각하고 그걸 실행할 조직을 만드는게 아니라 애매하게 조직부터 시작하면 안되는 이유는 서덜랜드 스튜어트의 비합리성의 심리학이란 책에 잘 정리되어 나온다. 그는 스스로도 채프먼의 책에서 배웠다고 말하면서 왜 어떤 조직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며 결국 많은 돈을 낭비만 하게 되는가에 대해 이런 이유들을 댄다.


첫째, 위원회의 위원들은 위원장에게 아첨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각각이 흩어져 있을때보다 모여있을때 오히려 더 극단적인 행동과 판단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확신을 줘서 약간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완전히 미친 사람들로 변하는 것이다. 


둘째로 그 조직 내부에서 나이 순으로 깃수별로 진급하는 것이 결정되어 있을때 누구도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아서 일단 방향이 틀려도 아무도 방향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세째로 더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흔히 부하직원의 수나 그 사람이 주무르는 돈의 규모에 달려있다. 즉 효율적으로 돈을 쓰는 것이 목적이 되는게 아니라 필요가 있건없건 조직을 비대하게 만들고 예산을 왕창따오면 성공적 조직이 되는 것이다. 


네째로 올해 예산을 다쓰지 않고 절약하면 내년에는 예산이 삭감된다. 그러니까 돈을 착실하게 쓴 조직은 예산삭감이라는 벌을 받는 것이 조직의 논리다. 


다섯째로 어떤 개혁을 하면 당연히 누군가를 해고하거나 누군가의 판공비를 줄이거나 사무실을 줄이거나 하는 일을 하게 될수 있다. 조직이 일단 서고 나면 누구도 서로에게 그런짓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섯째로 더 많은 예산을 타와야 그 조직의 우두머리들이 사치하는데 쓸수 있는 돈의 규모가 커진다. 


일곱째로 조직내의 정보는 여러가지 이유를 대서 대외비밀로 만들어 진다. 예를 들어 공무원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최대한 비밀을 지키게 한다. 그래서 언론이 조직이 어떻게 엉망으로 굴러가는지 알수없게 만든다. 


이 예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더하는 것은 한없이 이글을 늘어지게 만들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이유들이 이정도만 써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왜 조직부터 만드는것이 재앙이 되는지 잘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조직은 일단 만들어지면 조직이 원래 해야할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전에 자기 생존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면이 있다. 


그나마 구체적 목표가 조직설립때 있어서 그런 인물들, 그런 조직강령을 처음부터 정해놓았다면 괜찮지만 그런게 아니라 애매하게 일단 모이기 부터 시작하면 오히려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즉 그 조직이 오히려 본래 목적의 해결을 가로막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하자. 도대체 애매하기 짝이 없는 여성문제란게 뭔지 알수없는 노릇이지만 일단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돈을 투자할뿐만 아니라 권한까지 줬다. 그들은 조직을 더 키우고 싶으므로 여성문제에 대한 것은 뭐가 되었든지 간에 자신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은 왕따가 될것이며 그말은 그들이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처음에 조직을 만들때 여성문제라는 것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그에 대한 실행방안을 조직의 구조안에서 잘 정착시켜놓은채로 조직을 시작시켰다면 바람직하지만 뭔가의 이유로 아무 생각없는 사람이 조직을 만들었다. 덕분에 그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사적인 자리에 가면 '여성문제? 그런 건 여자들이 너무 한가해서 나오는 이야기지.'라고 말하거나 '여성문제란 결국 돈이야, 돈. 여자가 부자가 되면 다 해결되는거라구.'라고 말하는 식의 저열한 사람들이라고 하자. 


일단 이렇게 조직이 정착되면 어이없게도 이런 사람들이 여성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심사를 한다. 그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진급시키고 조직은 그렇게 체질이 변한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정말 '여성문제'라는 것의 일부에 대해 어떤 좋은 의견이 나온다고 해도 그 의견을 앞장서서 묵살하고 실행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여성문제 대책을 위한 조직이 된다. 그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눈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정말 솔직히 그런 대안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정치가에게 '한국의 여성문제는 조속한 해결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라고 누가 묻고 그 정치가가 '물론 그렇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정부에 부처를 만들고 이러저러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서 한국의 여성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하자. 내가 본 그 정치가가 현실경험도 통찰력도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때 이런 대답은 나에게 공포다. 더 큰 공포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 저분은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으셔, 조직도 돈도 만들어 주신대'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다. 뭘 만드는 것은 반드시 성과가 아니다 그것은 종종 재앙이다. 


조직은 최소한의 것이 좋다. 책임은 조직이 지는게 아니라 인간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을 만들면 모두 조직에게 책임을 떠넘겨서 오히려 안좋을때도 많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걸 하고는 그 조직은 없애는 것이 좋다. 그런데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조직 만들기 중독에 빠져 있다. 걸핏하면 친목회니 산악회니 동창회, 동기회니 하고 만든다. 


내 글을 주의깊게 읽었다면 알겠지만 나는 그런 회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게 아니다. 목적을 생각하고 조직을 만들고 별다른 목적이 없으면 조직따위 없는게 좋다는 것이다. 좋은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조직을 만드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 이번에 바자회를 해보자라고 하고 그걸위해 이런저런 조직을 임시로 만드는게 좋겠다라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일이 많을 수록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은 것이다. 바자회가 끝나면 헤어지면 된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우리는 그저 일단 모이고 보자, 일단 조직을 만들자고 주장하는가. 회비를 걷자, 벌칙을 주자는 말은 얼마나 흔한가. 


친목을 하기 위해서 조직이 필요하다는 발상은 당연할까? 어느정도 그런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친하면 그냥 연락하고 만나면 되지 왜 조직이 필요한가. 조직을 만들어 누군가를 구속하고, 돈을 모으고, 그 돈을 또 이상한데 쓰고 그런 일들이 정말 친목을 다지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친목을 근원적으로 박살을 내버리는 것일까. 뜻이 같으면 지구반대편에 있어도 함께 하는 것이고 뜻이 다르다면 묶어놓는 것은 오히려 원망만 만들어 진짜 동지가 될수 있는 가능성자체를 차단해 버린다. 안보고 살아도 어린 한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으로 영원히 살아갈 사람들이 동창회하다가 틀어져서 이젠 평생 절대 안보겠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선거철이다.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될 것이고 개인 수준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어떤 조직을 만들것이다. 공포스러운 말이나 행동은 좀 자제되었으면 한다.  생각도 행동도 책임도 결국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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