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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실종

by 격암(강국진) 2014. 9. 5.

저는 가면 갈수록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좋은 인간들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나쁜 인간들이 나쁜 세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수천년전부터 세상일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인간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무엇이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는 것을 결정하는가 하는 것에는 의견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이 강조되어서 나중에는 인간이 잊혀지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신이나 왕같이 세상의 중심적 질서를 주는 존재를 생각하고 보통의 대중은 바로 신이나 왕의 보호 밑에서짐승이상의 인간으로서 살아 갈수 있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신의 은총이나 왕의 은혜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아예 인간이 잊혀지겠죠. 대중은 원래 어리석고 구제불능이니 더 강한 지배 아래에서만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되기도 할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진리라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즉 인간은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엉망인 것은 인간은 그렇게 할수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본래 부터 진리를 알고 있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고 그 진리를 전파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 진리란 종종 신에 대한 메세지로 생각되어 종교가 진리에 대한 구도의 길과 구분되지 않는 길도 있습니다만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라던가 현대 과학의 자연법칙의 탐구에서 동양 유불도의 가르침등에서 보이는 태도는 분노하고 벌을 주는 인간적인 신을 전제하고 그것을 신앙하는 믿음과는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자연적 사회적 환경이라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물론 마르크스가 이렇게 주장해서 공감을 얻었지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은 참 공감하기 쉬운 말인데요. 우리가 어떤 삶의 형식을 따르다보면 그 형식에 따라서 우리의 성격과 태도가 바뀌게 된다는 것은 경험상 인정하지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여러가지가 결정하지만 그중에 생산과 소비의 경제활동이 포함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활동 이외에도 물론 많은 것들이 우리의 자아를 만들어 내는 틀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가정에서 자라고, 어떤 사회에서 사는가, 우리가 어떤 인격을 접하면서 사는가가 우리의 평균소득 이상으로 중요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우리의 사회적 환경뿐만 아니라 자연적 환경도 우리가 사는 모습을 결정하고 결국 우리가 어떤인간이 되는가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나무옆에서 자란 아이와 콘크리트 옆에서 자란 아이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을 다시 머리속에 상기해 보고 한국인이 사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인간을 분쇄해 버리는 분쇄기 앞에서 서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는 우리를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음식 배급을 받아 먹고 사는 사회를 생각해 봅시다. 그런 가상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우리 가정의 맛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다양성이 말살되어 있으니까요. 이것은 우리라는 인간의 자아에서 음식에 대한 어떤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보이지 않는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곤충이 볼수 있는 가시광선바깥의 영역을 인간을 볼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이 통상 가시광선 바깥의 영역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가상의 사회는 가상일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집집 마다 김치를 담궈먹고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던 한국 사회는 이미 크게 변했습니다. 일본에는 심지어 슈퍼에서 반찬을 사다가 데워만 먹기 때문에 집에 칼이 없는 집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혼자 살면서 편의점 음식 사다가 데워만 먹다보면 그렇게 될수 있습니다. 1인가족이 크게 늘었으니 이미 그런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인간을 분쇄해 버리는 외부적 힘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저항합니다. 그들은 온전한 인간으로 남으려고 합니다. 여행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노래를 하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한줄기길로만 사는게 아니라 때로 살던 삶에서 탈출하기도 해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주 많은 한국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아는 상당 부분 분쇄되는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상태를 대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엉망이 되어버린 부부관계랑 비슷합니다. 분명히 둘이 살면서 자꾸 싸우고 지겹고 보기도 싫은 것은 맞는데 불만인 것만 잔뜩 보일 뿐 문제의 근원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의 근원은 표면적으로 들어난 문제들이 아니라 부부의 한쪽이나 양쪽이 자기와 상대방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해 버린데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 기념일에는 나도 남편과 데이트 하듯이 식사하고 싶다라는 기대를 아내가 가졌는데, 혹은 자기의 달라진 옷에 대해 남편이 알아차리기를 바라는데, 정작 남자는 그런 욕망 자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신경질을 내는 아내가 '이유없이' 신경질을 낸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남자나 여자에게 보이는 것은 그저 숫자일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를 벌어다 줬는데, 내가 밥을 이만큼 해줬는데, 우리도 외식을 한달에 이정도 하는데 하는 숫자만 보일뿐 입니다. 


최고의 막장드라마와 최고의 명작드라마가 구분이 안되는 사람과 드라마에 대한 잡담을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쓰레기음식과 최고의 맛의 음식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과 무슨 음식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삶에 대한 세부사항에 대해 구분을 못하는 사람과 삶에 대해 잡담을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 많습니다. 전보다 더 많습니다. 왜냐면 전에는 가난해도 세상이 좀 천천히 흘렀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분쇄해 버리는 힘이 사람들을 오히려 더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외국으로 이민가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이민가서 만족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종종 삶의 속도입니다. 한국은 뭔가 비정상적으로 쫒기면서 산다는 겁니다. 그 안에서 살때는 그것을 그렇게까지 실감하지 못했는데 외국에 나가서 정착해 보니 갑자기 자동차의 기어가 몇단이나 밑으로 내려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이 만족스럽다는 겁니다. 


너무 빠른 삶은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모두가 피곤합니다. 그래서 느리게 살기, 힐링 같은 것이 유행이 됩니다. 그런데 뭘 힐링하는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힐링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힐링이란 바로 인간과 인생그 자체입니다. 너무 빠른 삶이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파괴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부분에 대한 감수성이 없어져서 내가 뭐가 없는지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건 마치 팔이 없어져서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을 할수 없는 사람이 그것때문에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자기가 팔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같은 그런 기묘한 상황입니다. '팔이 없어진 이유'는 종종 돈이나 명예 또는 어떤 다른 욕심을 추구하여 그것만 쳐다보다 보니 다른 것이 안보이게 된 것이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사는게 불편하면 더더욱 가열차게 지금의 욕심을 추구하면 해결책이 나올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부족하니까 더 더 더 하면서 더더욱 자신을 불구로 만듭니다. 그러다가 속력을 낮춰서 아무 것도 안하는 정도로 지내보면 때로는 잊혀졌던 감각이 돌아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시간낭비하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썼습니다만 한국사람들 스위스나 일본같은 곳에 예쁜 마을로 관광가서 사진찍고 놀다 옵니다. 그런 곳이 역시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아파트 촌은 점점 더 키우고 역시 아파트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여기저기를 그런 것으로 덮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어딘가가 부서져 있습니다. 자기가 실종되어 있습니다. 한국인은 어느새 거의 붕괴지경입니다. 


여행도 좋고, 힐링도 좋지만 자신과의 대화라는 것을 제외하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가족과 이웃이 나를 만듭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인심이 나를 만듭니다. 내가 사는 동네의 풍경이나를 만듭니다. 


한국 여기저기를 여행했을 때 아름다운 삶만 발견할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만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노인들의 외로움만 가득한 농촌이나 싸구려 소비에 몰두하는 도시의 풍경이 한국을 거의 가득 채운 것같습니다. 최소한 주말에는 사람이 버글대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쓰는게 좋을 것입니다. 도서관에 가서 보내는 주말이나 어딘가에서 산책을 하거나 도보여행을 하는 주말도 좋을 것입니다. 남들이 엄청많이 가는 곳 보다는 남들이 별로 안가는 곳에서 나만의 기억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게 다 유일한 나의 일부가 되니까요. 


문제는 힐링도 이제 메뉴얼화되고 상품화가 되가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그런게 뭣때문인가가 잊혀집니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여행에 나도 다녀왔다면서 남들이 찍은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찍어 자랑하는 것은 힐링이 아니니까요. 이래서는 좋은 세상 오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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