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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드라마 미생을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4. 10. 30.

아직 4회밖에 보지 않아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요즘 드라마 미생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렇게 되니 궁금한게 생겼다. 미생은 왜 재미있을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미생은 필요하지만 가려져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연이 없는 인생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야기를 가진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그 의미도 그렇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세요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들은 나 사는게 뭐 그렇지 라고 말할 것이다. 농부에게 물으면 그렇게 답하고, 노동자도 그렇고 재벌도 그렇고 사무직 종사원도 가정주부도 그렇게 답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나 사는게 그렇지 뭐 특별한 게 있나. 


그나마 그들중 상당수는 자신의 문학과 드라마 그러니까 자신들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만들어 줬는데도 그런다. 그러니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은 더더욱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그저 그건 다 원래 그렇지 뭐, 사는 게 그렇지 뭐 라고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좀 더 커다란 문맥에서 바라 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수 있을 때만 뭘 이야기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고 내 삶의 고통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예로 산다고 해도 노예의 이야기를 자각하고 가지지 못하면 그 노예는 그저 노예가 사는게 그렇지 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고통에서 탈출하는 것을 꿈꾸지도 못한다. 


한국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그 숫자로 보거나 경제적 문화적 기여도로 볼 때 그럴만한 사람들이 아닌데도 그렇다. 그들은 바로 자영업자와 사무직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나 이야기에 덩달아 끌려가는 경향이 있다. 자영업자라고 하면 사장님이고 자본가라는 식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치킨집 사장이 이건희와 비슷한 처지로 이해된 달까. 사무직 노동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미디어에서 그들을 대표하는 것은 종종 변호사나 의사같은 고소득 전문직종의 사람들이나 매우 한가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애를 즐기는 젊은 여성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재벌이나 왕이나 귀족이야기를 제외하면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고 가끔 가다가 농민 이야기나 블루컬러 노동자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했기에 그저 보이지 않는 배경이거나 기껏해야 비교적 한가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들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그렇다. 


노동자 전태일이 열악한 블루컬러 노동자의 노동현실에 항의하면서 분신 자살한 것이 1970년이었다. 그 시대라면 분명 대학나와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공장 근로자나 농부에 비하여 사회적으로 축복받은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 시대에 회사에서 사무직에 종사하던 사람은 경제 성장의 특혜를 받아 평생 같은 직장을 다닌다던가, 고속승진을 한다던가 하는 일을 즐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오늘날 고등학생의 7-80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한다. 그리고 대학입시가 끝나면 그들은 바로 취업입시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 블루컬러 노동자인 현대자동차의 직원들보다 더 월급이 센 사무직 노동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게다가 공장노동자들이 일하는 많은 공장들이 외국으로 이전했다. 결국 블루컬러 일자리보다 사무직이 늘어난 것이다. 오늘날 평생직장은 커녕 몇년후를 장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치킨집이라도 해야 하나라고 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무직 노동자들의 삶이다. 오히려 노조도 없이 과잉충성심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게 대다수 사무직 노동자의 삶이다. 우리는 1970년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사무직에서 일하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없다는 것은 다수의 한국인의 삶의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사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학교와 군대에서부터 그렇게 살아가도록 교육되고 만들어진다. 순종적으로 소리내지 않고 시스템에 충성하도록. 그들은 대개 정해진 코스를 따라 길고 긴 길을 걸은 사람들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나왔는데도 삶은 마치 끝나지 않는 병역의무처럼 그들을 짓누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했고 당연하게도 한국에서 가장 쉽게 수탈당하는 사람들중의 하나가 된다. 월급쟁이 월급봉투보다 투명하게 세금에 노출되는 것이 한국에 뭐가 또 있겠는가. 사무직 노동자들은 전국에서 가장 주거비가 비싼 수도권에 많은데 이 말은 그들이 한국의 열악한 복지 상황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들이 하숙하면서 대학나오려고 하는데 교육복지, 주거복지가 안되면 빚을 지는 것이고, 이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려는 데 육아, 자식교육, 아파트 가격상승등이 이들을 괴롭힌다. 사무직은 한국의 다른 누구 못지 않게 벼랑끝에 서있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직업별 자살비중에서 이미 사무직이 서비스및 판매종사자를 앞지르고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링크.). 이들은 그 숫자와 영향력으로 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인데도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이들은 이따금 고작 술한잔에 소외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잊으려고 하면서 조금은 더 상식적인 세상의 꿈에 젖을 뿐이다. 


아직 4회밖에 하지 않았지만 미생에서 주인공 그래가 가장 길게 전하는 메세지는 그래가 공장 현장만 강조하는 동료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래는 사무직 노동의 현장도 현장이라는 것을 말한다. 누구는 사는게 쉽겠는가 만은 사무직 노동자들도 한가하게 펜대를 굴리고 있는게 아니라고 그래는 강변하고 그걸 듣는 다른 사무직원들은 감동한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사람들의 가슴에 생긴 울림의 저변에는 이제껏 자기의 이야기를 제대로 가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울분이 있는 것이다. 너희들도 힘든 거 알겠지만 우리도 힘들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울분이 있는 것이다. 


미생은  오늘날 직장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당하는가, 얼마나 경쟁이 심한가를 보여준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쪽은 명문대를 나오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온갖 자격증과 경험들 즉 소위 스펙을 준비한다. 오랜 시간 많은 돈과 에너지를 들이고도 직장에서 부당취급을 받기 이전에 직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부실한 대학을 나오거나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 세상은 얼마나 모욕적이겠는가.  평가를 하는 쪽은 평가를 받는 인턴들에게 뭐든지 요구하고 물어볼 수 있다. 회사에 취직하러 온 사람이 그저 평범하게 "난 이제까지 남부끄럽지 않게 성실하게 공부해 왔고, 먹고 사는데 돈이 필요해서 취직하러 왔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받는 정도 그 이상은 더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것이 특출나지 않은 대다수 시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실일 것이다. 설사 대단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입학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쯤이면 사람들은 자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그런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저 평범하고 상식적인 삶을 꿈꾸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진실을 평범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직장에서는 모두 핏대 올려서 자신을 크게 말하고, 웅대한 계획과 뜻을 말하고 필요하다면 내 팔이라도 잘라서 접시 위에 올려놓겠다는 식의 비장한 충성심을 외쳐야 하는 분위기가 상식으로 통한다. 이건 결국 까라면 까는 군대문화의 연장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사무직 노동자에게 어떻게 사세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물론 말할 것이다. 뭐 평범합니다. 사람사는게 다 그렇죠 뭐. 사실은 안 그렇다. 적어도 어디나 한국같은 것은 아니다. 당장 미국인이 입사해도 그들은 문화적 차이를 느낀다. 미국인이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면 반박을 못한다. 


이런 분위기는 그저 힘들다던가 기분이 나쁘다던가 하는 것과는 별도로 무시하지 못할 결과를 만들어 낸다. 바로 이런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사무직 노동자는 지적 재산권이나 자신의 회사에 대한 기여에 대해 제대로 평가받을 수가 없다. 직원이 회사에 10억쯤 100억쯤 천억쯤 이득을 가져다 줘도 그래 잘했어, 내가 기억할께, 술이나 한잔 내가 사지. 뭐 이러면 될 것같은 그런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모든 회사가 이렇지는 않다. 애초에 군대란 비정상적 상황을 위한 조직이다. 즉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죽을 줄 아는데도 나가서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그런 생활을 하는 군인을 위한 조직이다. 이런 조직은 하부조직원들의 행복은 둘째치고 조직 전체가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것을 주요목적으로 하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군대문화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직원만 안좋은게 아니라 회사도 한계가 있다. 뭘 해야 하는지가 뻔한 상황에서는 가차없는 채찍질로 진도를 팍팍 나갈수 있겠지만 합리적 판단과 창의성이 중요한 요즘에는 회사 분위기가 군대식이면 결과는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회사들은 바뀌려고 하고 이미 바뀌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사회전체가 군대문화에 중독되어 있다. 그것이 알게 모르게 사방에서 상식이라고 정상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지금의 집권세력도 걸핏하면 이러저러한 것은 나쁘니까 검렬하겠다던가 금지하겠다던가 하는 말을 쉽게 한다.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계급이 낮은 졸병쯤으로 생각한다. 


역경은 우리 안의 인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애초에 역경이 없었다면 무리한 인간드라마를 펼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조금은 둥글둥글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몰상식이 상식이 된 한국 사회의 직장에서는 배신과 음모와 감동의 인간드라마가 지나치게 자주 펼쳐진다. 사람들이 너무 자주 한계상황에 빠진다. 그건 결국 그저 살아남고자 버둥대는 난장판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사내정치에 능하지 못하고 부하직원을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오상식과장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눈물나게 한다. 하지만 살벌한 세상을 인간답게 살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상식과장은 겨우 겨우 관문을 기적적으로 통과한 그래에게 말한다. 버티는게 이기는 거라고, 회사는 그런데라고. 미생. 아직 살지 않은 것이 바로 직장에서 일하는 우리들의 처지라고. 영원히 완생이 되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라고. 이 드라마의 제목 자체가 한계상황에 놓인 한국의 시민들을 그리고 있다. 


미생은 좋은 드라마가 될 것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은 상당히 낡아 있고, 왜곡되어 있다. 신선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상식적인 세상을 꿈꾸는 시민들이 있어도 그들의 꿈이 현실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적절한 이야기가 세상에 부족한 이유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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