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
두 남자는 일주일만에 다시 만났다. 그 일주일동안 두 남자가 서로에게 주었던 숙제는 우리는 언제 가장 행복해 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그것이 결국 어떤 가게가 그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가게가 될 것인가하는 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카페에 앉아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모금 삼킨 다음 철진은 말문을 열었다.
“난 고리타분한 사람이야. 그래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책을 좀 찾아봤지. 칸트는 사람이 행복해 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더군.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거야. 책장에 쇼펜하우어 인생론이 있기에 그걸 펼쳐봤더니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첫번째 조건은 건강이라고 하더군.”
“솔직히 가게에는 도움이 안되는 군요.”
“도움이 안되지. 사실 실제로는 사는데도 별로 도움이 안될거야. 사람이 행복하면 어떻게 행복해져야 하는지를 찾지 않는다고. 그런데 일단 사람이 불행하다면 할 일이라던가 건강이라던가 하는 것을 챙기기 싫어지거든. 불행한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세요라고 처방하는 것은 대개 소용이 없어. 그건 굶어죽어가는 사람에게 로또복권 사보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에 차있는 사람은 애초에 불행하지 않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내 생각을 해봤어. 나는 언제 행복했던가하고. 그래서 내 일기랑 기억을 뒤져서 목록을 좀 적어보기 시작했지. 이걸 읽어주지. 좀 챙피하기는 하지만 뭐 내 개인적인 것을 전혀 말하지 않으면서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자 시작한다.”
철진은 내가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목록을 읽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좋아하는 여자와 첫번째 데이트를 했던 때.
-어려운 프로젝트를 끝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회 발표를 할 수 있었던 때.
-첫번째 단편소설을 완성했던 때.
-아내와 가구나 그릇을 보러가거나 중고물품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던 때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이해할 수 있었던 때.
-자동차를 타고 장기 여행을 떠났던 때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냈을 때
-읽을 거리와 간식거리를 쌓아놓고 온돌방에서 보내는 겨울날.
-부모님들과 같이 여행했던 때.
“뭐 이정도야. 이 목록은 좀 뒤죽박죽이지만 쓰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어. 그리고 별로 길지 않지. 내가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목록을 쓰다보니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껴서 더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든.
행복은 상호비교하기가 어려워. 예를 들어 나는 아이들과 시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꽤 자주 있는 일이고 첫번째 학회발표는 인생에 단 한번 있는 것이라 서로 비교하기가 곤란하거든. 나는 분명히 책이든 만화책이든 쌓아놓고 온돌방에 누워있었던 시절을 매우 그리워 하지만 어찌보면 그런건 매우 사소한 것같고 말이야. 행복한 것이란 여러가지 모양을 가진 것들이 있어서 비교가 어려운 것같아. 심장과 위장중에 어떤 게 더 중요한 기관인가하는 질문은 답하기 어렵잖아. 어떤 행복은 한 순간에 불타오르지. 아주 짜릿해. 하지만 어떤 것은 그저 공기처럼 늘상 내 주변에 있으면서 나에게 지속적으로 활력을 공급해 주는 일상의 어떤 작은 부분이지. 작지만 그래도 그것이 없으면 나는 꽤 불행하게 느낄 거라고 생각되어지는 것.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는 전혀 확실하지 않아.
이렇게 행복은 상호비교가 어려운 것인데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행복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더라고. 배가 고픈 사람은 밥을 먹으면 행복하고, 추운 사람은 따뜻한 난방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외로운 사람은 따뜻한 동료나 가족이나 연인이 생기면 행복한 거거든. 행복은 우리가 뭔가를 결핍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을 얻었을 때 느끼기 때문에 그때 그 순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그러니까 한끼에 10만원짜리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이 맛있게 끓인 라면을 먹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거고. 이런거 때문에 과거의 행복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서로 비교하면서 행복한 때를 적는게 점점 무의미하게 보이더군.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니까. 목록에 내가 행복했었을 때 어땠는가를 쓰려면 한정없이 쓸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무의미한 목록이 될 것 같았어.
그러니까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어. 그 답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지. 그런데 이 질문은 마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뭔가가 있어서 그것을 얻으면 우리가 행복해 질 것처럼 질문하는 측면이 있거든. 답이 뭐건 간에 그런 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질문 자체가 가정한단 말이야. 하지만 행복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가에 크게 의존해. 우리는 그 시각을 바꿀 자유가 있고 말이야. 또 행복은 그때 그 순간에 집중할 때만 느낄 수 있지. 세상일이라는게 기대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어서 장기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그것으로 행복을 달성하려고 하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거든. 아니면 욕심때문에 자꾸 그림이 더 커지기만 하던가. 돈이든 사랑이든 명예든 지위든 그걸 달성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살면 정작 그걸 달성한 후에는 더이상 뭘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게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그걸 가지지 못해서 안달이었는데 목표하던 것을 가지게 되면 목표를 위해서 뛰던 시절이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도 이 목록은 가게라는 측면에서는 꽤 도움이 되는 것같습니다. 제가 보니까 결국 이 목록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 일에서의 성취, 여자, 여행, 맛있는 먹을 것과 오락거리. 이런 식으로 정리될 수 있군요. 저도 사실 뭐 딱히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 그래서 이런 가게가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를 들어 이래서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게 사업이 되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전제로 식당을 만들면 식당이 경쟁력이 있겠죠.”
“맞아. 맥도널드가 애들한테 선물 주는데 후한게 다 이유가 있어. 애들이 생기면 애들이 즐거워 하는 곳에 더 자주가거든. 애들만 떼어놓고 어디 가자니 좀 쓸쓸하고 애들하고 갔는데 음식맛이나 분위기가 안맞으면 외식비가 아깝지. 그러니까 애들이 좋다고 하면 어른들은 일단 기본점수는 주는거지. 맥도널드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와도 좋아하고 다른 손님들에게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구조를 고민해서 식당을 만들어야 장사가 될 거야. 그런게 패밀리 레스토랑인거지. 한국에서는 찜질방이 엄청 인기잖아. 그것도 사실은 가족이라는 것때문이야. 가족이 일반 목욕탕에 가면 남녀구분때문에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찜질방에는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때문에 인기가 높은 거지.”
“행복의 핵심이 가족이다라는 부분도 제게는 새삼스러웠습니다. 놀라워서가 아니라 사실 여기 오기전에 생각한 것과 좀 연결점이 있어서요. 전 좀 관념적인 사람이라서 우리는 언제 행복한가 하는 질문을 듣자마자 이건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들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만약 행복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어떤게 있을까. 그게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니까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보편적인 메세지이지만 미국 일본 한국이 다 약간은 강조점이 조금 틀리더군요. 서로가 서로의 행복이데올로기를 수출하고 수입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도 가족을 무척 강조하지만 미국은 그 이상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라 뭐 이런 걸 강조하거든요. 행복해지는 것은 꿈을 꾸고 그것을 성취하는데 있다는 거죠. 그런데 어떤 개인적인 꿈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가족 이데올로기하고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하고 붙어서 살기보다는 자기 꿈을 추구해야 하고, 자신의 학문적 직업적 이력을 그것이 비록 가족때문이라고 해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뭐 그런 식이죠.
일본은 굉장히 동료애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인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이야기는 47낭인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 이야기라는게 어떤 집단적 목적을 위해 가족을 극단적으로 포기하는 이야기거든요. 영주의 복수를 위해 여동생을 희생시킨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 책이 아니더라도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일본 사람들은 동료를 무척 강조한다는 인상을 저는 받았습니다. 동료는 가족과 비슷하면서도 또 좀 다른 것이죠. 피가 아니라 은혜와 의리로 뭉친 집단이랄까. 지금은 평생 직장 개념이 일본에서도 깨어졌지만 일본식 회사 경영이란게 그런 식의 의리집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동료를 뒤에 버리지 않는다 뭐 그런 것이죠.
그러고 보면 중국사람이나 한국사람이야 말로 가족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믿음에 충실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됬습니다. 요즘은 문화적으로 많이 희석이 되서 예외도 늘고 있지만 혈통따지고 친척따지는 것만 봐도 한국사람은 가족을 많이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윤리가 흔들리니까 요즘은 가족같은거 귀찮기만 하다고 반대의견도 많겠지만 한국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자식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감동해서 엉엉 울거든요. 한국드라마도 가족내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지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가족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좌절하고 있는 느낌이지만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한국사람에게 여전히 아주 큽니다. 그러니까 철진형은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거지요.”
“한국에도 예로부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세상에 나가서 큰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성취중심적인 이야기가 있었지. 그리고 한국인도 요즘엔 가족보다는 직업적 성공이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같아. 뭐 실제로는 뒤죽박죽이 되서 자기가 뭘 원하는지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더 많은게 현실이겠지만. 문화적이고 가치관적인 혼란인거지.
목록을 써놓고 나서 그걸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었어. 내가 느낀 걸 한가지 말하자면 산다는 것의 본질은 아주 간단하다는 거야. 단지 그걸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뿐이지. 삶의 본질은 잘 먹고 좋은 섹스를 하고 좋은 곳에 가는 것이지. 동물이나 사람이나 심지어 짚신벌레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게 생명이니까. 생명은 먹고 번식하고 좀 더 기분 좋은 환경으로 이동하거나 주변 환경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존재니까.
단지 그걸 어떻게 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지. 예를 들어 잘 먹는다는 것은 때로 단식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안 먹는게 잘 먹는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은 순간 순간을 살면서 동시에 기나긴 시간을 하나의 이야기속에서 사는 존재라서 그래. 10분후에 죽는다면 체중 같은 것은 대개 신경쓸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되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어떤 걸 먹어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되지. 긴 시간간격의 측면에서 먹는다는 문제를 본단 말이야. 그래서 굶는 게 어떤 때는 만족스러운 식생활이 되지. 인간도 결국 생명이라 우리가 하는 일중에 중요한 것은 결국 먹거나 섹스하거나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단지 그 의미는 우리가 세상을 어떤 문맥으로 보고 있는가에 따라,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공간적 시간적 사회적 지적인 넓이에서 그걸 보고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단말이야.
물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인간이 짐승과 다를바가 없다는거냐고 말하겠지만 사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 오히려 우리가 짐승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의 삶의 본질은 결국 특별난게 없는만큼 인간이 인간이 되려면 그 의미를 주는 문맥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개나 사람이나 먹고 섹스하고 편안한데서 잠자려고 하는 것은 똑같으니 생각이 없으면 인간이나 개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거야.
반면에 이런 이야기를 인간이 짐승처럼 산다는 거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짐승이 안 가진 뭔가를 본래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원래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인간은 아무것도 안해도 원래 짐승과는 다르다. 뭐 이런 이야기는 흔하지. 인간은 아마 이성을 가졌겠지. 발달된 손을 가진 것처럼. 가졌으면 뭐해 그걸 써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지. 이성을 가졌으니 돈을 가졌으니 명성을 가졌으니 지위를 가졌으니 영혼을 가졌으니 자기가 저절로 짐승과는 달라질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는 거지. 사람들은 사람은 원래 짐승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물론 법을 따질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거야 말로 기괴한 생각같아.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아무 것도 안해도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지. 실제로는 닭장속의 닭처럼 살고 있거나 도살장의 돼지처럼 죽어가고 있어도 말이야.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인간의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야기속을 살고 있는가 아닌가에 달린 것이지.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어쩌면 인간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지. 뭐 일단은 인간이라도 되야겠지만.”
“맞습니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또 한가지 내가 생각한 것은 나는 참 사람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거였어.”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데요?”
“여기 내가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써져있잖아.”
“네.”
“목록을 보다가 나는 왜 자동차 여행을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해봤거든. 그 이유는 여러가지 일 수 있잖아. 어떤 사람은 스피드를 즐겨서 그럴 수도 있고, 사람이 없는 오지를 달리는 기분을 즐길지도 모르고. 나도 그런 기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자동차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로 이 세상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둘러보는게 흥미로워서 그런 것같더군.”
“사람들을 둘러보는거요?”
“그러니까 여기나 저기나 사람사는게 다 비슷해 보여도 차를 타고 다른 동네에 가보면 조금씩 다르거든. 그 차이를 보면서 아 여기도 사람이 사는구나. 이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개발을 많이 했구나. 저 동네 사람들은 산을 참 예쁘게 보존했구나. 이 동네 역전거리는 이렇게 꾸며놓았구나. 이 동네는 먹을 것을 좋아하고 저 동네는 사는 게 외로워보이고 인심이 사나운 것같다. 뭐 그런거지. 그렇다고 내가 대도시의 도심을 차로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냐. 그런데는 사람이 오히려 너무 많아서 사람이 안보이게 되는 것같아.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까 개성이 상실된달까. 사람이 보이기에는 사람이 너무 가깝달까.
한적하게 가끔 사람사는데가 등장하는, 그런 곳을 달리다가 여기저기 구경하는게 좋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지내나 하는 것을 보는게 재미있어.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같아. 딱히 특별한 것을 못봐도 청도에 가서 자고 통영에 가서 자보고 전주에 가서 자보고 하는게 좋지. 천천히 그저 사람사는거 구경하면서. 천천히 다니지 않으면 사람사는 건 안보여. 너무 빠르면 다 똑같아 보이니까. 기차여행도 좋지만 차로 다니면 뭐랄까 뜻밖의 일이 많이 생기니까, 이름없는 해변에 설 수가 있으니까 그런게 더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나는 우연한 일들이 생길 수 있는 방식으로 슬슬 세상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가게에 가는 이유도 그런게 있는거 같아. 한국에 커피숍 엄청나게 많잖아. 그런데 커피값은 엄청비싸고 커피머쉰도 흔하거든. 그래도 커피숍에 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그냥 세상구경, 사람구경이 아닌가 싶어. 길가에 서 있어도 좋겠지만 그러면 느긋해 지지가 않으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지도 그렇다고 하나도 없는 곳도 아닌 곳에 가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오면 설사 혼자서 책만 읽다 왔더라도 마치 누굴 만나고 온 것 같지. 커피숍 손님들은 서로 서로를 보면서 약간씩 위안과 힘을 얻는 것같아.
그게 사실 요즘은 동네 사랑방같은데에서 매일 친구 만나서 시간죽이는 식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 그런 곳이 있지도 않고. 아니 노인들은 그렇게 하던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 만원버스를 타거나 사람이 우글거리는 곳에 있으면 사람구경 실컷하는 것같지만 그건 내가 도시를 드라이브 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같아. 그래서는 사람을 느끼기가 오히려 어렵지. 찡그리고 밀려다니는 사람 봐봐야 아무 소용도 없어. 반면에 너무 시끄럽지는 않으면서 약간 사람도 있는, 차분한 분위기 혹은 재미있는 분위기의 커피숍 같은 곳은 다르지. 이젠 사람이 좀 사람같아 보이는거야. 그런델 가야 다른 사람 사는게 보이지. 뭐 최소한 직원은 만나게 되니까, 그래서 한국 사람은 카페가 필요한거 아닌가 싶어. 체온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 좀 보려고”
“사랑방 문화가 다방 문화가 되고 다방 문화가 카페 문화가 되었다는 거군요. 그만큼 한국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인간적인 접촉이 필요하고 그걸 어떻게 해서든 해소하려고 하고 있고.”
“그렇지.”
이 날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만남은 끝났고 철진은 자리를 떳지만 철주는 카페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철주와의 만남에 관한 모든 것은 즐겁고 유쾌했다. 안좋은 일만 잔뜩 있었던 최근의 상황중에서 그나마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철주는 왠지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은 분명 철진과 자신과의 어떤 차이에서 나타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유쾌한데도 어딘가에서 두 사람은 미끄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진과 철주는 달랐다.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중요한 차이로 느껴졌다. 철주는 그것이 그가 실패했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모든 것에서 자신의 실패의 원인을 찾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일은 그냥 생긴다. 일은 이유없이 생기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일이 생기는 진정한 이유를 알기는 불가능하다. 잘못된 답을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좀 더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느끼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될거라고 생각하면서 철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가게의 미덕
좋은 가게란 어떤 가게인가를 쉽게 답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것은 또한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존재는 아마도 모두 인간일 것이라는 사실과 인간들이 서로 비슷한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좋은 가게란 어떤 가게인가에 대한 정의를 제공할 수는 없어도 그것에 대한 몇마디의 일반적인 말은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듣기에 따라 가게를 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말일 수도 혹은 매우 도움이 되는 말일 수도 있는데 좋은 가게란 좋은 사람이 하는 가게다. 이 말은 인간이 가장 민감한 대상은 인간이라는 말이다. 인테리어의 아름다움이나 음식의 맛보다도 우리는 인간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가게가 가지는 매력이란게 생각해보면 상당부분 인간의 매력인 경우가 많다.
인간의 매력이란 것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어떤 종류의 것이건 매력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은 손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게 주인이 스스로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몇몇 행운아를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고 좋은 접객의 재능과 기술을 가진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대개 쉽지도 싸지도 않으니 그것을 소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 손님들은 바로 그 사람때문에 가게를 다시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저 나처럼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의 매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가게를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첫번째의 일은 숨는 것일 것이다. 당신은 물론 자신의 가게가 자랑스러워서 되도록 많은 손님을 만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당신이라면 당신같은 종업원이나 가게주인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겠는가? 상상만 해도 싫다고? 그러니까 숨으라는 것이다. 돈을 내고 좋은 시간을 가지러 오는 사람들을 방해하지는 말자.
많은 사람들은 맥도널드나 프랜차이즈 패밀리레스토랑같은 곳은 가게도 아니라고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가게는 프랜차이즈 가게의 미덕이 있다. 그런 곳들은 거의 메뉴얼대로 손님을 받고 대개 매장이 크기 때문에 조금 익숙해지면 그 나름대로의 편안함이 있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손님은 그런 가게에서 인간적 소통을 추구하지 않는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구매하러 간 사람이나 마치 자판기 앞에 선 사람같아진다. 물건을 주문하고 사고 그리고 커다란 매장의 구석에 숨어들어가 편안히 자리를 잡으면 우리는 마치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인간을 만나는 것은 가장 즐거운 체험이자 가장 피곤한 체험이므로 때로 이렇게 인간을 만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미덕이 된다.
반면에 개인이 하는 작은 가게는 대개 이와 전혀 다르다. 우리는 그런 가게에서 가게의 종업원이나 주방장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큰 길가의 맥도널드는 아마도 당신이 일주일에 3번씩 드나들어도 당신이 단골인지도 알지 못할지 모르고 알아도 그걸 표시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그렇게 맥도널드에 자주 간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런 익명성은 맥도널드같은 가게의 큰 매력일 것이다. 그러나 동네의 작은 분식집이나 커피숍이나 백반집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손님과 주인은 피할수 없는 인간적 교류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만약 그것이 즐거운 경험이었다면 그 가게의 매력은 크게 증대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면 가격과 맛이 마음에 들었어도 당신은 그 가게를 가기 꺼려하게 될지 모른다.
기업형 가게들과 개인이 하는 가게에 있어서 인간적 교류가 가지는 의미는 사실 이 이상이다. 앞에서 말한바대로 인간적 매력이란 값싼 재료가 아니며 매뉴얼대로 운영되는 기업형 가게에서 잘 쓰지 못하는 것이므로 기업형 가게와 경쟁하는 개인의 가게는 이 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대개 3가지 중의 하나뿐인 것같다. 하나는 가게들이 연합하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다. 골목안의 상가들이 서로 단합하여 관광지처럼 꾸미거나 쇼핑몰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통상 기업형 가게는 대중적인 가게이므로 그런 가게보다 훨씬 더 비싼 물건을 파는 전문점이 되는 것이다. 그럼 기업형 프랜차이즈 가게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이 바로 고객들과 정으로 이어진 커뮤니티 기능을 강하게 발휘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거의 단골손님 중심으로 가게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손님들과의 인간적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 그걸 잘하고 그걸 즐겨야 한다.
그러므로 손님과의 인간적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득실 거리는 도시가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융합하여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한 차별성을 가진 서비스나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대량학살의 피냄새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게들은 망할 것이다. 그곳에 거대 마트나 거대 체인점들이 등장하면 기존의 가게들은 거의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가지거나 어떤 분야에서 장인의 수준에 이르거나 인간적 매력이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모든 것에서 실패할 때 우리는 위험하다. 거대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만약 당신이 은퇴자금을 가지고 자기의 가게를 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부족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을 것이다. 그것은 자본일수도 기술일 수도 적절한 지식일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신이 평생 어떤 거대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사람을 만나는데 익숙하며 당신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데 익숙하지 않다면, 다시 말해 돈만 가졌을 뿐 무뚝뚝하고 가벼운 대화같은 것은 못하는 노년의 남자같은 그런 사람이라면 가게를 열고자 하는 마음이나 자기 자신 둘중의 하나를 완전히 고쳐야 한다. 경쟁속에서 가게를 운영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좋은 가게의 두번째 미덕은 좋은 가게는 그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게란 하나의 계약서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즉 우리는 손님으로서 어느 가게에 갈 때 하나의 계약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손님은 손님몫의 역할을 하고 가게는 가게몫의 역할을 하는 계약이다.
불행한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계약의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한 것으로 생각한다. 가게의 주인도 손님도 말이다. 그래서는 피차간에 오해와 피해만 생길 뿐이다. 당신이 어느 가게에 가서 김치찌개가 매우 싸고 맛있었다고 하자. 그래서 그 가게를 단골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날 주방을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그 위생수준이 경악할 수준이었으므로 당신은 주인에게 항의를 한다. 이렇게 가게를 하는 것은 몰상식한 것이 아니냐고. 이에 대해 가게 주인은 이정도면 된다고 말하고 손님이 요구하는 것처럼 주방을 운영하자면 도저히 이 가격에 팔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계약에 대한 오해의 한가지 예다.
당신이 커피숍을 하는데 손님들 편의를 위해서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공짜 와이파이도 설치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다. 그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심심한 노인들일수도 있고 동네의 부녀회 회원들일수고 있다. 새로온 손님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가버린다. 이에 대해 당신은 죽치고 앉은 사람들에게 너무 하지 않냐고 항의를 하고 그 사람들은 커피를 먹었으면 이 자리는 내거 아니냐고 항의한다. 이것이 계약의 내용에 대한 오해의 또 한가지 예다.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파는가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그 계약내용을 손님과 주인이 서로 잘 이해할 때에만 좋은 거래가 가능하다. 뜨내기 손님이란 둘중의 하나다. 새로 열은 가게가 제공하는 특별서비스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거나 기업형 가게처럼 전국 어디나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 가게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단골가게란 말하자면 여러번 그 가게에 다니게 된 나머지 그 가게가 제공하는 계약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안심하게된 경우를 말한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새로운 가게를 다니기 좋아한다. 하지만 금방 지나치게 그렇게 하는 것은 돈과 시간의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좋은 가게를 정하고 그곳에만 자주 다니거나 좋은 가게를 추천받아서 조심스럽게 가게들을 방문한다. 일단 한 곳을 믿기 시작하면 그곳을 자주 간다. 새로운 가게의 허실을 탐구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전화서비스 같은 것을 계약하려고 하는데 길고 복잡한 계약서를 제공받은 적이 있다면 새로운 가게를 방문하는데 있어서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는 것이다. 멋진 분위기에 반해서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순간 오늘 하루를 날렸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낙담하게 된다. 좋은 가게는 참으로 찾기 쉽지 않다. 가게의 여러가지 측면을 일일이 다 확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그 가게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은 데 그런 걸로 피곤해지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가게를 찾아 계속 탐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단골로 들리는 가게를 사랑하게 된다.
가게의 본질이 바뀐다는 것은 계약의 내용이 크게 바뀐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쉽고 피곤한 일이다. 기존의 단골들은 처음부터 다시 계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피곤한 것은 젊은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중장년의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다. 노인들의 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옛 것대로 사는게 뭐가 나쁜 거냐는 말이 계속 구호처럼 어딘가에서 들린다. 그것은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일에 지친 노인들이 일본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쉴새없이 변해만 가는 서비스, 새로 생겨만 나는 가게들 속에서 사람들은 속는 느낌이 든다. 가게주인도 손님도 오래가는 관계를 추구하는게 아니라 서로 약탈하는 식으로 한탕주의를 꿈꾼다. 그런게 싫은 것이다. 한국도 인구분포의 불룩 튀어나온 허리인 베이비붐세대가 고령화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가게라는 미덕은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가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냄새다. 좋은 가게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적어도 나쁜 냄새는 없다. 좋은 가게앞을 지나거나 좋은 가게안에 들어섰을 때 확하고 풍겨나는 냄새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그리운 느낌에 빠지게 한다. 우리가 때로는 낡고 지저분한 가게를 반복해서 찾는 이유는 우리가 그 냄새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향의 냄새를 기억하고 추억의 음식의 냄새를 기억한다. 그리고 감상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실제로 후각신호가 뇌에서 받아들여지는 부위는 인간의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나 기억의 형성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와 가깝게 위치해 있다. 인간의 뇌는 상당부분이 시각처리에 관련되어 있지만 냄새는 강한 기억을 남긴다. 냄새는 맛을 느끼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코를 막으면 우리는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수 없고 사과와 양파도 잘 구분 못하는 일도 생긴다.
냄새는 중요하다. 냄새는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첫층에서 우리를 덮쳐오는 것은 값비싼 화장품과 향수의 냄새들이다. 우리는 그런 냄새속에서 스스로가 부유한 사람이 되거나 파티에 참석한 영화배우라도 된 느낌이 들고 물건을 이것저것 사고 싶어 지는 것이다. 첫번째 층의 냄새가 부산 오뎅의 냄새라거나 생선냄새같은 것이라면 사람들은 생활인으로서의 자기를 기억해 내고는 비싼 물건에서 서둘러 뒤로 물러날지 모른다. 미국의 부동산업자들은 팔려고 하는 집에다가 신선한 파이나 쿠키를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집안에 그런 향기가 퍼질 때 집을 사려고 온 사람들은 그 집을 편안하고 따뜻한 곳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쿠키의 향기는 행복한 가족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어딘지 낡아보이고 어떻게 변명해도 지저분해 보이기까지하는 가게가 좋은 가게로 느껴지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나는 지저분한 냄새로 찡그림을 주는 가게가 좋은 가게로 기억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시각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가게를 상상한다고 해도 그 가게에 똥냄새가 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립고 훌룡한 냄새는 언제나 사람들을 사로 잡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가게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가게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그 가게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냄새가 추억을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소설들 > 두남자 가게를 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남자 가게를 열다 (6) (0) | 2015.01.11 |
---|---|
두 남자 가게를 열다 (5) (0) | 2015.01.11 |
두 남자 가게를 열다 (4) (0) | 2015.01.11 |
두 남자 가게를 열다 (2) (0) | 2015.01.11 |
두 남자 가게를 열다 (1) (0) | 2015.0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