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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두남자 가게를 열다

두 남자 가게를 열다 (4)

by 격암(강국진) 2015. 1. 11.

가게안의 가게

 

철주와 철진의 만남은 몇 일 가지 않아서 다시 이뤄졌다. 둘다 만나서 가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재미있어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혀 말도 되지 않을 것같은 가게 만들기라는 것을 향해 비록 천걸음 만걸음중에 한 걸음이라도 한걸음 한걸음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철주와 철진은 비록 그 모든 생각들이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해도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가게를 세웠다가 지워버렸다.

 

세상도 좀 달라보였다. 이제 둘은 구석의 가게를 보면 저기는 장사가 잘 될까. 뭘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상가 권리금 문제로 분쟁이 있어났다는 기사를 읽으면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읽게 되었다. 철진은 복고풍의 1인용 가죽 의자를 보면서 저런 의자를 가게에 놓으면 내가 원하는 가게 분위기가 생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창밖이 잘 보이는 위치에 테이블을 놓을 것이다. 철주는 가게에 프로젝터를 비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영화같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깨진 거울이 뭐하는 가게인지 아직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상은 그저 자신의 개인적인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두 남자의 망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진지하지 않아서 곧 지워버릴 망상이라도 즐거우면 되니까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철주는 철진이 이미 카페에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철진은 카페의 여자 종업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머리를 묶어올린 카페 종업원 아가씨의 목뒤가 묘하게 섹시하다고 철주는 생각했다. 약간 귀엽게 생기기는했지만 그리 예쁜 아가씨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생동감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 아주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불행해 보이는 여자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여자도 없으니까. 철진과 종업원이 너무나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철주는 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사실 지나치게 친밀해 보였다. 철진은 젊은 아가씨에게 인기있을 것같은 스타일은 아닌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전과 똑같은 카페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사람도 철진이었다. 그게 우연은 아닌 것었던 것일까? 철주가 다가가자 종업원 아가씨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멀어져 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찬 물이 담긴 컵과 함께 돌아왔다.

다시 같은 카페에서 만난 둘은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음료를 주문했다. 그러고 나니 마치 그 둘은 헤어진 적이 없었던 것같다. 철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지난 번 만남 이후에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말이야. 그 생각이란게 대부분 거론할 가치도 없는 생각이지만 한가지 생각은 꽤 그럴 듯한 것같아. 그래서 의견을 좀 듣고 싶은데.”

 

“무슨 생각인데요?”

 

“그게 이렇게 우리 둘이서 가게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실제로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가게를 한다는게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그러니까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거야.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한번 해보고 싶지만 그냥 저질러 버리기에는 용기가 안나서 어쩔까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뭐 꼭 가게를 해서 돈을 벌겠다 그런 것보다 이따금 좀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이 나도 가게를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할 것 같고 말이지.”

 

“그렇죠. 그래서 우리도 이러고 있는거고. 사람들이 이따금 바자회를 하거나 일일호프집을 하거나 하는 것도 그래서 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런 걸 하는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가게창업을 도와주는 일을하는 거지. 구체적으로 뭘할까 생각해보니 깨진 거울에는 한쪽에 몇개쯤 부스가 있으면 어떨까 싶어. 가게체험 서비스를 하는 것이지.”

 

“가게 체험 서비스?”

 

“내가 한 말이지만 가게체험이라는 말은 적당치가 않군. 그러니까. 가게안에 가게가 있는거야. 푸드코트처럼. 가게에서 쓸 물건은 우리가 대충 준비해서 빌려주는 것이지. 가게안에 포장마차 같은 것이 한 구석에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같아. 그럼 사람들이 최소한의 준비만 해도 장사를 해보는 것을 체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잘 되면 정식으로 나가서 크게 가게를 열면되고 말이지.

 

가게라는게 초기에 알아야 할 것 투자해야 할 것이 너무 많잖아. 그러니까 돈없이 하기도 힘든데 경험없이 했다가 망하기도 많이 망하는 것이고, 망하고 나면 좀 더 준비해서 했으면, 이런 저런 걸 알았다면 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말이지. 그러니까 원한다면 잠시 가게 경영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지. 아주 작은 규모로.”

 

“흠. 그럼 큰 장소를 빌려서 쇼핑센터 푸드코트 같은 식으로 쪼개서 사람들에게 임대를 주자는 말인가요?”

 

“아냐. 나는 이런 아이디어를 좋아는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뭔가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냥 단순히 푸드코트처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아직은 뭔가 커다란게 빠져있어. 다만 우리가 무슨 가게를 하건 한쪽 구석에 공간을 활용해서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 것뿐이지. 그러면 재미도 있고 남에게 도움도 주는 일이 되서 좋을 것같거든. 게다가 그렇게 하면 우리 가게에 그 사람들이 손님을 데려오기도 할거야. 새로 가게를 연 사람들은 자기 친구나 가족들을 손님으로 불러오니까 그런 사람들이 가게안의 가게에 들어오면 다른 것들도 같이 사지 않을까 그런 것이지.”

 

“괜찮은 것같습니다. 일종의 게스트 주방장을 하나 쓰는 것같기도 할 것같고. 그것도 주방장이 스스로 임대료 내가면서 하는 거니까.”

 

“그렇지? 사실 푸드코트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커다란 상가건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저 상가건물을 장난감처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한거지. 혹시 타이니 하우스라고 들어 본적 있어?”

 

“아 그 트레일러 위에 짓는 작은 집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타이니하우스라는게 서너평되는 공간에 짓는 집이거든. 그걸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게 적어도 요즘 세상에는 그렇게 큰 집을 지으려고 돈을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좋다는 거지. 왜냐면 많은 것들이 바깥에 있으니까. 그걸 아웃소싱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시장에서 그걸 빌릴 수 있거나 다른 사람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거지. 거꾸로 말하면 큰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그걸 쓰지도 않으면서 많은 물건들을 잔뜩 사서는 큰 집을 짓고 그 공간을 채우기만 한다는 말이야. 그렇게 하느라 빚까지 져가면서 말이지. 그래서 꼭 개인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바깥에서 구하고 즉 빌리거나 공유하는 소유를 하고 그리고 나머지만 가지고 집을 지으면 집이란게 그렇게 크지 않아도 좋다는 거야. 비슷한 아이디어에는 쉐어하우스나 공유주택같은게 있지. 다들 그 핵심은 공유하는 부분을 확대하면 각자가 점유하는 공간이 작아도 쾌적하고 따라서 돈이 적게 들면서도 좋다는 거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가게를 해보면 재미있어 하지만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엄두를 못낼 거다 뭐 그런 생각을 하니까 집만 줄이는게 아니라 상가건물도 왕창 줄여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쉐어하우스라는게 있다면 쉐어가게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든거지.”

 

“최대한 공유를 하면서.”

 

“그렇지. 최대한 공유를 하면서. 그러면 작게라도 내 가게를 가져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사실 요즘 가게 시작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며. 일본같은 곳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면서 일을 배워서 가게를 시작하기도 하는데 한국 사람들 중에는 그냥 처음부터 학원같은데서 몇달 음식만드는 거 배워서는 바로 사업시작하는 사람이 많은 것같아. 아니면 주방장 같은 사람을 고용하거나. 그러니까 어설프고 그러니까 망하지. 커피만드는 법을 안다고 바로 커피숍을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야. 그러니까 작게 해볼 수 있게 진입장벽을 낮춘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같아. 가게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들을 고객으로 생각하는 가게인거지.” 

 

“계속 들으니까 상당히 좋은데요.”

 

“나는 자신감이 없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 기쁜데.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곤란해. 잘못하면 그냥 작은 슈퍼같이 될 것같아. 실내 장터랄까. 그래도 뭐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니까.”

 

철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생각해 보니 이 가게가 실제로 있다면 이 가게는 좀 기묘한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묘해?”

 

“보통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면 음식을 만들거나 물건을 팔거나 접객을 하는 사람이 가게의 주인이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 가게는 손님이 음식을 만들고 물건을 팔고 접객을 할 것같으니까요. 스스로 돈내가면서 일한다는 거죠.”

 

“그렇군. 그렇게 말하니까 턱도 없는 이상한 가게같이 들리는 군.”

 

“그래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이와 유사한 일을 들은 적도 없는건 아니더군요.”

 

“정말?”

 

“요즘은 무리겠지만 전에는 일본의 오래된 가게같은 곳에서는 급료없이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얼핏 들은거라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이유를 들으니 그럴 듯하더군요. 급료없이 일은 왜 하는가 싶지만 그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일을 배워서는 나중에 자기 가게를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사실 지금도 어디 외국의 유명 식당이나 제과점에서 일하게만 시켜준다면 돈 내가면서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배우는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 그러니까 손님이 스스로 돈내고 일한다는 설정이 전례가 없는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로군. 그러고 보니 가게는 아니지만 유명대학이나 연구소에는 자기가 돈을 싸들고 와서 일하는 연구원들이 있어. 자기 나라 정부같은데서 돈을 받아서는 탁자만 주면 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 거지. 배우는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돈 안받고 일해주겠다고 하는거야.

 

대학도 마찬가지지. 사실 대학원생도 학생이면서 절반은 직원같은 존재거든. 수업을 듣고 교수에게 일을 배우지만 동시에 연구실에 취직한 사람처럼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지. 전에는 대학원생도 돈 가져다 바치면서 일하는 직원같았지. 등록금 내면서 교수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는 일꾼 같았어. 하지만 요즘은 뒤집어졌지. 교수들이 대학원생이며 박사후 연구원을 찾느라고 골치야. 전과 비교해서 엄청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쉽지 않지. ”

 

“그렇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거기에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가 그렇지 못한가하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 돈을 내고 거기서 일하는 이상한 일을 해서까지도 배울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납득을 해주겠죠.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진짜 중요한 문제도 빠져있는데요. 그런 식으로 영업하는 것이 손님을 끌어오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에 저는 동의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손님이 오게 될 다른 요인이 필요하겠죠. 가게에 손님을 끌어올 방법이 없다면 가게안의 가게는 영업을 못할 테니까요.”

 

“가게에서 급료없이 일하는 사람과 가게안의 가게라는 이 상황은 차이도 있지. 배우려고 하는게 다를테니까.”

 

“맞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든 하기 나름일거라는 걸 전제로 말하면 불가능한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세부사항을 채워야 하는 것이 많이 남아 있을 뿐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는 가게 운영 경험도 없는데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게 운영을 배우러 온다는 것은 좀 말이 안되니까요.”

 

“그거야 뭐. 꼭 선생님이어야 학원을 차리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죠.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만 너무 떠들었던 것같은데 뭔가 재미있는 가게에 대해 따로 생각했던 게 더 있나?”

 

철주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생각을 가다듬었다.

 

“사실 생각은 너무 많은 것이 났지만 정리가 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생각한 것중에 하나는 겸손과 절제였죠. 재미있는 가게에는 겸손과 절제가 필요하다.”

 

“겸손과 절제? 그런건 좀 고리타분 하게 들리는데. 그런게 뭐가 재미있어?”

 

“저도 재미있는 거라고 하면 좀 확 발산하는 그런 게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니 확 발산하는 것도 겸손과 절제가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식이나 예절이 기존의 것들과 다를 수는 있지만 그런게 있으니까 발산도 가능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록콘서트 같은 곳에 가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발산한다고 노래도 따라부르고 춤도 추고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으면 싶을 수록 사실은 이런 저런 금기를 지켜야 하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술에 너무 취해서 무대로 뛰어들거나 물건을 무대로 던지면 콘서트 자체가 중단되지 않겠습니까? 춤춘다고 흥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주먹을 날려도 안되고요. 그 사람들은 언뜻 보면 완전히 제 정신은 잠시 접어두고 미친듯이 노는 것같지만 규칙을 지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판자체가 깨지니까요.

 

우리가 비싼 음식점에 가면 단순히 재료비가 비싼 음식만 있는게 아닙니다. 삽겹살집인데 일인분에 10만원하는 특별한 고기만 판다는 식이고 그것 뿐이라면 그 가게는 오래 동안 장사하는 집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죠.

 

초밥집에 가면 초밥요리사의 형식이 있습니다.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 손님접대를 이렇게 한다는 것에 이르는 초밥집 특유의 형식이 있는 것이죠. 프랑스 식당에 가면 프랑스식 식기와 인테리어에 프랑스식 예절을 따라하면서 밥을 먹도록 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도 아니고 한없이 까다롭게 구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프랑스식 예절이랄까, 방식이랄까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제약을 가하게 되지요. 초밥은 이렇게 먹는 것이고 프랑스요리는 이렇게 먹는 것이고 하는 식으로. 그래서 어떤 식당들은 드레스코드라고 해서 옷입는 것에 대한 제약도 있지 않습니까. 식당이라고 해서 단순히 음식을 먹는게 아니고 손님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도 먹는 다는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형식을 파괴한다면서 이렇든 저렇든 좋다고 하는데 과거의 형식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간단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기존의 형식을 대체할 다른 형식이 없다면 결국 그 가게는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이 있으니까 자유와 발산이 있는거거든요.”

 

“형식이 있으니까 자유와 발산이 있다?”

 

“그렇죠. 테이블 매너라던가 요리사로서의 자세라던가 손님으로서 가게 주인으로서 다 어떤 규칙을 지키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 규칙이 있으니까 그 규칙아래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겁니다. 즉 가게 주인은 즐겁고 돈도 벌 수 있게 손님은 되도록 좋은 가격에 최고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은 손님도 주인도 만족한 거래를 하는게 불가능해 지는 것이죠.

 

다시 말해 게임의 법칙이 없으면 게임도 없는 겁니다. 축구던 농구던 바둑이던 권투던 모든 게임은 게임의 법칙과 형식이 있습니다. 그 형식이 있으니까 명승부도 나오고 훌룡한 선수도 나오는 것이죠. 게임의 규칙이 제 멋대로 흔들리면 좋은 게임도 훌룡한 선수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멋진 플레이라는 것은 사실 규칙의 극한에 있는 것이거든요. 축구에서 오프사이드를 심판이 아무렇게나 판정을 내리면 멋진 오프사이드 트릭도 있을 수 없고 그걸 뚫고 내려가는 멋진 선수도 없을 겁니다. 게임의 결과는 그저 운이니까 다들 대충대충 경기를 할 것이고 결국 경기를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재미없게 되겠죠. 답답하지만 발로만 하니까 축구죠. 권투경기를 하다가 답답하다고 발로 차버리면 멋진 권투경기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겠죠. 정교한 교통체계가 없으면 출퇴근은 지옥이 될 겁니다.  

 

가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이 없으면 자유도 없고 멋진 가게도 없는 겁니다. 쓸데 없는 형식이 모두를 제약만 한다면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이 진정 거기에 아무 형식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거나 실수 입니다. 심지어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집에도 형식이 있습니다. 주인 할머니는 마치 이웃이나 가족처럼 대화를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반응을 하면 분위기가 깨지게 되죠. 양복을 입도록 되어 있는 식당에 수영복입고 가는거나 비슷하게 되는 겁니다. 그 안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마치 가족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이죠. 대개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렇게 합니다.”

 

“결국 강력한 사상이 필요한거군.”

 

“그렇죠. 물론 어떤 규칙이나 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만 대개 가게에 들어오겠지만 그것의 합리성이나 매력에 진짜로 공감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걸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규칙이나 제약이 망가지고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식이 될테죠. 그럼 망하는 겁니다. 가게안의 가게라는 생각은 굉장히 훌룡하지만 우리는 깨진 거울은 어떤 법칙이 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는 없는 겁니다.”

 

“결국 다시 그 질문이로군.”

 

“그렇죠. 그래도 전 그 질문을 생각해보고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습니다.”

 

“나도 그래. 어쨌든 중요한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니까. 그걸 잊어서는 안되지.”

 

두남자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람들에게 흔히 존재하는 한가지 문제는 그들은 너무 오랬동안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적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를 적어보면 그리고 가만히 그것을 느껴보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때로는 공포와 중독때문에 때로는 그저 그것이 습관이거나 뭔가가 당연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기 위해 매우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은 이미 깊이 숨어버렸으니까.

 

‘나는 빨갛게 익은 깍두기가 좋다. 흰 밥과 먹거나 혹은 밥을 넣은 설렁탕과 함께 먹어도 좋다. 밥과 함께 아삭아삭한 깍두기를 입에 넣고 씹으면 입안 가득히 침이 흐른다.’

 

‘나는 불꽃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촛불을 켜고 그 불꽃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장작이 타는 것을 보는 것은 더 좋다. 아궁이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잔가지나 지푸라기를 보는 것도 좋다. 타들어 가는 것들은 향기와 빛을 뿜어낸다. 불꽃은 언제나 신비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불꽃보기에 집중해 있으면 나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린 아이를 보는 것이 좋다. 사실 어린 것이라면 얼룩덜룩한 강아지든 노란 병아리든 다 좋다. 그들은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을 모른다. 그들을 보는 것은 마치 티하나 뭍지 않은 깨끗한 노트가 채워진 문구점안을 거니는 것 같다. 앞으로 거기에 씌여질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나는 책냄새가 강한 서가를 거니는 것이 좋다. 뉴욕에서 서점 반즈앤노블에 가면 바닥이 모두 나무 마루로 되어 있었다. 서가에서 책을 뽑아서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다. 책에서 나는 냄새가 진할 수록 나는 책에서 어떤 기운을 받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책이 냄새로 나를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책냄새를 계속 맡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새벽녁에 느끼는 차가운 공기가 좋다. 저멀리 해가 뜰거라는 신호가 보이는 가운데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차가운 공기가 확하고 느껴진다. 나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난다. 거리에는 이미 사람들이 다니고 차들도 드문드문 다니고 있다. 새벽에 움직이고 있으면 시간을 번 것 같고 하루가 느긋할 것같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 기쁘게 느껴진다.’

 

‘나는 우연한 만남을 좋아한다. 무작정 전철을 타고 겨우 한두정거장을 가서 옆동네로 가서 산책을 한다. 비슷비슷한 풍경이 펼쳐지다가 나는 가끔 뭔가를 발견하고 여기 이런게 있었군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은 냇물이거나 연못의 비단잉어거나 하나의 잘생긴 나무 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골목안에 숨어있는 찻집이거나 그릇가게일 수도 있고 그저 이름도 모르는 귀여운 꼬마거나 개 한마리일 수도 있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어딘가에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나와 우연히 만났다는 이유로 나의 자랑거리가 된다.’

 

‘나는 모든 종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음악영화 사랑영화 그리고 음식에 관한 영화를 특히 더 좋아한다. 이런 영화들은 나에게 활력을 준다. 보고 나면 세상이 더 신나보이거나 재미있는 곳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식과 음악이 나오는 사랑영화가 항상 최고인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집중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니까.’

 

‘나는 낡은 술집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좋다. 탁자와 벽은 여러가지 낙서와 상처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잠시 여기를 지나간 사람들의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탁자에는 먹음직한 안주와 술이 채워진다. 그리고 건배와 웃음이 오고간다. 생각만큼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술자리는 사람과 사람이 하나됨을 느끼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나는 이야기들을 만드는 것이 좋다글을 쓰는 것이 좋다.  사실 이야기는 내가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그것은 그냥 자연스레 나를 거쳐서 태어난다그렇게 태어난 이야기는 비록 그것이 하드디스크 안에 아무도 모른채 있어도비록 그것이 기괴한 모양을 가지고 있거나 절룩거리는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살아있다그것은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생명을 가진다내가 언젠가 죽어도 나의 일부는 안에서 오랜동안 남을 것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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