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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인테리어 쇼핑/음식과 가구,

식탁의 풍경

by 격암(강국진) 2015. 1. 26.

내가 지금 집에서 쓰고 있는 식탁은 의자네개와 식탁이 세트로 되어 십만원이 좀 넘게 주고 구입한 것으로, 조립식 베트남제 나무 식탁세트다. 무척 싸고 그만큼 나무가 약해서 내구성이 엉망이지만 모양은 비싼 식탁세트와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기저기 상처가 난 표면위에 비닐을 덮기도 하면서 그걸 써왔다. 나에게는 뭐 아름답지는 않은 식탁 정도고 아내에게는 대단한 미움을 받는 가구다. 우리의 궁핍한 살림을 대표하는 가구랄까. 지난 16년간의 우리 살림이라는게 여기서 잠시 머물거야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해외 이사가 어려운 가구는 사지 않는다는 거였고 중고를 쓰거나 아주 싼 것을 사서 쓰다가 버린다는 것이 우리 원칙이었다. 그런 이유로 아내에게 미움받으면서도 그 식탁은 우리집에서 그럭저럭 10년가까이를 버텼다. 밥은 먹을 수 있으니까. 아내에게는 애석할지 모르지만 상처가 나고 여기저기가 삐걱거렸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은 가구였으니까. 아내는 아직 쓸수 있는 물건 버리기는 절대 못한다. 


나는 최근에 식탁을 많이 구경했다. 드디어 식탁을, 그것도 제대로 된 식탁을 사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구구경하기를 원래 좋아하고 아내는 구경만 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사서 쓴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는지 열심히 보러다녔다. 


그런데 식탁을 많이,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많이 보게되었다. 일본가게들에서도 보고 한국 가구센터에서도 보고 인터넷에서도 봤다. 그렇게 된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재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식탁을 보면 볼수록 식탁이란게 뭔지 나에게 아주 애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식탁을 사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혹은 아직 살림을 마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위해 식탁에 대한 몇가지 정보를 말해주도록하자. 식탁은 당연히 의자가 필요하다. 통상 식탁에 의자네개가 붙은 것을 식탁세트로 부른다. 그런데 이 식탁세트는 대개 참아줄만하다 싶은 정도면 50만원쯤 하고 좀 예쁘다 좋다 싶으면 백만원에 근접한다. 당신이 만약 좀 오래 쓰고 싶은 좋은 가구 운운하기 시작하면 백만원을 넘기기란 아주 쉬운 일이다. 


이렇게 식탁세트가 비싸지는데에는 나로서는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실은 식탁세트에서 의자의 가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사물을 그저 덩치의 개념에서 접근 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커다란 식탁에 비해 작은 의자들은 비록 그것이 4개쯤 될지라도 큰 가격이 안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개의 경우 의자 4개의 가격이 식탁보다 더 비싸다. 때로는 훨씬 더 비싸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해 보면 뻔한 이유를 가지고있다. 


테이블이란 누구나 보면 알듯이 대개 지극히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의자가 훨씬 더 복잡하다. 게다가 기능적으로도 의자가 탁자보다 훨씬 어려운 가구다. 탁자는 기본적으로 뭔가를 올려놓았는데 그게 쏟아지지 않으면 된다. 그저 평평하게 안정감이 있으면 그만이다. 접시나 컵이 앉아 있기 불편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자는 사람몸에 꼭 맞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앞뒤로 당기기 어렵지 않은가 그런가에 따라 사용감이 천차만별이다. 의자는 정말 앉아보기 전에는 그 진가를 알 수가 없다. 허접하고 단순한 의자가 매우 편한때가 있는가 하면 보기에는 매우 좋아보이는 안락의자 같은 것이 앉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정말 좋은 의자는 앉으면 천국같고 일어나기가 싫다. 의자는 잘만들기 어렵다. 그러니까 탁자의 상판과 다리의 재질을 어떤 것을 쓰는가같은 문제가 가격의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의자 4개가 탁자의 가격을 훨씬 넘어가는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식탁세트라는게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가볍게 선택하고 쓰다가 마음에 안들면 휙버리고 하나 더 사지라는 식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탁자들을 보러다니니까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은 마음에 안들고 마음에 좀 들었다 싶은 것도 그냥 참아줄만 하다는 것이지 도대체 이걸 왜 그 비싼 돈을 주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주저하는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식탁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있었다. 식탁이란 무엇인가? 식탁이란 밥을 먹는 탁자라고 답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그저 단순히 음식을 놓고 먹는다는 것이 식탁의 기능의 전부라면 그건 정말 싸구려 탁자를 가져다 놓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기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집에서는 종종 탁자에서 밥을 안먹고 티비 앞에 대충 음식을 가져다 놓고 식사를 할때도있다. 작은 거실탁자같은 것이 있으면 더 좋고 아니면 그냥 바닥에 놓고 쟁반위에서 먹어도 좀 불편하고 좀 보기 흉할뿐이지 밥을 못먹지는 않는다. 


그런데 식탁이란 집에서 상당한 공간을 차지 한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싸기도 무척 비싸다. 공간자체도 큰 돈이란 걸 나는 언급해야 겠다. 집을 5평넓히려면 평당천만원이 넘는 아파트에서는 5천만원을 더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비싼 것이 현대 주거에서의 공간인데 그걸 비싼 돈 들여서 채우고 고작해야 음식을 그 위에 올려다 놓은 것으로 그 기능이 다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아마도 이글을 읽는 사람들은 뭐가 석연치가 않다는 거야. 그게 원래 그런거지. 당연한거 아냐라고 할지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도대체 뭐가 석연치 않았는지 알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나는 정답을 찾았는지는 모르나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았다. 그 답은 적어도 뭐가 나에게 석연치 않았는가를 분명히 해준다. 


식탁을 보고 또 보면서 얼굴을 펴지 못하던 나는 문득 두가지 사실을 생각해 냈다. 하나는 나도 그렇지만 우리식구들은 다들 카페에 가서 시간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는 정작 집에 있는 식탁에서 그렇게 시간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것은 심지어 백만원가까이 주고 식탁세트를 사도 그럴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하! 하고 나는 깨달았다. 가정용 식탁세트라는 것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 정체성이 뭔지 알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카페의 탁자와 의자는 그 주요목적이 그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고 거기에 앉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기에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것에 있다. 그래야 손님이 올테니까. 그런데 가정용 식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만약 커다란 공간을 가진 카페가 있다고 하자. 거기에 가정용 식탁세트로 쭉 채워서 영업을 한다고 하면 손님이 올 것같은가?


물론 카페의 탁자와 의자는 대개 싸구려가 아니다. 그러나 차이는 단지 가격의 차이가 아니다. 가정용 식탁세트도 백만원가까이 하는 것은 흔하다. 카페 탁자의자 세트도 그정도 가격보다 싼 것은 많다. 내가 보기엔 가정용 식탁세트는 일종의 서구 역사의 잔재가 이상하게 남은 경우인 것같다. 


유럽의 귀족들은 당연히 부엌과 다이닝룸을 따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시중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근엄한 테이블에 앉아서 권위를 자랑하면서 식사를 했을 것이다. 때로는 중요한 손님과 함께. 


그리고 세월은 흘렀다. 유럽에서도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이제 보통의 시민이 부엌과 다이닝룸을 따로 가지는 경우는 없다. 하인도 없고 뭐 그저 몇십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근엄한 권위 자랑해 봐야 뭐하겠는가. 그런데 여전히 부엌 한구석에 놓여지는 식탁에는 근엄한 이미지가 남아 있다. 근엄함을 자랑해 봐야 근엄해 지지도 않는데. 그런 와중에  한가지가 잊혀진다. 바로 내가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나스스로가 그식탁에 앉기가 싫다. 


장사를 하려고 하는 카페는 다른 발상을 가지고 테이블과 의자를 발전시켜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바로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페에 가면 나도 집에서 이렇게 하고 살고 싶다고 종종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식탁세트를 사러가면 싸도 오십만원 비싸면 백만원에 육박하거나 그것을 넘기는 식탁세트를 사면서 그저 '평범하고 보통의' 식탁세트를 산다. 그런 식탁을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어쩌면 그분은 나와는 달리 근엄한 것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집이 아주 넓어서 근엄한 분위기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래놓고 대개의 경우 식탁에는 밥먹을 때 잠깐을 제외하면 앉지 않는다는것이다. 주로 거실의 소파위에서 머문다. 소파는 있고 싶은 공간인데 식탁은 그저 어쩔수 없이 있는 공간이니까.


아내가 발견한 것으로 확실치는 않지만 가정용식탁과 카페 테이블은 높이도 다르다고 한다. 편한 의자에서는 수직으로 몸을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식탁의 높이가 높으면 자연스레 식탁에 바짝 붙어서 몸을 수직으로 세운 긴장한 자세가 된다. 누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면서 긴장해서 몸을 바짝 세우고 싶어 하는가? 적어도 나는 아니다.  


아내와 나는 카페 인테리어 하는 사이트로 방향을 전환했다. 나는 그곳의 탁자나 의자를 보고서야 내가 석연치않아했던 것이 뭔지를 이해했다. 나는 이왕 몇십만원씩 써야할 거라면 그것이 있고 싶은 공간을 만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백만원가까이 돈을 들여서 사도 그저 어쩔수 없이 앉는 공간이 되는 것은 돈이 아깝다고 내 마음 밑에서 나 자신이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결국 식탁도 핵심은 식탁보다 오히려 의자로군. 앉는 자리가 편해야 거기에 오래 앉고 싶어지니까. 우리는 잠정적으로 적어도 한쪽은 2인용 소파벤치를 놓기로 했다. 다른 쪽 의자도 통상의 가정용 식탁에 따라나오는 의자보다 훨씬 편한 의자로 하기로 했다. 반드시 식탁이란게 있어야 하고 십만원정도로 해결하는 싸구려를 놓을 것이 아니라면 아예 앉으면 일어나기 싫은 카페 인테리어로 하자고 생각했다. 


이런 우리의 결정이 정말로 옳은가는 취향의 문제이며 실천하는 가운데 만드는 작은 선택이 어떤 것이 되는가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한가지는 맞다고 생각한다. 마치 옷은 런닝셔츠만 입어도 넥타이를 매겠다는 것처럼 딱딱하게 권위의 흔적이 남은 식탁세트는 그 기능과 의미에 대해 고민이 없이 그저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니까 하는 식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식탁세트란게 왜 이렇게 생겨야 하고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가는 생각없이 그냥 쓰고 있는거 아닐까. 매일같이 높은 식탁앞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면서 자기가 그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거 아닐까. 마치 왜 넥타이는 매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듯이 우리 역사도 아닌 남의 나라의 역사의 흔적을 고수하고 있는거 아닐까. 터무니없이 비싼 집값때문에 너무나 비싼 것이된 주거공간을 그렇게 해서 거기에 가기 싫은 장소를 만들어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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