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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프로그램과 인테리어 프로그램

by 격암(강국진) 2016. 1. 16.

요즘 미식과 인테리어 관련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전에도 그런 프로그램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요즘은 눈에 더 잘띈다. 예를 들어 JTBC의 헌집 줄께 새집다오나 TVn의 내방의 품격같은 것들이 인테리어 프로그램들인데 자주 보지는 않지만 TV를 틀면 자주 보이니 재방송도 많이 하는 인기프로그램이 된 것같다. 나는 먹는 것도 인테리어도 다 관심이 있어서 그런 방송들을 가끔 보곤 한다.


그렇게 미식과 인테리어 프로그램을 나란히 보다보니 나는 묘한 대비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비교하자면 미식 프로그램 혹은 요리 프로그램이 훨씬 더 인기다. 내 맘대로 꼽아보자면 요리 프로그램의 대표적 스타는 백종원과 최현석이나 이연복같은 요리사이고 요리 평론계의 스타는 황교익이다. 백종원은 쉬운 요리를 주제로 한다. 요리가 쉽다는 게 아니라 요리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황교익은 요리에 평론을 더해서 그 안에 지식과 이데올로기를 담는다. 


누가 진정한 스타냐는 것은 적어도 이글의 문맥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적하려는 것은 음식분야에서는 제작과 평론 모두에서 뚜렷한 스타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내의 인테리어 프로그램 분야에서는 그런 스타의 부재가 안타깝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백종원과 황교익을 좋은 사람들로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개인적으로 백종원의 음식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으며 황교익의 주장이 지나치거나 편협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미식분야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말하자면 그 분야에 할 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식생활 문화에 새바람을 불어넣는달까. 틀리건 맞건 주장이 있는 것이다. 하나의 주장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반대 주장을 만들어 낸다. 주장이 없으면 반대도 없고 생각도 없다. 


내가 보는 케이블 방송에는 수요미식회라는 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첫회부터 계속 반복해서 방송하는 채널이 있다. 여기에 황교익이 나오는데 초기의 수요미식회는 좋지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전문성이나 진지함을 갖춘 사람들과 예능감각으로 미식프로그램을 이끌려고 하는 사람들이 충돌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즉 진짜로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은근히 밀리는 형국이랄까. 그러다가 출연자가 개편되었는데 누가 들어왔는가 이상으로 누가 남았는가가 중요하다. 황교익과 홍신애가 남았다. 그래서 수요미식회는 좀 더 먹거리에 대해 진지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나는 그게 좋았다.


인테리어 관련 프로그램에서 내가 느끼는 공백은 거기에 철학이나 스타일에 대한 주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종원처럼 인테리어 이렇게만 하면 쉽고 싸게 할 수 있다고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전문가 스타가 등장한 것도 아니다. 내방의 품격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전에 한번은 독신남들이 자기의 작은 집들을 꾸민 것을 보여주고 전문가들을 불러다가 그 집을 고치는데 얼마가 들겠는가하고 말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은 두명의 전문가가 비전문가인 개인들이 자기 방을 꾸민 것을 보고 감탄하고 다시 그 방을 얼마에 고쳤는가를 듣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그 두명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기가 뭘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가 궁금했다. 전문가란 그 분야에서 최고의 질을 추구하던가 아니면 최고로 저렴하면서도 좋은 집을 꾸밀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닌가? 그게 아니면 그 사람들은 무력한 시민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전문가라는 직함을 딴 것인가? 경험많은 전문가가 하려고만 들면 비경험자인 일반인보다 더 싸면서도 더 멋지게 집을 꾸밀 수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더 싸게도 할 수 있는 것을 고민없이 그냥 해온 것인가? 전문가를 넘어서는 일반인이 존재한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 프로그램은 동시에 그리고 반대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무능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같았다. 백종원이 나와서 계속 일반인들이 그 앞에서 요리를 만드는 것을 보고 '어라, 이렇게 해도 정말 쉽게 요리가 되는군요!'하고 외치는 프로그램이랄까.


스타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특정한 누구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나는 동시에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대해 세상에는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예를 들어 멋진 집꾸미기라고 보여주는 방송은 대부분 집을 가득히 여러가지 예쁜 소품들로 채워놓은 집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건축으로 말하자면 모더니즘이 출현하기 전의 19세기식 건축들을 소개하는 듯한 느낌이다. 르네상스식, 그리스식, 프랑스 왕실이나 독일 성을 흉내낸 건축 같은 것 말이다. 


아름다움은 취향에 대한 것이라 어떤 것을 좋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단점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예쁜 집들은 기능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과는 완전 반대인 경우이기 때문에 공간을 차지하고 관리가 힘들다. 실제로 성처럼 넓은 집이라면 또 모르지만 작은 집 때로는 열평도 안되는 원룸을 여러가지 예쁜 소품들로 빼곡히 채워놓은 것을 보면 나는 왜 저집에 그렇게 사람들이 감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예쁘고 안예쁘고를 떠나서 실제로 그런 집에 살면 관리하고 청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를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집이 복잡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일년쯤 지나서 저기에 먼지가 앉으면 흉해지거나 청소를 무지 열심히 해야 하거나 저걸 다 떼어서 가져다 버려야 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것이 항상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텃밭을 하는 것은 농사일에 대한 효율로 보면 말이 안된다. 마찬가지로 집을 자수로 채워 놓고 그걸 관리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사람도 세상에는 있을 것이며 거기에 잘못된 점은 없다. 다만 티비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거의 전부 다인 것같다. 하나는 인테리어 따위 완전 포기하고 엉망으로 사는 사람이고 또하나는 바로 여러가지 물건으로 단순히 집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다. 


누구도 모든 것을 창의적으로만 할 수 없으며 다 다른 사람을 어느 정도 복제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정도가 있을 터인데 국내에서의 집꾸미기는 주체가 없고 그저 남을 복사하기만 바쁜 것같다. 국내의 집에는 평론할 것이 없고 대중에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건축가나 인테리어 전문가는 없거나 드문 것같다. 


나는 건축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분들도 열악한 환경의 피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이 지어놓은 아파트에서만 살려고 하고, 집의 실질적 기능은 거의 망각되고 그저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에만 신경쓰는 나라에서 주거문화가 발달할 리가 없지 않는가. 나는 다만 우연히 미식 프로그램과 인테리어 프로그램을 같이 보면서 국내 주거문화의 후진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그 후진성은 스타의 부재라는 현실로 분명히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의식주가 인간의 기본적 요구라고 말한다. 그 말은 의식주가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를 잘 반영한다는 말과도 같다. 의식주에 대한 문화가 없다는 말은 그 나라의 사람들은 기계나 동물처럼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반드시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간디처럼 천쪼가리 하나 두르고 물레를 돌리면서 가구도 별로 없는 집에서 수도승처럼 살아도 그것 자체가 의식주의 문화고 주장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무엇이 소중한가를 고민해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점심은 뉴욕식 브런치로 먹고 저녁은 프랑식 정찬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사람에게 반드시 식문화가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통일성을 가진 삶에 대한 자기 주장과 선택이다. 우리나라 주거 문화가 빈약한 만큼이 바로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것에서 떨어져 있는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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