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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6. 4. 6.

총선이 다음 주로 다가 왔다. 나는 누구에게 투표할까를 이미 선택했지만 사실 솔직히 말해 그 투표는 누군가에게 많은 희망을 건다기 보다는 그 사람말고 다른 후보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선택한다는 것에 가깝다.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정말 희망을 주는 분위기는 매우 드문 것같다. 


정치는 이념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는 이념이라고 하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에 대한 반감때문에 광신도나 테러리스트같은 위험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치는 이념에 대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서로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은 공동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질서는 지금 당장의 이익이나 어떤 특정한 개인의 이익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결국은 나중에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정치란 그 본질이 사람들이 가지는 당장의 욕망을 자제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들이 바로 이념들이다. 


전쟁이 나면 기꺼이 우리가 총들고 나가서 적군과 싸워야 하는 것은 국가라는 테두리가 나 개인의 목숨보다도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를 가지고 논쟁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우리 민족이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테두리가,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과거가 현재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돈을 기부하는 것은 자식에게 비싼 건물이나 차를 사주는 것보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어떤 쾌락보다 그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월급 많이 요구하지 말고 회사를 키우는데 희생적으로 노력하면 나라가 부자가 되어 우리 모두가 잘살게 된다는 것도 하나의 이념이다. 


정치란 결국 어떤 이념때문에 사람들이 기꺼이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상호간에 믿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믿음과 신용을 창조하면 그것이 모두를 더 행복하게 살게 한다. 반면에 믿음과 신용이 모두 파괴되어지면 인간은 침팬지와 비슷하게 혹은 그보다도 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 


요즘은 세상이 참 혼란스럽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모두를 위한 이념이 되기에 부족하다. 심지어 모두를 위한 이념따위는 파시즘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그걸 경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이념을 내려놓아버리면 결국 남는 것은 짐승의 이념 다시 말해 그저 말초적 쾌락과 한정없는 소비에 대한 요구뿐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판은 개나 돼지가 밥그릇을 놓고 흉한 싸움을 하는 것밖에는 안된다. 물론 인간은 욕망을 가졌으므로 정치판이 어느 정도 그렇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이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므로 세상은 약간이라도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치란 결코 내 주머니에 빵을 더 집어넣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남의 주머니에 빵을 채워주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빵따위는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와서 우리가 더 잘살자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누군가를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은 전쟁이지 정치가 아니다. 정치판이란 본래 짐승들의 세계라고 단정지어 버린다면 그것은 애초에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지 정치에 대해 뭔가를 아는 것이 아니다. 실은 정치를 그 시작부터 포기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처럼 정치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전제로 할 때 바람직한 선거분위기란 우리가 뭘 더 희생해서 부족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람들의 아픔을 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되어야 한다. 너도 나도 우리 동네에 다리 하나 더 놓아달라고 하고 우리 동네로 회사를 옮겨 우리 동네만 잘살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금새 어떤 사람들은 그걸 낭만적 공상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돌아보면 안 좋은 조건을 아주 많이 가진 한국이 지금 이 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것은 결국 한국인들이 그 낭만적 공상같은 것을 현실에서 실천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공상이 아니다. 


한국에 희망이 되어온 것은 우리가 통상 정이라고 부르는 한국인의 정서다. 정은 이념은 아니다. 적어도 정치적 이념이 되기에는 구체성이 너무 적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정이 있어서 나라가 망할 것같은데도 결국은 어찌저찌 굴러간다. 민주주의도 그럭저럭 굴러간다. 한숨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모두 끊어버리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는 정이란 단순한 것이다. 길가에 애가 울고 있으면 불쌍하고 누군가가 두들겨 맞아서 피흘리고 있으면 안쓰러워하는 것이다. 배고파서 도둑질하고 있는 인간을 보면 밥이라도 한끼 사주고 싶고 자식을 삼킨 바다앞에서 울고 있는 이웃을 보면 뭐라도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 한국인의 정이다. 자식이 굶고 있고, 없어서 못배우고, 없어서 남에게 무시당하고 있으면 부모가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것이 부모의 정이고 부모가 아프고 외로우면 자식 눈에서 눈물이 펑펑 나는 것이 자식의 정이다. 때로는 갑질을 해서 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한국인이지만 갑질당하는 사람을 보면 같이 분노하고 위로해 주는 것도 한국인이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정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의 정이 아주 당연한 것은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87년 항쟁때나 탄핵반대 촛불집회때처럼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참여해 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의 정이 깊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고 한국이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사는 것은 그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말했던 것이 낭만적 공상이라면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현실이 아니라 공상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 정이란 결국 한국인의 문화전통이다. 한반도에서 오랜 동안 살아오면서 생겨난 상식이 한국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정이란게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사는 것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우리의 조상님들 덕이다. 


이렇다고 할 때 선거판이란 정이 넘쳐야 하고 우리의 반성이 쏟아져 나와야 하는 무대요,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나오는 후보들은 누구보다도 더 그래야 할터인데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참 짐승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모르겠다. 너도 나도 모두의 욕망을 자극하고 부풀리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같다. 그것은 내가 언뜻 보았기 때문에 착각한 것일까? 


이것이야 말로 낭만적 꿈이겠지만 선거라는 무대를 통해서 참 한국에 인물이 많고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 많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아이들에게 정치인들을 보라고 하면서 사회에는 정의가 있고 꿈을 꾸면 그게 이뤄진다고 가르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안되는 것이 물론 입후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표를 가진 국민의 잘못이기도 하고 이 땅에서 태어나 공부하라고 후원도 많이 받았으면서 제대로 된 이념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잘못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이 꿈과 다르다고 해도 뭐가 정상인가를 잊어서는 안된다. 죽끓이는데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서 죽이 쓰레기인 것이 원래 당연한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이고 감수성을 가질 때 으로 선거는 본래의 의미에 가까워지고 조금 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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