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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의 아쉬움

by 격암(강국진) 2016. 6. 6.

외국에서 자라난 아이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은 역사다. 이런 저런 상식들이 없어서 한글을 창제한 것은 세종대왕이다같은 사실도 새로 암기해야 하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서 성장한 중학교 둘째 아이의 역사 공부를 작년부터 도와주곤 했는데 역사를 도와줄 때마다 내 입에서는 이건 말도 안된다는 말이 나오곤 한다. 그리고 나서 대안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이건 말도 안된다는 말이 나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이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의 근원적 문제라는 게 있을까를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역사교육이 가지는 문제의 근원은 역사에 대해 어설프게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에 있는 것같다.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책은 가치판단과 의미부분을 최소화하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사실들을 두서없이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책은 백과사전처럼 지루해지고 공부하기는 끝도 없이 지겨운 과목이 된다. 


예를 들어 중학생 아이가 고려시대 무신정권시기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외운다던가 조선시대에 나온 농서, 지리서, 역사서들의 이름들을 줄줄이 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런 것들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지식이 이미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이름들이나 사실들은 정말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당장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하는 보물단지 같은 것들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지식들은 고금의 가장 재미있는 책들의 이름들을 나열하는 것과 같다. 재미있고 가치있는 책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 책들의 일부라도 읽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지 모른다. 이 재미있는 것들을 너는 아직 안 읽었으니 나는 네가 부럽다. 너는 이렇게 재미있는 것들에 대한 소개를 한권도 아니고 수없이 많이 들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행운아인가. 


그러나 아이에게 독서교육을 하면서 책을 읽게 하는게 아니라 책의 제목을 만권이나 이만권쯤 나열하면서 계속 외우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교육이 성공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독서교육은 독서에 공포를 가지게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독서따위는 절대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중고등학교의 역사교육이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이것이 아닌가 싶다. 학생들로 하여금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이런 저런 것들을 외우게 하지만 배운 걸 생각해 보고 싶게 만들기는 커녕 시험만 끝나면 절대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만드는 교육이 아닐까?


내 생각에 역사 교육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훨씬 깊이와 중심을 가지고 가르쳐야 하며 초중고에서 모두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 깊이와 중심을 가지고 가르친다는 것은 이것이다. 애초에 길고 긴 역사의 짧은 요약을 가르치려고 하지말고 어떤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만 가르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후까지의 이야기를 중학교나 고등학교 기간에 전부 다뤄야 하는가. 중학교의 역사책은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서 아예 세계사까지 들어 있다. 역사교육에 있어서 이런 선택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가지 가능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엄청나게 넓은 분야를 엄청나게 빠르고 단순하게 볼 때 생기는 왜곡은 많은 분야를 그저 각자 공부하게 놔두고 한 부분만을 깊이 있게 가르칠 때 생기는 왜곡의 위험보다 더 크면 크지 작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배움으로써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될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훈민정음의 창제이야기나 세종의 이야기만 1년내내 배울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그 교육은 무미건조한 역사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즐겨보는 대하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가지게 될 것이고 인간이 들여다보이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의 역사교육보다는 차라리 뿌리깊은 나무나 육룡이 나르샤같은 오락용 대하드라마를 보는게 역사공부에 더 도움이 될 것같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1년내내 세종이나 훈민정음만 배우면 고조선이니 고려니 삼국시대는 어떻게 하는가 같은 질문이 있을 것이다. 그건 또 다른 시간에 배우면 될 것이다. 초중고과정이 12년인데 몇개의 주제들만 배워도 한국의 역사에 대해 대충 배우게 될 것이며 다 배우지 못한다면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공부하라고 하면 될 것이다. 왜 꼭 1-2년이라는 기간동안 구석기 신석기에서 시작해서 이승만정권까지 배우고 그걸 다시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나. 그렇게 가르쳐봐야 결국 배우게 되는 것은 인간없는 역사, 의미도 모르는 이름들만 나열된 역사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교육이 이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역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캐캐묵은 것인데다가 위험도 아주 크다. 우리는 사실 과거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렇기는 커녕 구멍이 커도 엄청크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박정희나 김구 혹은 김대중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세종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어떤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면 그나마 아는것을 모두 모으고 그걸 서로 연결해서 입체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양을 다루기 위해 세종에 대해 세줄 세조에 대해 두줄하는 식으로 넘어가면서 이 세줄과 이 두줄은 어디까지나 사실들이니 우리는 객관적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무슨 객관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교육은 깊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배울 기회도 주지 않는다. 즉 역사란 이런 저런 사실들을 이런 저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기술한 시도들이라는 것이 느끼고 배우기 보다는 누군가가 적어놓은 것을 성스러운 진리처럼 외우게만 만든다. 이것이 역사교육이 해야할 일일까. 


이때문에 중학교 역사교육은 특히 엉망이 된다. 왜냐면 중학교 역사책이란 말하자면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사실들을 더 많이 누락시킨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범위는 똑같다. 그러니 그 내용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보다 더더욱 비현실적이다. 그들은 왕건도 이순신도 서희도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고는 도저히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도교가 뭔지 선종이 뭔지 한줄정도의 설명으로 넘어가는 식인데 아이들이 다들 성철스님이나 지눌스님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현재의 시스템속에서는 역사선생님도 그걸 설명해 줄 시간이 없을 것이다. 이런 역사교육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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