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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고은의 바람의 사상을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6. 8. 26.

고은은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했다가 다시 환속한 시인이다. 1958편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을 발표해서 등단했다고 한다. 그는 1974년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참여하는 시인으로 변신했다고 말해지는데 이 책 바람의 사상은 바로 그가 변하는 시기인 1973년부터 1977년까지의 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동감이라는 영화가 있다. 김하늘과 유지태가 주연한 이 영화에서 현재를 사는 유지태는 낡은 무선기를 통해 1979년의 김하늘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동감의 유지태와 김하늘이 떠올랐다. 1973년에 40이 된 고은은 1970년에 분신 자살한 노동자 전태일을 이야기한다. 감옥에 있는 김지하를 이야기하고 1975년에 죽은 서울대 농대 학생 김상진을 이야기한다. 인혁당 사건으로 죽은 8명은 1975년 사형판결이 내려진 후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다. 책속에 있는 고은의 세계에서는 육영수가 총맞아 죽고 미국에서는 카터 대통령이 당선되고 영일만에서 기름이 나온다고 대통령 박정희와 온 나라가 흥분한다. 대학에서는 학도호국단이 생긴다.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육사에 들어간다고 하니 너도 나도 미래의 지도자가 될 그와 인연을 맺겠다고 육사에 지원하여 육사지원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다.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써내려간 일기 속에서 1970년대의 하루 하루는 가고 있었다. 그걸 읽다보면 나는 문득 문득 미래를 말해 줄 수 없는 내가 안타까워 진다. 그때의 고은은 김지하가 8년 옥살이를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변절한 지식인이라는 말을 들을 것을 몰랐다. 그때의 고은은 인혁당 사건에 대해 2007년이나 되야 무죄판결이 다시 내려지는 것을 몰랐다. 그때의 고은은 박정희가 1979년이면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몰랐다. 나중에 서정주가 전두환 찬양을 하게 되고 그것때문에 서정주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될 줄을 몰랐다. 고은은 천관우가 변절자 이야기 듣다가 학계와 언론계에서 거의 매장당하고 1991년이면 죽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 일기는 어떻게 봐도 고은을 위대한 인간으로 보이게 만드는 책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나 대단한 사람 아니고 찌질한 인간이라는 고백에 가까운 책이다. 고은은 일기속에서 대단한 대접을 받는 자신 그리고 자기에 대해 과대망상증적 자부심을 가지는 자신을 말하는 동시에 자신이 모자란 사람이며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다만 위대한 시인 운운하기 전에 1970년대를 살아가는 40대의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비애가 솔직하게 그려진다. 일기속의 고은은 내가 감옥가야 겠다, 나는 타협하지 않는다라고 거듭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은은 또 때로는 정부의 협박이 무섭다고 솔직히 말한다. 당시의 고은은 감시하는 사람들과 거의 친구처럼 지낼 정도로 끝없이 감시받고 도청받았다. 그리고 협박전화를 받는 일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민방위 훈련장소에 나가보면 연단에 올라선 강사가 고은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고 고은을 빨갱이로 욕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감시가 계속되어 생활이 되다보니 나중에는 감시하러 온 경찰이 자기도 경찰하기 싫다고 말하는 일도 있는가 하면 고은이 이따금 말단 공무원이 힘들겠다면서 밥먹이고 차비줘서 보낼 정도다. 


이런 고은의 모습을 보면 고은은 단지 두가지를 지키고 싶을 따름이었던 것같다. 하나는 한국에 살고 싶다는것이었다. 그는 미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한 문인친구로 부터 미국이 천국이라는 말을 듣는다. 자기들을 따라 유럽에 가자는 제안처럼 유럽에 가라는 유혹도 많이 듣는다. 가기만하면 고은은 얼마든지 근심걱정을 잊고 지낼 수 있으며 사실 고은이 한국에서 정치적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정치가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에 협력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김대중 같은 정치인이 만나자고 하는 것을 뿌리치기도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싫던 좋던 한국에 뿌리박고 그 삶으로 문학을 하는 것이었다. 또하나는 상식을 부정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했을 때 죄없는 사람 잡아가고 고문하고 죽이면 안되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말했을 때 공산당 아닌 사람 빨갱이라고 하면 안되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말했을 때 신문잡지 다 검열해서 세상에 자기 마음에 드는 소리만 퍼지게 하는 정부는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큰 욕심이 아닌 것같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리고 역사를 보면 사람이 그저 평범하게 산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는 것같다. 상식을 부정해서 얻을 이익의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한국은 끊임없이 고은을 감시하고 외국으로 가라고 유혹하고 아니면 제주도로 가거나 깊은 산속으로 숨으라고 말한다. 1970년대의 한국은 집회의 자유도 언론의 자유도 없다. 40대의 고은은 그것이 괴롭다. 언제가 되면 이 시대가 끝날까를 거듭 고민한다. 그런 모습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보다보면 어느 새 책이 끝나 버린다. 


고은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리고 고은 스스로도 자기 일기를 다시 읽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같은 것으로 학생들이 죽고 진실은 쉽게 은폐되고 그걸 항의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소리를 듣는 것에 대해 참 지겹다는 생각을 할법도 하다. 그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을 하고 있는 2016년의 현재가 문득 문득 판타지처럼 황당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책속의 여러 인물들이 이미 죽었다. 김대중도 리영희도 문익환도 함석헌도 법정도 천관우도 박경리도 김동리도 서정주도 죽고 없다. 상처 많은 세월이었다. 


고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적어도 고은에 대해 한가지는 고맙다. 40대의 고은이 그 이후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김지하나 천관우처럼 혹은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건 상처가 된다. 사람이 생각이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청년기를 넘어 장년기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생각이 바뀌었으면 그냥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생각은 옳은지 어떻게 아는가. 그러면서 뭘 공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가. 청년기에는 빨갱이고 나중에는 반공주의자로 날뛰는 꼴은 옳지 않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다고? 그건 비루하다. 그래서 그꼴을 보는 것은 우울하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고마울 수 밖에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1970년대 이야기같은 것은 전혀 모르기 쉽다. 그것은 조선시대처럼 역사가 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당대의 일이라기엔 너무 먼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중한 책이다. 이 책속의 1970년대가 완벽히 묘사되어서가 아니라 이 책은 관념화되고 요약되어진 1970년대가 아니라 날 것으로의 1970년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료다. 이때로 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한국도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은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 그러나 대단한 사상가나 철학자가 아니라 단지 상식을 계속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이땅에서 계속 산다면 언젠가는 이 책속의 풍경이 농담처럼 낯설게 보이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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