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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와코시를 소개합니다 2 : 와코시의 가게들

by 격암(강국진) 2017. 2. 21.

와코시를 소개합니다 2 : 와코시의 가게들

 

일본은 지하철 역앞에 상권이 발달하곤 한다. 와코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와코역앞에는 각종 술집과 음식점들이 있다. 한국도 요즘은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많지만 일본은 사실 예전부터 이미 지금의 한국 이상으로 프랜차이즈 세상이었다. 그래서 역앞의 풍경은 비슷한 곳이 많다. 말하자면 대중 레스토랑인 로얄호스트나 술집인 와타민 혹은 커피 체인점인 도토루나 덮밥전문점 요시노야같은 가게들로 역앞마다 채워져있는 것이다.  



로얄호스트


일본의 프랜차이즈 가게들은 그 역사가 길다. 도토루만 해도 1980년에 1호점을 낸 가게라고 하니까 이미 40년가까이 된 것인데 로얄호스트도 1971년에 시작된 것이고 요시노야는 1899년에 시작된 것이다. 일본의 체인점들은 이미 일본인들의 추억의 일부가 되어서 어릴 때 로얄호스트나 요시노야의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가 커서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같은 자리에 있는 같은 식당에 가는 식이 되었다.


그럼 일본에서는 개인들이 하는 가게들은 모두 망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역바로 앞에는 그런 가게들이 드물지만 역에서 좀 떨어진 곳이나 여기저기 골목 사이에는 개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들이 남아서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개 개인들이 하는 가게는 프랜차이즈 가게에 비해 메뉴도 작을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낡았다. 가격도 더 비쌀 뿐만 아니라 인력도 적게 쓰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가게보다 서비스가 더 늦은 경우가 많다. 실내장식에 투자하거나 더 직원을 많이 쓰거나 가격경쟁을 하는 것으로 프랜차이즈 가게들과 경쟁했던 개인 가게들은 경쟁에 져서 사라졌거나 그 자신이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요시노야


그럼 개인 운영가게로 살아남은 가게들의 비결은 뭘까. 그 핵심에는 그 지역 고객과의 융합이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와코시에는 내가 종종 가던 키트리라고 하는 커피숍이 있다. 허연 머리에 두건을 두른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주는 이 커피숍은 커피 한잔에 5백엔이나 6백엔은 했었다. 백엔이 대충 천원이니까 바리스타의 섬세한 서비스에 대한 댓가로 치루지 못할 가격은 아니지만 사실 나름대로 분위기도 맛도 나쁘지 않은 도토루에 가면 작은 커피는 190엔에 마실 수 있으니 가격적으로는 전혀 경쟁이 안된다. 그런데 이 커피숍에 가서 내가 발견한 것은 이 할아버지 바리스타는 커피를 팔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 상담료로 커피값을 받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객과 대화를 많이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단골들도 서로를 잘 안다.



키트리


이것이 자영업자 가게들과 프랜차이즈 가게와의 확실한 차별점이다. 알바생과 고객이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다. 키트리의 단골들은 자기집처럼 와서 주인이나 다른 단골들과 많이 떠들다가 간다. 가게가 단골들로 이뤄진 동아리방같은 느낌이랄까. 한국도 요즘은 혼술, 혼밥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일본도 혼자인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들에게 단골집이란 단순히 커피나 음식을 마시고 먹는 곳이 아니라 편안하게 사회적 관계를 가지는 장소인 것이다. 조금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면때문에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트직원에게 단골은 아무 의미가 없지만 재래시장에서는 주인과 직접 거래하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숍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의 우동집이며 바도 개인들이 하는 가게들은 단골손님과의 사교적 접촉이 매우 좋았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그렇기 때문에 프랜차이즈가 아닌데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프랜차이즈 가게에는 심각한 약점이 하나있다. 그것은 어디나 있기때문에 그 지역의 얼굴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와코시를 기억하려고 할 때 거기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에는 내가 산책하던 길과 내가 자주 다니던 가게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어떤 지역에 오래된 가게가 있고 오래된 길이 있다는 것은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기 위한 선결조건이 아닐까하는 생각조차 든다. 언젠가 와코시에 다시 가 보았을 때 거기에 내가 기억하는 길이 없고 내가 알던 가게가 하나도 없다면 설사 와코시가 말도 안되게 멋진 곳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섭섭할 것이다. 세상에는 새롭게 생겨나는 멋진 곳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렇다면 나는 굳이 와코시에 애정을 가질 필요가 거의 없을 것이다. 애정이 머물기 어려운 곳에는 뜨내기만 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에서는 오래된 가게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와코시에는 골목에서 파는 초라한 닭꼬치집이 있다. 앉을 자리도 없어서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서서 꼬치와 자판기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곤 하는 가게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와코시의 중요한 한가지 얼굴로서 그 가게가 사라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 할 것이다.  이렇게 오래된 가게는 그 지역 사람들의 추억을 보관하는 박물관과 같고 그 지역사람들이 자기 지역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곳이 된다. 우리는 뭔가 변하지 않는 얼굴이 필요하다. 


한국도 프랜차이즈가 엄청많지만 뭔가 아직은 정돈된 느낌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가게가 다 필요하기 때문에 각각의 가게가 가져야 하는 역할과 특징이 뭔지 우리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무한경쟁속에서 가게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지역인심은 점점 나빠져서 사람들이 그 지역에 가지는 애착은 한없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 식이면 전주에 다시 돌아올 이유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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