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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와코시를 소개합니다 4 : 골목길이 있는 도시들

by 격암(강국진) 2017. 4. 8.

와코시를 소개합니다 4 : 골목길이 있는 도시들


일본의 와코시에 살던 무렵 아내와 나는 가끔 목적지없이 전철을 탔다. 한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옆동네의 골목길을 걷기 위해서다. 고독한 미식가같은 일본드라마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듯이 일본의 도시들은 상당부분 한국의 지방소도시와 닮아있다. 그러니까 아파트 단지 건설이 온 도시를 덮어버리기 전의 도시말이다. 그것은 아담한 집들이 어깨를 마주하며 골목길을 이루고 있는 도시들이다.



일본의 한 주택가


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이름없는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런 집이 있구나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구나하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골목길은 너무 좁아서도 안되지만 너무 넓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차를 몰기에는 불편하겠지만 길이 구부러져 있다면 더욱 좋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하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웃들을 보다 중요한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같은 집에 살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산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골목길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저 골목을 돌아나가면 저기는 또 뭐가 있는가하고 궁금하게 만든다. 거기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주택가에 숨어있는 슈퍼며 커피숍이며 중고가게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럴 때는 그런 별거 아닌 것들이 왠지 의미가 있어보이고 대단해 보인다. 그저 조금 예쁜 정원수며 우체통이며 작은 텃밭을 발견하게 되면 왠지 여기 이런게 있었어하고 새삼스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도 디아곤앨리같은 곳을 등장시켜서 오래된 골목길의 정서를 반영한다. 과연 골목길에는 마법이 있다.



일본집앞에 놓여진 작은 화분



이것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닌 모양이어서 한국에서도 전국 여기저기서 오래된 골목길을 관광삼아 걷는 사람들이 있다. 벽화마을 같은 것은 아주 흔해졌고 전주의 한옥마을은 물론 서울 북촌의 골목길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아쉬운 것은 한국에서는 이런 골목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골목은 이제 낡은 것, 일부러 찾아가거나 보존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덕분에 유럽이나 일본의 도시를 걸으면서 드는 골목길의 정서가 한국에서는 이제 거의 없다.



전주 한옥마을의 골목길



물론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의 거대한 빌딩숲도 나름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연비가 좋지 못한 큰 중장비같아서 충분히 많은 돈과 사람과 활력이 지속적으로 모여들지 않으면 볼품없어지기가 쉽다. 아파트 단지나 백화점, 화려한 쇼핑몰도 언제나 매력적인 곳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재래시장이나 골목길보다 매력이 떨어지며 과도한 소비만 부추키고 삭막하며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골목길이라고 하면 무조건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곳, 낡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하지만 그것은 일정부분 우리가 골목길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가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좁은 골목길에서 주차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규칙에 고민이 없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



한국에서 골목길이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 단지개발로 아파트가 보편적 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심지어 단독주택단지를 조성해도 한국에서는 더이상 골목길다운 골목길은 생기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주농소마을은 예쁜 집들이 늘어서 있는 단독주택단지이지만 일본에서 흔히 보게되는 주택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길들이 시원시원하게 크고 넓게 뚫리고 집들도 크고 부지도 넓다. 대개 골목길운운할 분위기는 아니다 농소마을보다 한적한 곳에 있는 주택단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것은 땅이 남아돌아가는 미국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나는 조금 불만이다. 좀 더 아담한 집들이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그쪽이 더 좋지 않을까. 


물론 사람들마다 자기 취향이 있으니 그정도 규모는 되어야 옆집에 방해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이웃과 위아래로 양옆으로 숨막힐듯이 붙어서도 살 수 있으면서 단독주택을 짓기만 하면 서민이 들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지어야만 하고 커다란 정원도 있어야 할까? 게다가 이러면 주택단지는 골목길이 있는 아기자기한 주거지가 되기 보다는 상가가 발달하지 못하는 자생력이 부족한 동네가 되기 쉽다. 인구밀도가 낮으니 좋게 말하면 한적하고 나쁘게 말하면 활기가 없다. 


일본에서는 주택전시장이라는 장소가 흔하다. 그곳은 건설업자들이 자기 상품인 집들을 전시하고 건축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곳이다. 와코시에 살 때 나는 종종 주택전시장을 방문해서 집을 내부까지 둘러보고는 했는데 공간을 구분하고 수납공간을 짜넣는 일에 대한 고민이 일본에서는 아주 깊다는 것을 느끼고는 했다. 구조에 대한 고민만 좀 하면 지금 있는 집들부지의 절반이라도 꽤 살기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있다. 정원이 없어도 테라스나 옥상공간이 어느 정도 정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요즘 신문방송에 협소주택을 소개하는 일이 많은데 이런 개념도 안도 다다오같은 일본 건축가에 의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미국집은 그렇지가 못하다. 땅이 한정없이 넓으니 본래 그럴 필요가 없었던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미국에서도 요즘은 타이니하우스라는 초소형주택을 짓지만 그것도 땅이 남아도는 곳에서 더 적합한 개념이다. 주거문화에 대해서 우리가 더 많이 참고해야 할 쪽은 일본이지 광대한 땅을 가진 미국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파트만을 짓거나 미국드라마에 나올 것같은 커다란 전원주택만 띠엄띠엄 짓는다. 그나마 있는 골목길이 있는 주택가는 재개발을 기대하면서 방치되는 일이 많다. 이런 우리의 선택에는 댓가가 있다. 골목길이 사라져가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 그 하나다. 내겐 우리의 선택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라 그다지 좋은 것같지 않다. 우리도 좀 다르게 살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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