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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저수지 게임을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7. 9. 13.

주진우 기자의 취재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다큐멘터리 저수지 게임을 봤다. 낮 시간에 봤는데도 고등학생들이 단체관람해서 상영관이 메워졌다. 같이간 아내는 특이하다면서 전주라서 그런건가 하고 의아해 한다. 영화에 대해 한줄평을 하자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재미의 측면에서만 봐도 시간과 돈들여 본 것을 후회할 영화는 아니니 추천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농협이 캐나다의 콘도를 개발하려고 하는 회사에게 210억을 대출해주고 그 돈을 포기한 사연을 쫓는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영화는 이 사건은 단순한 하나의 부실대출 사건이 아니며 이명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많은 사건들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이뤄졌고 따라서 이명박 비자금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은 규모가 작은 것이고 더 큰 규모의 사건들이 엄청나게 많았으며 그에 관련된 돈이 다 캐나다로 향했다는 것이다. 제목인 저수지 게임은 중의적이다. 즉 그것은 우선 캐나다가 돈이 고여있는 저수지라는 뜻이고 또 다른 의미는 범죄사건의 배후들이 살인도 불사하기 때문에 이런 사건을 파헤치다가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영화는 실제로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된 농협직원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상하다'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210억을 아무런 실적도 자산도 없는 회사에게 담보도 제대로 잡지 않고 빌려주게 되었는가. 게다가 농협은 210억을 날리고 그 돈을 즉각적으로 포기한다. 하다못해 고소도 안하고 그래서 수사도 없다. 주진우가 계속 고소를 촉구해도 고소를 했다고 거짓말만 하면서 시간을 끌고 이제는 고소해도 소용이 없다면서 고소를 안한다. 그래서 문제의 회사를 운영했던 이요셉등은 지금도 그냥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이상한 일이 너무 많다. 사실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가끔은 진짜로 생긴다. 하지만 한국은 그게 너무 자주 있다. 이상한 일이 이상한 일인 이유는 주로 그 설명이 이상해서 그렇다. 그래서 천안함사건이니 세월호 사건같은 것에 대한 설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농협의 은행 데이터 베이스가 날아간 사건도 의구심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정부는 북한이 그랬다고 말한다. 북한은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중 하나인데 한국에서는 종종 전세계 최고의 국가로 돌변하고는 한다. 이러니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진짜로 이상한 것들은 이명박 정부하에서 이뤄졌던 50조 100조 심지어 200조에 이르는 투자들이 처참히 실패한 사건들이다. 그때문에 공사가 자본잠식률이 만퍼센트 운운할 정도가 되었다. 지금와 이런 투자들을 뒤돌아보면 우리는 일단 그 손실액이 엄청나다는데 놀라고 그다음에는 이런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엉터리로 결정되는데 놀라며 마지막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들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으로 차분하다. 예를 들어 한국을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건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물론 단순히 돈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걸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황우석이 쓴 연구비를 말하는게 아니다. 한국에서 단군이래 최대 과학프로젝트 운운해봐야 3천억 이야기가 나온다. 개인의 연구비리나 낭비가 아니라 한국 과학계 전체가 쓰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들이 정말 쉽게도 확확 날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이명박 시대의 사대강사건, 자원투자 그리고 방위비투자, 즉 소위 사자방에 대해 얼마나 길고 자세히 분석하고 떠들고 있는가. 언론은 어느 정도나 이걸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가. 그 돈이 얼마나 많은 돈이냐면 한국의 전세금 총 금액 규모가 500조니 천조니 하고 추산된다. 한국 주식시장의 30%를 차지한다는 삼성전자의 주가총액이 322조다. 이런 나라에서 단 몇년에 몇십조씩 투자 손실이 생겨도 그것에 미친 듯이 분석이 들어가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끝날 때 국가부채가 300조였는데 이명박 박근혜 9년동안 국가부채가 700조가 되었다. 그래서 해마다 이자로 내는 돈이 수십조다. 여기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공기업들의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은 포함되지도 않는다. 


이상하다. 이렇게 대범하게 경제를 볼거면 전세금이 올라간다던가 회사들이 적자를 본다던가 한국의 교육이나 과학에 문제가 있다던가 하는 걱정을 왜 하는가? 삼성이나 현대가 위기인지 아닌지 걱정은 왜하나? 그런데 또 같은 나라에서 아이들 급식을 무료로 주거나 알바들 알바비를 올리면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다. 이상하지 않은가?


영화는 직접적으로는 이명박이 한국의 악을 대표하며 따라서 그를 수사하라고 촉구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우리 제발 이제 그만 이상한 세상에서 살자고 말하고 있다. 그 이상함은 사실 상당부분 그저 음모론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불투명함이다. 보통 한국인들은 죽자 사자 경쟁에 시달리느라 힘든데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과실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잘만 산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항상 불투명하다. 이런 불신이 사회악과 불행을 만든다. 나만 줄서서 피해입었다는 피해의식을 만들어 낸다. 


부디 국민들이 여러가지 사실을 일일이 직접 확인하고 공부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으면 싶다. 상식이 지켜지는 나라라면 그래야 한다. 누가 케이크 그냥 사먹지 케이크 제조법 공부하고 분석해서 먹나. 그런데 한국인들은 세상을 믿지 못해서 공부해야 하는게 너무 많다. 굳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이유는 저수지 게임같은 영화가 주목을 받으면 그런 세상이 빨리 올까 싶어서다. 주진우 기자의 소망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 박근혜의 탄핵으로 한국의 정의는 절반쯤 살아났다. 그분이 구속되면 한국의 정의는 제대로 부활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어린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더이상 부끄러워 해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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