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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나쁜 꿈

나쁜 꿈 13-14

by 격암(강국진) 2018.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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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꿈

 

 

13. 권력에의 의지

 

굵은 주름이 얼굴에 가득한 60대의 사내 사토 카즈마는 엉엉 울었다. 

 

역시. 신은 계셨던 거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가끔 이 세상에 신이 계신 건지 의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교사님을 만나고 제 부족했던 마음에 대해서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토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가진 능력이 주는 권력의 달콤함을 느꼈다. 이제 이것은 단순히 흥미의 문제가 아니다. 이 능력은 달콤한 열매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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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온 이래 나는 내가 살던 와코시에서 이리저리 드라이브를 다녔다. 그중에서 가장 여러 번 갔던 곳들은 요코하마나 가마쿠라 같은 곳들이었고 좀 더 멀리 갔을 때에는 이즈반도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이를 테면 우리는 가마쿠라에 가서 시내를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다가 에노시마에 들려서 바다 구경을 하다 오고는 했던 것이다. 

 

가마쿠라는 가나가와 현에 있는 오래된 도시로 오랜동안 일본의 제2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교토 같지는 않았고 오래된 관광도시답게 개발을 자제해서인지 오사카나 도쿄처럼 높은 건물로 채워져 있지도 않았다. 실제로 가보면 예쁘고 깔끔하지만 그저 작은 도시처럼 보인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유명한 절이나 불상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 건 그저 한번 쓱 보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만약 그것 때문이었다면 가마쿠라에 한번 이상 가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일본의 여러 골목들 그것도 특히 오래 된 도시의 골목들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주택가도 나름 괜찮지만 상가도 좋았다. 일본에는 여기저기에 있는 상가 골목들이 관광지처럼 개발되어 있다. 개발되어 있다지만 3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쭉 이어진 가운데 1층의 상가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을 뿐으로 그 구조는 어디나 비슷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일식이며 양식 식당이 있고, 서점이나 일본 과자를 파는 곳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곳이 있으며 다양한 찻집들이 있는 것이다. 종종 아웃렛이라고 부르는 쇼핑몰과 어쩌면 그 구조가 비슷했다. 

 

이렇게 상가골목은 어디나 비슷한 풍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인지 모르게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고 다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왠지 서로 다르다. 나도 처음에는 그 차이와 매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를 잘 지적할 수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골목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그 골목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화목하게 지내는 가에 따라서 만들어진다. 

 

그냥 똑같은 상가들인 것같지만 간판이 어떻게 늘어서 있고, 어떤 가게들이 어떻게 장사를 하고 있는가를 보면 지금 그 골목들의 상가들이 각자 자기만 살겠다고 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서로 자제하여 같이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지가 들어 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간판만 크고 화려하다면 눈에 잘 띄고 돈을 벌겠지만 다들 그렇게 하다 보면 골목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무서워지고 따뜻함이 없어진다. 내가 아무리 가게 앞을 잘 치워도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으면 그 골목은 깨끗하기 어렵고 자동차 주차문제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기분좋은 상가는 깔끔한 쇼핑몰이나 아웃렛과는 또 다르다. 그런 곳은 중앙에서 모든 것을 독점적으로 명령하고 통일하기 때문에 골목 상가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더 균형 잡혀 있지만 왠지 감동이 훨씬 덜하다. 금방 이 쇼핑몰이나 저 쇼핑몰이나 그게 그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거기에는 계산이 있지 인간이 없고 그래서 각 가게를 들어가서 점원을 만나면 그것은 분명 사람인데도 왠지 자판기 같은 기계를 상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냐면 실제로 그 사람들은 별로 자율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월급 받고 일하고 있으며 훨씬 더 많은 규칙에 얽매여 있고 따라서 그 가게에 대해서 그다지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큰 쇼핑몰의 직원과 동네 골목상점의 사장의 태도는 같을 수가 없다. 골목상가는 아무리 잘 정돈된 곳이라도 각각의 가게는 독자적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가게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런 작은 것들이 합쳐져서는 하나의 골목이 진짜로 어떤 곳이 될까를 결정하는데 그것은 심지어 그 안에서 사는 상인들의 표정도 바꾸는 것같다. 활기찬 골목은 그 안에서 뭐가 좋은가를 꼭 집어 말하기 어려워도 그 안을 걷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뭐랄까 가족들이 맨날 싸우는 집안에 놀러 가면 뭔가 불편하고 가족이 화목한 집안에 놀러 가면 뭔가 편안한 것과 비슷하다. 기분 좋은 상가를 걷고 있으면 독자생존과 공존 사이의 균형이 느껴진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골목은 쇼핑몰 같은 것과는 다르다. 다 비슷해 보이는 골목도 다 나름의 차이가 있고 매력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 수많은 가정이 있고 가정들이야 어찌 말하면 다 비슷한데도 그 가정 하나하나가 다 특징이 있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골목들은 종종 오래된 가게들로 채워져 있다. 일본에는 오래된 가게가 많고 자식들이 부모의 가업을 잇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오래된 가게들이 보여주는 호흡은 단기간에 성공해서 돈을 벌기를 바라는 장사꾼이 보여주는 호흡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들은 한마디로 뜨내기 손님을 잔뜩 모아서 돈을 벌고 일단 부자가 되면 이 장사를 때려치우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그보다 그들은 단골손님들을 모으려고 한다. 단골손님만으로 장사를 할 수는 없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손님이란 한번 보고 다음에 다시 보지 않을 그런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오고 그 아들이 커서는 다시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올 그런 사람에 가깝다. 그렇게 해서 가게의 주인도 대를 이어서 가게를 계속하고 단골손님도 대를 이어가며 같은 가게와 거래를 한다는 호흡이 오래된 가게의 호흡이다. 

 

그런 가게들은 손님에게 친절하지만 무조건 손님을 더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게의 내부에는 나름의 질서와 문화가 있어야 하며 그 문화가 무너지면 오래가는 가게로서는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즉 수십년 갈 가게, 더 나아가 대를 이어가는 가게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들은 손님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하나하나의 손님에게 무한정 휘둘리지는 않는다. 방송 같은 곳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밀려오는 사태를 오래된 가게들은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왜냐면 그렇게 오는 뜨내기손님들은 가게의 문화를 잘 모르고 그들이 단골손님들을 밀어내 버리고 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방송에는 항상 다시 새로운 가게들이 소개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유행이나 관심이 지나고 나면 그 뜨내기손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이런 손님들은 말하자면 카페인이 엄청 들어간 에너지 드링크와 비슷하다. 그런 걸 마시면서 며칠 열심히 일했다고 해도 그걸 계속할 수도 없고 그렇게 무리를 하면 그다음에는 몸에 상처가 남아서 회복기가 필요하게 된다. 일정량의 재료를 준비하고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하면서 일정량의 손님을 받는 것이 반복되는 순환이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반짝 손님들 때문에 단골손님들을 잃어버린다면 그런 가게는 오래가지 않아 망하기 쉽다. 오래가는 안정적인 가게는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환경은 안정적인 가게를 만들고 안정적인 가게는 아마도 안정적인 인간을 만들 것이다. 

 

내가 비서인 칸나에게 준비를 부탁해서 방문한 라면집은 이런 곳중의 하나였다. 이 가게는 가마쿠라의 한 골목에 있고 40년째 가게를 유지한 곳이다. 크기도 아담해서 20명 정도 밖에는 사람을 받을 수가 없어 보였다. 깨끗하지만 어딘가 나이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런 가게가 나는 좋았다. 이전에도 가족들과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애초에 라면이라는 요리가 서민음식이라서 분위기가 서민적이라는 것도 좋았는데 극진제세교의 사무실에서 깨어난 이래 나는 요 며칠 엄청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나와 사토는 맨 구석의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먹음직한 차슈가 올려져 있고 기름기가 흐르는 라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극진제세교의 방에서 깨어난 지 오래지 않아 나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미 얼마 지나지 않으면 죽을 이유를 두 가지나 가진 나는 곧 죽게 될 또 한 가지의 이유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극진제세교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허용된 이유는 단순히 내가 기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극진제세교 내부에는 불만이 너무 크게 쌓여 있었다. 교를 지탱해 왔던 것은 그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구원이 오리라는 약속이었다. 바로 이 약속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나 불만이 있는 문제가 있어도 참았다. 위태로운 믿음과 교내의 질서를 지킬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바보같은 약속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교도가 되지 않거나 아니면 교도로써 의심하는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처벌되었다.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은 교주였던 다카키 시게노부도 믿지 않았던 구원을 정말로 믿는 폭력적인 교도들이었다. 그런데 다카키는 결국 구원을 제공할 수 없었고 시간이 너무 지나갔던 것이다. 덕분에 극진제세교 안에는 폭력으로 구원에 도달하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폭력적 권위와 공포로 그것을 억누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교사라는 지도자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몇주안에 내가 그 구원을 줄 거라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격 앞으로를 외칠 거라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나는 그저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극진제세교 내부의 사정은 내가 단시간에 파악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교를 실제로 장악한 것은 사토 카즈마라는 이 사내였다. 교도들에게 한 약속에 대한 무게때문에 다카키가 무너지며 향락 속에 깊이 빠져 드는 동안 사토는 교 내부에서 실무를 맡았고 그렇기 때문에 교를 점차로 장악하게 되었다. 교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실질적인 문제가 있으면 누구에게 명령을 들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카키는 향락이 주어지면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고 교도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사토였던 것이다. 

 

다만 그는 다카키와는 달리 성실하고 충성스런 사람이었으며 극진제세교의 사명을 진심으로 믿는 단순한 남자였다. 그는 말년의 다카키는 진정한 다카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이 든 다카키는 아무래도 사토 카즈마가 도저히 합리화할 수 없이 실망스러운 남자였다. 하지만 충성스러운 사토는 언젠가 다카키가 젊었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기다리면서 계속 그에게 충성했고 무엇보다 젊은 날의 다카키가 약속했던 이상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있어서 극진제세교를 세우고 구원의 날을 약속한 다카키는 여전히 위대한 지도자였다. 다만 인간이었기에 무너졌을 뿐이다. 사토는 다카키의 이상대로 교를 운영하고 그의 어린 딸을 돌보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다카키는 사토에게 죽임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사토는 교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다카키를 버려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다카키 시게노부도 젊었을 때는 나름대로 소신과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카키가 교회에 처음 자리 잡을 무렵 카즈마는 그 특유의 단순함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막부시대의 무사처럼 사고하면서 충성과 은혜를 따지는 사람이었는데 그 시절의 일본 사람들은 대개 그런 면이 있지만 그는 유달리 그런 면이 심했다. 카즈마는 곧잘 정색을 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대화 분위기를 딱딱하게 만들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걸 불편해했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에게는 남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약점들이 더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믿기 힘들지만 젊고 요령 없으며 가진 것이 없었던 시절의 사토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돌림과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성실성과 충성심을 알아본 다카키는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고 그가 세우는 극진제세교에서 사토를 이인자로 만들었다. 사토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다카키를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카키 대신에 교를 장악한 사토라는 사내가 가마쿠라의 라면집에 가겠다는 나에게 동행을 요청했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 무시무시한 집단을 지배하고 있는 사내의 머리속을 뒤져서 뭔가 탈출구를 만들어 내야 할 때였다.

 

지금도 눈을 감고 정신을 조금만 집중하면 그 괴질의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을 향해 죽으라고 하는 그 소리는 단순히 나의 죽음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끝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같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또 다른 죽음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비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스스로가 뛰어들어 온 자리이기는 했지만 이 자리에 있으면 사토와 극진제세교로부터의 압력이 느껴졌다. 그 압력은 바로 이 세상을 끝내버릴 스위치, 이 세상을 훨훨 불태울 스위치를 내가 누르라고 하는 압력이었다. 

 

내가 왜?

 

나는 어차피 괴질로 얼마 살지 못할 사람이라서 개인적으로는 고통에 대한 공포는 있었지만 죽음의 위협도 대단한 의미가 없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무슨 일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사라져 버린 내 삶의 미래와 하루하루 짧아져가는 남은 시간 그리고 가족들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했다. 나를 지탱시키고 있는 것은 내게 생겨난 능력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뿐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었다. 위태롭기는 하지만 엄청난 테러집단의 우두머리로 잠시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이 능력 때문이다. 이 능력으로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얼마나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의 능력을 우연히 발견한 이래로 그 질문에만 매달리며 살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죽는다고 해도 이 세계를 끝장낼 스위치를 누르고 죽어버리는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너무 책임이 무겁다. 나는 그렇게까지 엄청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나는 이러한 입장을 설사 죽음을 각오 한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테러를 포기하자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냥 살해당할 것이 뻔했다. 기껏해야 감금당할 것이다. 나는 그저 명복상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폭력에 대한 이 사람들의 믿음은 매우 강했고 이 사람들이 평생을 목표로 해서 살아온 것이 내 말 몇 마디로 바뀔 수는 없었다. 이건 논리나 증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부정해야 했다. 그들이 평생 미워하면서 자신을 불태워 온 그 대상은 실제로 절대적인 악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와 인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이나 친구도 그것 때문에 처형해왔는데 이제 와서 자신들이 틀렸다고 한다면 그런 자신들이야 말로 악한 존재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불속에 뛰어들어 죽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어떤 증거도 논리도 그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내가 목숨을 걸고 명령을 한다고 해도 그 테러는 막아지지 않을 것이며 아마도 내 죽음은 숨겨진채 내 이름으로 추진될 것이 뻔했다. 지금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아직 살아있으며 그것을 형식적으로나마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죽은 다카키 교주가 했던 것처럼 해서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뿐이었다. 

 

사토상

 

네 교사님

 

내가 계획서를 읽어 봤는데 너무 안일한 거 아닙니까?

 

사토의 표정이 약간 굳어진다. 나는 언뜻 언뜻 흐르는 그의 생각들 속에서 사토의 비밀들을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 능력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뇌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듣는 것이었고 사실 길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알아내는 것에는 그다지 효율이 좋지 못했다. 교도들은 신이 나에게 모든 비밀을 가르쳐 준다고 알고 있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능력은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조심해야 했다. 내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위험한 일이었다. 나는 내 능력이 정확히 뭔지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지를 모르기 때문에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떤 게 문제가 되는지요.

 

심호흡이 필요한 순간이다.

 

너무 약해요.

 

약합니까?

 

그래요. 너무 약해. 일본의 기성세대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이 나라의 정치를 책임진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사토는 말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중의원 의원들을 해치우는 것은 알겠지만 왜 참의원 의원들이며 내각의 사람들은 내버려 두는 겁니까?

 

이 말에 사토는 당황스러워 했다. 중의원의 숫자만 해도 465명이었다. 이 사람들을 동시에 모두 테러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것에 가까웠는데 나는 거기에 242명의 참의원과 내각의 구성원들을 더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게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단순히 공격만 한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심리전을 펼쳐야지요. 어떤 면에서 심리전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데 그에 대한 준비가 없습니다. 

 

심리전이요?

 

그렇죠. 단순히 의원들이 나쁘니까 우리가 공격한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걸 알지만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은 우리 교의 교도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 의원들이 나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사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단시간에 모든 일본 시민들을 우리 교도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그 의원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다른 적을 만드는 겁니다. 그들이 모두 미국이나 중국이나 한국같은 외국에게 매수되어 있으며 나라를 팔고 그 외국으로 도피하려고 한다고 하세요. 그들은 괴질의 치료약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만 살려고 한다고 하세요. 예를 들어 그들은 모두 CIA에게 세뇌되어 있으며 희망이 없는 일본을 포기하고 자기만 살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평소에는 잘 통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스카이트리가 붕괴되고 총리가 사망하는 충격적 상황이 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평상 시라면 아주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잘 믿게 됩니다. 아마 조작된 증거 몇 개만 보여주면 스카이트리를 화성인이 공격했다고 해도 그럴지도 몰라라고 할 겁니다. 왜냐면 그들은 방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죽는 모습을 본 사람은 뭐든지 믿습니다. 그리고 한번 믿기 시작한 아이디어는 좀처럼 머리에서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충격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몇 가지 증거를 대면서 어떤 사실을 주입하면 사람들이 다는 아니라도 상당히 믿을 겁니다. 꽤 오랫동안 말입니다. 

 

증거요?

 

신망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여기저기에서 가짜 성명서와 가짜 증거들을 발표하게 하세요. 이 일은 다 정부의 비밀작전때문에 생긴 거라고. 그리고 정부는 그 사실을 강제로 은폐하려고 있다고. 일단 이 이야기를 믿으면 그 후에 NHK에서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좀처럼  사람들은 의혹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깊은 의혹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의혹이 결국은 큰 혼란을 만들어 낼 겁니다. 어떤 폭탄보다도 더 큰 혼란을 말입니다. 그게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거죠. 결국 충격과 공포 그리고 심리전입니다. 사람이 본래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고 어쩌다가 그때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들에서 빠져나가지 못해서 평생을 허우적거리게 되는 겁니다. 

 

나는 사토에게 숙제를 주기 위해 뭐든 그럴듯한 이야기를 짜내야 했다. 현실감각이 마비된 그들에게 테러를 더 약하게 하자는 주장은 모욕이었지만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단순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사토는 계획을 다시 점검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아마 그 불가능한 계획을 현실화시키거나 다른 교도들을 설득해서 내각과 참의원은 포기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이 제안이 내게 벌어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었다. 아마 일주일쯤. 아니면 그저 며칠일지도 몰랐다. 나는 다카키 교주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다카키 교주의 문제를 그대로 가지게 되었다. 훨씬 더 심각해진 상태로. 누구도 내게 진심으로 충성스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뭔가 써먹을 만한 비밀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업에 대한 대화는 너무 위험했다. 그들이 내 진심을 의심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는 사토 개인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우리는 라면은 좋아하는가, 어디 출신인가, 본래는 뭘 하던 사람인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나는 그의 머릿속을 지나는 생각들을 훔쳤다. 

 

 

14. 신은 본래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사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무섭고 감정이 없어보이는 눈이다.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사실 보통 때라면 나는 이 사내를 무척 무서워해야 정상이다. 

 

나는 마음을 읽는 능력을 써서 사토의 과거를 캤다. 그런데 그의 과거가 하나둘 밝혀질 수록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토는 아주 찌질한 변태였던 것이다. 사토는 굉장히 근엄해 보이는 외모를 지니고 근엄해 보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무시무시한 사내였다. 누가 봐도 그는 장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젊었을 때부터 한 가지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자 속옷에 대한 강박증이었다. 그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에는 여자 속옷을 입고 다니고 여자들이 이미 사용했던 속옷을 훔치기 좋아하는 변태였다. 사토는 아무리 해도 여자 속옷을 훔치는 버릇과 욕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여자 속옷을 훔칠 때마다 느껴지는 스릴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평상시에도 조심스럽게 겉옷 안에 그 훔친 여자 속옷들을 입고 있었다. 

 

그가 아직 젊었을 때 이 사실은 극적인 문제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는 사치코라는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기적적으로 그 여인과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사치코는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자여서 첫 데이트에서 사토는 사치코와 키스까지 하게 됐다. 문제는 그것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는 데 있었다. 사토는 그날도 여자속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여성과 데이트를 한다고 따로 준비를 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랬더라면 변태였던 사토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치코는 사토와 키스를 하던 중 사토가 겉옷 안에 여자 속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로 사토의 청춘은 끝이었다. 사치코는 사토를 밀치고 도망갔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말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이 강직한 군인처럼 생긴 남자가 알고 보면 여자 속옷을 훔치는 변태라는 사실을 재밌게 생각했다. 사토는 모두에게 변태취급을 받았다. 만약 그가 약속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남자가 아니었다면 사토는 교회에서 도망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10년은 그 교회를 계속 다니겠다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10년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모두의 놀림 속에서 교회를 다니며 따돌림을 받았다. 

 

그때 나타난 것이 종말론을 펼치는 다카키였다. 다카키는 사토가 변태라고 놀리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의 사토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타락해서 다 불태워버려야 할 곳이라는 주장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다. 그게 이인자 사토 카즈마의 탄생이었다. 결국 사토가 지금 이 세상을 다 불태우려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고작 사치코에게 차였기 때문이고 여자팬티 때문이었다. 

 

나는 사토의 진실을 알게 되자 한편으로는 이 남자가 불쌍하게 여겨졌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 여기 여자에게 차였다고 세상을 불태우려는 변태가 있었다. 도대체 여자 팬티때문에 그는 몇 명을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이 세상은 여자 팬티 때문에 망하는 것일까? 여자 팬티에 미친 이 변태는 무슨 자신감으로 다른 사람에게 저렇게 나는 다 알고 있다는 시선을 보내는 것인가. 확고한 신념? 알고 있기는 뭘 알고 있어. 이 변태 영감이!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여자 팬티를 입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잘못한 것은 사치코입니다. 

 

한참 심리전 이야기를 하던 사토는 말을 뚝 그쳤다. 그리고 나를 충격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뭔가 더 말해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거였다.

 

신은 본래 모든 것을 알고계셨습니다.

 

사토는 나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간간히 나에게 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고백하면서 사토는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물론 이 문제는 사토에게는 엄청난 문제인 것이 맞았다. 어떻게 해도 억눌러지지 않는 이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수치심과 죄책감에 그는 평생 시달렸던 것이다. 나는 새삼 내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라면집으로의 외출은 이렇게 끝났다. 사토는 나와 헤어지면서 말했다.

 

교사님 감사합니다. 제 마음이 이렇게 후련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아는 충실한 신도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뭔가의 일로 굉장히 괴로워하는 것같습니다. 일도 전처럼 집중해서 하지 못하고 있지요. 교사님이라면 그 마음을 고쳐주실 것도 같은데요. 혹시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다음날 나를 찾아온 것은 뜻밖에도 내 비서인 칸나였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눴고 카토 때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흥분했고 화가 났고 그리고 칸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카토와는 달리 칸나는 그저 예쁜 비서였으므로 내 흥분은 좀 더 과감했던 것 같다.

 

데려와요.

 

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칸나의 말을 끊으며 재빨리 말했다. 

 

네?

 

내가 칸나의 소원을 들어 줄테니까. 데리고 오라고.

 

제 소원이 뭔지 아십니까?

 

아키히로의 진짜 마음을 아는 것.

 

칸나는 내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곧 돌아오겠다고 하고 방을 뛰쳐나가서는 30분 정도 뒤에 10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남자아이가 바로 아키히로였다. 

 

아키히로는 칸나의 아들이었다. 칸나는 19살에 임신을 했기 때문에 아직 20대 인대도 이렇게 큰 아들이 있었다. 사토처럼 아니 사토 같은 변태와는 비할 수 없이 그녀는 불쌍한 여자였다. 5살에 부모를 모두 잃은 칸나는 아주 외롭게 여기저기에 기생하면서 컸다. 그래서 그녀가 다른 어떤 것보다 원했던 것은 진짜 가족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20살이 되기 전에 임신을 했는데도 아이를 낳길 원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남자는 도망을 가고 말았다. 그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이 그 상대도 아직 어린 남자였는데 칸나는 한사코 아이를 낳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짜 가족을 반드시 가지고 싶었고 일단 가족을 가지게 되면 절대로 그 가족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뱃속의 아이는 이미 하나의 생명이었고 그 말은 그 아이는 이미 가족이라는 뜻이었다. 칸나는 남자 친구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 이외에 어떤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어도 그 아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칸나가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아이는 결국 태어나서 아키히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외로운 삶을 살아온 엄마를 지켜줄 태양이 되었어야 할 아키히로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칸나는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 많은 희생을 해야 했지만 그것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일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희생이었다. 특히 아키히로가 더 이상 아기가 아닌 나이가 되면서부터 그녀의 마음고생이 심해졌다. 

 

칸나는 자기를 남기고 죽은 부모가 원망스러울수록 아키히로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지만 아키히로는 도무지 엄마의 마음을 몰랐다. 칸나가 고생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아키히로도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키히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칸나는 지쳤고 이제 때때로 아키히로와 함께 죽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칸나는 결코 아키히로를 이 세상에 혼자 두고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키히로를 키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자신이 아키히로를 점점 미워하게 되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걸 느낀 날부터 칸나는 밤마다 술을 마시고 울기 시작했다. 칸나는 빨리 종말의 날이 와서 자신과 아키히로가 같이 죽기를 바랐다. 그녀는 기꺼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빨리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랬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좋았다. 어차피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래 좋았던 날은 그녀 평생에 거의 없었다. 

 

칸나는 아키히로를 내 앞에 데려다 놓고 옆에서 계속 울었다. 아무 부탁도 안 하고 그저 울었다. 아키히로는 로봇 인형을 하나 들고 왔었는데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로봇만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겉으로 봐서는 엄마가 울고 있는데도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아키히로를 쳐다보다가 칸나를 불렀다. 

 

칸나.

 

칸나는 겨우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 

 

나를 믿습니까? 

 

네. 교사님. 저는 교사님을 믿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겨우 며칠 전에 나를 봤고 내가 부린 기적 때문에 나를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나를 절대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아무리 극진제세교 같은 것을 믿는다지만 어떻게 모든 것을 100% 믿을 수가 있을까? 나는 안타까웠지만 그 점을 추궁할 수는 없었다. 

 

내가 칸나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능력은 진짜이며 나는 진실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네. 교사님.

 

아키히로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칸나는 다시 울었다. 이번에는 더 크게 소리를 내서 길게 울었다. 간간이 그녀에게서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녀는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아키히로는 여전히 로봇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방안에서는 한동안 칸나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한참을 운 칸나는 겨우 진정했다. 

 

더 설명은 필요 없겠지요?

 

네. 교사님. 

 

원한다면 더 설명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키히로의 마음에 대해서 교사님에게 더 묻는 것은 아키히로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가족이라면 그래서는 안되지요. 이제 저는 아키히로가 무엇을 하든 아키히로가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면 됩니다. 더 많이 질문하는 것은 오히려 양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아키히로는 제 가족입니다. 가족은 알지 않고도 믿는 거지요. 아키히로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합니다. 

 

한 가지만 더 말해드리지요. 지금 나에게 그 답이 두려워서 차마 묻지 못하고 있는 그 질문의 답은 이겁니다. 아니요. 하지만 희망을 가지세요. 

 

칸나는 다시 무너질 듯 흔들리다가 자세를 다시 바로잡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키히로와 함께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교사님은 아키히로를 고쳐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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