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인테리어 쇼핑/아이패드, IT,자동차

개인적인 운전의 역사

by 격암(강국진) 2018. 11. 22.

내가 운전면허를 딴 것은 1995년의 일이다. 나는 125cc 대림 크루저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서 면허를 땄다. 그래서 쉽다는 2종면허를 땄는데 그것도 재수끝에 땄다. 당시에는 자동차 면허라고 하면 다 수동변속기 면허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2종면허였기 때문에 기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1단에 두고 시험을 봤다. 

내 오토바이 사진은 없고 이렇게 생겼던 오토바이였다.


당시에 포항공대 대학원에 있던 나는 오토바이덕분에 구룡포바닷가에 가서 바람을 쐬고 오고는 했고 몇번은 동해안 도로를 달렸던 일도 있었다. 나로서는 오토바이라는 발이 생겨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지만 사실 오토바이는 추우면 타기어렵고 더워도 타기 어렵다. 산책하기에는 별로 춥지 않은 날씨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뼈가 저리는 추위가 이런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요즘도 나는 길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오토바이는 물론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토바이를 몰았지만 내 아들이 오토바이를 몰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 느낌이다. 오토바이는 자동차와는 속도감각도 틀려서 100km정도로만 달려도 엄청난 속력을 낸 느낌이고 바닥에 모래가 있다거나 하는 걸 보게 되면  이제 넘어지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폭주족에 속하는 아이들치고 몸이 멀쩡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들 많이 넘어져서 척추며 갈비뼈가 크게 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내가 임신을 했다. 연애할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도 재미였지만 임신한 아내를 태우고는 할 짓이 못됐다. 그래서 나는 오토바이를 팔고 100만원짜리 중고 티코를 샀다. 당시는 물가가 달랐고 티코는 워낙 싼 차여서 100만원짜리 티코도 깨끗한 새 차같은 좋은 차였다. 무엇보다 공차중량이 700kg이 안나가는 가벼운 차라서 연비가 엄청좋았다. 24km/l쯤 된다고 한다. 요즘 하이브리드 차량 못지 않다. 


그런데 이 차는 수동변속기 차량인 것은 물론이고 파워윈도도 없고 파워스티어링도 없었다. 차는 모두 후방카메라가 있고 사이드 미러란 으레 자동으로 닫히는 것인 줄 아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무슨 차가 이런가 싶을 것이다. 나는 이 티코를 산 날을 잘 기억한다. 아내가 임신했으니 덜컥 중고차를 샀고 돈을 지불했으니 자동차 키는 받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평생 수동기어를 변속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사실 차를 몰아 본 것도 운전면허를 딴 후 처음이었다. 나는 오토바이만 몰았기 때문이다. 도로주행연수도 없던 시절이다. 

구청에서 집까지 오는 그 짧은 거리를 나는 정말 시동 꺼뜨리고 차가 혹시 부서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속에 겨우 차를 탔다. 기어를 바꿀 때는 왼발로 클러치를 밟고 재빨리 기어를 바꿔야 하는데 연습도 없이 도로에서 처음 하려고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파워윈도가 아닌 거야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파워스티어링이 아니니까 핸들도 엄청 무거웠다. 그래서 나중에 이 차를 다시 팔았을 때 차를 보러온 사람중에는 핸들을 돌려보더니 차라는 게 원래 이런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야 파워스티어링인 차를 몰아본 적이 없으니 그런가 했을 뿐이다. 

티코는 당시에도 놀림감이 되고는 했던 서민의 차지만 나는 티코를 사보고 자동차라는 것이 오토바이와는 다른 나의 공간이라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토바이는 그걸 타고 있어도 바깥에 있는 느낌이지만 차는 문을 닫으면 나만의 공간에 있는 느낌이 든다. 티코를 사고 난 뒤 얼마간은 나는 비만 오면 차에 가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차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으면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방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이들이 차를 소유하는 매력에 빠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차란 숲에 몰고 가면 숲속의 내 방같은 거니까 부모가 없는 곳에서 혼자 독립하는 기분일 것이다.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사라진 차지만 사실 오토바이가 길에 다니는 것을 보면 티코는 왜 안되나 싶다. 오토바이보다야 티코가 더 안전할텐데 말이다. 티코는 싸고 가벼워서 연비가 좋은 차였다. 다만 800cc 엔진의 한계인지 힘이 없어서 가속이 잘 안됬고 따라서 차선변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100km/h를 넘기려면 가속패달을 밟고 오래 오래 기다려야 하는 차랄까. 

나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이스라엘로 박사후 연수를 떠났다. 물론 티코는 팔았는데 당시에 티코는 인기가 좋아서 몇년을 탔는데도 티코값은 여전히 100만원이었으니 차를 공짜로 탄 셈이었다. 이것은 당시가 아이엠에프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비싼 차가 인기가 없어졌다. 중고시장에 비싼 차들이 마구 나와서 값이 절반으로 떨어지기도 했었다. 반면에 티코의 인기는 폭등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살던 때 나는 한 선교사에게서 중고 대우차를 샀다. 물론 수동변속기차량이었다. 이스라엘은 차가 굉장히 비싼 나라다. 자기가 차를 생산하지 않으니까 모든 차가 수입인데 자동차에 엄청난 세금을 물리기 때문에 차값이 한국의 두배는 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없는 형편의 내가 살 수 있는 차는 아주 형편없는 차였고 내가 평생 몰아 본 차중에서  이 대우차가 가장 낡은 차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심지어 한국에서 몰았던 티코보다도 차가 힘이 없는 것같았다. 

사실 예루살렘은 언덕과 고개가 많고 길이 매우 구불구불한 곳이라 힘없는 차가 다닐 곳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한번은 정말 땀나는 상황도 겪었다. 차가 언덕길에서 밀려서 섰다 출발했다는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언덕길이 엄청길고 경사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낡은 대우차는 힘이 없어서 언덕길에서 다시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가속패달을 부서져라 밟아야 했다. 그렇게 해도 차는 뒤로 쭉쭉 밀렸는데 그렇게 밀리는 내차 뒤에는 바짝 붙어 오는 고급차가 있었다. 정말 내 평생의 운전중 가장 땀나는 순간 중의 하나였다. 

이스라엘 생활을 접고 다음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곳은 뉴욕의 맨하탄이었다. 뉴욕은 엄청 집값이 비싸고 따라서 차를 사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차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미국에 있었던 4년정도동안은 차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어딘가를 가려고 하면 항상 운전을 해야 했기에 그때마다 렌트를 하고는 했는데 그것도 좋은 시스템이었다. 어차피 맨하탄 내에 사는 사람들은 주중에는 차를 쓸 일도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를 렌트를 하게 되면 여러가지 차를 렌트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자동변속기며 크루저 기능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았다. 이스라엘에서 타던 차와 비교하면 차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자동변속기차는 왼발을 자유롭게 했는데 크루저 기능은 오른발도 쓸 일이 없게 했다. 게다가 일정속력으로 달리게 하는 크루저 기능을 쓰면 차멀미가 심한 아이들의 고생이 줄어드는 것같았다. 차가 등속으로 달리니까 멀미가 덜한 것이다. 크루저 기능은 한국에는 도입이 늦었지만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보편화되었다. 

내 개인적 운전의 역사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변화는 네비의 등장과 함께 왔다. 나는 엄청난 길치다. 예루살렘에 살 때의 일이다. 업무를 보려고 우리집에서 예루살렘의 구시가 쪽으로 혼자서 갔는데 테러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경찰이 내가 항상 다니는 길을 막아 버렸다. 경찰에게 물어보니 이 길은 안된다면서 다른 길로 가란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길이 바둑판이 아니고 나는 엄청난 길치라서 내가 다니는 길로 가지 않으면 도대체 내가 동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서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길이 엄청나게 휘고 꼬여서 조금만 달리면 방향감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그 작은 예루살렘에서 몇시간이나 헤맨끝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핸드폰도 없었으니 사실 나는 차를 타고 있었을 뿐 미아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를 탈 때는 언제나 지도를 든 아내와 함께 타서 아내가 인간네비역할을 하게 했다. 지금도 누가 어디론가 하는 길을 설명해 주면 나는 그냥 건성으로 듣는다. 길치인 내가 무슨 도로를 타서 어디로 가라는 말을 들어 봐야 그대로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길설명은 아내에게 하라 나는 운전만 하겠다는 식이었다. 내비가 나온 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는데 아내는 여전히 운전에 참견을 많이 한다. 쓰다보니 깨닫게 되는데 어느 정도는 이때의 경험이 만들어 낸 습관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 살 던 때의 일이다. 나는 지도를 든 아내와 다투고는 했다. 아내가 길안내를 잘못해서 요코하마로 가는 데 자꾸 틀렸기 때문이다. 결국 길찾기에 지친 우리는 네비를 샀다. 네비가 아직 한국에서 보편화되기 훨씬 전인 때였다. 네비를 달아보니 나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천국에서의 운전같았다. 나는 길을 외울 필요가 없었고 차가 길을 찾아주고 기억해 주니 운전의 피곤이 확줄어들었다. 예루살렘에서 처럼 미아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네비는 여러가지 관광장소같은 곳에 대한 부대정보를 제공해 줘서 스마트폰 이전의 시대였던 당시에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예를 들어 집주변 몇십킬로미터안에 있는 공원을 검색해 보면 우리는 별로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나는 차란 움직이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 이전에 하나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더 깊게 느끼게 되었다. 일본 생활이전에는 내게 있어서 차란 기본적으로 세단이었다. 무엇보다 한국도 지금은 SUV인기가 높아진다지만 당시에는 한국에서 차란 무조건 세단이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길에서는 세단은 소수파고 대부분은 해치백차량이었다. 일본차들을 처음 본 내 감상은 라면박스같다는 것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차들이 내가 아는 유선형이라기 보다는 마치 내부 공간을 최대한 늘리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박스형으로 생겨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서 타던 모빌리오. 나는 지금 이 차의 후속인 프리드를 탄다. 

차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멋지게 달려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차를 보기보다는 내가 들어가 앉아 있을 공간으로 생각할 때 차에 대한 접근은 상당히 달라진다. 모빌리오나 프리드같은 차를 타보면 유리가 커서 시야확보가 쉽고 따라서 운전이 쉬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손바닥만한 창문밖에는 없는 방에 있다가 큰 창이 있어서 전망이 좋은 방으로 이사를 간 느낌이 든달까. 

또한 기본적으로 실내공간이 크고 지붕도 높으니까 차안이 덜 답답하다. 나는 일본에서 타던 프리드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한국에서 이 차를 타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겉에서 보면 작은 차같은데 타보면 생각보다 엄청 실내공간이 넓다는 것이다. 차에서 엔진부분이 차지 하는 공간이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에서 보기에는 7인승이 아닌 것같은데 타보면 생각보다 여유있게 7인이 탈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겉으로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지만 속으로 가면 작은 차들도 세상에는 많은 데 그런 차들을 많이 본 사람들에게 그것은 꽤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혼다 프리드 내부 사진


이제는 한국차도 그렇게 하지만 일본차들은 일찍부터 차안의 공간활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내가 타는 프리드의 지붕이 높거나 차의 2열이 중간이 갈라진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은 괜한 것이 아니다. 덕분에 3열을 접으면 어른이 타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고 길이가 긴 55인치 티비같은 것도 실을 수 있다. 모빌리오는 2열 3열을 접으면 바닥이 평평해서 차박을 하기가 좋은 차였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4명이서 해안에 가서 차박을 몇번이나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몰라도 어른 두명이 편안히 자고도 남을 공간이 모빌리오에서는 나오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테슬라 모델3


요즘은 나는 전기차에 대한 기사를 자주 읽는다. 테슬라 모델3같은 차의 기사를 읽다보면 역시 내 다음차는 전기차가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운전이란 전에는 더 힘든 것이었고 지금도 상당히 힘든 것이다. 여전히 운전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는 사실 중의 하나다. 수동변속기여야 차를 운전하는 맛이 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차량이 밀릴 때 수동변속기를 쓰면서 차를 몰다보면 정말 팔도 다리도 아파진다. 지금은 수동변속기 차가 한국에서는 거의 실종되다 시피했는데 그런 인기의 배경에는 당연히 보다 쉽게 탈 수 있는 것이 자동변속기 차량이라는 현실이 있다. 자동변속기가 아니었으면 운전못했을 사람은 많다. 그러니까 자동변속기라는 신기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차를 탈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 셈이다. 팔힘이 약한 여성에게는 파워스티어링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주차도 힘들고 좁은 골목에서 차를 교묘히 운전해서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으며 복잡한 도로에서 차선변경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도 아내도 다 면허가 있지만 운전은 안한다. 이런 장롱면허를 가진 사람이 꽤 많고 사실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운전 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은 많다.  

전기차는 차를 더욱 직관적으로 쓸 수 있는 기계로 만들어 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기계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전기차는 연료비도 적게 나오고 자율운전기술로 보다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차다. 완전 자율운전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나같이 컴퓨터 좋아 하는 사람에게 딱 맞게 움직이는 컴퓨터가 될 만한 차다. 지금은 아직 초기지만 전기차가 완전히 자리잡는 10년정도 뒤면 차는 거의 알아서 움직이는 작은 방처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전기차는 단순히 차가 아니고 계산과 정보의 중심역할을 하는 곳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는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것처럼 전기차에 중독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우리는 실질적으로 차안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진짜 자율운전의 시대가 되면 물론 이 개인적인 운전의 역사는 완전히 끝나는 것이 되겠다. 이건 다행이다. 이것은 내가 노인이 되어서도 힘들게 운전을 해야 하거나 혹은 운전하지 못해서 갇혀지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닐 자유를 유지할 수 있을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