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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명, 뇌, 자아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는가

by 격암(강국진) 2019. 1. 3.

19.1.3

우리는 종종 인간이 바보같고 이성적이지 않다고 한탄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래도 인간이 지성을 가진 존재임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이 지성을 가진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과 동물이 그리고 인간과 나무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똑똑한 로봇이 출현할 것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의 지성과 그 로봇의 지성을 비교하려고 한다. 즉 자연스레 지성을 물이나 황금처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과 로봇의 지성을 비교하는 일은 마치 두 사람의 은행잔고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정말 지성이나 똑똑함이란 그런 것일까?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는가? 지성 혹은 지성적 행동이란 언제나 어떤 대상을 요구한다. 질문이 없는데 혼자 맞는 답이 없는 것처럼 아무런 상황이 없는데 지성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우리가 어떤 대상의 지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대상이 행동할 환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바지에 오줌을 싸는 아이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어른에 비해 똑똑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우리가 그런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바지에 오줌을 싸면 뒷처리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몸에도 좋지 않다. 다시 말해 옷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환경을 무시하고 오줌을 싸는 것은 지성적이지 못한 것이다. 

 

지성이 언제나 환경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어딘가에 선을 그어서 그 안쪽의 존재가 지성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애매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의 몸보다는 우리의 뇌가 지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의 손이나 발이 사라져도 우리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라는 관찰에 의존한 것이다. 그래서 뇌에게 있어서 몸은 거의 변하지 않는 환경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통상 지성의 존재 장소를 뇌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지성을 가졌다는 컴퓨터나 로봇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뇌는 지성을 가졌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인간의 몸이라는 환경안에서 작동한다. 뇌 자체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뇌에게 전기신호의 형태로 여러가지 감각정보를 전달하면 그 정보를 받아서 반응하는 것이 뇌이다. 그런데 로봇은, 적어도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상상하는 로봇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럴 경우 그 로봇이 지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것은 마치 두 사람에게 한 사람은 수학문제를 풀고 또 한 사람은 국어문제를 풀게 한 다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합리적이라던가 지성적이라는 것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즉 인간의 몸이 없이 인간의 합리성이나 지성을 기계가 따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귀로 들은 것만으로 판단해서 어떤 사람이 잘생겼다던가 어떤 음식이 먹음직해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장님은 나름 매우 지적으로 우수할 수 있고 또 종종 여러가지 다른 힌트를 사용해서 마치 앞을 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시각적 정보에 대한 개념을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로보트는 비디오나 마이크등으로 인간이 오감을 통해 즉 인간의 몸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인간을 관찰하고 인간의 반응을 참고하여 로보트는 자신의 기계몸이 주는 정보를 가지고도 인간에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답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다만 여기서 두가지의 다른 일들을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는 같은 정보가 주어졌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지성의 문제고 또 하나는 기계와 인간이 애초에 다른 신호를 받는데 그로 인해 생기는 한계와 혼란을 극복하는 문제다. 이걸 구분하지 않으면 지성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말할 수가 없다. 두 대의 자동차를 비교하면서 한 자동차는 타이어를 주지 않고 달려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합리적 행동이 요구하는 과업을 구분하는가? 왜냐면 이런 구분은 사실 영구히 계속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몸은 뇌에게 신호를 주고 뇌의 환경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은 뇌도 여러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왜 인간에서 뇌로 관점을 바꾸면서 뇌는 하나로만 여겨야 할까? 지성이란게 어디에 있는가? 후두엽, 측두엽, 전두엽, 중뇌, 시상? 

 

우리는 몸과 뇌를 구분하면서 암묵적으로 몸을 사소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거기에는 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환경에 대한 정보를 감각정보로 변환하는 필터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뇌에서 지성을 찾는 것이고 로봇의 로봇몸과 인간의 몸이 다르다는 것은 그저 사소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적어도 인공지능의 세계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요즘 말하는 딥러닝의 다층신경망은 아래처럼 생겼다.

 

 

여기서 입력신호를 어떻게 넣든 결과가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입력신호를 변환시켜 넣어주는 것을 사전처리라고 하는데 그것은 뉴럴넷의 성과에 큰 영향을 준다. 게다가 입력층은 다시 그 윗층에 입력을 주고 이것이 계속되는 것이 다층 신경망이다. 사실 아랫층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애초에 다층신경망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서 입력의 형태라는 것은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 

 

하나의 신호를 다른 신호로 변환한다던가 필터링한다는 것은 사소한 행동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얼마나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가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행위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속에서도 우리가 어떤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런 행위가 뭐가 자연스러운 답인가를 결정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고는 한다. 즉 관점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답을 거의 결정해 버린다. 

 

이걸 다시 몸과 뇌의 언어로 말해보자면 몸의 존재는 로봇몸으로 간단히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오히려 우리의 판단을 거의 결정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 몸과 로봇 몸의 차이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면서 지성이란게 얼마나 큰지, 어디에 있는지를 논하는 것이 말이 될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왜 뇌는 지성을 가질까? 뇌의 여러 부분들도 결국은 다른 부분에 단순한 신호변환를 한 후에 신호를 보내는 사소한 일밖에는 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 모든 신호변환들을 다 사소한 것으로 여겨서 지성의 소유자 목록에서 빼버린다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몸과 뇌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개인주의적 관점에 빠져서 사회 이전에 개인이 존재한다는 세뇌에 너무 깊게 빠져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없이도 존재하며 지성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고 그런 말에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21세기의 문화적 인간의 지성이란 대부분이 아니면 상당부분 사회적으로 퍼져 있다. 즉 사회나 자연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신호가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이미 거의 결정한다. 

 

따지고 보면 마르크스가 인간의 경제적 환경이 우리의 생각을 결정한다고 지적한 이래 이러한 점은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돈을 벌자고 살인도 하는 인간의 행동은 사회적 신호라는 측면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즉 인간을 혼자서 존재하는 생물로만 본다면 모두 비지성적이고 미친 짓이다. 

 

이제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지성은 뇌가 가지고 있나? 아니면 뇌세포가 가지고 있는가? 지성은 본래 사회적이고 집단적이라 한 지역사회단위로만 거론해야 하는 것인가? 지성이 마치 물이나 황금처럼 시공간 속의 어느 점에 존재한다는 관점은 한계를 가진 근사에 불과하다. 그것은 지식의 축적이 고도화된 현대에서는 점점 비현실적인 관점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아주 생생한 가상현실을 여러단계에서 만들 있고 그런 추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관점에 사로잡혀 있으면 엉뚱한 것을 두려워 하거나 찬양하고 엉뚱한 사람들에게 원망을 품게 된다.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은 분명 진실의 한조각이다. 그러나 반대의 말도 진실을 가지고 있다. 지성이란 모든 것들의 관계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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