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에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소녀상에 침을 뱉고 엉덩이를 흔든 4명의 남자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2-30대의 청년으로 모두 더이상 어린애도 아니었고 한국인인데도 굳이 일본어를 하면서 천황폐하만세따위를 말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검찰조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하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이 충격적인 것은 이런 행위가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이득이 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본인들도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인지를 정확히 말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하고 싶었다.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들에게 뭘 요구한 적도 없으며 그들이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인데도 굳이 그런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일본이 어떤 이익을 약속하며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켰을 것같지도 않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행위는 순수하게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이외의 어떤 동기도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악한 행위를 본다고 할 때 암묵적으로 그것이 어떤 직접적 이익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기본적으로는 선하게 살고 싶지만 어떤 이익에 대한 욕심이 우리로 하여금 악한 행위를 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번 소녀상 사건처럼 그저 악을 위해서 악을 행한다는 설명 이외에는 거의 설명이 안되는 일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일베사이트나 워마드 사이트 같은 곳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무의미한 폭력과 혐오를 많이 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뭔가 이유를 대는 듯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많은 경우 그 이유가 지극히 설득력이 약해서 왜 저렇게까지 본인이 마치 민주화투사라도 되는 듯 혐오와 폭력을 휘두르는지 알 수가 없다.
또다른 예는 학교폭력일 것이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을 어떤 이익때문에 괴롭히는 것일까?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유없이 남을 괴롭힌다. 아마도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주변에서도 저런 무의미한 악행이 도대체 뭘 위한 것인지 알 수 없겠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악을 위한 악행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에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할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권력의 증거로서 악을 행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존재의 증거이자 권리이며 악이란 권력의 증거다. 그러므로 그들의 악행은 사회적으로 존재감을 증명하고 하는 싶은 욕망의 결과다.
우리는 모두가 아니면 대개는 사회적 성공을 바란다. 그런데 우리가 성공했다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가장 흔한 성공의 징표가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그것은 바로 갑질을 하는 것이고 법을 어기는 부당한 권력을 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들이 법을 지킬 때 나는 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 나는 남을 모욕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그에 대해 반항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의 증거이고 성공의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진실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아주 많은 사람에게는 진실이다. 갑질이나 성추행은 모두 권력행위로 바로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모욕하고 능멸해도 괜찮을 때 우리는 우리가 성공했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그러니까 마약을 하고 불법적 섹스파티를 해도 문제가 안생기는 것이 성공이다. 다른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때리면서도 돈이나 뿌리면 괜찮은 것이 바로 성공이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괴성을 지르며 하급자를 모욕하고, 땅콩때문에 비행기를 회항시키고 자식이 수업에 빠져도 좋은 성적을 받게 하는 것이 바로 성공이다.
공식적으로, 그리니까 교단같은 곳에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이같은 믿음에 증거를 주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저항한다. 그들은 무례한 일을 겪고, 법을 무시하는 국회위원이나 재벌가문의 사람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법을 지키고 줄을 지킨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보짓이라고 비웃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비웃음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런 선한 시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질서를 지키고 법을 지키며 선을 행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한 시민들에게 있어서 존재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라는 자긍심이다. 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썩어있고 죽어있지는 않다. 나는 적어도 '쪽팔림'을 안다. 선한 시민들은 이 긍지를 버릴 때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악의 소리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런 것은 아니다. 악이 곧 권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선한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악을 저지르는 부자나 권력자보다 이런 선한 사람들에게 더 화를 낸다. 모든 사람들이 투견처럼 물어 뜯고 싸울 때 너희들만 인간으로 남아 있는 척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선한 사람들의 위선을 찾아내는데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어떻게 한두가지의 진짜 흠을 찾거나 혹은 그저 의혹을 찾아내면 그들은 펄펄 뛴다. 살인범에게는 끝없이 관대하면서 담배꽁초를 길에 버린 사람은 죽이고야 말 것처럼 달려든다.
이런 사람들은 악한 시민이라고 하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악이 곧 권력이며 권력을 가지는 것이 존재의 이유와 권리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존재할 권리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악한 시민의 대다수는 그들의 일상속에서 부정하게 휘두를 권력이 없다는데 있다. 악한 시민들의 대다수는 부정하게 휘두를 권력이 없다. 그들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을 초초하게 한다. 권력이 가치의 증거라고 할 때 악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악을 행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무작위로 폭력을 휘두르고, 아니면 만만해 보이는 약자를 찾아서 마음껏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그럴 때만이 그나마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악이 곧 권력이며 권력이 만물의 존재이유라고 까지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길에다 침이라도 뱉어야 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불량한 위협을 가하거나 택배기사에게 불친절이라도 저질러야 그런 초조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정신병이다.
소녀상에 욕을 하고 한국인이면서도 굳이 일본인처럼 일본어를 해서 누구나 얼굴을 찡그릴 일을 한 사람들은 이런 정신병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그들의 존재가 너무나 비루하고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고 그래서 길에 침을 뱉고 남들이 시끄럽다고 하는데도 고함을 지르는 정도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악을 권력으로 여기고 권력을 존재이유로 삼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의 악을 지적하고 분개하는 것에 쾌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 일이 어느 정도 심각한가를 깨닫기 전에는 말이다.
악한 시민들은 분명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전제하고 말하면 이들도 어느 정도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분함이었고 바로 악을 행하고 불법을 행하면서도 진짜로 처벌받지 않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일제시대로부터 내려온 특권세력이 있다. 이들은 악을 저질렀지만 처벌받지 않으며 인간의 평등을 거부한다. 이들이 너무나 뻔뻔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정신이 황폐화된 것이다. 누군가는 악을 행하면서 잘난 체까지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정신을 황폐화 시킨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 갑질을 당했지만 나는 갑질을 해서는 안된다는 메세지에 화가 난 사람들은 이렇게 된다. 나는 사소한 범법행위로 처벌받지만 삼성 바이오 분식회계 사건 같은 것이 보여주듯이 누군가는 나라를 뒤흔드는 일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것같다. 이러한 차이가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화 시키는 것이다.
나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그런 참여가 대단한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사무실에서 언론의 보도만 듣고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있으면 우리 사회는 악한 시민으로 가득 차 있는 것같다. 사회적 불의가 넘쳐나는데 악당들에게 관대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를 지지하여 대통령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꽤 절망적이고 아픈 현실이다.
하지만 백만 이상이 모인 촛불집회에 나가서 서 있으면 우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되며 우리의 마음이 치유받는 것을 느낀다. 역시 세상에는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잊지 않은 시민들이 아주 많은 것이다. 그들이 박근혜를 탄핵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이런 치유를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늦었고 악의 세계로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 오직 악행을 행함으로써 빈약하고 초라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산다. 이들은 물론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양산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이들에게 동정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모두는 아니라고 해도 그들 대부분은 단지 세상이 너무 차가웠던 사실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제별 글모음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해라. 우리는 강하다. (0) | 2019.07.17 |
---|---|
경제와 정치 그리고 매국 (0) | 2019.07.13 |
아베가 원하는 것 (0) | 2019.07.05 |
일본유학 이야기 (0) | 2019.06.28 |
누가 괜찮은 사람인가? (0) | 2019.06.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