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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러닝 혹은 역진행 수업

by 격암(강국진) 2019. 7. 21.

플립러닝이라는게 있다. 역진행수업이라고도 불리는 이 학습방법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와서 수업을 듣는게 아니라 강의는 온라인 교재를 통해서 스스로 보고 수업시간에는 토론을 통해서 심화학습을 하거나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다. 나는 플립러닝에 경험이 없다. 그런 수업을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런 수업을 교사로서 진행시켜 본 적도 없다. 다만 내가 이 역진행수업이라는 수업방법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과학자로서의 공부라는 것과 이것이 어떻게 다른가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생각을 잠깐 적어 볼까 한다. 



우선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선입견부터 깨고 시작하자. 사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의 연구자들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들도 당연히 공부를 한다. 그 공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즉 수업에 들어가고 어떤 특정한 선생님에게 배우는 방식으로 이뤄질 때도 있지만 더 흔하고 더 중요한 방식은 스스로 하는 공부다. 


왜냐면 가장 최신의 것에 대해서는 학교수업처럼 정해진 커리큐럼이 없다. 또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그걸 시간들여서 따라 하는 것은 시간낭비가 심한데 수업을 한다는 것의 최대 문제가 선생님이 학생이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를 확실히 모르는 일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실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이런 저런 잡다한 지식이 있으므로 차근 차근 기초부터 쌓아가는 수업이 소모적이다. 그러니까 어떤 코스를 멍청히 오래 듣는 것보다는 핵심적인 예제와 힌트를 가지고 일을 해나가면서 하나 둘씩 지식을 스스로 늘려가는 쪽이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워드 사용법을 모두 익혀서 자격증이라도 따고 나서 워드를 쓰는게 아니라 가장 기초적 기능만 이해하면서 쓰다가 필요가 발생할 때마다 특수 기능을 하나 둘씩 찾아 읽는게 더 편하다는 것이다. 약간 배워서 쓰기 시작하고 쓰면서 또 배워가는 식이다. 


학생들의 공부가 이런 실무자들의 공부와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내게는 이 역진행 수업이라는 것이 학생들의 수업이 이런 일반인들의 수업처럼 변해가는 과도기의 수업방법처럼 느껴졌다. 각자 자료를 읽고 동영상강의로 직접 공부하라는 말은 사실 기본적인 것은 각자 공부하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전제로 하고 역진행수업과 실무자공부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이 두가지 공부의 가장 큰 차이는 실무자 공부는 월급을 받으면서 하고 역진행 수업은 기본적으로 수업료를 내면서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이나 교수 그리고 회사의 직원들은 공부를 해도 월급을 받는다. 그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가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것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역진행수업의 한계같은 것을 느끼며 미래에는 많은 공부가 이런 식으로 변해야 하고 변할거라고 믿는다. 즉 미래에는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면서 공부하는게 아니라 주로 돈을 받으며 공부하게 될 것이다.  


실무자의 공부는 월급을 받으면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공부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까? 그것은 공부에 대한 강한 의무감을 주고 목표의식을 보다 분명하게 해준다. 월급을 받는 것과 수업료를 내는 차이는 방송국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시청자가 되는 차이다. 돈을 받으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언젠가는 도움이 될 막연한 것을 공부하고 있는게 아니라 보다 가까운 장래에 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필요한 공부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받았으면 댓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구원의 경우에는 그 공부는 결국 한 편의 논문으로 구체화되는 일이 많다. 프로그래머라면 그의 공부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유튜버라면 한편의 컨텐츠로 구체화된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수업료를 내고 공부를 하는 사람은 내가 여기서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여기서 뭘 받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수업료를 냈으니 나는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학습능률의 차이를 크게 만들어 낸다. 수업료를 내고 수업을 듣는 사람은 종종 구체성을 잃어버리고 능동성을 잃어버린다. 즉 뭐에 쓸 것인지 명확히 이해가 안되는 것을, 수동적으로 나는 돈을 냈으니 학교라는 시스템은 나에게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는 자세로 공부하게 된다. 


지금도 기초공부를 끝내고 사회에 들어가면 사회의 초년병들은 월급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신입사원이나 인턴들은 대단한 일을 할 수가 없다. 숙련된 사람들의 보조를 하거나 여유있는 시간에는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 둘씩 일을 하다보면 더 큰 프로젝트에서 더 책임있는 역할을 할 수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체계는 어떻게 보면 누적된 모순의 결과다. 이 세상에 지식이 이렇게 엄청나게 쌓여있지 않았던 시절 사실 기초적 공부란 종종 초등학교나 중학교정도의 공부를 의미했다. 즉 쓰고 읽을 수 있으며 기본적 독서정도만 했다면 그 다음의 공부는 각자하는 것이고, 세상속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세상속에서 하는 것이었다. 일제시대에는 고등학생은 물론 중학교정도면 이미 사회적으로 지식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그들의 교양수준은 현대의 중고등학교 교양수준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같다. 그들은 길고긴 학교 과정에 의해 길들여진 사람들이 아니고 기초적인 것은 의무적으로 배우지만  자기 교육을 스스로 하고, 세상속에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공부시간은 점점 더 늘어서 이제는 대학도 거의 필수처럼 여겨진다.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더 좋은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교육시스템의 확장은 부작용이 크다. 사람들은 그 가상의 세계속에서 적응하고 수동적으로 변한다. 마치 닭장같은 곳에 지나치게 오래있었던 닭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멈춰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시험공부하느라 자기 관심사를 깊게 파고들 수 없다. 진학을 못하면 공부도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현대에 가장 옳지 않은 것이며 이제 그 변화는 뒤집어 져야 한다. 어떤 의미로 학교와 학벌은 폭파되어야 한다. 학교 필요없다. 현장으로 뛰어가야 하고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일과 배움은 다시 한번 나눠지지 말고 같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플립러닝은 절반의 해결책처럼 보인다. 이전의 방식보다는 옳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큰 차이는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학생들의 수동성은 해결되지 않고, 학생들이 여전히 학교 안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플립러닝은 혁신적인 수업방법이지만 어떤 의미로 낡은 교육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이다. 


플립러닝은 현대 교육에 대한 점진적 해결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설사 이런 걸 실시한다고 해도 이걸로 현대의 초중고와 대학들이 앞으로 얼마나 버텨낼지 알 수 없다. 유튜브에 보면 어린 학생들이 이미 자기 채널을 가지고 돈을 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에 대해 여러가지 비판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선택에 서게 될 것이다. 


첫째. 16년쯤 열심히 어른들이 시키는 공부를 하면서 바쁘게 살다가 사회로 내팽겨 친다. 물론 그 사회는 학교와는 전혀 다르다. 학생들은 나는 16년이나 20년간 뭘 한건가하는 의구심에 빠진다. 


둘째. 학교를 탈출하고 현실에 뛰어 든다. 물론 준비없이 뛰어든 사회는 힘들것이고 졸업장이라는 보증서가 없어서 불안할 것이다. 이것이 실패로 가는 더 빠른 길일 수도 있다. 


지금 이순간 졸업장을 포기하고 세상에 뛰어드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개인의 선택이고 경우에 따라 다르다. 운도 중요하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교 졸업장의 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16년이니 20년이니 하는 세월을 학교 시스템안에서 수업료를 내면서 사는 것은 거의 직업적 자살이라는 것이 분명해 질 수 있다. 그게 어떤 거냐고 상상하고 싶으면 수도원에 들어가서 20년정도 종교교육을 받거나 절에 들어가 스님으로 20년쯤 살다가 세상에 나오는게 어떤건가와 비교하면 된다. 스님으로 공부했다는 것이 취직할 때 도움이 되던가? 학교와 세상간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대다수의 학문이 사실 그렇다. 전문화가 너무 심각해서 사회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데 그런 걸 잘하는 사람들이 교수가 된다. 그러니 학교와 세상간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교가 절간이나 수도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럴 때 우리의 선택은 뭐가 될까? 위의 선택을 다시 읽어보자. 첫째? 둘째?


플립러닝은 아주 짧은 과도기에 존재할 교육방법에 불과하고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그 교육방식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무렵이면 우리는 본격적으로 학교의 해체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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