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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대의 명과 암

by 격암(강국진) 2019. 7. 23.

세상은 이제 확연히 유튜브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정부가 정해준 채널로 방송을 하고 시청자가 그걸 보는 시대를 넘어서 무한 채널로 개인들이 방송을 하고 그걸로 수익도 올릴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유튜브는 기존의 신문방송에 비할 때 매우 민주적인 미디어다. 컨텐츠를 내보내는 비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거대한 자본이 있어야 하고 혹은 그런 자본에 의해 선택되어야 컨텐츠를 내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신문 방송사를 설립하거나 기자로 취업해야 정보의 유통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으로도 사안에 따라서는 공중파방송의 뉴스 이상의 화제를 불러 모을 수도 있는 시대다. 재해현장에서 일반인이 찍은 동영상이 즉각 즉각 유튜브에 올라오는 시대다. 그 일반인이 초등학생일 수도 있다. 초등학생의 컨텐츠도 세상을 발칵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민주적인 미디어 인가. 


미디어가 자본으로부터 보다 독립적이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언론들의 고질적 문제가 그 제작비용때문에 결국은 가진 사람들의 시각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사를 유지하는데는 돈이 들고 그 비용을 내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라기 보다는 광고주들이다.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언론이나 언론사의 기자는 사실은 취업준비부터 시작해서 취직하고 진급하는데 있어서 어떤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 될 수록 그 기자는 시스템에 종속되어 자기 시각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자는 점점 자본의 대변자가 되고 시민들이 원하는 이야기보다는 자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전하는데 몰입한다. 시청자가 보고 싶은 것을 언론이 외면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언론의 큰 문제점이다. 사실 언론을 넘어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미디어가 강대한 힘을 가지는데 권력이 왜 그것을 내버려 두겠는가. 독점하기 쉬운 미디어는 반드시 독점당한다. 유튜브도 권력은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다만 독점이 불가능하거나 너무 많은 댓가를 요구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라는 매체에서 큰 희망을 보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다른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내가 여기서 거론하고 싶은 것은 한가지 문제점이다. 그것은 유튜브가 우리를 조잡한 세계관속에 심지어 대부분 위선과 거짓으로 세워진 세계관 속에 가둘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튜브는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주고 싶은 것보다는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채널이 되기 쉽고 그래야 그 채널이 승자가 되어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렇다보니 어떤 특정 집단을 위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살아남기 쉽다. 유튜브 채널중에는 그 컨텐츠의 질에 비해 지나치게 유명세를 타는 것같은 채널이 있다. 이 채널을 보면 나는 엉터리 목사가 하는 엉터리 설교가 그 신도들에게는 인기를 얻는 모습이 생각난다. 집단이 유튜브 채널의 인기를 만들고 그 인기가 다시 그 집단에게 구심력을 제공한다. 이렇게 강해진 집단은 그 집단의 경계 바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종교적 내용뿐만 아니라 정치적 내용도 교회공동체를 기반으로 구독과 좋아요를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회 연락망같은 카톡리스트를 통해 특정한 역사관, 정치관, 윤리관을 주장하는 동영상들이 마구 퍼지는 것이다. 


1천만명이 본 동영상과 20명이 본 동영상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볼 것인가? 답은 대개 뻔하다. 유튜브는 승자가 더 승자가 된다. 그래서 초기에 어떤 집단이 있어서 특정 동영상을 어느 이상으로 인기를 얻게하면 그 동영상이 계속 더 인기를 얻게될 가능성이 크다. 베스트셀러 타이틀을 얻기 위해 출판사들이 한다는 자기 책 사재기와 비슷한 논리다. 결국 유튜브의 민주성도 완벽하지는 않다. 어떤 집단을 등에 엎은 쪽이 컨텐츠로서 살아남기 쉽다. 


이걸보고 있으면 사회에 퍼져있는 소수의 사이비종교 신도들이 자신들의 단합력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이성적 기반을 망가뜨리는 느낌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나 동영상을 세상에 훨씬 더 많이 퍼뜨리는 그들의 모습은 과거에 유명 게시판을 소수의 사람들이 도배해서 마비시켰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몇 사람의 악성유저는 수백 수천명도 이길 수 없는 힘으로 게시판을 장악하고는 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이제 유튜브같은 강력한 미디어를 무기로 삼아 악성집단은 세상 그 자체를 게시판처럼 장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유튜브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튜브라는 대중적 멀티 미디어는 짧은 이야기를 지나치리만큼 선호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통되는 대중적 컨텐츠, 유행하는 컨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쉬워야 한다. 그건 문자매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멀티미디어는 그 강렬함 때문인지 더욱 짧은 이야기를 선호하는 것같다. 많은 인기 컨텐츠가 5분도 안된다. TED같은 좋은 프로그램도 15분 강연을 기본으로 한다. 책이라면 쉬엄 쉬엄 몇시간 읽을 사람도 동영상이라면 1-2분내에 아니다 싶으면 덮어버린다. 


문제는 쉬운 것이 곧 옳은 것이고 가치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라는 미디어는 짧은 이야기를 만들라고 압력을 준다. 이런 압력은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세지는 무조건 쉬워야 한다. 그러니 가짜 정보 하나만 있으면 전체 이야기가 훨씬 짧고 호소력 있어지는데 그런 정보가 없으면 그냥 만들어서 집어넣는 것이다. 단순한 신화, 단순한 가짜 뉴스가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유튜브 공간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검증하는 속력보다 그것이 퍼지는 속력이 훨씬 빠르다는 것도 문제다. 검증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위험하고 때로 비양심적인 논객들이 번성하는 장을 만들어 준다.  가짜뉴스는 그걸 반박하기도 전에 엄청나게 퍼져나가는 일이 많고 그 반박이 어딘가에서 나와도 그때쯤이면 이제 그게 작은 일처럼 보이게 될 수도 있다. 한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이야기들이 걷잡을 수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유튜브는 이래저래 가짜 이야기가 퍼지기 쉽게 해준다. 


가짜뉴스는 단순한 이야기라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누군가가 왜 일본은 한국을 공격하는가라던가 왜 한반도는 분단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2분안에 한다고 해보자. 그런 용도로 만들어 진 이야기는 가짜뉴스가 아니라도 편향된 이야기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 G20에서 문재인이 실종되었다는 동영상이 많이 돌아다녔다는데 그 내용을 보면 문재인이 없는 곳만 골라서 편집해서는 적당히 말을 가져다 붙인 것이었다. 즉 사실중에서 자기 맘에 드는 사실만 짜집기해서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 사실만 골랐냐고 지적당하면 나는 그 사실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반문한다. 


간단한 이야기는 통상적으로 음모론으로 말해진다. 유튜브같은 미디어가 힘을 얻을 수록 세상에는 음모론이 판을 치게 된다. 한국의 교육, 재벌, 부동산, 환경, 지자체등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지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힘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보면 이것들도 다 가짜뉴스다. 


설사 그 짧은 이야기가 아주 좋은 이야기라도 문제가 있다. 우리가 2-3분짜리 세계사나 철학사에 익숙해지는 가운데 우리는 점점 세상과 우리 자신을 대충대충보게 된다. 독서나 글쓰기가 유튜브시청보다 우수한 이유는 독서나 글쓰기는 느려서 그렇다. 읽으면서 쓰면서 우리는 생각을 한다. 독서는 작가만의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깝다. 작가의 성적매력이나 화려한 특수효과에 속을 가능성도 훨씬 작다. 독서를 하는 중에는 자신의 생각 그리고 남의 생각의 전체모습을 볼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멈출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느림가운데에서 우리는 우리가 빠져있었던 신화의 빈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정신적 틀을 깨고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될 수도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는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에서는 그게 훨씬 어렵다. 멀티미디어는 너무 빠르고 강력하게 정보를 전달해서 시청자는 수동적이 되기 쉽고 시청자는 사색하기가 어렵다. 유튜브 컨텐츠는 순식간에 시작되고 끝나며 전염병처럼 들불처럼 번져 나간다. 승자가 되는 컨텐츠는 우리에게 사색을 제공해주기보다는 세뇌를 시키는 것에 가깝다. 이런 식의 자극적 이야기들에 중독되면 우리는 결국 음모론으로 범벅된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이 중독된다. 


그래도 나는 유튜브라는 미디어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모두 양날의 검이다. 유튜브도 큰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문자매체가 독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글쓰기를 의미하기도 하듯이 유튜브란 반드시 우리가 보기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유튜브 컨텐츠를 만들고 채널을 운영할 수 있다. 컨텐츠를 보기만 하는 것과 자신이 제작을 해보는 것은 다른 체험을 준다. 유튜브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생각을 세상에 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미디어다.


유튜브 컨텐츠도 차차 더 좋아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일종의 유튜브 평론가가 나오고, 유튜브 채널 추천 채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유튜브가 가지는 추천 컨텐츠 시스템은 너무 엉성해서 제대로 좋은 컨텐츠를 골라 내고 있지 않은 것같다. 하지만 물론 유튜브도 이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더 좋은 내용을 소개하는 방식을 계속 개선해 나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도 유명 게시판들이 뜨고 졌다는 것이다. 그 게시판들은 유명해지자 악성유저들이 게시판을 장악했고 도배했다. 그래서 좋은 내용을 찾을 수가 없게 되자 일반 사용자들이 발을 끊었고 그렇게 되면 악화가 더욱 심해졌다. 유튜브가 악화를 막아 내지 못한다면 유튜브도 망한 게시판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면 유튜브의 시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때에는 또 다른 동영상 컨텐츠 사이트가 또 어딘가에서 나올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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