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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불확실성의 산책

불확실성의 산책 0

by 격암(강국진) 2020. 3. 5.

불확실성의 산책

 

들어가며

 

일본에 살았던 나는 동네 주택가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본은 고층아파트가 별로 없다. 특히 동경을 벗어나 있는 우리 동네는 더욱 그렇다. 다만 끝없이 저층건물로된 주택가가 이어져 있을 뿐이다.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단독주택들은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또한 이따금 집들 사이로 나타나는 텃밭이라던가 전자상가나 카페, 제과점들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 많은 집이며 가게는 내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뜻밖의 장소에 존재한다.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은 골목에 멋진 유럽식 카페가 있다거나 중고차 판매소가 있다거나 하는 식이고 현대식 건물이 쭉 이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주 넓은 정원을 가진 옛날식 집이 나오는 식이다. 일본에서 귀신 이야기를 하면 믿기가 쉽다. 이렇게 다양한 집들이 있으니 어딘가에 귀신이 나오는 괴상한 집, 버려진 집, 괴상한 가게가 있을 법도 한 것이다. 아무리 길을 걸어도 왠지 저기 모퉁이를 돌면 뭔가 아주 괴상한 집이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산책길에 대한 신비감은 메마르지가 않는다. 그런 길을 걸으며 새로 핀 꽃이라던가 집 앞에 놓인 예쁜 도자기 인형 따위를 보고 즐기는 것이 한때는 우리 부부가 주말마다 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과학과 생명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게 될 이야기를 마치 물리학교과서에 나오는 식으로 하고 싶은 의도는 없다. 과학이라는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자면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의 법칙이라던가 혹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절대적 자연의 법칙에는 이러저러한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보다 나는 그것을 내가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 왔는데 중간에 유달리 예쁜 꽃도 있었고 예쁜 집도 있었다라는 식으로 하고 싶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이봐 내가 저쪽 동네에서 멋진 까페를 하나 봤어하고 말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결국 직접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학과 생명에 대한 부스러기 지식이란 별로 쓸모가 없다. 그것이 나라는 개인에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는 것을 느끼려면 우리는 성급히 이런 저런 지식을 삼키기 보다는 천천히 생각을 곱씹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심지어 직업적으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그럴지 모른다. 전문적 연구자도 느낌이 필요하다. 사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하려는 말들이 아무 공통된 주제도 없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의 나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말은 모두 불확실성이라는 단어에 연결된다. 나는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이 만들어 지는데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불확실성 같은 말은 여러가지 문맥속에서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과학문화의 특징을 말하는 곳에서도 나타나고 과학적 이론의 엄밀성과 그 해석에 대해 말할 때도 나타난다. 그것은 뇌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등장하며 나아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학습의 문제를 생각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불확실성은 불안과 공포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가치 판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철학자 칼 포퍼는 그의 자서전에서 지혜는 우리의 무지를 자각하는데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무지는 불확실성의 다른 말이다.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우리는 과학과 생명이라는 개념의 한계를 볼 때만 과학과 생명이 뭔가를 알게 된다. 한국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국이 뭔지 알듯이 말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100% 믿는 상황, 당연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는 그것의 한계를 모르므로 그것을 실상 알지 못하게 되고 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내가 쓰는 글의 상당 부분은 이러저러한 확실한 지식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어떤 것이 사실은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더 많이 보기위해서는 아는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우리가 머리에서 지워야 하는 것은 많이 있겠지만 오늘날에는 생명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할 이야기는 과학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동시에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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