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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과학자의 관점, 성공한 사람의 관점

by 격암(강국진) 2020. 3. 25.

20.3.25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논리체계나 관점을 따른다. 그 관점이란 경험과 지식의 축척과 연결로 이뤄지는 것이며 우리는 종종 그것을 학문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물리학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거나, 역사학자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거나, 예술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보거나 미학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말을 하다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는 화가 나기도 하잖습니까, 그러니까 밖으로 나오는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냥 자명한 말이 아니라 일종의 심리학을 그 기반으로 하면서 사회적,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한국은 과거에 농경사회였습니다. 그것이 한국이 가족예절을 강조하게 된 이유입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역사학적 관점을 쓰는 것이다. 

 

나는 물리학도였고 오랜간 물리학과, 인공지능, 뇌과학등을 공부했기 때문에 물리학적 관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사실 최근의 몇백년동안 서구문화를 빛나게 했던 사고 방식의 중심에는 과학이 있었고 과학의 모범생은 물리학이었다. 어떤 의미로 모든 학문은 스스로 물리학이 되기를 소망했다고 할 수 있다. 화학이나 생물학은 물론 경제학도 물리학적인 관점을 그대로 채택하는 학문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적인 관점, 보다 구체적으로는 물리학적인 관점은 오늘날 다른 어떤 관점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그 과학적인 관점 혹은 물리학적인 관점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몇줄로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답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특징을 논하고 우리의 사고 방식이 어떻게 그것을 닮았으며 그 과학이 고전역학시대 이후 20세기에 들어와서 양자역학이 발달하고, 생물학이 발달하면서 변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리학적 관점은 대단한 것이지만 그걸 알아차리기도 힘들고 나름의 해독도 크다. 그래서 물리학도였던 나에게 그걸 해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나는 내가 물리학적 관점을 택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면서 그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당연시 하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 나의 사고방식에 대한 메타적 분석으로서 물리학, 나아가 과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세상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사고하는데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도 했다. 나만의 실수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 영상이나 티비 방송을 보다보면 상황은 좀 달라진 것같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물리학적인 관점의 해체에 있지 않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달까. 물리학이 학문의 제왕으로 다른 학문들에게 큰소리를 치던 시기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천재물리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가득했다. 그러니까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학문이란 바로 물리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아인쉬타인이나 파인만 같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들이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물리학이라는 관점을 기반으로 해서 사고를 구성하는 일이 보편적이었으므로 물리학적 사고의 해체와 분석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에는 훨씬 더 일상생활이나 사회문제중심의 사고방식들이 다양하게 세상을 떠돈다. 나는 그걸 여기서는 성공한 사람의 관점이라고 부를 것이다. 

 

예를 들어 사업가를 보자. 오늘날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같은 사람들이 말을 할 때 사람들은 마치 무슨 종교지도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집중한다. 그런 유명 사업가들이 물리학을 모르고, 과학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와 같이 사고하냐면 그렇지는 않다. 사실 위에서 말한 두 사람은 모두 대학을 중퇴한 사람들이다. 

 

그런 유명한 사업가들은 비전가로 불리면서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사람들에게 퍼뜨린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이것이 가치있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것자체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같은 하나의 학문이고 사상이다. 비록 그것이 때로는 이루 말할 수없이 조잡하여 사이비종교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합리적 사고를 위해 메타적 분석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물리학적 관점의 분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다양한 사고방식들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그렇게 다양한 방식들로 사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은 참으로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자체도 무슨 학문분야처럼 체계적으로 논리를 쌓아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상당부분 결과론이다. 그러니까 일론 머스크가 세계 전기차의 미래를 말하면 사람들은 듣는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을 잘하는 법, 나아가 스포츠 분야에서 성공하는 법을 말한다면 또 들을 것이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나 김연아가 어떤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것이 반드시 그들의 말이 옳다거나 혹은 체계가 잡혀있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왜 성공했는지 모른다. 최고의 축구선수가 최고의 감독이 되거나 최고의 트레이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담이나 자기계발서의 이야기들은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꼭 맞는지 알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축구에 대해 똑같은 이야기를 박지성이 할 때랑 내가 할 때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 결국 성과를 보고 그냥 믿는 것이다. 

 

이렇게 종종 하나의 성공신화가 어설픈 증거와 논리와 결합하면 하나의 믿음 체계가 되고 그것이 때로는 관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된다. 오늘날의 서점에 가보면 그래서 유명인들이 쓴 책들이나 유명인들의 성공이유를 분석한 책들이 잔뜩 있다. 이런 책들이 관심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상할 것이 없지만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어떤 공통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이나 패러다임은 포기하고 바로 그 열매가 열리는 분야를 주목하는 것같다. 

 

그 결과 대학교수들의 매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학자들처럼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지식체계를 만드는 사람들의 작업은 부질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이제 그런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체험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어진다. 경제학의 석학보다 중졸이지만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의 말이 더 매력적인 것처럼 생각되기 쉬운 세상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빨간 양말을 신고 주식을 사면 재수가 좋다더라같은 말이 관심을 받는 세상이랄까. 

 

이는 상당부분 내가 말한 전통적이고 학문적인 사고 방식이 현실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파인만이나 아인쉬타인이 인기있었을 때는 일반 사람들은 아주 바보같아보였지만 지금은 일론 머스크같은 유명 기업가가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대학교수들이 바보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무 능력도 없고 결정장애가 있는 공부벌레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대학바깥에서 그들이 뭘 할 수 있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물론 이런 흐름은 본래 당연하고 건강한 것은 아니다. 사이비 비전가들에게 세뇌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그들의 관점대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그들의 무모함과 허술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여전히 고전으로 돌아가고, 과학적 사고의 분석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가장 훌룡한 연습문제라고 할 수있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은 물리학도처럼 사고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가 하나의 사고방식을 분석하고 해체하는 것을 연습한다면 다른 것도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우리 대신 모든 사이비 종교적 믿음을 분석해 주지 않는다. 자기 인생도, 자기 투자도 자기가 한 결정에 따라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한 것이 그다지 당연하지 않더라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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