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법률가의 시각, 물리학자의 시각

by 격암(강국진) 2022. 11. 23.

22.11.23

오늘날에는 법조인이 정치에서 크게 힘을 쓰고 있다. 특히 지금의 정부는 검사의 정부라고 불릴 정도이며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변호사니 판검사 출신의 정치인을 너무나 많이 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법률가의 시각과 다른 분야에서 훈련받은 사람 예를 들어 과학자의 시각은 어떻게 다를까?

 

이에 대한 답이 한가지는 아니겠지만 여기에는 상당히 주목할만한 측면이 있다. 법은 사람들에게 질서를 강제하기 위한 시스템에 대한 것이거나 최소한의 윤리에 대한 것이다. 즉 법을 지킨다고 해도 모두가 윤리적인 것은 아니며 사회가 이건 정말 하지 말라고 하는 최소한의 경계를 정해 놓은 것이 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에 어떤 물질이 어느 이상 들어 있으면 식품판매가 안된다고 할 때 이 말은 그 물질을 딱 그만큼만 넣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면 합법의 영역에 있다는 뜻일 뿐이며 안좋은 것은 당연히 없으면 없을 수록 좋다. 최저임금에 대한 법도 임금을 딱 그만큼만 지불하면 된다는 뜻이 물론 아니다. 그것이 합법이라는 뜻일 뿐이다. 

 

법이 최적의 것이나 이상적인 것이 아닌 최소한의 것이라는 점은 그렇지만 망각되기 쉽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늘상 법의 경계에 주목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합법의 영역에 확실히 존재한다면 어떤 의미로 그 사람은 법률가에게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최저임금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할 때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고려대상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받을 것이 예상 되는 사람들과 그렇게 지불할 것이 예상되는 직장간의 힘겨루기와 사정의 파악이 그 법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일이 된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예술가나 과학자는 법을 어기지 않고 비윤리적인 일을 하지 않거나 굶어죽지 않는게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이 법과 윤리를 무시하고 돈이나 음식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그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며 어떤 의미로 진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인간이란게 단순히 굶어죽지 않고 범죄자가 아니면 인간인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패션 디자이너나 패션 모델에게 옷이란 그저 가릴 곳을 가리고 춥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법은 말하자면 주로 최소한의 의식주에 대한 것이며 경계의 윤리, 경계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법률가는 언제나 이런 최소한의 것에 시선을 고정시키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최소한의 인간만 본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의 직업병이다. 이 세상에는 불의와 탈법의 최전선이 얼마든지 있고 그런 곳에서 문제를 막아내고 있는 그들의 행위는 훌룡하다. 경찰은 범죄자를 잡고 소방관은 불과 싸운다. 군인은 전쟁을 막고 전투가 벌어지면 외적과 싸울 것이다. 의사는 병과 싸울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가치있는 일이며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렇기 때문에 법률가들만 사회를 주도하는 세상이란 빈곤한 세상이다. 법률가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결국 빈곤한 세상, 어두운 세상과만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를 두들겨 패는 경우를 매일처럼 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어떤 특정한 분야에 종사한다면 말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좋은 결혼이나 가정이란 겨우 가정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들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더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날마다 심각한 병과 싸우는 의사들은 오히려 풍요로운 정신이나 육체따위에는 무관심해 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정신이든 육체든 아프지만 않으면 그걸로 괜찮다는 것이다. 병과 싸우다가 삶이란 아프지 않는 것이 목적이 되버리고 마는 것이다.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가 극단적으로 가난했던 시절, 한국인들의 꿈은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꿈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오히려 그 시절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모두가 만원, 십만원에 매달릴 때 한가하게 학문을 한다거나 춤을 춘다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돈을 벌게 되냐고. 그럴 때 정말 우리가 돈을 벌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이유로 그걸 그만뒀다면 선진국이라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자기의 한계를 넘어 성장하고자 할 때 가장 현실적인 행동은 다른 관점에서는 가장 어리석고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법률가들은 종종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나같은 물리학자의 귀에는 그들의 말과 태도가 비현실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사실 지금의 한국 전체가 어느 정도 그렇다. 그래서 한국은 종종 이공계 사람들을 괴짜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이나 공학에 대한 열정이 돈과 결부되지 않으면 그 현실적인 법률가들에게는 이해가 되질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걸 왜 좋아하냐는 것이다.  이런 '현실주의'에 의해 은근히 억압받고 있는 것이 과연 이공계 사람들 뿐일까? 그럴리 없다. 예를 들어 건물에 관련된 법에만 관심있는 사람들이 건축을 전공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꿈꾸는 사람의 이상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매몰될 때 그것이야 말로 또다른 현실을 무시하고 인간이 되는 의미를 상당부분 훼손하고 마는 일이다. 우리는 하늘을 꿈꾸며 살기에 제대로된 인간인 것이다. 

 

법률가들이 사회를 주도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 정도면 충분히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법률가들에 의해 주도당할까? 그들의 권력욕이 커서? 그들이 유능해서? 그런 것도 다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거라고 생각한다. 불이나면 소방관이 필요하고 전쟁이 나면 군인의 목소리가 커진다.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의 목소리가 큰 것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아직도 기본과 싸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방관과 군인이 과거에도 필요했고 미래에도 필요할 것이듯 법조인이 싸우고 있는 전선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소중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거기에만 매몰되어 있어서는 진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두 풍요로운 미래로 가기는 힘들다. 진짜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기는 힘들다. 법만 떠들고 있는 세상이란 사실 빈곤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머지 않은 장래에 사람들의 시선을 좀 더 다양하게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주목을 더 받았으면 한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고 정치적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 반드시 사회를 이끄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언론과 경제를 압박하고 한반도의 안보와 방역을 좌지우지하는 시대에 정치가들의 배경이나 성향이 안중요할 수는 없다. 또 나는 모든 법조인을 다 싸잡아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조인도 물리학을 알고 발레를 알며 건축을 안다고 쉽게 말하는 것은 물리학자와 발레리나와 건축가를 무시하는 일이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시간을 쏟은 것의 의해 시야가 제약되기 마련이고 특히 나쁜 것은 그러면서도 자기의 상식이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