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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오늘의 질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다시 읽기 (1권 4장)

by 격암(강국진) 2020. 6. 9.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열린 사회와 그적들 1권의 4장 변화와 정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일단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잠깐 정리해보겠습니다. 사회적 격변기에 태어난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쇠락하고 부패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의자가 오래되면 낡아서 부서지고, 사람도 오래되면 늙어서 죽습니다. 사회적 질서가 망가지는 시기에 태어난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사람에게 모든 것이 계속 망가지는 것이 역사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이 점은 100년뒤에 태어난 플라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플라톤은 한가지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차이점들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 차이점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바로 플라톤은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지식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린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그겁니다. 플라톤도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변화는 망하는 것이고 퇴화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완벽한 나라는 변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나온 것이죠.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플라톤은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형상과 이데아의 세계가 있으며 인간은 직관으로 이걸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겁니다. 즉 다시 말해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확실한 지식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죠. 예를 들어서 완벽한 국가가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이제까지 나온 말중 가장 중요한 말이었습니다. 이데아론은 확실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포퍼가 방법론적 본질주의라고 부르는 태도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이제 4장으로 넘어가 봅시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처음 3장 특히 3장이 확실한 지식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 책의 4장과 5장은 사회적 변화의 법칙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일찌기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서 말할 때 세상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변화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을 변화의 법칙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정역학 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머리가 하나 있고 팔다리가 두개씩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포탄이 하나 있다고 해봅시다. 대포에서 발사된 이 포탄은 발사되고 나서 계속 속력과 위치가 바뀌게 됩니다. 이렇다고 할 때 이 포탄의 궤적을 설명하려고 하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그렇지만 여기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초기조건 그러니까 처음의 위치와 속도를 주고 나서는 운동의 법칙을 주는 것입니다. 일단 이 포탄이 운동의 법칙을 따른다면 원칙적으로는 운동의 법칙만 알면 이 포탄의 궤도는 모두 나오게 됩니다. 더구나 이 운동의 법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의 법칙이 뭔지를 알아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일단 이 운동의 법칙이 발견되고 나면 포탄의 궤도는 포탄의 초기조건과 동등한 것이 됩니다. 즉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궤도는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이 점은 중요합니다. 

 

플라톤은 국가가 타락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우선 처음에는 완전한 국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완전한 국가가 타락하면 그 다음은 귀족이 지배하는 명예정치국가됩니다. 그 다음은 부유한 문벌이 지배하는 과두 정치국가입니다. 그 다음이 방만한 자유가 넘치는 민주정치국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가 망하는 참주정치가 옵니다. 참주정치란 한 사람 곧 참주가 지배권을 가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퇴화는 지배층의 분열때문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강력한 정신교육을 하고,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어서 재산과 명예를 탐하지 못하게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플라톤은 심지어 처자식도 공유해서 누가 누구 자식인지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와 달랐던 점은 플라톤은 역사의 방향은 뒤집어 질 수도 있다고 믿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진정한 국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우리가 사는 나라를 이데아 국가로 만들면 그 이데아국가는 타락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플라톤이 말한 국가변화의 과정보다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법칙을 설명함으로써 어떤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앞에서 우리는 포탄을 쏠 때 우리가 운동법칙을 알면 초기조건이 중요해 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역사의 법칙을 알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이 변화과정의 시작이나 끝부분만 보게 됩니다. 

 

그리고 물론 플라톤의 경우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시작에 해당하는 이상국가입니다. 그것이 부패하지 않고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나라니까요. 이 세상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고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나라들이 있었지만 그건 다 별로 중요한 나라들이 아닙니다. 그 나라들은 바로 역사의 법칙으로 다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허깨비들입니다.

 

이 세상에 이데아 침대라는 것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럼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침대가 있지만 우리가 신경써야 하는 것은 완벽한 침대인 이데아 침대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이데아 국가가 있으면 우리는 다른 불완전하고 변하는 나라에는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없죠. 그것들은 그저 지나칠 통과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루 빨리 그 완벽한 이데아국가로 우리나라를 바꾸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역사의 법칙이라는 것이 만들어 내는 효과입니다.

 

플라톤은 몇천년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플라톤의 말은 낡아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가지만 수정하면 오늘날에도 이런 이야기는 거의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수정 요소는 진화론입니다. 플라톤이나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는 곧 퇴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상국가는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과거의 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진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점점 좋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이상국가는 대개 미래에 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이 대표적이죠. 국가는 점점 진화해서 결국은 역사의 끝에 도달한다는 겁니다. 

 

오늘날에도 역사에 대한 이론 즉 역사주의는 플라톤의 이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즉 우리는 그 역사과정의 최종단계에만 주목하게 됩니다. 역사가 결국 우리를 어떤 최종적 유토피아로 데려다 준다면 그 유토피아로 하루 빨리 가자고만 하게 되는 겁니다. 이걸 믿으면 현실이 허깨비가 됩니다. 현실은 그저 통과점입니다. 중요한 건 역사의 종말이죠. 

 

그런데 왜 플라톤은 역사에는 시작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그건 바로 이데아론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본질주의입니다. 우리가 국가는 무엇인가, 정의는 무엇인가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말의 본질을 알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플라톤의 함정으로 빠지게 만듭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무시하고 변하지 않는 최종적 단계인 이상국가에만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포퍼가 플라톤을 비판한 것은 플라톤이 기술하는 사회변화의 법칙이 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미워하고 노예제도를 인정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사실 포퍼는 사회학자로서의 플라톤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며 칭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법칙이든 저런 법칙이든 확실한 지식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같은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겁니다. 그건 바로 변하지 않는 이상적 국가를 믿고 거기에만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가끔 보면 요즘도 대학입시제도 하나 고치면 한국교육이 다 고쳐질것처럼 생각하거나 무슨 투표제도하나 고치면 한국 정치가 완전히 달라질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안보고, 사람들을 안보고 그것을 바꾸는 일에만 신경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게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분들도 다 플라톤의 함정에 빠져있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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