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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게임과 경계

건축과 게임

by 격암(강국진) 2020. 7. 26.

20.7.26

게임을 한다는 것은 규칙을 가진 공간에 참여자가 들어간다는 것을 말한다. 이 공간은 진짜 공간일 수도 있고 가상 공간일 수도 있다. 농구 경기를 한다는 것은 농구를 하는 공간에 들어가서 농구 룰을 지키며 승부를 겨루는 것을 말한다. 갤러그같은 아케이드 게임을 해도 사람은 가상공간에 들어가서 알고리즘이 정한 규칙대로 괴상한 생명체와 싸운다. 그 공간 안에서 참여자는 총알을 쏘는 우주선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우리는 이 게임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옛날 게임과 지금 게임과의 차이가 뭔지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규칙을 가진 공간에 참여자가 들어가는 행위는 농구나 온라인 게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가도 우리는 그런 행위를 하게 된다. 식당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음식을 주문하고 돈을 낸다는 규칙은 제일 공통적인 것이지만 추가 반찬이나 물은 셀프라는 규칙도 있는 곳이 있다. 중국에서는 차를 마시고 추가로 더 마시고 싶으면 차 주전자 뚜겅을 열어 둔다. 그러면 웨이터가 그걸 보고 차를 더 가져온다. 이런 것도 규칙이다. 어떤 식당은 핸드폰 통화를 안에서 할 수 없고 어떤 식당은 먹고 나면 식기를 반납해야 한다. 어떤 식당은 정장을 입어야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식당은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 

 

이 밖에도 무언 유언의 온갖 규칙이 가게에는 있을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어떤 가게 특히 오래된 가게에 들어가면 우리는 이런 규칙을 빠르게 배우게 된다. 그것은 주인이 말과 행동으로 알려주기도 하고, 써있기도 하며 다른 손님들을 보고 배우게 되는 규칙이기도 하다. 그래서 식당같은 장사는 일종의 역할극이 된다. 그 공간은 가게 바깥의 공간과 같은 공간이 아니라 손님은 손님다워야 하고 주인은 주인다워야 하는 공간이다.

 

가게가 망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이 규칙이 비합리적이거나 문란해서 그렇다. 즉 규칙이 흔들리는 것이다. 외부음식을 가져올 수 없고, 자리를 차지하면 반드시 1인당 하나의 주문을 해야 하며 자리에 앉아서 하루 종일 있을 수는 없다는 식의 규칙이 흔들리면 가게는 운영이 어려워진다. 일이 많아지고 수입이 줄어든다. 그러면 음식값을 비싸게 받거나 음식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가게는 망하는 것이다. 

 

결국 가게는 손님과 주인이 모두 만족하기 위해 최적화된 규칙을 가진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최적화하기가 가게만들기의 본질이다. 그래야 서비스도 좋고 음식도 훌룡하고 값도 싸서 손님이 만족하며 주인도 수익을 남기면서 오래 오래 가게를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가게란 하나의 역할극이며 나아가 하나의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다지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게의 규칙보다 더 원천적인 규칙도 있다. 그건 바로 물리의 법칙이다. 건축물은 말하자면 물리의 법칙을 규칙으로 가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물리의 법칙은 보편적이다. 카페와 학교 건물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다른 물리법칙이 작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건축물은 그냥 보편적인 공간이 아니다. 우리는 나무와 콘크리트로 그 공간안에 어떤 제약을 가하고 질서를 부과한다. 초능력자가 아니라면 벽을 뚫고 갈 수는 없고 인간이라면 대개 앉으라고 되어 있는 공간에 앉게 되고 모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 모이게 된다. 인간의 몸이 가지는 휴먼스케일 때문에 천장의 높이가 3미터인것과 10미터인 것은, 계단의 폭이 1미터인 것과 50센티미터 인 것은 서로 다른 제약을 가한다. 그래서 건축물도 하나의 게임이 된다. 우리는 그 공간안에서 그 건축물이 가하는 규칙에 따라 행동하고 먹고 자게 된다. 

 

물론 여러분은 이렇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나 아예 지구에 산다는 것도 게임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대한민국은 그 나름의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구는 지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이 규칙을 가진 공간이 아닌가. 그렇다. 사실 그것들도 다 게임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게임이라면 굳이 게임이라는 것을 말할 이유는 뭔가. 첫째는 규칙과 참여자에 주목하기 위해서 이다. 게임은 규칙과 참여자로 이뤄진다. 그러니까 뭔가를 게임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게임의 규칙은 무엇인가, 참여자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구에 산다는 말과 나는 지구에 살기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은 같은 말이면서도 다르다. 지구에 살기라는 게임을 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지구의 특성과 누가 거기서 사는가에 보다 집중하게 될 것이다. 혹시 지금 인간은 지구 살기라는 게임에서 반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게임은 유지불가능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게임이라고 하면 우린 그저 당연하기 때문에 규칙따위는 없고 식당이 본래 이러저러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이 공간이 무슨 규칙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다 세심하게 보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나면 그 당연해 보여서 있는지 없는지 몰랐던 규칙이 합리적인지 개선할 수는 없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가게의 규칙이 망가지면 가게가 망한다라던가 가게의 성공실패는 그 규칙에 달렸다던가 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이미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많이 이야기 하므로 새삼 건축이 게임이라고 말해서 더 많은 것이 얻어지지는 않을 것같다. 하지만 우리는 건축과 아케이드 게임을 같은 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게임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해는 물론 건축 그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건축에서는 규칙이 물리적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공지능을 대표로 하는 기술의 발달로 그 규칙이 보다 알고리즘적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앱을 켜서 피자를 배달시킨다면 여러분은 음식배달이라는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게임은 30년전만해도 그냥 전화를 하면 그 집의 배달원이 음식을 가져다 준다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각각의 부분은 아웃소싱되어 분리되고 인공지능같은 기술들이 여기저기에 침투하고 있다. 즉 여러 부분들이 자동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다르게 말하면 인공지능이 게임의 중요한 참가자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건물의 벽은 의지를 가지지 않는 고정된 물건이다. 그러니까 이건 규칙의 일부지 참가자가 아니다. 인공지능도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만 인공지능은 계속 학습하고 인간참가자와 피드백을 가지면서 변해간다. 그래서 점점 우리가 하는 게임들은 기계와 인간이 혼합된 게임이 되어가고 있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심지어 건축도 그렇다. 스마트 홈이란 건물에 지능을 달아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불을 끄지 않아도 불이 꺼지고, 사람이 보일러를 켜지 않아도 온도조절을 하고, 식료품이 떨어지면 사람에게 알려준다. 어쩌면 날씨에 따라 차양막이 저절로 펴진다던가 환기를 저절로 하고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집이 저절로 변신해서 거실이 넓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집도 생길지 모른다. 즉 건축은 물리적 법칙만을 규칙으로 하는 게임이었는데 이것에 알고리즘이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예는 전기차다. 우리는 차를 보통 기계로 인식한다. 하지만 전기차는 가전제품이 되었고 스마트폰이 되었다. 그래서 자동차의 주행능력과 제동능력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바꾸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물리적인 법칙이 주된 법칙이던 공간에서 알고리즘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게임의 본질적 성질이 바뀌었고 우린 전기차를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 바뀐 규칙을 이해해야 한다. 미래에는 집의 가치가 윈도우 업그레이드 하는 것처럼 프로그램 업그레이드에 따라 바뀌는 날이 올지 모른다. 

 

모든 규칙은 물론 인간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하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예절이나 규칙이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발견한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이유는 첫째로는 게임의 법칙이 너무 낡아서 그렇다. 이미 그 규칙대로라면 참여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가 않다. 그런데도 자꾸 낡은 게임은 참가자에게 이상한 역할을 강요한다. 두번째 이유는 인간이 게임의 법칙을 배울 수 없어서다. 인간이 그 게임의 법칙이 너무 낯설거나 너무 복잡해서 배우지를 못하는 것이다. 다들 법칙대로만 한다면 이상적일 수 있는 게임도 우리가 유한한 인간이라는 것을 잊으면 지옥이 될 수가 있는데 머리좋은 사람들은 게임을 설계하면서 대개 이걸 잊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작년에는 구글이 음성으로 미장원에 예약을 하는 시스템을 시연한 일이 있었다. 기계 비서가 인간 목소리로 인간이 하는 미장원에 전화를 걸어서는 예약을 하는 것인데 목소리와 대화내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전화를 받는 사람이 이게 기계인줄 알지 못할 정도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일부는 불쾌해 했다. 인간이 기계를 인간으로 착각해서 쩔쩔매는 것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기분나쁜 광경이었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후원한다는 오픈에이아이는 얼마전에 APT 3라는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뭔가를 질문하면 인터넷 컨텐츠를 기반으로 자연스런 답을 말할 수 있는데 놀라울 정도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금의 구글 검색은 그냥 단어가 들어있냐 없냐만을 말해주는 것에 비해 이런 프로그램은 인간의 질문을 이해하고 답하는 듯이 정보를 찾아줄 수 있다. 한계도 있고, 이게 진짜 이해도 아니지만 구글검색과는 확실히 한차원 다르다. 사진을 주고 고호라면 이걸 어떻게 그렸을까를 물어보면 그렇게 그려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작곡도 하고 프로그램도 짜고 그림도 그린다. 

 

다시 한번 말하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해보자. 문제는 두가지 이유로 생긴다. 하나는 당신이 낡은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당신이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게임이라는 말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것은 건축을 바라보는 눈에서도, 건축의 미래에서도 그럴 것이다. 

 

게임의 관점에서 보면 기계는 점점 규칙의 일부에서 참가자인 것처럼 변해간다. 아마 반대 현상도 생길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참여자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이 점점 규칙의 일부인 자동인형처럼 행동하는 현상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시대에 이미 과거에 우리가 그렇게 했듯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격론을 벌여서 인간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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