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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자기찾기

돈이라는 유물

by 격암(강국진) 2020. 8. 25.

2020.8.25

우리는 이따금 오래된 절이나 성당 그리고 교회에 구경을 간다. 그리고 중국에 있다는 거대한 불상같은 것을 보고 감탄하기도 한다. 그런 구조물들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믿기 힘들정도로 거대한 노력을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기술이 뒤떨어지고 인구가 작았던 시대에 그들은 왜 이렇게나 무리해서 이런 것들을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감탄과 동시에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이 하나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유물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우리 시대의 성전은 어디인가?”

 

우리가 몰두하고 있는 것들은 분명 하나가 아니다. 자동차. 아파트. 프로 스포츠. 대학. 큰 회사의 공장과 사무실 빌딩. 거대한 공항과 상가, 백화점. 우리가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들은 아주 여러가지다. 그러나 어떤 다른 것들보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돈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통장의 잔액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무시무시한 숫자의 돈을 통장에 가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쩌면 미래에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어린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 아이는 "아빠 저 때는 왜 사람들이 이런 걸 그렇게 많이 가지려고 했을까요"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미래의 아빠는 ‘옛날에는 이런 종교가 있었단다’ 라던가 ‘그때는 이런게 중요했지’ 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럴리가 없다고? 사실 돈이 이토록 중요하고 편리해 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돈이 있다고 사업도 하고 땅도 살 수 있는게 아니었다. 상업이 발달했었다는 서양이라고 해도 그저 약간의 시차가 있었을 뿐 옛날에 중요했던 것은 돈보다 토지였다. 

 

언제나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기 힘들지 모르지만 직업의 종말을 쓴 테일러 피터슨은 심지어 돈 즉 자본이 토지보다 중요해진 시대가 이미 예전에 지나가 버렸다고 주장한다. 17세기 이전에는 돈보다 토지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18, 19세기에는 토지보다 자본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20세기만 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즉 정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걸 넘어 창업자 정신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 언제나 제일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돈이 가장 중요한 시대는 이미 지나서 다른 것들이 더 가치있어 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이 테일러 피터슨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일부만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는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인 시대가 언젠가는 가버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말이 미래에는 돈을 원하면 그것을 쉽게 무한정으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보가 자본과 토지보다 더 중요한 시대라고 해도 자본과 토지는 소중하다. 다만 그런 시대에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과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 그리고 많은 토지를 가진 사람이 경쟁을 하면 이기는 것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보의 댓가로 많은 자본과 토지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주식시장이다. 좋은 주식투자를 하거나 자기회사를 상장해서 엄청난 돈을 번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최고의 무기는 기술이나 정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래보인다. 워렌버핏이며 빌게이츠등 부자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테일러 피터슨은 이제 정보보다 창업가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뭐건 돈보다 중요한게 정보인 것을 넘어서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등장한다면 확실히 우리가 열심히 추구해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닐 것같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온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미래의 어린이들은 돈에만 정신이 팔린 현대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은 본래 동사였다. 이 말은 돈이란 본래 뭔가를 해주기로 한 약속같은 거라는 뜻이다. 내가 너의 집 담장을 고쳐주면 너는 내 신발을 만들어 주기로한다는 식의 약속말이다. 그런데 뭔가를 해주는 것은 인간이다. 그래서 돈은 본래 동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약속이나 행위는 인간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약속과 행동을 우리는 명사화해서 우리에게서 분리해 냈다. 이것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사랑에 대한 예를 다시 소개해 보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다.

 

이 두 말은 같은 뜻이다. 그렇지만 첫번째 문장은 사랑한다라는 동사를 쓴다. 그래서 여기서 사랑한다는 행위는 주체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것은 물론 나의 욕구요 선택이고 행동이다. 반면에 두번째 문장에서는 사랑이 명사화되어 이제는 주고 받을 수 있고 꺼내어 버릴 수도 있는 객관적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싶지 않은데도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는 식의 문장이 가능해진다. 즉 사랑은 이제 나라는 주체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언어유희나 언어분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우리는 본래 주체적으로 어떤 행위들을 주고 받았는데 돈이라는 교환수단이 등장하면서 가치를 지닌 행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처럼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냥 사회적 협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렇게 하게 됨으로 해서 우리는 많은 혜택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돈이라는 매체가 만드는 왜곡도 가지게 되었다. 미디어의 이해를 쓴 마셜 맥클루언이 노동은 돈이라는 매체가 만들어 낸 것이며 그래서 다른 매체가 주도적이 되는 미래에는 노동이 사라지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것을 느끼기 위해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와 가족 내부에서의 인간관계를 비교해 볼 수 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직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내부에서는 단순히 돈을 받았기 때문에 부부가 되고 부모 자식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청소를 하고 울타리를 고치며 다른 누군가가 요리를 한다고 해보자. 이것이 가족 바깥에서의 사회적 활동이라면 대개 돈이 오갈 것이다. 즉 누군가가 청소와 울타리 고치기를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을 써서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달라고 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 내부에서는 일이 이렇게 흘러가지않는다. 그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을 한다. 

 

돈이라는 매체를 등장시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난 장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힘이다. 하지만 돈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의 가치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객관화 시킨다. 그래서 우리가 돈이 가치의 척도라는 생각에 중독되면 거꾸로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은 무가치한 일로 여기게 되기 쉽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족관계의 파괴다. 식당에 나가서 요리를 하면 나는 돈을 벌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끼고 직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집에서 요리를 하면 돈을 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일이 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되기 쉽다. 이 말은 돈이 가치의 척도라면 우리는 되도록 가족내부의 일을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집에서 아무리 바빴어도 "놀았던" 사람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백수가 되지 않고 직장 타이틀을 따고 싶어한다. 

 

과거에는 돈이 있어도 땅을 맘대로 살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지역공동체가 폐쇄적인 동네에 가서 그 동네의 땅을 사려고 한다면 단순히 시장가격으로 땅을 살 수 있는게 아니다. 같은 땅이 뜨내기가 살 때와 그 동네 토박이가 살 때 가격이 달라지게 된다. 문화적 관습적 원인으로 돈의 소통에 왜곡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돈이 만들어 내는 가치 판단의 왜곡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왜곡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지만 뭐든지 돈으로 따지는 것은 분명한 불합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의 대표적인 예가 협동조합활동을 하거나, 여러가지 돈들을 쓰거나, 공유경제 사업을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이나 우버택시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셨을 때 커피값을 깍아주는게 아니라 스탬프를 찍어주는 것도 그런 것이다. 주인은 한번 다녀갈 손님이 아니라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에게 댓가를 치뤄주고 싶다. 이럴 때 가게는 단순히 가게와 주인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손님 그룹으로도 이뤄진다. 애플이나 테슬라같은 회사는 고객과의 소통으로 유명했거나 유명하다. 거기에는 단순히 일회성의 거래를 통해 백만원을 주면 백만원가치의 물건을 제공한다는 것 이상의 가치교환이 있다. 

 

가치는 의미와 똑같은 말이 아니면 거의 같은 말이다. 그런데 어떤 것의 의미는 고립되어 홀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여진 문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BTS같은 유명 가수의 팬이라면 BTS가 신었던 신발과 똑같이 생긴 신발을 가지고 싶고 BTS가 먹었던 똑같은 딸기케이크를 먹고 싶을지 모른다. 신발과 딸기케이크 그 자체는 BTS가 뭘하던 객관적으로는 그대로지만 그 가치는 달라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돈이 만들어 내는 왜곡을 이겨내고 추상화가 진행되는 미래란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번째로 그 시대에도 분명히 미디어로 인한 왜곡이 나름 존재하겠지만 지금의 돈이 만들어 내는 왜곡과 비교하면 그 왜곡은 상당히 작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훨씬 돈에 의존해서 산다기 보다는 일종의 공동체에 의존해서 사는 느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이 그 사회적 망이기 때문이다. 

 

토지만 중요해서 돈이 힘이 없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 시대에는 직업의 종류도 작았다. 그래서 연예인은 천한 직업이고 과학기술자도 천대받았다. 뛰어난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재능을 타고난 김연아는 그런 시대에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토지를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노예부리듯 하던 시대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시대는 해방된 시대다. 그리고 그 해방은 계속되고 있다. 요즘 유튜버들이 각종 재능을 발휘해서 인기를 얻고 그걸로 직업을 삼기도 하는 것을 봐도 알 수가 있다. 전에는 좋은 대학나와서 유명 신문사 기자가 되어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는데 요즘은 전혀 다른 경로로도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홀로 가지는 능력이상으로 사회적 소통과 연결의 능력이다. 적절한 곳에 자신을 놓는 능력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홀로 있을 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망의 적절한 곳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한때 토지의 노예였던 사람들이 돈에 의해 해방되었듯이 이제 돈의 노예인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물과 우리의 역할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돈이 만들어 내는 왜곡이 사라지는 미래가 가지는 두번째 의미는 지금도 그렇지만 더더욱 많은 가치가 추상적으로, 창의력에 의하여, 문화적으로 만들어 질거라는 것이다. 가치와 의미는 뭔가가 놓여지는 문맥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문맥이란 추상적으로 창의력에 의해서 그리고 문화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예는 먹방과 e스포츠다. 과거의 사람들에게 먹방이라는 방송이 생길 것이며 심지어 그게 인기도 있을거라고 한다면 믿을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나 LOL같은 것을 잘하는 것이 영웅대접을 받게 하고 돈도 벌게 해준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테일러 피터슨이 쓴 책의 이름이 직업의 종말인 것은 직장에 취직해서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전세계에는 엄청나게 많은 대학들이 있고 그 대학들이 졸업생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따라서 그냥 남이 만들어 놓은 룰에 따라서 일을 할 인력은 엄청나게 사회로 쏟아지고 있다. 이것은 농사지을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공장과 상업으로 진출했던 우리의 조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다가올 미래에는,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자기 비전을 가지는 것, 차별성을 가지는 것의 가치는 매우 커지게 된다. 비록 모두가 일론 머스크같은 대단한 인물이 될 수는 없다고 해도 어떤 변화가 크게 다가 오고 있는지, 왜 어떤 것들은 이제 더 이상 매력적이 아닌지 같은 거시적 시각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그냥 교과서만 읽고 좁은 세상만 보고 열심히 시킨 일만 하면 나중에 은퇴할 때까지 그 직장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이미 하기 어렵다. 치킨집 창업이 기회라면 치킨집 창업을 하거나 아니면 그런 회사에 투자라도 해야 한다. 계속 세상을 보고 흐름을 읽고 자신을 판단하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 

 

토지가 제일 중요한 시대에 그런 모색은 거의 가치가 없었다. 당신이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근면을 제일의 미덕으로 여기고 열심히 농사나 짓는 것이 좋았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일에 더 숙련되도록 반복연습하는 것이 좋았다. 비전을 통해 그런 상황을 탈출할 사람은 당시에는 거의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만드는 왜곡이 사라지는 시대에는 반대로 잘되건 못되건 그런 모색을 끝없이 하지 않으면 살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치킨집을 해도 계속 같은 치킨만 튀기고 있으면 안된다. 유행은 금방 바뀔 것이다. 같은 것의 가치도 달라질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치킨에 더 많은 의미를 심기위해 아마도 인테리어를 위한 예술적 감각이나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열심히 자동차 수리기술을 배웠는데 그걸 다 배우고 나니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져서 정비소가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걸 위해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공부와 사색이지만 사실 당신이 극히 소수의 창의적이고 운좋은 인물이 아니라면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고 독자적인 비전을 발표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대개 당신이 일론 머스크가 되는 게 아니라 일론 머스크가 크게 성공하기 전에 그 사람의 옆에서 그 비전을 흡수하고 그 비전에 참여하는 것이다. 온 세상이 게임산업으로 집중하는 가운데 당신만 혼자서 반세기전의 직업에 집중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이걸 위해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망이다. 어떤 사람을 믿을 것인가, 어떤 경로로 정보를 얻을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당신의 위치가 당신이 얻을 기회와 정보를 크게 좌지우지 한다. 단지 빌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 옆에 있다가 그일에 참여한 것만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이야기는 우리시대에 너무 흔하다. 물론 그런 복권당첨은 아주 드물지만 우리는 그보다 작은 스케일에서 그런 일을 일상적으로 겪게 될 수 있다. 여기서 돈은 두번째다. 고립되고 홀로 존재하는 지식도 두번째다. 

 

우리는 피라미드 같은 유적앞에서 서면 참 이걸 만드느라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가 되면 그 시대의 어린이들은 우리 시대가 남긴 통장잔고를 적은 종이를 보며 질문할 것이다. “아빠. 이 사람은 돈을 이렇게나 많이 모았네. 돈이 아무리 좋아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쓰지도 않고 가지고만 있었어. 쓴다고 해도 절대 다 쓸 수도 없을만큼이야. 돈이 그렇게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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