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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고전 읽기

로얼드 호프만의 같기도하고 아니같기도 하고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21. 2. 17.

21.2.17

같기도하고 아니같기도하고 (the same and not the same)은 1981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던 로얼드 호프만이 1995년에 출간한 책이다. 그는 당연히 뛰어난 화학자였지만 동시에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시집을 발간하기도 하고 한국에와서 서정주 시인과 대담도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51개의 꼭지로 이뤄진 책은 그가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한 피그럼 강연을 중심으로 평소에 그가 쓴 에세이들을 더하고 고쳐서 다시 만든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저자는 이 책이 다른 무엇보다 화학이 흥미로운 분야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며 화학자가 뭘 하는 사람인가를 말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만 보면 이 책은 세상에 흔하디 흔한 '재미있는 과학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과 비슷한 것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들도 많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저자가 위대한 화학자라고 말하는 프리츠 하버가 암모니아를 만드는 하버-보슈 공정을 개발한 이야기라던가 수 많은 기형아를 만들어 낸 탈리 도마이드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이 대다수의 다른 과학 소개 책자들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고전이 된 이유는 그런 책들과 이 책이 말하는 화학의 즐거움내지 과학의 즐거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소개할 수 있지만 이 책이 과학소개서로서 가지는 바로 이 특이점을 중심으로 소개를 해 볼까 한다. 

 

시중의 과학소개서는 이런 저런 지식들을 늘어놓으면서 이게 재미있지 않냐고 말한다. 그런 책의 저자들은 마치 독자들에게 아첨하는 것같은 태도를 취한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 맞춰서 너 이런거 좋아하지 과학에는 그런게 있다. 뭐 이런 식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 소개서들은 종종 과학이나 기술이 큰 돈이 된다고 말한다. 무슨 줄기세포 기술은 앞으로 엄청난 산업의 바탕이 되니까 매우 중요한 것이다라던가 죽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왜 그걸 강조하겠는가.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과학기술의 유용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게 꼭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에서 멈춘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반면에 로얼드 호프만은 화학의 즐거움이 궁극적으로 자기 발견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똑같은 것들이 상황과 문맥과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로 다른 것이 되는 것에 주목하라고 이 책에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도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가 된 것이다. 화학이나 분자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화학을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건 마치 예술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조각상들을 보면서 저건 그저 돌맹이들이야라고 단언하는 것과 같다. 예술작품들인 조각상을 그저 돌맹이들이라고 말할 때 당연히 그 예술작품들은 흥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화학이란 이런거 아니냐고 단언하기 때문에 화학이란 지루하고 위험하기만 한 일로 여겨지며 흥미롭지도 않게 된다는 것이다. 

 

정작 노벨화학상을 받은 화학자인 로얼드 호프만은 화학은 여러가지 양면적인 얼굴을 가진 것이며 그래서 화학은 이런 것이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화학은 위험한 동시에 유익한 것이고 자연적인 동시에 비자연적인 것이며 창조인 동시에 분석이다. 어떤 것에 대한 흥미는 이렇게 우리가 그걸 어떻게 보고, 우리가 그걸 어떤 문맥에 놓는가에 따라 즉 우리의 행동에 따라 그 대상이 바뀐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화학이 즐거운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발견에 이르게 되는 것은 화학공부라는 것을 통해서 사물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보는 것을 배우고 그런 관점을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흥미로움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화학자를 분자 예술가로 볼 수는 없냐고 말한다. 돌을 깍아서 조각을 만드는 조각가를 우리는 예술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원자를 이어붙여서 하나의 분자를 합성해 내는 화학자는 이와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으로 알고 화학자는 그저 분자를 분석하는 사람으로만 아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종종 예술가는 감정적으로 풍부하며 도덕적으로 완벽해 질 필요는 없다고 여기는 반면 화학자는 감정적으로 메말라있고 도덕적으로는 완벽한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화학자가 하는 일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분자의 합성이며 이것은 조각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은 창조작업이라는 것이다. 

 

로얼드 호프만은 과학자가 쓰는 논문도 하나의 문학작품처럼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쓴 기록이 아니라 재현성이나 객관성이라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개발한 특정한 문체로 쓰여진 글이다. 과학논문의 저자는 최대한 자기를 감추기 위해 문장도 수동태로 쓰는 일이 많다. 이것에는 단점도 있다. 과학연구가 이뤄지는 실제 현장은 과학 논문이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도 없고 과학자 개인의 특이성도 없는 곳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적인 열정과 개인적인 관심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을 과학자들은 알고 있지만 논문은 그런 것을 모두 감춰버린다. 최대한 사실대로 쓰는 것같은 논문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사실과 먼 기록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과학을 단순히 환원주의적 행위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즉 어떤 물체나 현상을 보다 기본적인 개념들로 분석하고 설명해 내는 일이 이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수직적 이해다. 이해에는 수평적 이해도 있는데 이것은 여러가지 다른 물체나 개념들과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지는 이해다. 관계란 보기 나름이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수평적 이해는 굉장히 창의적인 이해라는 점은 명백하다. 

 

내가 나의 아버지와 가지는 관계는 부자 관계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이 나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을 뿐더러 내가 나의 아버지와 가지는 관계가 부자관계라는 말로 모두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나에 대한 수평적 이해는 내가 세상과 가지는 무수한 관계들에 대해 하나씩 더 알아갈 때마다 더 증가한다. 그런 이해는 내가 어디를 보는가에 따라 나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나에 대한 이해를 창조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화학 나아가 과학은 환원주의적 행위라는 선입견은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 수직적인 이해는 우리를 하나의 패러다임에 쉽게 가둬버린다. 세상에는 종종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대중이 가지는 윤리적 심리적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따라서 그는 안티플라톤주의자를 자처하면서 과학자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전문가가 지배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옳다. 따라서 대중은 사회적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어야 하고 이는 화학에 관련된 정책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는 너무 당연한 결론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현실적으로 전문적인 주제에 대해 대중이 관심을 잃고 무지할 때 그런 무관심하고 무지한 대중이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은 납득이 안되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이 화학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모두가 화학은 그저 지루하고 복잡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대중은 화학에 대해 잘못된 정책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지식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과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며 인문학이다. 이때문에 많은 과학 소개서는 과학을 전공하고 진지하게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수십년이 지나도 읽을 가치가 여전히 있는 과학책은 드물다. 책은 그런 예외에 속하는 책이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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