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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말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

by 격암(강국진) 2021. 4. 10.

노무현정권때도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에 들어와서도 이 정권의 부인할 수 없는 실패가 부동산 정책 실패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부동산은 많이 올랐고 그에 대해서 정부측 입장에서는 실패를 인정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책의 실패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그걸 말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 말의 의미가 당연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정치문제에 있어서 반복되는 오류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오십보 백보라는 말로 정도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사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언제나 그 정도차이가 핵심이지 흑과 백으로 구분되는게 아니다. 시험을 봐도 백점이 아니면 빵점과 똑같다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50점이 80점 되는게 진짜 중요한 문제 아닌가. 그런데도 그냥 유죄냐 무죄냐는 식으로 사고하면 결과적으로는 나쁜 놈들을 옹호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오류가 바로 이 정책의 실패라는 말이 남용되는 것이다. 정책의 실패라는 말은 사실 과학적으로 그리고 엄격하게 말하자면 아무 의미가 없다. 역사는 반복될 수 없고 사회적 문제의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 있는게 아니다. 정책의 실패란 누가 말하든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 믿음과 주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점을 완전히 망각하고 이건 의견이 아니라 팩트라는 식으로 정책의 실패라는 것을 인식하면 우리의 사고는 엉망진창이 된다.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에 완전히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데이터를 보고 찾아낸 어떤 결론을 너무 쉽게 물리학법칙같은 자연법칙 수준의 절대법칙으로 이해한다. 쇠로된 공을 던지면 그 공은 떨어진다. 이게 중력법칙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옥상에서 쇠공을 누군가의 머리위로 떨어뜨린다면 이건 확실한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살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법칙들과 결과들은 그런게 아니다. 그냥 의견이다. 이상한 인과관계를 말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이명박 박근혜를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라가 망했다며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어리석냐고 6개월간 정치 뉴스는 보지도 않았던 적이 있다. 당신이 나의 의견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이 글에서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주장이 어떻게 뒤집어 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혹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자.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이명박 박근혜가 좋은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대통령을 했기에 국민들은 보수 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 나라가 확실하게 미래로 가는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촛불혁명같은 것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명박 박근혜가 당선된 것은 결과적으로 이 나라에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한번 한가지 가정을 더해보자. 지금부터 우리나라는 아주 잘 성장해서 세계 최고의 부자 선진국이 되었다고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이 이 의견들에 동의하는가 안하는가는 이 논의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이같은 역사와 그것에 대한 의견들을 바라보는 사고의 흐름이고 결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가 당선되는 것이 한국 경제를 살렸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잠깐 천천히 생각해 보라. 결론적으로 한국이 부자 선진국이 되었지 않은가? 그러니까 누가 역사책에서 두가지 사실을 내놓는 것이다. 1번 이명박 박근혜 당선, 2번 한국이 부자선진국이 됨. 이 두가지 사건이 시간적으로 앞뒤로 나열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이걸 인과관계로 파악해서 이명박 박근혜의 당선이야 말로 한국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일었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옥상에서 쇠공을 던진 사건과 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당선 사건을 비교해 보면 왜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는 인과관계를 논하기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윤리나 정의라는 관념과는 다를 수도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 사회적 사건에서는 인과관계를 암시하는 말을 만들어 내기가 아주 쉽다. 어떤 학부모가 어떤 특정한 교육방침을 따랐는데 그 자식이 살인범이 되었다. 이것은 그 교육방침이 살인범을 만든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증거가 아니다. 편견이다.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며 특히 여기서 그 자식의 개인적 의지따위는 무시되어 있다. 살인범은 만들어지기 전에 살인범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하나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뜻이다.

 

"나는 다른 정책을 알고 있다. 그렇게 정책을 폈더라면 지금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텐데 다른 정책을 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나쁜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아마도 당신의 주장은 옳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주장이 아주 신빙성이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그 정책이란 것이 매우 빠른 결과를 가져오며 비교적 좁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그렇다. 예를 들어 코로나 검사를 광범위하게 실시하면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같은 것이 그렇다. 이 주장에는 과학적인 즉 진정한 전문가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코로나 확산이란 문제는 행복이라던가 역사라던가 하는 주제에 비하면 훨씬 더 측정이 쉬운 문제다. 

 

그런데 부동산 정책의 전문가가 과학자인가? 부동산 문제가 과학이라면 부동산 문제가 지금 왜 있겠나 벌써 다 해결되었지. 세상에는 부동산의 전문가가 있을 지 몰라도 그들은 의사나 과학자가 전문가라고 말할 때의 전문가라는 것과는 다르다. 그저 부동산에 대해 남들이 모르는 것을 하나둘 안다는 것이지 그들도 부동산의 미래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인간사회와는 달리 물리법칙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인간의 몸은 적어도 수만년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벌높은 부동산 전문가보다 동네의 무식한 복부인이 부동산 투자에 더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을 가진 인공지능 프로그래머보다 공부는 하나도 안한 길거리 노숙자가 더 좋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라고 말한다면 그 근거가 부동산이 올라서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본래 정책이란 그렇게 비판하는게 아니다. 경제는 다 연결되어져 있다. 부동산은 안 오르고 나라 경제가 폭망이라면 부동산 정책은 성공이라고 할 참인가? 뭐가 올바른 부동산 정책일까? 박근혜 정권때는 부동산이 오르지 않았다. 이명박 때는 오히려 조금 내렸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책이 성공인가? 그냥 부패가 너무 심해서, 경제가 폭망이라서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부동산이 안오른거 아닐까? 그때는 집값만 안오른게 아니라 주식도 안올랐다. 방역에 실패해서 나라가 해마다 엉망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을 폈어야 할까? 우리는 어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가 아파트 공급을 확줄였나? 문재인 정부가 대규모 투기 바람을 일으켰나?  문재인 정부는 꾸준히 부동산 가격 과열을 막기 위해 경고도 하고 압박수위를 높여가지 않았나? 언제 부동산 가격 많이 올라도 좋다고 했나? 당신이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라고 말한다면 뭐가 확실한 실패원인인가? 

 

나는 이 정권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비판과 지적은 계속되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대안도 만들어야 한다. 대안이 있다고 해도 당장의 피해자가 있는게 문제지만 그걸 또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비판이란 중간은 볼 것도 없이 그냥 결과보고 안되겠군 틀렸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계속 문제를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결과만 쳐다보면 왜적이 처들어 오는데 전쟁에 밀린다고 목숨걸고 싸우는 장군을 욕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결정과정의 정당성과 참여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수정권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오만이니 뭐니 하는데. 이명박 정권때 4대강공사는 어느 정도의 속력으로 치뤄졌나. 일본에서도 아라카와 강이라는 강하나를 그 비슷하게 개발하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걸 결정해서 끝내는 것까지 몇년에 해버렸다. 보수세력은 말도 안되는 짓을 너무 많이 하면서 내가 다 잘안다고 너무 빨리 밀어부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 폭망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 결과가 폭망이라는 것만 문제 삼는게 아니다. 과정이 너무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속도를 위해서다. 자기 임기내에 마치기 위해서다. 그 당시 언론은 목사를 불러다가 토목과 교수랑 설전을 벌이게 하질 않나, 장난감 로보트 물고기 보여주면서 그걸로 4대강 오염문제를 해결한다고 쑈를 하지 않나 가관이었다. 그때야 말로 대통령의 오만을 지적했어야 하는 언론들이 4대강 밀어주기 바빴다. 그리고 똑같은 언론들이 이제와서 문재인 정권의 오만을 지적하면서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정권의 오만이 지겨우니 보수정권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게 말이 되나? 

 

우리는 절차가 필요하고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책토론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도 흑백은 아니다. 설사 이명박이라고 해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비하면 훨씬 더 민주적이다. 게다가 현실에는 민주주의와 전문성이 충돌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어떤 문제든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떠들면 최고의 답이 나오고 효율적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 초기에는 인터넷 시대에는 모두가 언제나 다수결 투표를 해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시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건 매우 비효율적이라서 사람들을 너무 괴롭히는 시스템이다. 모든 사안을 모든 사람이 공부해서 투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와 전문성의 문제 그리고 정책의 의미와 평가에 대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면서 세상은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런 것없이 나는 과정은 전혀 알바 없고 지금 배고프고 지금 아프니 결과적으로 이 정권은 틀렸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시대에 맞질 않는다. 천장에 물이 샌다고 물이 새는 걸 보니 이 천장은 틀렸다면서 장마철에 천장을 뜯어내면 어떤 상황이 되는가? 그냥 집이 물바다가 될 뿐이다. 문제는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다. 그걸 같이 토론하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어떤 답이든 문제를 또 만들겠지만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게 바로 내가 군사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보수가 시대에 뒤져 있으며 이 나라를 망친다고 말하는 이유다. 우리는 왜 박근혜에게 분노했던가? 그게 한가지는 아니겠지만 정식 절차는 무의미하고 출근안하는 대통령의 얼굴을 장관도 보기 어려우며 박근혜가 최순실같은 엉터리 비선 실세에게 실질적으로 지배당하는 바보같은 여자라서 그랬던거 아닌가? 그때 우리는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결과만 보고 무조건 실패운운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실패라니 뭐가 실패라는 것인가. 당신은 뭘 하고 싶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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